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파니 타이머②] 티파니 시계 안의 Zenith, 2만8000달러를 움직인 El Primero
케이스와 다이얼·금 장식은 티파니, 크로노그래프 기술은 Zenith…LVMH 안에서 나뉜 주얼리와 시계 제작
[KtN 임우경기자]2만8000달러짜리 Tiffany Timer의 시간을 움직이는 이름은 티파니가 아니다. 케이스 내부에는 스위스 시계 브랜드 Zenith가 개발한 El Primero 400이 들어간다. 티파니앤코(Tiffany & Co.)는 무브먼트를 새 제품에 맞게 변경하고, 회전추에는 18K 옐로 골드로 만든 Bird on a Rock을 올렸다.
Navy Blue Timer Chronograph는 티파니의 이름으로 판매되지만 시간 측정 기술의 기반은 Zenith에서 가져왔다. 티파니는 Grade 5 티타늄과 플래티넘으로 외형을 만들고 네이비 블루와 Tiffany Blue®로 다이얼을 구성했다. Zenith는 시간당 3만6000회 진동하는 자동 크로노그래프를 제공했다.
두 브랜드의 역할은 케이스백에서 가장 분명하게 드러난다. 투명한 사파이어 글라스 안쪽에는 Zenith의 무브먼트와 티파니의 금 세공 장식이 함께 들어 있다. 시계를 작동시키는 기술과 제품을 구별하는 주얼리 디자인이 하나의 회전추에서 만난다.
1969년 등장한 고진동 자동 크로노그래프
El Primero는 스페인어로 ‘첫 번째’를 뜻한다. Zenith는 1969년 1월 10일 El Primero를 공개했다. 자동으로 태엽을 감고 크로노그래프 기능을 무브먼트 안에 통합한 고진동 칼리버다.
당시 기계식 크로노그래프는 손으로 태엽을 감는 방식이 일반적이었다. Zenith는 자동 와인딩과 크로노그래프를 하나의 구조에 넣고 시간당 진동수를 3만6000회로 높였다. 초당 10번 진동하는 5㎐ 구조로 10분의 1초 단위까지 시간을 나눌 수 있었다.
Navy Blue Timer에 들어간 El Primero 400은 1969년 무브먼트의 직계 계열이다. 자동 와인딩과 통합형 크로노그래프, 칼럼 휠, 시간당 3만6000회 진동이라는 기본 구조를 이어받았다. 파워리저브는 약 50시간이다.
통합형 크로노그래프는 시간 표시 장치 위에 별도의 모듈을 얹는 방식과 다르다. 시간 표시와 경과시간 측정 장치를 하나의 무브먼트 안에서 설계한다. 부품 배치와 동력 전달을 처음부터 크로노그래프에 맞게 구성할 수 있지만 설계와 조립, 정비에는 높은 기술이 필요하다.
칼럼 휠은 크로노그래프의 시작과 정지, 초기화를 제어한다. 푸셔를 누르면 기둥 모양 부품이 회전하며 각 기능을 순서대로 작동시킨다. 조작감과 부품의 움직임을 중시하는 고급 기계식 크로노그래프에서 널리 사용하는 방식이다.
티파니가 1866년 타이밍 워치의 이름을 되살리면서 1969년 Zenith의 기술을 선택한 이유도 시간 측정 장치의 계보에서 찾을 수 있다. 두 제품 사이에는 103년의 간격이 있지만 짧은 시간을 측정한다는 기능이 연결된다. Tiffany Timer의 역사와 El Primero의 크로노그래프 기술을 한 제품에 겹친 구성이다.
단종 위기에서 살아남은 El Primero
El Primero의 생산은 1970년대 쿼츠 시계의 확산으로 중단될 위기를 맞았다. 전자식 무브먼트가 정확도와 생산비에서 기계식 시계를 압박하던 시기다. Zenith 내부에서도 기계식 무브먼트 생산 설비를 정리하는 결정이 내려졌다.
무브먼트 개발에 참여했던 시계 제작자 샤를 베르모(Charles Vermot)는 El Primero의 설계도와 금형, 공구를 Zenith 건물의 다락에 보관했다. 150개가 넘는 프레스 공구와 기술 문서가 남으면서 생산을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기반도 유지됐다.
El Primero는 이후 생산을 재개해 Zenith를 대표하는 무브먼트가 됐다. 1969년의 구조를 현재 제품에 적용할 수 있는 이유는 이름만 보존했기 때문이 아니라 실제 생산 도구와 기술 문서가 남았기 때문이다.
Tiffany Timer가 El Primero 400을 사용하면서 가져오는 가치도 단순한 부품 공급에 그치지 않는다. 1969년부터 이어진 고진동 자동 크로노그래프의 역사와 단종 위기에서 살아남은 기술 계보가 티파니 제품 안으로 들어온다.
티파니는 1866년 스톱워치 기록을 내세우고 Zenith는 1969년 자동 크로노그래프의 전환점을 제공한다. 2만8000달러 제품 한 점에 미국 주얼리 브랜드의 타이밍 역사와 스위스 무브먼트 제조사의 기술사가 함께 놓인다.
Tiffany Timer를 위해 바뀐 부분
티파니는 El Primero 400을 그대로 넣는 데 그치지 않고 제품에 맞게 변경했다. 외부에서 가장 쉽게 확인할 수 있는 차이는 오픈워크 로터다. 자동 무브먼트의 태엽을 감는 회전추 위에 장 슐럼버제(Jean Schlumberger)의 Bird on a Rock을 축소해 올렸다.
Bird on a Rock은 1965년 디자인된 티파니의 대표 브로치다. 새 Tiffany Timer에서는 새 모양을 18K 옐로 골드로 만들었다. 작은 금 장식은 로터와 함께 움직이며 케이스백을 돌렸을 때 위치가 달라진다.
18K 금으로 만든 새의 폭은 약 1.4㎝다. 작은 크기에서도 부리와 날개, 꼬리의 형태를 알아볼 수 있도록 조각하고 표면을 손으로 다듬었다. 무브먼트의 기능 부품인 로터를 주얼리 전시 공간으로 바꾼 방식이다.
기본 El Primero 400과 비교해 조정된 부품의 전체 범위는 공개되지 않았다. 로터 장식 외에 기어와 이스케이프먼트, 크로노그래프 제어장치, 파워리저브가 변경됐는지도 확인되지 않았다. 공개된 주요 제원은 시간당 3만6000회 진동과 50시간 파워리저브로 일반 El Primero 400의 기본 특성과 같다.
티파니 전용 무브먼트라는 설명만으로 독자 개발 칼리버라고 볼 수는 없다. 시간 측정 구조는 Zenith가 이미 생산해 온 El Primero 400을 기반으로 한다. 티파니의 독자성은 로터 장식과 외관, 케이스 구성에서 더 강하게 나타난다.
다이얼 앞에는 티파니, 뒤에는 Zenith의 기술
Navy Blue Timer의 다이얼에는 Tiffany & Co. 이름이 들어간다. Zenith 이름은 전면에 표시되지 않는다. 소비자는 네이비 블루 다이얼과 Tiffany Blue® 표시, 플래티넘 베젤을 먼저 본다.
시계를 뒤집으면 El Primero 400의 구조와 금으로 만든 Bird on a Rock이 나타난다. 무브먼트 공급사가 전면에서 경쟁하기보다 티파니 제품의 기술적 기반을 담당하는 위치다.
럭셔리 시계 업계에서는 다른 제조사가 만든 무브먼트를 사용하는 일이 드물지 않다. 케이스와 다이얼을 설계하는 브랜드가 전문 무브먼트 업체의 칼리버를 가져와 조정하거나 장식한 뒤 자사 제품으로 판매하는 방식이 오랫동안 이어졌다.
티파니 역시 19세기 말부터 자체 디자인한 케이스와 다이얼에 스위스 무브먼트를 결합했다. 1874년 제네바 생산시설을 열어 복잡한 시계를 제작한 기간도 있었지만 1880년대 이후에는 주얼리 제작과 디자인에 강점을 두고 스위스 시계 기술을 활용했다.
El Primero 400을 사용한 Tiffany Timer는 새롭고 낯선 방식보다 티파니가 오랫동안 유지해 온 역할 분담을 현대적으로 반복한다. 케이스와 다이얼, 크라운, 금 장식에서는 티파니가 보이고 시간 측정 기능은 Zenith가 담당한다.
LVMH 안에서 만난 두 브랜드
티파니와 Zenith는 현재 모두 LVMH의 시계·주얼리 부문에 속해 있다. LVMH는 티파니를 주얼리와 액세서리 브랜드로, Zenith를 자체 무브먼트 제작 역사를 지닌 고급 시계 브랜드로 운영한다.
같은 그룹 안에 있다는 사실은 기술과 디자인을 결합할 수 있는 선택지를 넓힌다. 티파니가 크로노그래프 무브먼트를 처음부터 새로 개발하지 않아도 그룹 안에서 El Primero를 확보할 수 있다. Zenith는 자체 시계뿐 아니라 티파니의 2만8000달러 한정판을 통해 무브먼트의 사용 범위를 넓힌다.
LVMH는 산하 시계·주얼리 브랜드의 상호 보완적 위치를 사업 기반으로 내세운다. 티파니의 주얼리 디자인과 Zenith의 시계 제작 기술을 합친 Tiffany Timer는 그룹 내 역할 분담이 실제 제품으로 나타난 형태다.
두 브랜드가 같은 그룹에 속한다고 해서 하나의 회사처럼 움직이는 것은 아니다. 티파니와 Zenith는 각각 브랜드와 제품군, 매장, 고객층을 따로 운영한다. El Primero 400을 공급하는 조건과 내부 거래 가격, 생산 수량 배분은 공개되지 않았다.
무브먼트의 조립과 최종 시계 생산을 어느 시설에서 맡는지도 확인이 필요하다. Zenith가 완성한 칼리버를 티파니에 공급한 뒤 로터를 교체하는지, 장식 작업과 최종 조립까지 한 시설에서 진행하는지는 공개되지 않았다.
2만8000달러에서 나뉘는 기술과 브랜드
Tiffany Timer의 가격은 2만8000달러다. El Primero 400만의 가격이 아니다. Grade 5 티타늄 케이스와 950 플래티넘 베젤, 18K 옐로 골드 Bird on a Rock, 악어가죽 스트랩, 100개 한정 생산이 함께 반영됐다.
Zenith는 자체 브랜드로도 El Primero 400을 사용한 크로노그래프를 판매한다. Tiffany Timer와의 가격 차이는 무브먼트 성능보다 케이스 소재와 주얼리 장식, 브랜드, 생산 수량에서 발생한다.
소비자는 티파니 매장에서 제품을 구입하지만 내부 기술은 Zenith에서 비롯됐다. 장기간 사용한 뒤 무브먼트를 수리할 때 어느 브랜드가 부품을 공급하고 정비를 담당하는지도 구매가치에 영향을 준다.
티파니의 국제보증과 공식 서비스가 제품 전체를 담당하더라도 El Primero 전용 부품은 Zenith의 생산 기반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반대로 금으로 만든 전용 로터와 플래티넘 베젤, 티파니 크라운은 일반 Zenith 서비스 부품으로 대체할 수 없다.
100개 한정 생산이 끝난 뒤에는 전용 부품의 공급기간과 수리 비용이 중요해진다. 무브먼트의 기본 구조가 널리 사용된 El Primero 400이라는 점은 장기 정비에 유리할 수 있다. 금 장식 로터와 티파니 전용 외장 부품은 수량이 제한된 만큼 같은 조건을 기대하기 어렵다.
Tiffany Timer의 시계 기술을 티파니의 독자 제조 능력으로만 설명하면 Zenith의 역할이 사라진다. 반대로 El Primero 400을 사용했다는 이유로 티파니를 외장 설계자에 그치게 하면 케이스와 다이얼, 금 세공의 가치가 빠진다.
2만8000달러짜리 Tiffany Timer는 한 브랜드가 모든 부품을 독자 생산한 시계가 아니다. Tiffany Blue®와 Bird on a Rock을 가진 주얼리 브랜드가 El Primero를 가진 시계 제조사와 역할을 나눈 제품이다. 100개가 판매된 뒤에는 디자인의 희소성뿐 아니라 두 브랜드가 전용 부품과 수리를 얼마나 오래 이어가는지가 제품의 장기 가치를 가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