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정책 진단①] ‘서울대 10개’ 3곳 우선 지원, 지역 국립대에 번진 새 서열 논란
부산대·전남대·충남대에 교당 1000억원 안팎 추가 지원…대학서열 완화 내건 이재명정부, 선별·집중 방식 놓고 충돌
[KtN 박준식기자]부산대학교와 전남대학교, 충남대학교가 이재명정부의 ‘서울대 10개 만들기’ 첫 우선 지원 대학으로 선정됐다. 선정 대학은 지역 전략산업과 인공지능(AI)을 연계한 브랜드 단과대학과 융합연구원 등을 구축하고, 기존 지원액보다 학교당 1000억원 안팎의 예산을 추가로 받는다. 지역 국립대를 서울대에 버금가는 교육·연구 거점으로 키우겠다는 정책이 본격적인 집행 단계에 들어갔지만, 출발선에 선 대학은 3곳뿐이다.
전국국공립대학교수노동조합은 1일 부산대·전남대·충남대 지원 자체에는 반대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내놓았다. 국교조가 문제로 지목한 대목은 국립대 전체의 기반을 높이는 방식보다 일부 대학을 먼저 골라 재정을 집중하는 사업 구조다. 선정 대학과 비선정 대학을 가르는 정부의 결정이 수도권 중심의 대학서열을 완화하기에 앞서 지역 국립대 사이에 또 다른 위계를 만들 수 있다는 주장이다.
이재명정부는 2025년 9월 확정한 교육 분야 국정 운영 계획에 거점국립대 집중 육성을 포함했다. 지역에서 교육과 연구, 취업이 이어지는 체계를 만들고 수도권으로 이동하는 학생과 연구인력을 지역에 붙잡겠다는 구상이다. 지역대학 육성은 AI 인재 양성, 교육격차 해소 등과 함께 교육 분야 주요 국정 방향으로 배치됐다.
정책은 2026년 4월 ‘성장엔진 연계 지역인재 양성방안’으로 구체화됐다. 정부는 거점국립대를 권역별 전략산업의 교육·연구 중심으로 육성하고, 기업이 교육과정 개발과 연구개발에 참여하는 브랜드 단과대학 및 특성화 융합연구원을 만들기로 했다. 3개 대학의 브랜드 단과대학과 융합연구원에 1200억원, AI 교육·연구 거점 조성에 300억원을 투입하는 내용도 포함됐다. 특별장학 프로그램과 대학원생 연구장학금, 특성화 교원 트랙을 통해 학생과 연구자를 지역으로 유인한다는 계획이다.
6월 확정된 선정 절차에는 교육부를 비롯해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산업통상부, 국토교통부, 중소벤처기업부 등 8개 부처가 참여했다. 평가 기준은 국토공간 대전환 전략과의 정합성, 지역 여건과 준비도, 대학 여건과 준비도, 대학 전반의 교육·연구 혁신 및 체질 개선 등 네 항목으로 구성됐다. 대학과 지방정부, 기업이 공동으로 제출한 추진계획을 토대로 지역 산업과 정부 정책을 가장 효과적으로 연결할 수 있는 대학을 고르는 방식이다.
선정 결과가 만드는 효과는 재정 규모에만 머물지 않는다. 부산대·전남대·충남대에는 정부가 먼저 투자할 대학이라는 공적 지위가 더해졌다. 특별장학금과 연구장학금, 신규 연구조직, 교원 확충이 예정대로 집행되면 학생 모집부터 대학원생 유치, 연구자 채용, 기업 협력까지 여러 영역에서 우위를 확보할 수 있다.
비선정 대학에는 반대 방향의 압력이 작용한다. 정부가 공식 평가를 거쳐 대학을 골랐다는 사실은 해당 대학의 실제 교육·연구 역량과 관계없이 입시와 채용 시장에서 하나의 판단 기준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국교조가 선정되지 않은 대학에 ‘탈락 대학’이라는 인식이 붙을 가능성을 제기한 배경이다.
정부 재정사업 명칭이 대학 선택에 미치는 영향도 작지 않다. 수험생과 학부모가 모든 학과의 교육 여건을 직접 비교하기는 어렵다. 대규모 국책사업 선정 여부와 지원액, 정부가 내세운 ‘국가대표 거점국립대학’이라는 표현은 대학의 교육 수준을 압축해서 보여주는 신호로 소비될 수 있다. 지원 대상이 일부 전공에 한정되더라도 대학 전체가 정부의 집중 육성 대상으로 인식되는 효과가 생긴다.
대학원과 연구인력 시장에서는 재정 격차가 더욱 직접적으로 나타난다. 연구장학금과 연구비, 장비, 신규 교원 자리가 늘어나는 대학으로 대학원생과 신진 연구자가 이동하면 비선정 대학의 대학원 운영은 더 어려워질 수 있다. 지역대학은 이미 학령인구 감소와 수도권 집중뿐 아니라 대학원생 부족, 연구비와 인력의 수도권 편중을 함께 겪고 있다. 같은 권역의 국립대 사이에서도 지원 규모가 크게 벌어지면 지역 인재의 수도권 유출을 줄이는 대신 인근 대학에서 거점국립대로 인력을 이동시키는 결과가 나타날 수 있다.
국교조는 “선정 대학은 정부가 인정한 ‘우수 국립대학’이라는 상징성을 갖게 되는 반면, 선정되지 않은 대학은 실제 교육·연구 역량과 무관하게 ‘탈락 대학’으로 인식될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대학서열 완화를 목표로 시작한 정책이 국립대 사이에 새로운 서열을 형성하고 고착화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이다.
이재명정부의 구상에도 동반 성장 장치가 빠진 것은 아니다. 2026년에는 모든 거점국립대의 기업·산업 연계 교육을 지원하는 사업에 총 5448억원을 배정하고, 거점국립대와 지역대학이 교육과정을 공유하는 체계도 추진한다. AI 교육과정을 다른 지역대학 학생에게 개방하고 연구시설과 기반을 공유하는 방안도 제시됐다.
전체 지원과 3개 대학 집중 지원 사이에는 상당한 차이가 남는다. 공유 교육과정은 다른 대학 학생에게 수업 참여 기회를 줄 수 있지만, 교원과 연구소, 대학원 체제, 장학재원이 어느 대학에 축적되는지는 별개의 문제다. 강의를 공유하는 대학과 연구비·교원·시설을 보유한 대학의 위상까지 같아지는 것은 아니다. 대학 간 협력망이 인적·물적 자원의 공동 운영으로 이어지지 않으면 비선정 대학은 선정 대학이 만든 교육과정을 이용하는 주변 대학에 머물 수 있다.
‘서울대 10개 만들기’라는 명칭도 정책에 대한 기대와 부담을 동시에 키운다. 서울대와 지역 거점국립대 사이의 격차를 줄이겠다는 목표가 명칭에 담겼지만, 서울대 수준을 판단할 구체적인 기준은 연구비, 전임교원, 학생 1인당 교육비, 대학원 지원, 국제 연구협력 등 여러 영역에 걸쳐 있다. 정부는 거점국립대의 학생 1인당 교육비를 2030년 서울대의 약 70% 수준인 4400만원으로 높이고, 국립대 지원을 제도화할 가칭 ‘국립대학법’ 제정도 추진할 계획이다.
국교조는 일부 대학에 사업비를 집중하는 방식만으로 세계적 수준의 대학을 만들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충분한 전임교원과 연구인력, 안정적인 대학원 운영, 지속적인 연구비, 기초학문을 포함한 폭넓은 학문 생태계가 장기간 축적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성과 경쟁을 거쳐 한시적으로 받는 사업비보다 국립대가 교육과 연구에 지속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기본재정이 먼저 뒷받침돼야 한다는 주장도 내놓았다.
정부가 마련한 평가 방식에는 대학의 교육·연구 혁신과 체질 개선이 포함됐다. 선정 대학은 대학·지방정부·기업이 함께 핵심성과지표를 만들고, 브랜드 단과대학을 시작으로 교원 승진과 정년보장 심사 기준도 강화하게 된다. 지역대학에 재정을 확대하면서 성과관리와 내부 제도 개편을 동시에 요구하는 구조다.
성과 중심 운영은 정부 투자의 책임성을 높일 수 있지만, 대학이 지역 산업과 가까운 분야에 자원을 우선 배치하도록 압박할 가능성도 있다. 단기간에 측정하기 쉬운 취업률과 산학협력, 논문과 기술이전 실적이 강조되면 오랜 연구 기간이 필요한 기초학문과 학생 수가 적은 전공은 재정 배분에서 밀릴 수 있다. 선정 대학 내부에서 단과대학과 전공별 격차가 생기는 문제는 시리즈 2편에서 다룬다.
부산대·전남대·충남대 선정은 이재명정부의 지역대학 정책이 선언에서 집행으로 넘어간 첫 결과다. 3개 대학에 집중되는 재정이 지역 전체의 교육·연구 기반으로 확산될지, 비선정 대학의 학생과 연구인력을 흡수하는 데 그칠지는 후속 설계에 달렸다.
국교조는 정부가 3개 대학 선정으로 책무를 다했다고 여겨서는 안 된다며 국립대 전체를 위한 후속 정책과 고등교육 투자 확대를 요구했다. 추가 지원 대학의 선정 일정과 비선정 대학의 기본재정, 공동학위와 교원·연구시설의 실질적인 공유 방안은 아직 더 구체화돼야 한다. 대학서열 완화를 내건 정책이 지역 국립대의 동반 성장으로 이어지려면 첫 선정 결과보다 다음 재정 배분이 더 넓어져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