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투자의 경제학③] 성과표에 갇힌 기술투자, 클라우드 계약이 만든 잠금 비용
소프트웨어 지출 1조4680억달러 전망…KPI 경쟁 속 계약 단가보다 커진 데이터 이전·시스템 전환비
[KtN 최기형기자]2026년 세계 소프트웨어 지출은 1조4680억달러, 서비스형 인프라(IaaS) 지출은 2870억달러에 이를 전망이다. 전년보다 각각 15.5%, 29.3% 늘어난 규모다. 기업은 AI와 클라우드, 고객관리, 전사적자원관리(ERP) 시스템을 확대하면서 기술투자마다 매출과 비용, 업무시간을 연결한 핵심성과지표(KPI)를 붙이고 있다. 투자성과를 숫자로 관리하는 흐름이 강해지는 한편, 데이터와 업무체계가 특정 공급업체에 묶이면서 계약을 바꾸는 비용도 커지고 있다.
기업의 IT 전략은 매출 성장과 고객 경험, 운영 효율, 규제 준수를 하나의 투자계획 안에 배치하는 방식으로 바뀌고 있다. 온라인 판매망을 구축하는 사업에는 채널 매출 증가율을, 물류 자동화에는 주문 처리시간과 재고비용을, 고객 데이터 플랫폼에는 구매전환율과 고객 유지율을 적용한다.
ERP 교체에는 직원 1인당 사용비용과 결산 기간, 오류 건수가 붙는다. 보안 사업에는 사고 건수와 복구시간, 규제 위반 규모가 활용된다. CIO와 CFO, 사업부 책임자는 같은 지표를 놓고 투자 우선순위와 사업 중단 여부를 결정한다.
시스템 구축 건수와 소프트웨어 이용자 수는 기술 도입 규모를 보여주지만 기업의 성과를 직접 설명하지는 못한다. 직원 1000명이 AI 도구를 사용하더라도 매출과 생산량, 업무시간이 바뀌지 않으면 사용률은 투자수익으로 연결되지 않는다. 클라우드에 옮긴 시스템 수가 늘어도 전체 운영비가 더 커졌다면 비용 효율은 낮아진다.
측정 항목은 구체적이고 계산할 수 있어야 하며, 결과에 따라 행동을 바꿀 수 있어야 한다. 사업 목표와 직접 연결되고 문제가 커지기 전에 경고할 수 있는 시점에 산출돼야 한다. 지표가 많아질수록 관리가 정교해지는 것도 아니다. 서로 다른 수치가 충돌하면 사업부는 성과가 좋은 지표만 골라 제시할 수 있다.
매출 증가만 강조하면 비용과 위험이 빠진다. 시스템 도입으로 온라인 주문이 늘어도 클라우드 사용료와 광고비, 반품비가 더 빠르게 증가하면 이익은 줄어든다. 업무 처리시간을 줄였지만 오류와 고객 불만이 늘어날 경우 절약한 인건비보다 품질 비용이 커질 수 있다.
비용 절감률만 앞세운 평가도 같은 한계를 갖는다. 내부 개발인력을 줄이고 외주와 구독형 소프트웨어로 전환하면 인건비는 감소한다. 외부 업체에 지급하는 이용료와 유지비가 늘면 기업 전체의 비용은 줄지 않는다. 기술 문제에 대응할 내부 인력이 사라지면서 공급업체와의 협상력까지 약해질 수 있다.
장기적인 기반 투자에는 단기 KPI를 적용하기 어렵다. 데이터 정비와 시스템 표준화, 보안 강화는 당장 매출을 만들지 않는다. 사고가 발생하지 않고 장애가 줄어드는 방식으로 성과가 나타난다. 분기별 수익률만으로 평가하면 기반 사업은 매출을 직접 올리는 응용 프로그램보다 뒤로 밀릴 수 있다.
투자심사 과정에서 사용하는 동종 기업 비교도 조건에 따라 결과가 달라진다. 매출 대비 IT 비용이 경쟁사보다 높다는 이유로 예산을 줄였더라도 자체 개발 비중과 사업의 온라인 의존도, 적용받는 규제가 다르면 단순 비교는 맞지 않는다. 자체 데이터센터를 운영하는 기업과 클라우드를 이용하는 기업의 비용도 같은 항목으로 계산하기 어렵다.
벤치마크는 과도한 지출을 찾는 출발점으로 활용할 수 있다. 경쟁사보다 소프트웨어 계정 수가 많거나 데이터 저장비용이 높다면 계약과 사용량을 점검할 근거가 된다. 평균 수준에 맞추는 데 집중하면 기업이 새로 확보해야 할 기술 역량까지 줄어들 수 있다.
KPI와 벤치마크를 통한 비용 통제는 기술 공급업체 선정에서도 활용된다. 기업은 보안과 기능, 가격, 서비스 수준, 시스템 연계 능력을 점수로 평가한다. 여러 부서가 같은 기준으로 후보 제품을 비교하면 특정 임원의 선호나 영업 관계가 결정에 미치는 영향을 줄일 수 있다.
계약 전 점수표가 정교하더라도 계약 이후의 비용을 모두 담기는 어렵다. 소프트웨어와 클라우드 서비스는 기업의 데이터와 업무 절차, 직원의 작업 방식에 연결된다. 이용 기간이 길어질수록 공급업체를 바꾸는 데 필요한 시간과 비용이 커진다.
기업이 고객정보와 회계자료, 제품 데이터를 한 클라우드에 쌓으면 다른 업체로 옮길 때 대규모 데이터 이전이 필요하다. 프로그램 구조가 해당 클라우드에서만 작동하도록 설계됐다면 새로운 환경에 맞춰 다시 개발해야 한다. 직원 교육과 업무 중단, 보안 검증에도 비용이 발생한다.
ERP와 고객관리 소프트웨어는 영향 범위가 더 넓다. 회계와 구매, 인사, 생산, 영업 부서가 하나의 시스템을 사용하면 공급업체를 바꾸는 동안 여러 업무가 동시에 영향을 받는다. 기업은 가격이 올라도 시스템 교체에 따른 위험과 비용 때문에 기존 계약을 연장할 수 있다.
최초 도입 가격이 낮았더라도 사용자 계정과 기능이 늘면 계약금액은 커진다. 기업이 데이터를 축적하고 직원이 시스템에 익숙해진 뒤 공급업체가 구독료를 올리면 다른 업체로 이동하기 어렵다. 도입 시점의 할인보다 갱신 가격과 인상률, 계약 종료 뒤 데이터 반환 조건이 중요해진 배경이다.
서비스형 소프트웨어(SaaS)의 전환 비용은 협상 단계부터 반영돼야 한다. 계약을 끝낼 때 데이터를 어떤 형식으로 받을 수 있는지, 이전을 지원하는 기간과 비용은 얼마인지, 기업이 만든 설정과 프로그램을 다른 환경에서도 사용할 수 있는지가 계약서에 담겨야 한다.
사용량 약정도 기업의 선택을 제한할 수 있다. 장기 계약을 조건으로 큰 할인을 받으면 단가는 낮아지지만 실제 사용량이 예상보다 적어도 약정금액을 지급해야 한다. AI와 클라우드 수요를 과대 추정한 기업은 쓰지 않은 용량까지 비용으로 부담할 수 있다.
AI 서비스에서는 모델과 클라우드의 결합이 강해지고 있다. 대형 클라우드 사업자가 AI 개발사에 투자하고 해당 모델을 자사 인프라에 공급하면서 기업은 모델과 연산환경을 하나의 계약으로 구매할 수 있다. 도입은 편해지지만 다른 모델이나 클라우드로 이동할 때 기술적·계약적 제약이 생길 수 있다.
미국 연방거래위원회(FTC)는 마이크로소프트와 OpenAI, 아마존과 Anthropic, 구글과 Anthropic의 협력관계를 조사했다. 세 대형 클라우드 사업자와 AI 개발사 사이에는 200억달러가 넘는 누적 투자가 이뤄졌다. FTC는 계약과 기술의 전환 비용이 높아지고 컴퓨팅 자원과 기술인력에 대한 접근이 제한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클라우드 사업자가 AI 개발사의 민감한 기술·사업 정보에 접근하는 구조도 경쟁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요인으로 제시했다.
AI 개발사와 대형 클라우드 사업자의 결합은 기업 고객에게도 영향을 준다. 특정 모델을 사용하려면 해당 클라우드의 데이터베이스와 보안, 개발도구를 함께 도입해야 하는 구조가 형성될 수 있다. 기업 데이터가 한 플랫폼에 쌓일수록 다른 모델을 선택할 때 추가 비용이 발생한다.
소프트웨어 가격 체계도 바뀌고 있다. 기존 SaaS는 직원 한 명당 계정을 부여하고 월 또는 연 단위로 비용을 받는 방식이 일반적이었다. AI 에이전트가 여러 시스템에 접속해 직원 대신 업무를 처리하면 사람이 직접 사용하는 계정 수가 줄 수 있다.
2030년까지 기업용 애플리케이션 지출 가운데 최대 2340억달러가 AI 에이전트 확산의 영향을 받을 것으로 전망됐다. 전체 기업용 SaaS 지출의 약 20%에 해당한다. 기업이 화면과 기능을 구매하는 방식에서 AI가 처리한 업무 결과와 사용량에 비용을 내는 방식으로 이동할 가능성이 반영됐다.
직원 계정 수에 따라 매출을 늘려온 소프트웨어 업체는 이용량과 처리 결과를 기준으로 가격 체계를 바꿀 수 있다. 기업 고객은 사용하지 않는 계정을 줄일 수 있지만 AI 에이전트의 호출 횟수와 처리량에 따라 비용이 예상보다 빠르게 증가할 수도 있다.
사용량 기반 가격은 업무가 늘면 비용도 함께 오르는 구조다. 업무시간을 줄이기 위해 AI를 도입했지만 모델 이용료와 클라우드 연산비가 절감한 인건비보다 많아질 수 있다. 기업이 AI 에이전트의 작업 횟수와 업무별 비용을 실시간으로 관리하지 못하면 월말 청구서를 받은 뒤에야 예산 초과를 알게 된다.
AI 최적화 IaaS 지출은 2026년 420억달러로 전년보다 96% 증가할 전망이다. 2027년에는 660억달러까지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대규모 언어모델의 학습뿐 아니라 기업 업무에 적용된 AI의 추론 수요가 인프라 지출을 밀어 올리고 있다.
클라우드와 AI 비용을 관리하려면 기술 부서와 재무 부서가 같은 사용량 자료를 봐야 한다. 부서별 저장공간과 연산시간, 소프트웨어 계정, AI 모델 호출량을 비용으로 환산하면 예산이 늘어난 원인을 구분할 수 있다. 사용량이 낮은 서비스를 줄이고 업무 난도가 낮은 작업에는 비용이 낮은 모델을 적용할 수도 있다.
성과지표에는 계약 비용도 포함돼야 한다. AI가 보고서 작성시간을 30% 줄였더라도 구독료와 검수비, 데이터 관리비를 합한 총비용이 더 많이 늘었다면 투자성과는 낮다. 시스템을 해지하거나 다른 업체로 옮기는 데 드는 비용까지 포함해야 계약 기간 전체의 수익을 계산할 수 있다.
공급업체를 바꾸지 않고 장기 계약을 유지하는 선택도 무조건 손실은 아니다. 시스템 안정성과 직원 숙련, 기존 데이터의 활용 효과가 전환 비용보다 크다면 기존 계약을 연장하는 편이 경제적일 수 있다. 계약 유지가 기술적 우위 때문인지 높은 이전 비용 때문인지는 구분할 필요가 있다.
기술투자 성과표는 예산 통제의 수단인 동시에 기업의 사업 방향을 정한다. 측정하기 쉬운 비용 절감과 단기 매출에 높은 점수를 주면 보안과 데이터, 장기 연구개발은 밀린다. 사용률과 구축 건수에 점수를 주면 실제 이용 가치가 낮은 소프트웨어도 계속 유지될 수 있다.
2027년 기술 예산과 계약 갱신에서는 AI 기능이 추가된 소프트웨어의 가격, 클라우드 사용량, 데이터 이전 조건이 주요 협상 항목이 된다. 직원 계정당 비용에서 AI 처리량과 업무 결과에 따른 비용으로 가격 체계가 옮겨가면 기업의 예산 관리 방식도 달라진다.
소프트웨어 지출 1조4680억달러와 IaaS 지출 2870억달러의 증가는 기술기업에는 시장 확대지만 이용 기업에는 반복 비용의 증가다. KPI가 보여주는 매출과 업무시간뿐 아니라 계약 갱신 가격, 데이터 이전비, 시스템 교체비까지 합쳐야 기술투자의 경제적 결과가 실적에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