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WC F1 시계①] 9200달러 팀 워치, 정비사 손목에서 일반 판매로
메르세데스 F1 구성원을 위해 개발한 네 번째 공식 시계…팀 소속의 상징을 소비자가 구매하는 럭셔리 상품으로 확장
[KtN 김상기기자]F1 경주차가 피트에 들어오면 정비사들은 불과 몇 초 안에 타이어를 교체한다. 엔지니어와 레이스 전략 담당자는 실시간으로 쌓이는 데이터를 분석해 다음 주행을 결정한다. 스위스 시계 브랜드 IWC 샤프하우젠(IWC Schaffhausen)이 새로 공개한 보라색 크로노그래프는 드라이버만을 위한 기념품이 아니다. 경주 현장의 정비사와 엔지니어, 전략 담당자들이 착용하는 공식 팀 워치로 개발됐다.
제품명은 Pilot’s Watch Chronograph 41 Mercedes-AMG PETRONAS Formula One™ Team, 모델 번호는 IW388121이다. IWC가 메르세데스-AMG 페트로나스 F1 팀을 위해 제작한 네 번째 공식 팀 워치다. 미국 판매가격은 세금 별도 9200달러로 책정됐다.
신제품 공개 사진에는 메르세데스 F1 드라이버 조지 러셀(George Russell)과 안드레아 ‘키미’ 안토넬리(Andrea “Kimi” Antonelli)가 등장했다. 두 선수는 팀 유니폼과 함께 보라색 다이얼 시계를 착용했다. 광고의 전면에는 드라이버가 서지만 ‘팀 워치’라는 명칭은 정비사와 엔지니어까지 포함한다.
경주 현장에서 착용할 때는 조직의 소속을 나타내고, 매장에서는 F1 팀에 속하지 않은 소비자에게 판매된다. 팀 내부의 정체성과 외부 소비자의 소유 욕구가 하나의 제품에서 만나는 구조다.
드라이버 밖으로 넓어진 F1 시계
IWC는 2013년 메르세데스-AMG 페트로나스 F1 팀의 공식 엔지니어링 파트너가 됐다. 2026년은 협업 14년째다. 메르세데스 F1 팀은 영국 브래클리와 브릭스워스의 기술센터를 중심으로 1000명이 넘는 인력이 경주차를 설계하고 개발·생산하며 대회를 치른다.
공식 팀 워치는 2022년부터 제작됐다. 정비사와 엔지니어, 레이스 전략 담당자들이 경주 현장에서 착용하며 팀을 식별하는 요소로 사용됐다. 티타늄과 세라믹, 세라타늄(Ceratanium®) 등 가볍고 내구성이 높은 소재와 페트로나스 그린을 공통 요소로 삼았다.
F1 마케팅은 대체로 드라이버와 경주차에 집중된다. 경기 중계에 반복해서 등장하는 두 요소가 가장 높은 주목도를 확보하기 때문이다. IWC는 팀 워치를 통해 브랜드 노출 범위를 경주차를 만드는 조직 전체로 넓혔다.
경주 결과는 두 명의 드라이버만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차체와 동력계 개발, 공기역학 설계, 부품 생산, 조립, 타이어 교체, 데이터 분석, 경기 전략이 함께 움직인다. 정비사와 엔지니어가 착용하는 시계라는 설명은 드라이버 개인의 기록보다 팀 전체의 공학과 협업을 제품에 담는다.
팀 구성원에게 공급되는 수량과 방식은 공개되지 않았다. 무상으로 지급되는지, 일정 직군만 착용하는지, 구성원이 별도로 구매하는지는 확인 필요하다. 팀원용과 일반 판매용 사이에 사양 차이가 있는지도 공개되지 않았다.
유니폼에 이어 손목에 들어간 팀 색상
메르세데스 F1 구성원들은 경기장에서 같은 유니폼을 입는다. 스폰서 로고와 페트로나스 그린을 적용한 의류는 직무가 다른 인력을 하나의 팀으로 묶는다. 공식 팀 워치는 유니폼의 색상을 손목으로 옮긴 제품에 가깝다.
IW388121은 IWC 파일럿 워치 컬렉션 가운데 처음으로 짙은 보라색 다이얼을 적용했다. 숫자와 시간 표시에는 페트로나스 그린을 넣었고 시침과 분침에도 같은 색상의 야광 코팅을 사용했다. 다이얼과 색상을 맞춘 보라색 고무 스트랩도 장착했다.
보라색과 페트로나스 그린의 대비는 시계가 메르세데스 F1 팀과 연결된 제품이라는 사실을 드러낸다. 경기 중계와 현장 사진에서는 작은 로고보다 강한 색상 조합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팀 유니폼과 시계를 함께 착용하면 손목까지 하나의 색상 체계로 이어진다.
보라색은 싱가포르의 국화인 난초 반다 미스 조아킴(Vanda Miss Joaquim)에서 가져왔다. 싱가포르 그랑프리를 앞두고 제품을 공개하면서 개최 도시의 상징과 팀 색상을 하나의 다이얼에 배치했다. 페트로나스 그린이 앞선 팀 워치와의 연속성을 담당한다면 보라색은 2026년 제품을 구분하는 요소다.
팀 워치의 색상은 조직 내부와 일반 판매 시장에서 다른 방식으로 작동한다. 경주 현장에서는 유니폼과 함께 팀을 식별한다. 소비자의 손목에서는 메르세데스 F1 팀과의 연결을 외부에 드러낸다.
팀 구성원의 시계가 소비자의 상품으로
공식 팀 워치가 일반 판매되면서 제품의 성격도 달라진다. 정비사와 엔지니어가 착용할 때는 경주 현장의 작업 장비이자 조직의 상징이다. 소비자가 9200달러를 지불해 구입하면 메르세데스 F1 팀의 이미지를 소유하는 럭셔리 상품이 된다.
스포츠 유니폼과 비슷한 소비 구조도 나타난다. 축구팀 유니폼을 구입한 팬은 경기에 출전하지 않지만 선수와 같은 색과 엠블럼을 착용한다. IW388121은 기계식 무브먼트와 티타늄 케이스를 갖춘 고급 시계지만 팀 소속의 시각적 표현을 외부 소비자에게 판매한다는 점에서는 같은 흐름에 놓인다.
차이는 진입 가격이다. 9200달러는 일반적인 팬 상품과 비교하기 어려울 정도로 높다. F1을 좋아한다는 이유만으로 쉽게 구매할 수 있는 가격이 아니며, 기계식 시계 고객과 메르세데스 F1 팬이 겹치는 소비층을 겨냥한다.
생산 수량과 판매 기간은 공개되지 않았다. 개별 번호가 부여된 한정판이라는 설명도 없다. ‘공식 팀 워치’라는 명칭만으로 희소성이나 중고 가격 상승을 단정할 수는 없다.
41㎜ 티타늄 케이스에 담은 F1 이미지
IW388121은 지름 41㎜, 두께 14.5㎜의 Grade 5 티타늄 케이스를 사용했다. 방수 성능은 10바다. 볼록한 사파이어 글라스에는 양면 반사 방지 코팅을 적용했고 급격한 기압 저하에도 유리가 빠지지 않도록 고정했다.
티타늄은 강도에 비해 가볍고 열과 부식에 강해 고성능 엔진의 밸브를 비롯한 모터스포츠 부품에 사용된다. 시계에서는 스테인리스 스틸보다 손목의 무게 부담을 줄이면서 외부 충격을 견디는 케이스 소재로 쓰인다. Grade 5 티타늄은 F1과 고급 시계가 공유하는 소재라는 설명을 뒷받침한다.
케이스 내부에는 IWC 자체 제작 69385 칼리버가 들어갔다. 부품 242개와 보석 33개로 구성된 자동 기계식 크로노그래프다. 진동수는 시간당 2만8800회이며 파워리저브는 46시간이다.
12시 방향의 서브 다이얼에서는 측정한 시간을 읽을 수 있다. 3시 방향에는 요일과 날짜 표시창을 배치했다. 무브먼트는 투명한 사파이어 글라스 뒷면을 통해 볼 수 있다.
보라색 고무 스트랩에는 EasX-CHANGE® 시스템을 적용했다. 별도의 도구 없이 버튼을 눌러 스트랩을 교체할 수 있다. 경기 현장에서 사용하는 고무 스트랩의 실용성과 소비자가 색상과 소재를 바꿀 때의 편의성을 함께 고려한 구성이다.
트랙의 실용성과 매장의 상징성
정비사와 엔지니어가 경주 현장에서 사용하는 시계에는 내구성과 판독성이 필요하다. 장비와 공구, 컴퓨터를 다루며 오랜 시간 근무하기 때문이다. 티타늄 케이스와 고무 스트랩, 야광 표시, 10바 방수는 일상적인 사용에 필요한 조건을 갖춘다.
9200달러의 가격은 현장 기능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시간을 확인하고 측정하는 기능은 디지털 장비와 스마트워치로도 구현할 수 있다. 69385 칼리버의 기계적 구조와 티타늄 가공, IWC 브랜드, 메르세데스 F1 팀과의 협업 가치가 함께 가격을 만든다.
경주장에서는 시간을 확인하는 도구이자 유니폼의 연장선으로 작동한다. 매장에서는 F1 조직과 IWC의 기술 이미지를 소유하는 상품으로 바뀐다. 같은 제품도 착용자의 위치에 따라 의미가 달라진다.
팀 워치를 일반 판매하면 IWC는 후원 효과를 경기장 노출에만 남겨두지 않아도 된다. 메르세데스 F1 팀의 색과 명칭을 실제 매출이 발생하는 제품으로 전환할 수 있다. 메르세데스 F1 팀도 시계 매장과 IWC 고객을 통해 새로운 소비층과 만난다.
공학과 정밀성이라는 공통 언어도 두 브랜드를 연결한다. F1 경주차와 기계식 시계는 크기와 용도가 다르지만 다수의 부품을 정밀하게 조립한다는 이미지를 공유한다. ‘공식 엔지니어링 파트너’라는 명칭은 일반 광고 후원보다 기술적 연관성을 강조한다.
보라색 팀 워치는 싱가포르 그랑프리 기간에 드라이버뿐 아니라 피트와 차고에서 일하는 구성원들의 손목에도 등장할 전망이다. 팀 안에서는 소속과 협업을 나타내고, 팀 밖에서는 9200달러를 지불한 소비자가 같은 디자인을 소유한다. F1 후원은 경주차에 로고를 붙이는 단계를 넘어 팀 구성원의 물건을 일반 판매 상품으로 전환하는 사업으로 확장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