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인 홍콩 IPO, 1000억달러 신화에서 265억달러 현실로
17억달러 조달 앞두고 9월 1일 거래 개시…초저가 직배송 모델에 관세·규제 비용 반영
[KtN 최기형기자]쉬인(SHEIN)이 9월 1일 홍콩 증시에 입성한다. 2022년 사모시장에서 약 1000억달러의 기업가치를 인정받으며 세계에서 가장 몸값이 높은 패션기업 가운데 하나로 올라선 지 4년 만이다. 홍콩 기업공개(IPO)를 앞두고 거론되는 기업가치는 약 265억달러. 코로나19 대유행기에 형성된 고점의 4분의 1 수준이다.
기업가치 1000억달러가 소셜미디어와 초고속 공급망이 결합한 성장 가능성에 매겨진 가격이었다면, 265억달러는 관세와 규제, 물류비, 경쟁 비용까지 반영한 수치다. 쉬인의 홍콩 상장은 자금 조달을 넘어 초저가 의류를 전 세계로 직접 배송해 온 사업 모델이 공개시장에서 받을 첫 평가라는 의미를 지닌다.
쉬인은 신주 2억8000만주를 주당 47.60∼49.50홍콩달러에 공모한다. 희망가격 상단에서 결정되면 조달액은 138억6000만홍콩달러, 미화 약 17억7000만달러에 이른다. 시장에서는 주당 48.56홍콩달러, 조달액 약 17억3000만달러가 유력하게 거론된다. 해당 가격을 적용한 기업가치는 약 265억달러다. 다만 최종 공모가는 8월 31일 공식 확정된다. 로이터 8월 27일 보도
2026년 홍콩 증시에서 진행된 신규 주식 발행 가운데 가장 큰 규모다. 전체 발행주식에서 공모주가 차지하는 비율은 약 6.6%에 그친다. 상장 기업으로 전환하되 시장에 풀리는 지분은 제한하는 방식이다.
매출은 늘었지만 성장의 속도와 이익의 질은 후퇴
쉬인의 2025년 순매출은 418억5000만달러로 전년보다 8% 증가했다. 세계 패션산업에서 손꼽히는 외형이지만 증가율은 2024년 20.7%에서 절반 이하로 떨어졌다. 2026년 1분기 매출은 90억5000만달러로 1.1% 늘어나는 데 머물렀다. 상반기 증가율도 1분기와 비슷한 수준으로 예상됐다.
이익 감소는 더 가팔랐다. 2025년 순이익은 20억6000만달러로 38.7% 줄었다. 2026년 1분기에는 전년 동기 3억9500만달러 흑자에서 9900만달러 적자로 돌아섰다. 영업이익률도 3.9%에서 2.9%로 낮아졌다.
1분기 손실에는 상환전환우선주의 공정가치 변동에 따른 3억2800만달러 규모의 회계상 비용이 포함됐다. 일회성 비용만으로 실적 악화를 설명하기는 어렵다. 매출 증가율이 1%대로 내려앉은 가운데 미국 매출은 두 자릿수로 감소했고, 관세와 물류비는 영업이익률을 끌어내렸다.
쉬인이 구축한 경쟁력은 ‘많이 만들어 싸게 파는’ 기존 패스트패션과 결이 달랐다. 소비자 검색과 주문 데이터를 토대로 소량을 먼저 생산하고, 반응이 나타난 제품만 신속히 추가 주문했다. 중국 공급업체에서 해외 소비자에게 상품을 직접 보내면서 재고와 중간 유통 비용도 줄였다. 신상품을 빠르게 쏟아내면서도 가격을 낮게 유지한 배경이다.
정교하게 짜인 구조일수록 국경 비용의 변화에는 민감했다.
800달러 면세 폐지, 초저가 배송 공식 흔든 미국
미국은 중국발 소액 소포에 적용하던 ‘디 미니미스(de minimis)’ 면세를 폐지했다. 종전에는 가격이 800달러에 못 미치는 중국발 소포가 관세 없이 미국에 들어갈 수 있었다. 낮은 단가의 의류를 개별 포장해 소비자에게 보내는 쉬인에는 가격 경쟁력을 지켜주는 제도적 기반이었다.
면세 폐지 뒤 중국산 상품에 적용되는 세금은 품목과 조건에 따라 10∼87.5%로 높아졌다. 쉬인의 2026년 1분기 미국 매출은 전년 동기보다 14.3% 감소했다. 판매가격을 올리면 저가 경쟁력이 약해지고, 인상분을 회사가 떠안으면 수익성이 낮아진다. 어느 쪽을 선택하더라도 과거의 성장 공식을 그대로 유지하기 어려운 구조다. 쉬인 홍콩 IPO 보도
유럽에서는 수입 비용과 플랫폼 규제가 함께 강화됐다. 새로운 수입 부과금이 물류 원가에 반영되는 가운데 유럽연합(EU)의 디지털서비스법 조사와 프랑스·아일랜드의 개인정보 관련 절차가 이어지고 있다. 쉬인은 법률·규제 사안에 대응하기 위해 3월 말 기준 약 8000만달러를 충당금으로 설정했다.
테무(Temu)와 아마존의 공세도 고객 확보 비용을 높이고 있다. PDD홀딩스가 운영하는 테무는 초저가 상품과 판촉을 앞세워 쉬인과 소비층이 겹치는 시장을 넓혔다. 아마존은 저가 상품을 모은 ‘아마존 홀(Amazon Haul)’로 대응했다. 신규 소비자를 끌어오기 위한 광고와 할인 지출이 늘어날수록 매출 성장과 이익 확대를 동시에 달성하기는 어려워진다.
매출 0.7배의 가격, 인디텍스와 벌어진 거리
공모 희망가격 상단을 적용한 쉬인의 기업가치는 예상 매출의 약 0.7배다. 유럽 온라인 패션 플랫폼 잘란도(Zalando)의 약 0.4배보다는 높지만 H&M의 약 1.1배, 자라(Zara)를 보유한 인디텍스(Inditex)의 약 4배와는 거리가 크다.
기업가치 변화는 더 선명하다. 쉬인의 몸값은 2022년 약 982억달러까지 올랐다. 2023년과 2024년 투자 단계에서는 약 640억∼660억달러로 내려왔고, 홍콩 공모에서는 265억∼270억달러까지 낮아졌다. 4년 동안 매출 외형은 커졌지만 시장이 적용하는 배수는 오히려 축소됐다.
상장 장소도 뉴욕에서 런던을 거쳐 홍콩으로 바뀌었다. 쉬인은 2023년 미국 증권거래위원회에 비공개 상장 신청서를 제출했으나 중국 중심 공급망과 노동 문제, 미·중 갈등에 따른 규제 장벽을 넘지 못했다. 이후 런던으로 방향을 돌렸지만 영국 정치권과 규제기관의 검증이 이어졌다. 중국 당국의 승인을 거쳐 선택한 홍콩은 쉬인이 세 번째로 택한 증시다.
뉴욕 상장이 세계 최대 자본시장에서 성장기업의 지위를 인정받으려는 선택이었다면, 홍콩 상장은 낮아진 기업가치를 수용하고 상장을 완결하려는 결정에 가깝다. 쉬인이 확보할 17억달러보다 초기 투자자에게 유동성을 제공하고 공개기업의 가격을 확정한다는 의미가 더 크게 읽히는 배경이다.
외부 자본 받되 의결권 90%는 공동창업자에게
상장 이후 경영권은 공동창업자들에게 집중된다. 공모주 한 주에 부여되는 의결권은 창업자 보유 주식의 10분의 1이다. 스카이 양톈 쉬(Sky Yangtian Xu·쉬양톈), 매기 구(Maggie Gu), 몰리 먀오(Molly Miao), 토니 런(Tony Ren) 등 공동창업자는 전체 의결권의 약 90%를 통제하게 된다. 쉬양톈 창업자의 지분율은 약 33%다.
외부 주주는 회사의 경제적 가치에는 참여하지만 지분율에 상응하는 의결권을 확보하지 못한다. 창업자들은 기술 투자와 공급망 운영, 해외시장 전략을 장기적으로 밀어붙일 수 있는 권한을 유지한다. 경영진에 대한 일반 주주의 견제 수단이 제한된다는 부담도 같은 구조에서 나온다.
초석투자자 명단에는 보위캐피털(Boyu Capital), 타이거글로벌(Tiger Global), 제너럴애틀랜틱(General Atlantic) 등 기존 주주와 텐센트(Tencent), 그린우즈자산운용(Greenwoods Asset Management), 타이캉생명보험(Taikang Life Insurance), UBS자산운용이 이름을 올렸다. 약정액은 약 3억8300만달러로 전체 공모 예정액의 20%를 웃돈다.
공모 자금의 약 80%는 기술 고도화와 브랜드 투자, 해외사업 확대에 사용된다. 별도로 쉬인은 과거 투자 라운드에서 우선주를 매입한 일부 투자자에게 최대 약 35억달러를 현금으로 지급하기로 했다. 공모를 통해 들어오는 자금보다 큰 금액이다. 성장 투자를 위한 자본 확충과 기존 투자자의 권리 정리가 동시에 진행되는 셈이다.
9월 1일부터 홍콩 시장이 평가할 대상은 한때 1000억달러에 이르렀던 쉬인의 과거가 아니다. 연간 400억달러가 넘는 상품을 판매하면서도 관세와 규제, 가격 경쟁을 견디며 이익을 남길 수 있는지가 주가를 결정한다. 8월 31일 확정될 공모가에 이어 미국 매출 변화와 상반기 영업이익률, 유럽 수입 비용이 상장 이후 첫 실적에 반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