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 인사이트②] 아코야·남양·타히티·담수, 같은 진주라도 시장은 다르다
6~9㎜ 아코야부터 18㎜ 안팎 남양진주까지…양식 조개·생산지·성장기간 따라 크기·색·광택·가격대 달라져
[KtN 박준식기자] 진주는 하나의 품목처럼 거래되지만 양식되는 조개와 물의 환경, 성장기간에 따라 전혀 다른 상품군으로 나뉜다. 국내 주얼리 시장에서 흔히 접하는 양식진주는 아코야(Akoya pearl), 남양진주(South Sea pearl), 타히티진주(Tahitian pearl), 담수진주(freshwater pearl)로 크게 구분할 수 있다. 아코야는 선명한 광택과 비교적 작은 크기, 남양진주는 큰 크기와 두꺼운 진주층, 타히티진주는 짙은 기본색과 다양한 오버톤, 담수진주는 폭넓은 색과 형태가 각각의 특성을 만든다.
아코야진주는 전통적인 흰색 진주 목걸이를 떠올릴 때 가장 가까운 종류다. 일본과 중국, 베트남 등에서 양식되며 주로 흰색과 크림색을 띤다. 일반적으로 6~9㎜ 크기가 많고 9㎜를 넘어가면 상대적으로 희소해진다. 둥근 형태와 함께 표면에서 빛이 또렷하게 반사되는 선명한 광택이 아코야의 주요 특징으로 꼽힌다. 고품질 아코야에서는 핑크나 다른 색조의 오버톤이 기본색 위로 겹쳐 나타나기도 한다.
아코야의 광택은 양식환경과도 연결된다. 비교적 차가운 바다에서 진주층이 천천히 형성되면서 촘촘한 구조를 만들고, 표면에서는 거울처럼 날카로운 반사가 나타날 수 있다. 한 조개에서 일반적으로 한 알을 양식하고 성장에는 약 10~24개월이 걸린다. 크기를 무한정 키우기보다 일정한 원형과 광택, 색을 맞추는 제품에 적합해 한 줄로 연결한 클래식 목걸이나 귀걸이 한 쌍에서 자주 사용된다.
남양진주는 크기부터 차이가 난다. 호주와 인도네시아, 필리핀 등이 주요 생산지로, 핀크타다 막시마(Pinctada maxima)라는 대형 진주조개에서 양식한다. 주요 양식진주 가운데 가장 큰 종류에 속하며 일반적으로 8~18㎜ 정도까지 형성된다. 성장기간도 2~4년에 이르는 경우가 있어 큰 크기와 두꺼운 진주층을 만드는 데 상대적으로 긴 시간이 필요하다.
남양진주의 색은 사용하는 조개의 종류에 따라 화이트·실버와 골드 계열로 갈린다. 실버 립(silver-lipped) 조개에서는 흰색과 은색 계열, 골드 립(gold-lipped) 조개에서는 골든 컬러가 주로 나온다. 아코야가 날카롭고 선명한 반사광을 특징으로 한다면 남양진주는 상대적으로 부드럽고 깊은 새틴 계열의 광택을 갖는다. 큰 크기와 긴 양식기간, 제한된 생산환경이 겹치면서 주요 양식진주 가운데 높은 가격대를 형성하는 경우가 많다.
골든 남양진주도 색이 짙다는 이유만으로 가격이 결정되지는 않는다. 같은 골드 계열 안에서도 크기와 원형에 가까운 정도, 광택, 표면 상태, 진주층이 함께 평가된다. 색이 진하고 선명한 골든 컬러가 높은 가격을 형성할 수 있지만 표면에 흠이 많거나 광택이 떨어지면 가격은 달라진다. 색은 독립적인 가격표가 아니라 여러 품질 조건 가운데 하나다.
흑진주라는 이름으로 익숙한 타히티진주도 실제 색은 검정 하나가 아니다. 프렌치폴리네시아를 중심으로 양식되며 검은입술진주조개(Pinctada margaritifera)를 사용한다. 기본색은 회색과 은색, 갈색에서 짙은 녹색 계열까지 나타나고 그 위에 녹색·파랑·보라·분홍·브론즈 계열의 오버톤이 더해질 수 있다. 타히티진주 특유의 복합적인 색은 한 방향의 색상표보다 빛이 닿는 각도에 따라 달라지는 색의 층으로 읽는 편이 정확하다.
크기는 일반적으로 8~14㎜ 정도다. 14㎜를 넘는 대형 진주는 공급량이 줄어들고, 큰 크기에서 둥근 형태와 깨끗한 표면까지 갖추면 희소성이 높아진다. 양식기간은 대체로 18~24개월이다. 한때 ‘블랙 펄’이라는 명칭이 타히티진주를 대표했지만 실제 거래에서는 기본색과 오버톤의 조합, 광택, 크기와 표면을 함께 살펴야 한다. 피코크(peacock)처럼 녹색을 중심으로 분홍이나 보라 계열의 빛이 겹치는 색조도 타히티진주의 대표적인 컬러 가운데 하나다.
담수진주는 세 종류의 해수진주와 생산환경부터 다르다. 바다가 아닌 호수와 연못, 강과 같은 담수 환경에서 양식하며 중국이 주요 생산지다. 흰색뿐 아니라 핑크와 피치, 라벤더 등 자연적인 파스텔 계열의 색이 폭넓게 나타나고 원형부터 오벌과 버튼, 바로크까지 형태도 다양하다. 일반적인 크기는 6~12㎜ 정도지만 양식기술에 따라 훨씬 큰 담수진주도 생산되고 있다.
담수진주는 양식 방식에서도 차이가 있다. 전통적으로 작은 외투막 조직을 삽입해 진주 성장을 유도하는 조직핵 양식이 많이 사용돼 왔다. 조직핵 방식으로 자란 담수진주는 내부 대부분이 진주층으로 구성될 수 있다. 최근에는 조개껍데기로 만든 구형 핵을 넣는 유핵 담수진주도 늘면서 과거보다 크고 둥글며 광택이 뛰어난 제품이 시장에 공급되고 있다. ‘담수진주는 작고 비정형이며 값이 낮다’는 오래된 인식만으로 현재 제품을 구분하기 어려워진 배경이다.
가격 접근성에서는 담수진주의 범위가 가장 넓다. 한 조개에서 여러 알을 양식할 수 있고 생산량도 상대적으로 많아 아코야·타히티·남양진주보다 낮은 가격대의 상품을 구성하기 쉽다. 반면 양식기술이 개선되면서 둥근 형태와 높은 광택, 큰 크기를 갖춘 상급 담수진주도 생산되고 있다. 담수라는 이유만으로 저가, 해수라는 이유만으로 고가라고 분류하는 방식은 실제 품질 차이를 충분히 반영하지 못한다.
제이아이티앤코(JIT&CO)·크리스펄 임효민 대표도 진주를 장기간 취급하면서 담수와 해수진주를 외관만으로 동일하게 보지 않는다. 임 대표는 두 종류를 직접 비교하며 “결이 틀려요”라고 설명했다. 색을 비슷하게 맞출 수 있더라도 원석에서 느껴지는 표면의 결이나 흠의 양상을 살펴 구분한다는 현장 경험이다. 품종을 판별하는 공식 감별 기준이라기보다 오랜 기간 원석을 직접 고르고 가공해온 제조자의 선별 경험에 가깝다.
네 종류를 가격 순서로 단순하게 줄 세우는 것도 적절하지 않다. 시장 전체에서는 담수진주의 가격 접근성이 넓고 남양진주가 높은 가격대를 형성하는 경향이 있지만, 최상급 담수진주와 낮은 품질의 해수진주를 종류 이름만으로 비교할 수는 없다. 아코야에서도 9㎜ 이상의 높은 광택과 깨끗한 표면을 가진 원형 진주는 희소성이 커지고, 타히티와 남양 역시 크기와 색, 광택, 표면에 따라 가격 격차가 벌어진다. 종류를 구분한 뒤 같은 종류 안에서 품질을 비교해야 가격을 제대로 읽을 수 있다.
완제품에서는 선택 기준이 다시 달라진다. 작은 크기와 또렷한 광택을 살린 클래식 목걸이에는 아코야가 어울리고, 큰 크기로 존재감을 강조하는 디자인에는 남양진주가 사용될 수 있다. 타히티진주는 짙은 기본색과 오버톤을 중심으로 디자인을 구성할 수 있고, 담수진주는 다양한 색과 비정형 형태를 활용하기에 선택 폭이 넓다. 어느 한 종류가 다른 종류의 상위나 하위에 놓이는 구조보다 크기와 색, 광택, 디자인 목적에 따라 서로 다른 시장을 형성한다.
진주를 고를 때 가장 먼저 확인할 항목은 가격표보다 종류다. 아코야인지, 남양인지, 타히티인지, 담수인지가 정해져야 적정한 크기와 색, 광택의 특성을 비교할 수 있다. 아코야의 선명한 빛, 남양진주의 크기와 부드러운 광택, 타히티진주의 복합적인 색, 담수진주의 폭넓은 형태와 가격대는 같은 ‘진주’라는 이름 안에서 각각 다른 상품을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