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정책 진단③] 교당 1000억원 뒤의 운영비, ‘서울대 10개’ 기본재정이 가를 지속성
전임교원·대학원·연구시설에는 장기 재원 필요…2030년 학생 1인당 교육비 4400만원 목표와 국립대학법 추진
[KtN 박준식기자]부산대학교와 전남대학교, 충남대학교는 ‘서울대 10개 만들기’ 우선 지원 대학으로 선정되면서 학교당 1000억원 안팎의 추가 재정을 받는다. 브랜드 단과대학과 특성화 융합연구원, 인공지능(AI) 학사조직을 만들고 학생 장학금과 연구비, 교원 확충에 예산을 투입한다. 대규모 사업비가 집행된 뒤에도 신규 조직과 연구인력을 유지하려면 매년 들어가는 운영비가 필요하다.
이재명정부는 지역 거점국립대를 권역별 전략산업의 교육·연구 중심으로 육성하고, 지역 학생이 교육과 취업을 위해 수도권으로 이동하는 흐름을 줄이겠다는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거점국립대 집중 육성은 지역교육 혁신과 국가균형성장을 위한 교육 분야 국정 방향에 포함됐다.
2026년에는 3개 대학의 브랜드 단과대학과 특성화 융합연구원에 총 1200억원, AI 교육·연구 거점 구축에 총 300억원이 배정됐다. 거점국립대와 지역대학이 참여하는 공유대학 지원을 합하면 선정 대학 한 곳에 지난해보다 1000억원 안팎의 예산이 추가된다.
사업비는 대학의 변화를 빠르게 끌어낼 수 있다. 연구장비를 사고 새로운 교육과정을 개발하며 학생에게 장학금을 지급할 수 있다. 기업과 대학이 공동으로 운영하는 연구소도 설치할 수 있다. 시설을 완공하고 연구조직을 만든 뒤에는 교원과 연구원의 인건비, 장비 유지비, 연구재료비, 학생 지원비가 해마다 발생한다.
특성화 융합연구원에 채용된 연구자는 사업이 끝난 뒤에도 연구를 계속해야 한다. 고가의 연구장비에는 유지·보수 비용과 전문인력이 필요하다. 브랜드 단과대학에 입학한 학생은 졸업할 때까지 교육과 장학 지원을 받아야 한다. 대학원 과정과 장기 연구는 학부보다 더 오랜 기간이 걸린다.
첫해 사업비 규모만으로 대학의 지속적인 교육·연구 역량을 판단하기 어려운 이유다. 대학이 매년 안정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기본재정이 충분하지 않으면 신규 조직의 운영비를 기존 대학회계에서 부담하거나 다른 전공의 예산을 조정해야 한다. 사업 기간이 끝난 뒤 학과를 통합하고 계약이 끝난 연구인력을 내보내는 방식으로 재정을 맞출 가능성도 있다.
전국국공립대학교수노동조합은 지역대학에 필요한 재정이 또 하나의 경쟁형 사업이 아니라 안정적인 기본재정과 장기적인 교육·연구 기반이라고 밝혔다. 충분한 전임교원과 연구인력, 안정적인 대학원 체제, 지속적인 연구비와 폭넓은 학문 생태계가 오랜 기간 축적돼야 세계적 수준의 대학에 도달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정부의 재정지원은 대학의 사업계획과 성과평가를 전제로 한다. 부산대·전남대·충남대는 지방정부와 기업이 함께 수립한 실행계획을 이행하고 권역별 특성에 맞춘 핵심성과지표로 평가받는다. 선정 과정에서도 지역 전략산업과의 정합성, 지역과 대학의 준비도, 교육·연구 혁신 및 체질 개선이 주요 기준으로 적용됐다.
경쟁형 사업은 한정된 예산을 정책 목표에 맞춰 집중하기 쉽다. 대학마다 다른 지역 산업과 연구 역량을 평가해 차등 지원할 수도 있다. 성과가 낮은 사업을 조정하고 재정 집행의 책임을 묻는 장치도 마련할 수 있다.
대학 운영에 필요한 기본비용까지 경쟁 결과에 맡기면 상황이 달라진다. 전임교원과 연구인력은 한 해 단위로 채용하기 어렵고, 대학원생 지원도 연구가 진행되는 기간 동안 이어져야 한다. 기업의 투자계획이나 정부의 사업평가 결과에 따라 연구비가 크게 달라지면 장기간 축적이 필요한 연구가 중단될 수 있다.
정부는 재정 확대와 내부 제도 개편을 함께 추진한다. 브랜드 단과대학부터 교원 승진과 정년보장 심사 기준을 수도권 주요 사립대 수준으로 강화하고 엄격한 실적 평가 체계를 마련할 방침이다. 대학·지방정부·기업이 공동으로 만든 핵심성과지표도 재정지원과 성과관리에 활용한다.
교원에게 더 높은 연구성과를 요구하려면 연구를 수행할 조건도 함께 갖춰져야 한다. 담당 강의가 많거나 대학원생과 연구지원 인력이 부족한 교수에게 논문과 기술이전 실적을 늘리도록 요구하는 것만으로 연구역량이 높아지지는 않는다. 연구비와 장비가 특정 사업단에 집중되면 같은 대학 안에서도 교수마다 성과를 낼 수 있는 조건이 달라진다.
정량평가가 강해질수록 단기간에 논문과 특허, 기술이전 실적을 만들 수 있는 분야가 유리해진다. 오랜 조사와 자료 축적이 필요한 인문·사회과학이나 기초과학, 시장 규모가 작은 소수학문은 같은 기준으로 경쟁하기 어렵다. 대학의 공공적 교육과 지역사회 기여도 취업률과 기술사업화 수입만으로 측정하기 어렵다.
국교조는 지역대학의 위기가 교수 개인의 연구 부족이나 대학의 혁신 부족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고 지적했다. 학령인구 감소와 수도권 집중, 대학원생 부족, 연구비와 우수 인력의 수도권 편중, 장기간 누적된 고등교육 재정 부족이 함께 작용한 결과라는 입장이다.
지역대학의 학생 모집이 어려워지면 등록금 수입이 줄고, 등록금 수입 감소는 다시 교원 채용과 강좌 운영, 시설 개선을 제약한다. 연구환경이 나빠진 대학에서는 대학원생과 연구자가 수도권으로 이동한다. 대학의 교육·연구 역량이 떨어지면 수험생 모집은 더 어려워진다. 개별 대학의 혁신만으로 끊기 어려운 재정과 인력의 순환 구조다.
서울대와 지역 거점국립대 사이의 차이도 단일 사업의 지원액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학생 1인당 교육비와 교원 수, 대학원생 지원, 연구비, 연구시설, 발전기금과 자체 수입 등 여러 조건이 장기간 누적돼 있다. 대규모 사업비를 몇 개 분야에 투입하더라도 대학 전체의 기본재정이 유지되지 않으면 격차는 다른 영역에 남는다.
정부는 거점국립대 학생 1인당 교육비를 2030년 서울대의 약 70%인 4400만원 수준까지 높이겠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교육부 재정지원을 단계적으로 확대하고 거점국립대의 자체 수익도 늘린다는 계획이다. 국립대 지원을 장기적으로 제도화하기 위한 가칭 ‘국립대학법’ 제정도 추진한다.
학생 1인당 교육비는 대학이 교육과 연구에 투입할 수 있는 전체 자원의 차이를 보여주지만, 총액만으로 사용처까지 알 수는 없다. 시설 신축과 장비 구매에 들어간 비용, 전임교원과 연구인력 인건비, 학생 장학금, 대학원 지원비가 모두 포함될 수 있다. 교육비가 늘어도 특정 사업과 일부 학과에 집중되면 다수 학생이 체감하는 강의와 연구 환경은 크게 달라지지 않을 수 있다.
자체 수익 확대에도 대학별 여건이 작용한다. 대기업과 연구기관이 밀집한 지역의 대학은 산학협력과 기술이전, 기부금 유치에서 상대적으로 유리하다. 산업 기반이 약하거나 인구 감소가 빠른 지역의 국립대에 같은 수준의 자체 수익을 요구하면 정부 재정을 보완할 능력에서도 격차가 생긴다.
국립대학법은 재정지원의 지속성을 높일 수 있는 제도적 수단으로 거론된다. 국립대의 역할과 국가의 지원 책임, 중장기 재정계획을 법률에 담으면 개별 사업과 정부 예산 편성에 따라 지원 규모가 달라지는 문제를 줄일 수 있다. 법안의 구체적인 내용과 제정 일정, 재정지원 기준은 공개 전이다.
안정적인 기본재정이 보장되더라도 대학 운영의 책임성과 자율성을 함께 정비해야 한다. 정부가 세부 사업과 성과지표를 통해 예산 사용을 지나치게 제한하면 대학은 지역과 학문 분야의 특성에 맞는 연구를 선택하기 어렵다. 반대로 용도를 정하지 않은 재정만 확대하면 교육·연구 여건 개선으로 이어졌는지 평가하기 어려워진다.
재정지원 기준에는 전임교원 확보율과 대학원생 지원, 강좌 운영, 연구인력의 고용 안정, 기초학문 유지가 포함될 필요가 있다. 산업별 취업률과 기술이전 실적뿐 아니라 국립대가 지역에서 담당하는 교육과 연구의 범위도 반영돼야 한다.
‘서울대 10개 만들기’는 거점국립대 몇 곳의 명칭이나 순위를 바꾸는 사업이 아니다. 서울대와 지역대학 사이에 누적된 교육·연구 자원의 차이를 줄이고, 지역에서도 학부부터 대학원과 연구소까지 이어지는 체계를 갖추겠다는 정책이다. 첫해의 사업비보다 교원과 대학원, 연구비를 지속적으로 유지할 재정 구조가 더 긴 시간을 좌우한다.
부산대·전남대·충남대는 브랜드 단과대학과 융합연구원 설립 이후에도 교원 인건비와 대학원생 지원, 장비 유지비를 부담해야 한다. 정부가 추진하는 국립대학법과 2030년 학생 1인당 교육비 확대 계획에는 사업 종료 이후의 운영 재원과 대학별 지원 기준이 구체적으로 담겨야 한다.
국교조는 고등교육에 대한 국가 투자를 확대하고 국립대의 교육·연구 여건을 지속적으로 뒷받침할 법적·제도적 기반을 마련하라고 촉구했다. 3개 대학에 투입되는 추가 예산의 지원 기간과 종료 이후 재원, 전임교원 및 연구인력의 고용 계획은 대학별 협약과 다음 연도 예산 편성에서 구체화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