[Louis Vuitton①] 주문 뒤 10개월…루이 비통이 앞세운 ‘기다리는 명품’

가격 공개 전 자개 2000여 조각·가죽 1500여 조각 부각 선택 매장과 고객 행사서 주문…재고 부담 줄이고 희소성 강화

2026-08-27     박채빈 기자
Louis Vuitton Steers Its Trunk-Making Heritage Under the Sea With the High Trunks. 사진=Louis Vuitton,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KtN 박채빈기자]루이 비통이 ‘하이 트렁크(High Trunks)’ 일부 제품의 주문 제작 기간을 약 10개월로 잡았다. 가격보다 먼저 공개한 정보는 자개와 가죽의 조각 수, 크롬 도금 횟수다. 손으로 자른 자개는 2000여 조각, 가죽은 1500여 조각에 이른다. 투명 아크릴을 사용한 제품에는 은색 크롬을 두 차례 입힌다. 오래 기다려야 하는 이유를 복잡한 수공예에서 찾도록 한 판매 방식이다.

하이 트렁크는 퍼렐 윌리엄스(Pharrell Williams)가 루이 비통 2027 봄·여름 남성 컬렉션에서 선보인 주문 제작 트렁크다. 1850년대부터 이어진 여행용 트렁크에 자개와 파이톤 가죽, 투명 아크릴, 크롬을 적용했다. 남성 컬렉션의 바다와 서핑 주제도 트렁크에 옮겼다.

주력 제품은 Courrier Lozine 110(쿠리에 로진 110)이다. 직육면체 형태와 잠금장치 등 기본 골격은 유지하고 외부 소재와 장식 방식을 달리했다. Mother of Pearl Marquetry에는 자개, Chrome Wave에는 아크릴과 크롬, Liquid Python에는 파이톤 가죽을 사용했다.

Mother of Pearl Marquetry 제작에는 자개 2000여 조각이 들어간다. 자개를 손으로 잘라 훈연한 낙엽송에 끼워 넣고 표면을 다듬는다. Leather Marquetry Under the Sea에는 35종이 넘는 가죽을 사용했다. 1500여 개로 자른 가죽을 맞붙여 산호초와 열대어, 수생식물을 표현했다.

두 제품에 들어간 조각 수는 제작 난도를 설명하지만 소비자가 값을 따질 수 있는 가격 정보는 제공하지 않는다. 재료와 공정이 복잡하다는 사실만으로 판매가가 어느 수준에서 정해졌는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가죽 1500여 조각과 자개 2000여 조각이라는 숫자는 원가를 드러내지 않으면서 고가 제품이라는 인식을 심어주는 역할을 한다.

판매 장소도 제한했다. 하이 트렁크는 일부 루이 비통 매장과 ‘Savoir Rêver’ 고객 행사를 통해 주문받는다. 온라인에서 가격과 재고를 확인한 뒤 바로 결제하는 일반 제품과 판매 과정이 다르다. 매장을 방문하거나 고객 행사에 참여해야 구체적인 상담을 받을 수 있다.

판매 창구가 좁으면 제품끼리 가격을 비교하기도 어렵다. 여러 브랜드의 비슷한 제품을 한곳에 놓고 가격과 기능을 따지는 소비 방식이 통하지 않는다. 자개 상감과 크롬 조형, 루이 비통 모노그램을 묶은 제품은 직접 견줄 대상이 많지 않다. 제품 가치를 판단할 때 브랜드가 제공하는 설명의 비중이 커질 수밖에 없다.

10개월의 제작 기간은 루이 비통에도 유리하다. 주문을 받은 뒤 생산에 들어가기 때문에 비싼 재료와 긴 작업시간이 필요한 트렁크를 미리 여러 점 만들어 둘 필요가 없다. 완제품이 팔리지 않아 재고로 남을 부담도 줄어든다. 주문량에 맞춰 재료와 작업 일정을 배분할 수 있다는 점도 주문 제작의 이점이다.

소비자는 반대편에서 기다린다. 완성된 여러 제품을 직접 비교해 한 점을 고르는 것이 아니라 견본과 제품 설명을 보고 주문한 뒤 약 10개월이 지나야 물건을 받는다. 브랜드는 판매가 확정된 제품을 만들고, 소비자는 실제 소유하기 전부터 제작 기간을 감수한다.

일반 유통업체는 주문과 배송 사이의 시간을 줄이기 위해 경쟁한다. 명품 주문 제작에서는 늦은 인도가 반드시 약점으로 취급되지 않는다. 오래 걸리는 수공예와 적은 생산량이 희소성을 뒷받침하기 때문이다. 소비자가 기다려야 하는 시간이 길수록 쉽게 살 수 없는 물건이라는 인식도 강해진다.

하이 트렁크는 여행용 가방보다 수집품에 가깝게 구성됐다. 실제 여행 일정에 맞춰 사용할 제품이라면 10개월은 지나치게 긴 납기다. 장식품이나 수집품은 사용 시점에 쫓기지 않는다. 긴 제작 기간을 불편보다 희소성으로 받아들일 가능성이 크다.

루이 비통은 새 형태도 추가했다. 거북을 본뜬 LV Turtle Trunk, 서류가방 형태를 조정한 Neo Briefcase Trunk, 보석을 보관하는 Mini Malle Bijoux가 포함됐다. 트렁크 사업의 무게중심이 짐을 운반하는 가방에서 개인 공간에 두는 수집품으로 넓어지고 있음을 알 수 있는 제품들이다.

Mother of Pearl Marquetry와 Chrome Wave, Summer Captions, Liquid Python Courrier Lozine 110은 주문 뒤 제작까지 약 10개월이 걸린다. 나머지 제품은 2027년 1월부터 순차적으로 판매될 예정이다.

루이 비통은 하이 트렁크의 가격보다 기다려야 할 기간과 투입된 조각 수를 먼저 알렸다. 주문을 받은 뒤 생산해 재고 부담을 낮추는 동안 소비자는 완성품을 받기까지 10개월을 기다린다. 수공예에 걸리는 시간이 명품의 가치를 높이는 근거가 되면서 생산 지연의 부담까지 소비자의 몫으로 넘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