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투자의 경제학①] 6조3700억달러로 불어난 기술비, CIO·CFO가 다시 짜는 성장예산
2026년 세계 IT 지출 14.2% 증가 전망…AI·클라우드 비용 늘고 기업 인력 확대는 둔화
[KtN 최기형기자]2026년 세계 정보기술(IT) 지출은 6조3700억달러에 이를 전망이다. 전년보다 14.2% 늘어난 규모다. 데이터센터 시스템에는 8220억달러, 소프트웨어에는 1조4680억달러, 서비스형 인프라(IaaS)에는 2870억달러가 투입될 것으로 예상된다. AI 인프라와 클라우드, 소프트웨어가 기업 예산의 중심으로 들어오면서 IT 부서는 비용을 집행하는 조직에서 기업의 투자 순서를 정하는 조직으로 바뀌고 있다.
기술 지출 증가가 모든 기업의 투자 여력이 넓어졌다는 뜻은 아니다. AI 관련 예산과 클라우드 사용료가 늘고 반도체·메모리 가격과 소프트웨어 구독료도 오르면서 기존 사업에 사용할 재원은 줄어들 수 있다. 세계 IT 시장의 성장도 AI 인프라와 소프트웨어에 집중되고 통신서비스와 일반 IT 서비스는 상대적으로 낮은 증가율에 머물 것으로 예상된다.
데이터센터 시스템 지출은 2025년 5060억달러에서 올해 8220억달러로 62.5% 증가할 전망이다. IaaS는 29.3%, 소프트웨어는 15.5% 늘어날 것으로 추산된다. 통신서비스와 IT 서비스의 증가율은 각각 4.4%와 5.3%다. AI 연산과 클라우드에 자금이 몰리는 사이 기술 분야별 성장 격차도 커지고 있다.
기업의 예산 배분은 기술과 인력 사이에서 달라지고 있다. 2025년 10월 300명 이상의 최고재무책임자(CFO)와 재무담당 임원을 대상으로 진행된 조사에서 75%가 2026년 기술 예산을 늘릴 계획이라고 답했다. 48%는 증가 폭을 10% 이상으로 잡았다. 전체 산업의 기술 예산 증가율은 평균 10%로 예상됐으며 금융업은 약 15%, 제조업은 약 6%로 차이가 났다.
같은 조사에서 기업의 인원 증가율 전망은 2025년 6%에서 2026년 2%로 낮아졌다. 임금 인상률도 2024년 6.1%, 2025년 5.4%에서 2026년 4.5%로 둔화할 것으로 예상됐다. 기술에는 더 많은 예산을 배정하면서 사람을 늘리는 속도는 낮추는 방향이다.
IT 투자는 전산망을 유지하고 업무용 기기를 교체하는 비용에 머물지 않는다. 생성형 AI와 데이터 분석, 고객관리, 공급망 자동화, 보안, 온라인 판매망은 매출과 생산 과정에 직접 연결된다. 기업의 시장 진입 속도와 고객 유지율, 재고와 물류비도 기술 시스템의 영향을 받는다.
CIO가 기술 성능과 보안, 시스템 안정성만 설명해서는 신규 예산을 확보하기 어려워졌다. CFO는 매출과 영업이익률, 투하자본수익률(ROIC), 경제적 부가가치(EVA), 현금전환주기, 투자금 회수 기간을 기준으로 사업의 순서를 정한다. IT 사업도 공장 증설과 인수합병, 신제품 개발, 해외시장 진출과 같은 재원을 놓고 경쟁한다.
CIO의 역할도 시스템 선정에서 자본 배분으로 넓어졌다. 성과가 낮은 사업의 예산을 줄이고 성장 가능성이 큰 사업으로 재원을 옮겨야 한다. 중요도가 낮은 업무에서 비용을 줄여 AI와 자동화, 데이터 사업에 투입하고, 시장 변화에 대응할 수 있도록 일부 예산을 남겨두는 결정도 필요하다.
비용 절감과 예산 삭감은 결과가 다르다. 모든 사업의 예산을 같은 비율로 줄이면 보안과 데이터 정비, 노후 시스템 교체까지 늦어질 수 있다. 중복 계약과 이용률이 낮은 소프트웨어를 정리해 확보한 재원을 신규 사업에 투입하면 전체 예산을 크게 늘리지 않고도 기술 전환을 추진할 수 있다.
기업 인수와 조직 개편을 거친 회사에서는 여러 부서가 비슷한 소프트웨어를 따로 구독하는 일이 발생할 수 있다. 퇴사자 계정이나 사용하지 않는 클라우드 서버에 비용이 계속 지급되기도 한다. 계약을 통합하고 사용량에 맞춰 서비스 등급을 조정하면 반복 지출을 줄일 수 있다.
노후 시스템의 유지비도 투자 판단에 포함된다. 구축비를 이미 지불한 시스템이라도 장애 대응과 보안 보완, 별도 운영인력, 다른 시스템과의 연결에 비용이 들어간다. 신규 시스템의 도입비만 계산하고 기존 시스템을 계속 유지하는 비용을 제외하면 경제성 비교가 달라진다.
클라우드와 서비스형 소프트웨어(SaaS)의 확산은 IT 예산의 성격을 바꿨다. 기업이 서버와 소프트웨어를 직접 사들이던 시기에는 대규모 구축비가 자산으로 처리되고 여러 해에 걸쳐 감가상각됐다. 구독형 서비스에서는 이용료가 매달 또는 매년 발생한다. 초기 투자 부담은 낮아지지만 사용량과 데이터가 늘수록 운영비도 증가한다.
구독료는 계약을 유지하는 동안 반복된다. 환율과 업체의 가격 인상, 추가 기능 도입, 사용자 계정 증가도 다음 연도 예산에 반영된다. 시스템을 다른 업체로 옮길 때는 데이터 이전과 프로그램 재개발, 직원 교육비가 발생한다. 최초 계약가격보다 계약 기간 전체의 총소유비용이 중요해진 배경이다.
AI는 비용 구조를 한층 복잡하게 만든다. 모델 이용료 외에도 데이터 정비와 클라우드 연산, 보안, 직원 교육, 결과물 검수에 돈이 들어간다. 기존 소프트웨어에 AI 기능이 추가되면서 실제 사용량과 관계없이 구독료가 오르는 경우도 생길 수 있다.
2026년 세계 AI 지출은 2조5900억달러로 전년보다 47% 증가할 것으로 전망됐다. AI 최적화 서버와 반도체, 네트워크, IaaS 등 인프라가 전체 지출의 45% 이상을 차지할 것으로 예상된다. 기술기업과 대형 클라우드 사업자의 인프라 투자가 시장 확대를 주도하고, 일반 기업은 전면적인 사업 재편보다 업무 효율을 조금씩 높이는 방식에 집중하고 있다.
AI 투자가 빠르게 늘어도 기업의 수익이 같은 속도로 증가하는 것은 아니다. 문서 작성시간이 줄더라도 결과물을 다시 확인하고 수정하는 시간이 늘면 전체 노동시간은 크게 달라지지 않을 수 있다. 챗봇 운영비가 상담인력 인건비보다 낮더라도 고객 이탈과 서비스 품질 저하가 발생하면 비용 절감 효과가 줄어든다.
CFO가 요구하는 수치는 기술 도입 건수가 아니라 투자금 회수 시기다. AI가 직원 한 명당 처리량을 얼마나 늘렸는지, 재고를 얼마나 줄였는지, 고객 이탈률과 판매전환율을 어떻게 바꿨는지가 예산 유지의 근거가 된다. 해당 변화가 나타나지 않으면 AI 예산은 성장 투자가 아닌 새로운 고정비로 남는다.
CIO와 CFO의 판단 기준은 항상 같지 않다. CFO는 현금흐름과 수익성을 관리해야 하고, CIO는 보안과 데이터, 시스템 안정성을 장기간 유지해야 한다. 보안 투자는 사고가 발생하지 않았을 때 성과가 잘 드러나지 않는다. 데이터 표준화와 시스템 연결도 당장 매출을 만들기 어렵다.
단기 투자수익률만 강조하면 기업 운영의 기반을 이루는 사업이 뒤로 밀릴 수 있다. 데이터 품질이 낮고 시스템이 서로 연결되지 않은 상태에서 AI 응용 프로그램만 늘리면 투자비와 운영비가 함께 증가한다. 보안과 데이터 정비를 미룬 기업은 장애나 정보 유출이 발생했을 때 더 큰 비용을 부담한다.
비용 절감의 대상이 기술 계약을 넘어 인력으로 이동할 여지도 있다. 자동화 시스템과 외부 클라우드 서비스를 도입하면서 내부 개발자와 운영인력을 줄이면 단기 인건비는 감소한다. 장애가 발생하거나 공급업체가 가격을 올릴 때 대응할 내부 인력이 부족해질 수 있다.
외주와 구독형 서비스 비중이 높아질수록 기업 내부의 기술 역량은 약해질 수 있다. 시스템 설계와 데이터 구조를 외부 업체가 주도하면 계약 갱신 과정에서 기업의 협상력이 낮아진다. 기술 지출은 줄지 않은 채 인건비만 외주비와 소프트웨어 비용으로 이동하는 결과도 생긴다.
비용 절감으로 마련한 재원이 어디로 이동했는지도 구분해야 한다. 기존 시스템 유지비를 줄여 AI와 자동화에 투자한 경우와 직원 감축으로 이익률을 높인 경우는 같은 비용 절감으로 볼 수 없다. 전자는 새로운 매출과 생산성 향상을 위한 재배분이고, 후자는 단기 실적 개선에 가깝다.
시장 전체의 IT 지출이 늘어나는 동안 기술 공급자와 이용 기업의 손익도 다르게 움직인다. 데이터센터와 클라우드, 소프트웨어 업체에는 매출 증가가 되지만 해당 서비스를 구매한 기업에는 비용 증가로 기록된다. 기술 공급자의 성장률이 높아졌다는 사실만으로 이용 기업의 생산성이 함께 높아졌다고 단정하기 어렵다.
기업별 투자 여건에도 차이가 난다. 현금이 풍부한 대기업은 자체 데이터센터와 AI 모델, 전문인력에 동시에 투자할 수 있다. 자금과 인력이 부족한 중소기업은 외부 클라우드와 범용 소프트웨어에 의존할 가능성이 크다. 같은 AI 서비스를 사용하더라도 데이터 축적과 내부 인력, 공급업체와의 협상력에 따라 비용과 성과가 달라진다.
금융업의 기술 예산 증가율이 제조업보다 높은 전망도 산업별 조건의 차이를 반영한다. 금융사는 고객 거래와 위험관리, 규제 대응이 데이터와 소프트웨어에 밀접하게 연결돼 있다. 제조업은 기술투자와 함께 생산설비 교체, 원재료, 에너지 비용을 부담해야 한다. IT 예산을 늘릴 수 있는 폭도 산업의 수익성과 현금흐름에 따라 달라진다.
2027년 사업계획을 준비하는 기업들은 AI와 클라우드, 보안 예산을 늘리는 동시에 기존 시스템 유지비와 인건비, 외주비를 조정하게 된다. 주요 소프트웨어와 클라우드 계약의 갱신 가격, 자동화 이후의 직원 수, 신규 기술이 만든 매출과 마진은 예산 재배분의 결과를 보여주는 수치가 된다.
6조3700억달러에 이르는 세계 IT 지출 가운데 얼마가 기업의 성장으로 돌아갈지는 기술 도입 규모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절감한 비용을 어느 사업에 다시 투입했는지, 반복되는 구독료와 외주비를 통제했는지, 기술투자가 매출과 생산성을 높였는지가 기업별 실적에서 갈리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