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 인사이트①] 같은 진주도 값은 달라진다…가격을 가르는 7가지 기준
크기·형태에 광택·표면·색·진주층·매칭까지 복합 평가…‘AAA’ 한 글자보다 실제 품질 요소가 가격 좌우
[KtN 박준식기자] 같은 크기의 둥근 흰색 진주라도 가격은 크게 달라진다. 빛을 받았을 때 반사가 또렷한지, 표면에 흠이나 주름이 얼마나 남아 있는지, 기본색 위로 어떤 빛이 겹쳐 올라오는지에 따라 품질이 나뉜다. 목걸이처럼 여러 알을 연결한 제품은 각각의 진주가 얼마나 고르게 맞춰졌는지도 가격에 반영된다. 국제적으로 진주의 가치를 판단할 때는 크기(size), 형태(shape), 색(color), 광택(luster), 표면(surface), 진주층(nacre), 매칭(matching) 등 7가지 요소가 주요 기준으로 쓰인다.
크기는 가격을 가르는 가장 직관적인 요소지만 직경만 비교해서는 정확한 판단이 어렵다. 같은 종류와 비슷한 품질이라면 큰 진주가 상대적으로 희소해 가격이 높아지는 경향이 있다. 아코야(Akoya), 남양진주(South Sea pearl), 타히티진주(Tahitian pearl), 담수진주(freshwater pearl)는 양식되는 조개와 환경부터 다르다. 남양진주는 주요 양식진주 가운데 큰 크기로 성장하는 편이고, 아코야는 상대적으로 작은 크기에서 특유의 선명한 광택을 형성한다. 서로 다른 종류의 진주를 직경 하나로만 비교하기 어려운 이유다.
형태에서는 완전한 원형이 희소하다. 라운드와 세미라운드, 버튼, 드롭, 페어, 오벌, 바로크, 서클드 등 진주의 형태는 다양하다. 다른 품질 조건이 비슷하면 완전한 구형이 높은 평가를 받는 경우가 많지만 원형에서 벗어났다고 곧바로 낮은 품질로 분류되는 것은 아니다. 대칭이 잘 잡힌 드롭형이나 형태 자체가 독특한 바로크 진주는 디자인에 따라 별도의 가치를 만든다. 최근 주얼리에서 비정형 진주가 적극적으로 사용되는 흐름도 형태의 개성을 제품 디자인으로 받아들이는 변화와 연결된다.
흰 진주라고 해서 모두 같은 흰색도 아니다. 진주의 색은 기본색인 보디컬러(bodycolor)에 오버톤(overtone)과 오리엔트(orient)가 겹치면서 달라진다. 아코야의 흰색에서도 핑크와 크림, 실버 계열의 미묘한 차이가 나타난다. 흔히 흑진주로 불리는 타히티진주 역시 단순한 검은색이 아니라 회색과 은색, 갈색 계열의 기본색에 녹색·파랑·보라·분홍 계열의 빛이 더해질 수 있다. 남양진주는 화이트와 실버부터 골드 계열까지 색의 폭이 넓다.
색 하나를 떼어 놓고 어느 진주가 가장 비싸다고 단정하는 방식도 실제 가격 구조와 맞지 않는다. 같은 종류 안에서 광택과 표면, 크기, 진주층의 상태가 함께 비교돼야 한다. 특정 색의 생산량이 적거나 시장 수요가 높으면 가격이 상승할 수 있고 소비 지역과 유행에 따라 선호하는 색도 달라진다. ‘화이트가 가장 비싸다’거나 ‘골드가 무조건 비싸다’는 공식보다 품종과 품질, 희소성을 함께 보는 편이 정확하다.
가격 차이를 크게 만드는 요소 가운데 하나는 광택이다. 빛이 닿았을 때 반사가 밝고 경계가 또렷한 진주는 얼굴이나 주변 사물의 윤곽이 표면에 선명하게 비친다. 반대로 광택이 약하면 같은 크기의 진주라도 표면이 흐리고 탁하게 느껴진다. 크고 둥근 진주라고 해도 광택이 떨어지면 크기와 형태만으로 상위 품질을 설명하기 어렵다. 진주의 아름다움을 판단할 때 광택의 비중이 큰 이유다.
진주를 오랫동안 취급해 온 제이아이티앤코(JIT&CO)·크리스펄 임효민 대표도 한 방향에서 색만 보고 진주를 판단하지 않는다. 임 대표는 표면의 상처와 함께 안쪽에서 올라오는 색, 빛이 모이는 정도와 오리엔트를 살핀다고 설명했다. 진주를 여러 방향으로 돌려 보면서 광택의 변화와 표면 상태를 함께 판단하는 방식이다.
표면도 가격을 세분화한다. 진주에는 작은 돌출부와 움푹 들어간 부분, 주름, 긁힘 등 자연스럽게 형성된 흔적이 남을 수 있다. 흔적의 수와 크기, 위치에 따라 외관이 달라지고 심한 표면 손상은 내구성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 귀걸이나 반지처럼 금속에 세팅할 때 흠이 장식 안쪽으로 들어갈 수 있는지도 완제품 제작에서는 고려 대상이 된다. 같은 등급의 원석이라도 세팅 방식에 따라 완성된 제품에서 보이는 표면 상태가 달라질 수 있다.
진주층은 겉으로 드러나는 광택과 제품의 수명에 연결된다. 조개가 핵 주위에 형성한 진주층이 충분하지 않으면 안쪽의 핵이 비쳐 보이거나 표면이 탁하게 나타날 수 있다. 진주층의 상태가 좋을수록 빛이 깊고 안정적으로 반사될 가능성이 커진다. 광택이 단순한 표면 효과가 아니라 진주가 성장하면서 형성한 내부 구조와 연결돼 있다는 뜻이다.
목걸이와 귀걸이 한 쌍에서는 ‘매칭’이 추가된다. 진주 목걸이는 비슷한 직경의 알을 한 줄에 꿰는 작업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크기와 형태, 색, 광택, 표면의 상태를 연속적으로 맞춰야 한다. 특히 품질이 높은 진주 수십 알을 일정한 색과 광택으로 구성하려면 선별 과정이 길어진다. 여러 알이 들어간 완제품의 가격에는 원석 각각의 가치와 함께 한 줄 전체를 맞추는 작업이 반영된다.
소비자가 매장에서 자주 접하는 A·AA·AAA 등의 표기도 그대로 비교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진주는 다이아몬드의 4C처럼 전 세계 판매자가 동일하게 사용하는 하나의 등급표가 정착돼 있지 않다. 업체와 산지, 유통망에 따라 등급 명칭과 세부 기준이 달라질 수 있다. 같은 ‘AAA’ 표기가 붙어 있어도 서로 다른 판매처의 제품을 동일 품질이라고 단정하기 어려운 이유다. 구매 단계에서는 등급 문자를 보는 데서 그치지 않고 진주의 종류와 크기, 광택, 표면, 색, 진주층과 매칭 상태를 함께 살펴야 한다.
완제품 가격에는 원석 이후의 비용도 더해진다. 진주를 고르고 구멍을 내는 천공, 목걸이의 매듭, 귀금속 잠금장치, 금·은 세팅, 가공 공임과 디자인, 유통비가 차례로 붙는다. 같은 품질의 진주를 사용해도 장식에 들어간 금의 중량이나 잠금장치의 구조, 제작 난도에 따라 최종 판매가격은 달라진다. 원석 가격과 백화점·주얼리 매장에서 접하는 완제품 가격을 단순 비교할 수 없는 구조다.
임효민 대표는 다른 사람이 구입한 진주를 보고 임의로 가격을 매기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도매에서 거래되는 원석 가격과 소비자가 구입한 완제품의 가격에는 서로 다른 가공과 유통 조건이 들어가기 때문이다. 진주의 가치와 판매가격을 구분해 볼 필요가 있는 대목이다.
진주의 가격은 ‘크고 둥글고 흰 진주가 비싸다’는 한 문장으로 정리되지 않는다. 아코야인지 남양인지, 타히티인지 담수인지부터 나눈 뒤 같은 종류 안에서 크기와 형태, 색, 광택, 표면, 진주층을 비교해야 한다. 여러 알로 구성된 제품에는 매칭까지 더해진다. 한 알의 작은 진주 안에 서로 다른 일곱 가지 조건이 겹치면서 수천원대 원석부터 고가 주얼리에 사용되는 진주까지 가격의 폭이 만들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