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임효민 제이아이티앤코 대표, 5만원 들고 서울로…종로 노점에서 CEO까지
레스토랑·오락실·터널 방수 거쳐 종로6가 노점에서 진주 판매 시작…청룡상가 입점 뒤 제조공장 설립, ‘못난이 진주’ 가공에서 기능성 주얼리·자체 브랜드까지
[KtN 임우경 · 박준식기자] 스물네 살, 손에 쥔 돈은 5만원이었다. 군 복무를 마친 임효민 제이아이티앤코(JIT&CO) 대표가 서울로 올라올 때 아버지가 건넨 돈이었다. 주얼리 세공을 배운 적도, 보석을 전공한 경력도 없었다. 서울에서 생활하기 위해 강남의 레스토랑과 오락실, 당구장에서 일했고 터널 방수 작업에도 참여했다. 임 대표가 돌아본 출발선은 화려한 보석상이나 공방이 아니라 생활비를 벌어야 했던 일용 현장이었다.
지금은 주얼리를 디자인하고 생산해 전국 유통망에 공급하는 제이아이티앤코 대표다. 기능성 장식과 연결구조를 개발하고, 진주와 원석을 가공하며 제품 판매 이후 AS까지 맡는다. 스스로 현재 위치를 종로 주얼리 유통의 ‘1차 생산자’라고 표현한다. 임효민 대표의 사업 이력을 거슬러 올라가면 제조업보다 먼저 노점이 나온다.
“말 그대로 처음에는 노점 출신이에요.”
임 대표는 여러 물건을 판매하는 일을 거쳐 거리에서 옥 제품을 팔았고, 종로6가 노점으로 자리를 옮기면서 진주를 본격적으로 취급하기 시작했다고 회고했다. 당시 손에 들어온 것은 지금 매장에서 볼 수 있는 고급 진주와는 거리가 있었다. 형태가 일정하지 않고 표면에 흔적이 많아 상품성이 낮게 평가되던 진주였다. 구멍을 뚫어 한 줄로 만든 뒤 3000원, 5000원에 판매했다는 게 임 대표의 설명이다.
당시 경험은 훗날 임 대표의 제조 방식으로 이어졌다. 완벽하게 둥근 원석만 찾기보다 크랙이나 잘못 뚫린 구멍, 일정하지 않은 형태를 가진 진주를 다시 사용할 방법을 찾았다. 금속 틀을 먼저 만들고 각각의 진주를 깎아 틀에 맞추는 작업도 그렇게 시작됐다. 상품성이 낮은 진주를 버리는 대신 장식 구조와 가공을 달리해 제품으로 만드는 방식이었다.
노점 다음은 상가였다. 청룡상가에 매장을 열었지만 거리에서 물건을 팔 때와는 다른 시장이 기다리고 있었다. 임 대표는 기존에 취급하던 진주로는 종로 도매시장의 품질 수준을 맞추기 어려워 상품 구성을 다시 바꿔야 했다고 말했다. 거래처도, 찾아오는 고객도 거의 없었다. 매장에 앉아 진주를 꿰고 지나가는 사람에게 인사하는 시간이 길어졌다.
매장 월세는 임 대표 기억으로 110만5000원가량이었다. 처음 세운 판매 목표는 하루 3만원이었다. 하루 3만원씩 한 달을 팔면 90만원을 만들 수 있고 부족한 월세는 다른 장사에서 번 돈으로 채우겠다는 계산이었다. 매장에서 수입이 나오지 않자 기존 노점에서 진주 대신 꽃을 팔아 돈을 만들고 다시 매장 운영비로 넣었다. 매장에서 돈이 생기면 다시 꽃을 사고, 남은 돈으로 진주를 매입하는 방식이 반복됐다.
“하루에 3만원만 팔자가 목표였어요. 버는 게 아니라 3만원만 팔자.”
임 대표는 매장을 연 뒤 약 6개월 동안 한 달에 손님 한 명을 받기 어려운 시기도 있었다고 회고했다. 노점 판매와 매장을 병행하며 돈이 생길 때마다 진주를 다시 사들였고, 이런 방식으로 원재료와 상품을 축적했다. 이후에는 홈쇼핑과 수입업체에서 사용하는 진주 매듭 등의 임가공도 장기간 맡았다. 임 대표는 진주 매듭 작업을 약 12년 동안 이어갔다고 말했다.
사업에서 남은 돈을 어디에 둘 것인지에 대한 판단도 일찍 굳어졌다. 임 대표는 현금보다 진주와 원석 같은 원재료에 지속적으로 투자했다고 설명했다. 판매해 확보한 자금을 다시 재료 구입에 넣고, 늘어난 원재료를 다음 제품과 거래에 사용하는 방식이었다. “저는 원자재에다가 투자를 많이 하는 사람이에요”라는 말에는 노점에서 시작한 자금 운용 방식이 그대로 담겼다.
판매에서 제조로 넘어가는 과정은 더 거칠었다. 임 대표는 공장을 시작하기 전 전문적인 주물 작업을 해본 경험이 없었다고 말했다. 처음부터 숙련된 기술자를 두고 생산라인을 갖춘 것도 아니었다. 혼자 금형과 재료를 다루면서 뽑아보고 실패하고 다시 만드는 과정을 2년 넘게 반복했다. 공장을 시작할 당시 가져온 장비도 책상 하나와 작은 세척기, 광택 작업용 기기 정도였다는 설명이다.
진주 가공도 같은 방식으로 익혔다. 다른 가공업체에서 손대기 어려워하는 원석까지 직접 잘라보고 깎아봤다. 실패하면서 남은 조각에도 다시 공구를 댔다. 금속 틀을 먼저 제작한 뒤 원석의 형태를 그 구조에 맞춰 깎는 방식도 반복 작업 속에서 자리 잡았다. 노점에서 한 줄에 수천원씩 팔던 비정형 진주는 제조공장을 만든 뒤 임효민 대표의 제품 개발 방식으로 다시 연결됐다.
제품 개발 범위는 진주에서 금속 장식과 기능성 주얼리로 넓어졌다. 팔찌가 꺾이는 부분을 사람의 관절처럼 보고 힘이 많이 걸리는 곳의 두께를 조정했으며, 한 제품은 베트남 생산 파트너와 약 5년 동안 개발했다. 3㎜ 부위 하나를 13차례 수정했다는 제품도 있다. 처음부터 세공기술을 배워 정해진 공법을 반복했다기보다 판매 과정에서 발견한 불편을 구조 변경과 가공으로 풀어온 셈이다.
현재 제이아이티앤코가 강조하는 제품 기준도 디자인 하나에 머물지 않는다. 임 대표는 착용감과 끊어짐 방지, 꺾임 방지를 제품 개발에서 중요하게 본다고 설명했다. 완성된 주얼리가 판매된 뒤에는 AS까지 다시 제조사로 돌아오는 구조를 운영하고 있다. 제품을 만들어 공급하고 끝내는 공장보다 디자인과 생산, 수정, 사후관리까지 이어가는 제조사를 지향하고 있다.
노점상에서 도매상으로, 다시 제조업자로 넘어온 뒤에는 제품에 이름을 남기는 문제가 새로운 경영 선택으로 등장했다. 제이아이티앤코 제품에는 JIT 각인이 들어간다. 임 대표는 일부 거래처와 브랜드에서 각인을 없애 달라는 요청을 받은 적이 있지만 제조사 표기를 지우지 않는 방향을 유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럴 바엔 제가 직접 브랜드화시킬 거예요. 소비자랑 직접 만나는 게 맞는 거잖아요.”
도매와 소매를 거쳐 판매되던 제품에 제조사의 이름을 남기고, 장기적으로는 자체 브랜드를 통해 소비자와 직접 만나는 구조를 만들겠다는 구상이다. 임 대표는 현재 생산에 더 많은 비중을 두고 있지만 제조사의 각인을 지우는 방식으로 거래를 확대할 생각은 없다는 입장도 밝혔다.
5만원을 들고 서울에 올라온 청년은 거리에서 옥과 진주를 팔았고, 손님이 없는 매장의 월세를 마련하기 위해 다시 노점에서 꽃을 팔았다. 확보한 돈은 진주와 원석으로 돌아갔다. 공장을 세운 뒤에는 전문 세공 경험 없이 금형과 가공을 반복했고, 수년이 걸리는 제품 개발까지 생산 영역을 넓혔다.
임효민 대표에게 노점과 현재의 제이아이티앤코는 단절된 두 시기가 아니다. 종로6가에서 상품성이 낮은 진주를 한 줄씩 만들어 팔던 경험은 원석을 버리지 않고 다시 가공하는 기술로 남았고, 매장 월세를 마련하기 위해 자금을 계속 돌리던 방식은 원재료에 재투자하는 경영으로 이어졌다. 이제 제품에는 JIT라는 제조사의 이름까지 남기고 있다. 노점에서 시작한 판매 경험이 매장과 공장, 기술개발과 브랜드로 이어지면서 임효민 대표의 사업은 ‘물건을 파는 사람’에서 ‘자기 제품을 만드는 CEO’로 범위를 넓혀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