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 인사이트④] 둥글지 않아도 값이 생긴다…바로크 진주가 바꾼 디자인
비대칭 자유형태 자체가 하나의 분류…표면 흠·크랙과는 구별, 2026년 주얼리는 담수 바로크의 개별성까지 디자인으로 활용
[KtN 박준식기자] 완벽하게 둥글지 않은 진주가 모두 품질이 낮은 것은 아니다. 길게 늘어지거나 한쪽이 불룩하고, 좌우가 다르게 자란 진주도 하나의 독립된 형태로 주얼리에 사용된다. 바로크 진주(baroque pearl)다. 미국보석학회(GIA)는 바로크를 뚜렷한 대칭을 갖지 않는 불규칙한 형태로 분류한다. 완전한 구형은 희소성 때문에 높은 평가를 받는 경우가 많지만, 형태가 잘 형성된 바로크 진주 역시 독창적인 주얼리 재료로 거래된다.
진주의 형태는 원형과 비원형으로만 갈리지 않는다. 원형에 가까운 근원형, 뒤가 평평한 버튼형, 한쪽으로 좁아지는 드롭형, 길게 늘어난 오벌형, 일부 비대칭이 나타나는 세미바로크, 일정한 대칭을 찾기 어려운 바로크까지 다양하다. GIA의 분류에서 세미바로크는 기본 형태를 어느 정도 읽을 수 있지만 비대칭이 나타나는 진주, 바로크는 전체 형태가 자유롭게 형성된 진주에 가깝다.
국내에서 흔히 쓰이는 ‘못난이 진주’와 바로크를 같은 뜻으로 사용하는 데에는 주의가 필요하다. ‘못난이 진주’는 시장에서 비정형 진주를 친근하게 부르는 표현으로 사용되기도 하지만 표면 흠이나 잘못 뚫린 구멍, 크랙 등 상품성이 떨어지는 진주까지 함께 가리키는 경우가 있다. 바로크는 형태를 설명하는 분류다. 진주가 비대칭이라는 사실과 표면 품질이 낮다는 사실은 서로 다른 문제다. 형태가 자유로워도 광택과 색, 표면 상태가 뛰어날 수 있고, 반대로 둥근 진주에도 흠이 많을 수 있다.
가격도 같은 원리로 나뉜다. 다른 품질 조건이 동일하다면 완전한 원형이 일반적으로 더 높은 가치를 인정받는다. 구형으로 성장하는 진주의 희소성이 높기 때문이다. 그러나 바로크라는 이유만으로 가격이 낮다고 단정할 수도 없다. 크기와 광택, 색, 표면, 진주층이 뛰어나고 형태 자체가 디자인 요소로 활용될 만한 진주는 별도의 상품성을 갖는다. GIA도 잘 형성된 바로크 양식진주가 진주 애호가들에게 높은 평가를 받을 수 있다고 설명한다.
담수진주는 바로크 디자인의 폭을 크게 넓힌 품종 가운데 하나다. 중국을 중심으로 생산되는 담수진주는 화이트와 핑크, 피치, 라벤더 등 색이 다양하고 형태의 폭도 넓다. 최근 양식기술이 발전하면서 크고 둥근 담수진주가 늘었지만, 동시에 16~23㎜에 이르는 대형 바로크 담수진주처럼 비정형을 적극적으로 살린 제품도 유통되고 있다. 일정하지 않은 윤곽과 각기 다른 색조가 제품마다 다른 구성을 만들 수 있다는 점이 디자인 재료로 활용되는 배경이다.
2026년 패션 주얼리에서도 바로크 진주의 비정형성이 전면으로 올라왔다. 올해 여름 주얼리 흐름에서는 담수 바로크 진주의 유기적인 형태를 그대로 살린 귀걸이와 목걸이가 주요 스타일 가운데 하나로 소개됐다. 가을에는 진주를 여러 줄 겹치거나 크기를 키운 디자인이 런웨이에 등장했고, 최근에는 안전핀과 금속 장식을 진주와 결합하는 방식까지 나타났다. 클래식한 한 줄 목걸이와 균일한 원형만으로 진주 스타일을 설명하기 어려워진 셈이다.
제이아이티앤코(JIT&CO)·크리스펄 임효민 대표가 오랫동안 다뤄온 진주 가운데도 일정한 원형에서 벗어난 원석이 많았다. 노점에서 진주를 판매하던 초기부터 표면과 형태가 고르지 않은 진주를 접했고, 이후에는 판매하기 어려운 원석을 제품으로 만드는 가공을 이어왔다. 구멍이나 크랙, 불규칙한 형태 때문에 그대로 사용하기 어려운 진주를 금속 장식과 결합하는 방법을 개발했다는 설명이다.
임 대표의 제작 방식에서는 원석의 형태와 금속 구조가 함께 조정된다. 먼저 금속 틀을 만들고 진주의 불필요한 부분을 가공해 구조에 맞추거나, 들어온 원석의 생김새를 살핀 뒤 사용할 방법을 정한다. 다른 가공업체에서 손대기 어려운 진주도 직접 잘라보고 깎으면서 제작 방식을 익혔다고 설명했다.
임 대표는 진주의 특성을 “진주는 생긴 그대로 쓰는 거예요”라고 표현했다. 여기서 말하는 ‘그대로’는 아무런 가공도 하지 않는다는 뜻보다 원석이 가진 기본 형태와 진주층을 임의로 완전한 구형으로 바꾸기 어렵다는 의미에 가깝다. 다이아몬드나 다른 원석처럼 대대적인 연마를 통해 원하는 형태로 다시 만들면 진주 특유의 표면과 광택을 잃을 수 있다. 제조자는 이미 형성된 곡률과 표면을 읽은 뒤 어느 방향을 앞으로 둘지, 금속을 어디에 붙일지, 어떤 부분을 감출지를 결정해야 한다.
바로크 진주에서는 한 알씩 다른 형태가 생산 과정에도 영향을 미친다. 규격화된 구형 원석은 동일한 세팅을 반복하기 상대적으로 쉽지만 비정형 진주는 돌출된 부분과 평평한 부분, 무게중심이 제각각이다. 귀걸이 한 쌍을 만들 때는 서로 다른 두 알 가운데 크기와 색, 광택뿐 아니라 전체 윤곽이 어울리는 조합도 찾아야 한다. 완전히 동일한 두 알보다 서로 다른 형태의 균형을 맞추는 작업이 필요해진다.
비정형을 살리는 디자인과 손상된 진주를 되살리는 가공도 구분해서 볼 필요가 있다. 자연스럽게 형성된 바로크 윤곽을 그대로 활용하는 방식은 형태 자체를 디자인 요소로 사용하는 작업이다. 구멍이나 크랙, 특정 부위의 표면 손상 때문에 그대로 쓰기 어려운 진주를 금속 구조로 보완하는 작업은 제조기술의 영역에 더 가깝다. 임효민 대표가 금속 틀을 먼저 만든 뒤 개별 진주를 맞추는 방식은 후자까지 포함한다.
균일하지 않다는 특성은 대량생산과도 다른 관계를 만든다. 똑같은 크기와 형태를 반복하는 상품에서는 규격이 생산효율을 높이지만 바로크 진주는 각각의 윤곽이 다르다. 한 알의 돌출부가 귀걸이의 방향을 결정하고, 긴 형태는 펜던트가 되며, 넓고 납작한 진주는 금속 장식을 붙이는 위치가 달라진다. 같은 디자인 도면을 모든 원석에 그대로 적용하기보다 원석에 맞춰 제품을 조금씩 조정하는 제작 방식이 많아질 수밖에 없다.
2026년 바로크 진주가 다시 주목받는 흐름도 완벽한 원형의 가치를 부정하는 방향과는 거리가 있다. 고품질 라운드 진주의 희소성과 전통적인 가치는 그대로 유지된다. 동시에 한 알마다 형태가 다른 담수 바로크 진주가 귀걸이와 목걸이, 펜던트의 중심 소재로 사용되면서 진주 디자인의 범위가 넓어지고 있다.
진주에서 둥근 형태는 여전히 중요한 가치 기준이다. 다만 원형에서 벗어났다는 이유만으로 한 알의 품질과 쓰임까지 결정되지는 않는다. 광택과 색, 표면과 진주층이 좋은 바로크 진주는 불규칙한 윤곽 자체가 디자인이 되고, 손상이나 크랙이 있는 원석은 세팅과 가공을 통해 새로운 제품으로 이어질 수 있다. 라운드 진주가 자연이 만든 균형을 평가한다면, 바로크 진주는 서로 다른 형태를 디자인이 어디까지 활용할 수 있는지를 넓히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