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uis Vuitton③] 바다 내세운 트렁크, 자개만 ‘지속가능’…파이톤·아크릴 설명은 빠졌다

해양생태계 표현하면서 소재별 정보 공개에는 큰 차이 파이톤 종·원산지 밝히지 않고 아크릴·크롬의 생산·수선 정보도 비공개

2026-08-29     박채빈 기자
Louis Vuitton Steers Its Trunk-Making Heritage Under the Sea With the High Trunks. 사진=Louis Vuitton,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KtN 박채빈기자]루이 비통 ‘하이 트렁크(High Trunks)’에는 바다를 옮겨 놓은 제품이 여럿 포함됐다. 가죽 1500여 조각으로 산호초와 열대어를 만들었고, 파이톤 가죽에는 물결과 비슷한 효과를 냈다. 투명 아크릴을 파도 형태로 깎아 크롬을 입힌 제품도 내놨다. 바다는 컬렉션 전반을 묶는 주제지만 소재의 출처와 생산 과정에 관한 설명은 제품마다 달랐다.

Mother of Pearl Marquetry Courrier Lozine 110에 사용한 자개에는 ‘지속가능한 방식으로 조달했다’는 설명이 붙었다. 대형 진주조개에서 얻은 자개 2000여 조각을 훈연 처리한 낙엽송에 끼워 넣었다. 자개를 어느 지역에서 들여왔는지, 지속가능성을 판정한 기준과 인증기관은 공개되지 않았다.

Liquid Python Courrier Lozine 110의 설명은 더 짧다. 파이톤 가죽을 손으로 마감해 물처럼 흐르는 효과를 냈다는 내용이 전부다. 사용한 비단뱀의 종과 원산지, 사육 또는 포획 여부, 가죽의 유통 경로는 공개하지 않았다.

자개에는 ‘지속가능’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면서 파이톤에는 같은 수준의 조달 정보를 제시하지 않은 셈이다. 소비자는 완성된 무늬와 가공 방식은 알 수 있지만 원재료가 어디에서 어떤 경로로 들어왔는지는 알기 어렵다.

파이톤 가죽은 일반적인 소가죽과 거래 조건이 다르다. 비단뱀과 관련 종 상당수는 ‘멸종위기에 처한 야생동식물종의 국제거래에 관한 협약’(CITES)의 관리 대상이다. CITES에 등재된 야생동식물과 가공품의 국제거래에는 종과 등재 등급에 따라 허가서와 증명서가 사용된다. CITES는 허가제의 목적을 합법적이고 지속가능하며 추적할 수 있는 국제거래를 확보하는 데 두고 있다. CITES 허가제

CITES 규정을 지켰다는 사실만으로 환경 부담이 모두 해소되는 것은 아니다. 국제거래가 가능한 종인지 판단하는 절차와 개별 브랜드가 공급망을 얼마나 자세히 공개하는 일은 별개다. 합법적인 거래라는 최소 조건을 넘어 사육·포획 방식과 원산지, 유통 경로까지 알려야 소비자가 소재의 배경을 판단할 수 있다.

CITES도 파이톤 가죽의 추적 문제를 별도로 다뤄왔다. 추적성은 공급망을 거친 동식물 표본과 거래 과정에 관한 정보에 접근할 수 있는 상태를 뜻한다. 2026년에도 뱀 가죽의 재고와 표식을 관리하는 추적 체계가 관련 논의에 올랐다. CITES 추적성 기준

하이 트렁크는 파이톤을 사용했다는 사실만 알렸을 뿐 추적 정보를 제품 설명에 담지 않았다. 파이톤의 무늬와 물결 효과는 판매 요소로 전면에 나왔지만 종과 원산지는 뒤로 밀렸다. 희귀 소재의 외관은 강조하고 해당 소재가 거쳐 온 경로는 공개하지 않은 방식이다.

Chrome Wave Courrier Lozine 110도 비슷하다. 투명 아크릴 패널을 파도 형태로 깎고 모노그램을 레이저로 새긴 뒤 여러 마감층과 두 차례의 은색 크롬 코팅을 적용했다. 공개된 내용은 완성된 외관과 가공 횟수에 집중됐다.

아크릴의 종류와 원료, 생산 과정에서 발생한 부산물, 손상된 패널의 교체 방식은 공개되지 않았다. 크롬 코팅을 벗겨 다시 입힐 수 있는지, 표면 일부만 수선할 수 있는지에 관한 정보도 없다. 거울처럼 반사되는 효과를 만드는 과정은 상세하게 소개했지만 제품을 오래 사용하고 폐기하는 단계의 정보는 제공하지 않았다.

Summer Captions Courrier Lozine 110에도 반투명 아크릴이 사용됐다. 해변의 일몰과 비슷한 색을 표현했다는 설명은 있지만 아크릴의 재활용 가능 여부와 부품 교체 방식은 공개되지 않았다. 같은 컬렉션에 투명·반투명 아크릴 제품이 여러 점 포함된 만큼 장식 효과만으로 소재 선택을 평가하기 어렵다.

트렁크는 의류나 소형 가죽제품보다 사용 기간이 길 수 있다. 루이 비통 제품이라는 이유만으로 수명이 저절로 보장되지는 않는다. 자개가 깨지거나 아크릴이 긁히고 크롬 표면이 벗겨졌을 때 수선할 수 있어야 오랫동안 사용할 수 있다. 부품을 교체하지 못해 제품 전체를 사용하지 못하게 되면 긴 제작 기간과 주문 제작이라는 조건도 환경적 장점으로 이어지기 어렵다.

하이 트렁크에 사용한 재료가 모두 같은 환경 부담을 갖는 것도 아니다. 자개와 가죽, 목재, 파이톤, 아크릴, 크롬은 원료와 가공 방법, 수선과 폐기 방식이 서로 다르다. 자개 한 종류에 ‘지속가능’이라는 표현을 붙이는 것만으로 컬렉션 전체의 소재 선택을 설명할 수 없는 이유다.

바다를 주제로 한 제품에는 산호초와 열대어, 조개, 파도가 반복된다. 2027 봄·여름 남성복 쇼에서도 대형 파도 구조물과 모래 런웨이를 설치했다. 해양생태계는 의류와 트렁크, 행사 공간을 묶는 시각적 자원으로 폭넓게 사용됐다.

자연을 디자인에 사용하는 것과 생산 과정에서 자연환경에 미치는 부담을 공개하는 일은 다르다. 산호초를 가죽으로 정교하게 표현했다고 해서 해양 보호와 곧바로 연결되지는 않는다. 자개를 지속가능하게 조달했다는 설명도 원산지와 기준, 인증 방식이 빠지면 브랜드가 제시한 표현 이상으로 판단하기 어렵다.

제품을 주문 제작한다는 사실도 환경성을 자동으로 보장하지 않는다. 주문받은 수량만 생산하면 판매되지 않은 완제품을 줄일 수 있지만 자개와 파이톤, 아크릴, 크롬을 가공하는 과정의 부담은 남는다. 생산량이 적다는 사실과 제품 한 점에 들어간 재료가 적다는 뜻도 같지 않다.

하이 트렁크의 일부 제품은 주문부터 제작까지 약 10개월이 걸린다. 다른 제품은 2027년 1월부터 순차적으로 판매된다. 판매가 시작되면 소비자에게 필요한 정보는 자개 2000여 조각과 크롬 코팅 횟수에 머물지 않는다. 파이톤의 종과 원산지, 자개의 조달 기준, 아크릴과 크롬 부품의 수선·교체 범위까지 공개돼야 바다를 앞세운 디자인과 실제 생산 과정을 함께 판단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