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정책 진단②] AI·브랜드 단과대에 1500억원, 국립대 안으로 들어온 전공 격차

부산대·전남대·충남대 성장산업 중심 재편…특성화 교원·연구비 집중 속 기초학문 지원 기준은 공개 전

2026-09-03     박준식 기자

[KtN 박준식기자]부산대학교와 전남대학교, 충남대학교에 투입되는 ‘서울대 10개 만들기’ 사업비는 인공지능(AI)과 지역 전략산업에 집중된다. 브랜드 단과대학과 특성화 융합연구원이 신설되고, 특별장학금과 대학원생 연구장학금, 특성화 교원 트랙도 운영된다. 이재명정부가 지역대학 육성과 산업정책을 하나로 묶으면서 국립대 안에서 전공에 따라 교육비와 연구비, 교원 확보 여건이 달라질 가능성도 커졌다.

정부는 2026년 3개 거점국립대의 브랜드 단과대학과 특성화 융합연구원에 총 1200억원을 지원한다. AI 교육·연구 거점 구축에는 총 300억원을 배정했다. 거점국립대와 지역대학이 함께 참여하는 공유대학 지원까지 합하면 선정 대학 한 곳당 지난해보다 1000억원 안팎의 예산이 추가된다.

지원 방식은 학과 하나를 신설하는 수준을 넘어선다. 학부와 대학원, 연구소를 묶은 브랜드 단과대학을 만들고 대학과 기업이 공동으로 연구소를 운영한다. 기업은 교육과정 개발과 연구개발에 참여하고, 대학은 지역 전략산업에 필요한 학생과 연구자를 양성한다. 연구개발부터 기술 실증, 취업까지 대학 안에서 연결하는 구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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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정부의 지역대학 정책은 대학과 지역 산업을 직접 연결하는 데 무게를 두고 있다. 지역 청년이 수도권으로 이동하지 않고 지역에서 교육과 취업을 이어가도록 만들고, 기업에는 필요한 인력을 공급한다는 구상이다. 거점국립대는 교육기관을 넘어 권역별 산업과 연구개발을 연결하는 중심 기관으로 재편된다.

학생에게 돌아가는 지원도 성장산업 분야에 맞춰졌다. 선정 대학은 등록금과 생활비를 포괄하는 특별장학 프로그램을 마련하고, 우수 학부생에게 지도교수를 배정해 연구 참여를 지원한다. 대학원생에게는 전문연구원에 준하는 연구장학금을 지급할 계획이다. 브랜드 단과대학과 AI 교육 분야에서 각각 연간 1500명 안팎을 지원한다는 목표도 제시됐다.

교원 지원에는 별도의 특성화 체계가 적용된다. 성장산업 분야를 대상으로 특성화 교원 트랙을 신설하고, 성과를 낸 기존 교원이나 새로 영입한 연구자에게 연구비와 장비, 별도 처우를 제공한다. 기업과 정부출연연구기관의 연구자가 대학 교원을 겸직하며 교육과 연구에 참여하는 방안도 포함됐다.

연구비와 장학금, 교원, 시설을 하나로 묶은 지원은 선정 분야의 경쟁력을 단기간에 높일 수 있다. 반대편에는 사업비가 직접 투입되지 않는 학과가 놓인다. 인문학과 사회과학, 순수 자연과학, 학생 수가 적은 소수학문은 기업 투자와 기술이전 수입을 기대하기 어렵다. 취업률이나 특허 실적처럼 단기간에 수치화할 수 있는 성과도 제한적이다.

전국국공립대학교수노동조합은 성장산업과 일부 전공에 재정을 집중하는 방식으로는 종합대학의 역량을 높이기 어렵다고 밝혔다. 국립대는 시장성이 높은 분야를 육성하는 데 그치지 않고 기초학문과 소수학문을 보호하며 인문·사회·자연과학을 아우르는 학문 체계를 유지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사업비가 기존 대학 재정에 더해지는 추가 예산이라는 사실만으로 비지원 전공의 교육 여건이 보장되지는 않는다. 신규 단과대학과 연구원 운영에는 교원 정원과 연구 공간, 강의실, 행정인력이 필요하다. 국가가 별도의 교원 정원과 시설비를 충분히 제공하지 않으면 대학은 기존 인력과 공간을 특성화 분야로 옮겨야 한다.

교원 정원 배분은 전공별 격차와 직접 연결된다. 퇴직한 교수의 자리를 같은 학과에서 충원하지 않고 AI나 전략산업 분야로 돌리면 기존 학과의 전임교원 수는 줄어든다. 전임교원 부족은 대형 강의 증가와 비전임교원 의존, 전공과목 축소로 이어질 수 있다. 대학원에서는 논문을 지도할 교수가 부족해지고 신입생 모집도 어려워진다.

정부는 성장산업 분야 교원을 확충한다는 계획을 제시했지만, 부산대·전남대·충남대에 배정될 신규 교원 정원의 규모와 기존 정원과의 관계는 세부 실행 단계에서 정해진다. 특성화 분야의 교원을 순수하게 늘리는 방식과 대학이 보유한 총정원 안에서 재배치하는 방식은 다른 결과를 만든다.

연구 공간과 장비도 같은 문제를 안고 있다. 특성화 융합연구원에는 기업과 대학이 공동으로 사용하는 연구소와 기술 실증 시설이 들어선다. 신규 시설을 별도로 확보하지 못하면 기존 학과가 사용하던 공간을 조정해야 한다. 연구장비 도입 이후의 유지비와 전문인력 인건비도 장기간 필요한 비용이다.

계약학과는 기업과 대학의 관계를 한층 더 가깝게 만든다. 기업이 필요한 인력 규모와 전공을 대학에 제시하고 교육과정 운영에 참여한다. 학생은 장학금과 취업 연계 기회를 얻고, 기업은 업무에 필요한 인력을 대학 단계부터 확보할 수 있다.

계약학과 운영에는 기업의 재정 부담과 채용 책임이 함께 따라야 한다. 등록금과 실습비, 교원 인건비 가운데 기업이 부담하는 비율이 낮으면 국가와 대학이 기업의 인력 양성 비용을 대신 부담하는 결과가 생긴다. 경기 변화로 기업이 채용 규모를 줄이거나 협약을 중단할 경우 재학생의 학업과 졸업생의 진로를 보호할 기준도 필요하다.

입학 당시 성장산업으로 지정된 분야가 졸업 시점에도 같은 규모의 인력을 필요로 한다는 보장은 없다. 학부 과정은 통상 4년이 걸리고 대학원과 연구인력 양성에는 더 긴 시간이 필요하다. 산업 수요에 맞춰 학과와 정원을 빠르게 늘렸다가 기업 투자가 줄어들면 대학은 신설 조직의 인건비와 시설 유지비를 떠안게 된다.

AI 교육을 대학 전체로 넓히려는 내용도 사업에 포함됐다. 선정 대학에는 AI 학사조직과 총장 직속 전담기구가 설치된다. 비전공자가 자신의 전공과 AI를 결합할 수 있도록 융합 교과목을 개발하고, 다른 지역대학 학생에게도 교육과정을 개방할 계획이다.

AI 융합교육에는 컴퓨터공학만 필요한 것이 아니다. 수학과 통계학은 데이터 분석과 알고리즘의 토대를 제공하고, 철학과 법학은 책임과 저작권, 개인정보 문제를 다룬다. 언어학과 문학, 사회학의 연구도 생성형 AI와 언어모델, 기술의 사회적 영향을 분석하는 데 활용된다.

융합 교과목에 여러 전공의 교수가 참여하더라도 연구비와 교원 정원이 AI 조직에 집중되면 학문 간 협력은 한쪽으로 기울 수 있다. 기초학문 전공은 교육과정을 제공하고, 예산과 인력은 특성화 단과대학이 보유하는 구조가 굳어질 가능성이 있다. 공동 교육에 참여하는 학과에도 교원과 연구비가 배분돼야 대학 전체의 AI 역량을 높인다는 정책 목표와 맞아떨어진다.

성과평가 방식도 대학 내부의 재정 배분에 영향을 준다. 정부는 대학과 지방정부, 기업이 공동으로 핵심성과지표를 만들도록 했다. 브랜드 단과대학을 시작으로 교원 승진과 정년보장 심사 기준을 강화하고, 데이터에 근거한 성과관리도 확대할 방침이다.

기업 참여와 취업률, 논문, 특허, 기술이전처럼 수치로 제시하기 쉬운 성과가 재정 배분 기준이 되면 기초연구와 소수학문은 불리해진다. 연구 결과가 나오기까지 오랜 시간이 필요한 전공이나 학문 유지 자체에 공공적 가치가 있는 분야는 산업 연계 학과와 같은 기준으로 평가하기 어렵다.

대학 전체의 변화를 살피려면 특성화 사업단의 성과와 종합대학의 교육 여건을 구분해야 한다. 브랜드 단과대학의 취업률과 산학협력 실적이 높아져도 다른 단과대학의 전임교원과 전공 강좌, 대학원생이 감소하면 국립대 전체의 교육·연구 기반이 함께 커졌다고 보기 어렵다.

국교조는 “AI가 산업 전반을 재편하고 있는 지금, 어떤 분야가 미래의 성장을 이끌지는 누구도 단정할 수 없다”며 폭넓은 학문 기반과 장기적인 연구환경을 요구했다. 특정 산업의 단기 수요에 맞춘 대학 조직보다 여러 학문이 새로운 연구를 시도할 수 있는 기반을 먼저 갖춰야 한다는 주장이다.

부산대·전남대·충남대에서는 브랜드 단과대학과 특성화 융합연구원, AI 학사조직 설치가 이어진다. 학생 장학금과 대학원생 연구비, 특성화 분야 교원 채용도 대학별 실행계획에 따라 진행된다.

신규 교원 정원이 기존 정원과 별도로 늘어나는지, 계약학과 운영비 가운데 기업이 부담할 몫은 얼마인지, 사업비가 투입되지 않는 전공의 강좌와 대학원 운영비는 어떻게 유지할지에 관한 세부 내용은 아직 공개되지 않았다.

국교조는 모든 국립대의 교육과 연구의 질을 높이는 정책이 필요하다고 촉구했다. 부산대·전남대·충남대의 세부 사업계획에는 성장산업 투자와 함께 기초학문과 소수학문의 교원 정원, 강좌, 대학원 운영을 유지할 재정 방안도 담겨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