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 인사이트⑩] 산지는 해외, 가공은 종로에서…K주얼리의 진주 제조
중국·일본·프렌치폴리네시아·호주 등에서 들어온 원석, 선별·가공·세팅·디자인·AS 거쳐 완제품으로…종로 제조 집적지에서 브랜드·수출까지 확장
[KtN 박준식기자]진주 양식의 중심지는 한국 밖에 있다. 담수진주는 중국, 아코야진주는 일본·중국·베트남, 타히티진주는 프렌치폴리네시아, 남양진주는 호주·인도네시아·필리핀을 중심으로 생산된다. 국내에서 판매되는 진주 주얼리는 해외에서 생산된 원석이 들어온 뒤 선별과 천공, 매칭, 금속 세팅, 디자인과 조립을 거쳐 완제품이 되는 구조가 상당 부분을 차지한다. 원석을 생산하는 나라와 완성된 주얼리에 가치를 더하는 제조지역이 반드시 일치하지 않는 산업이다.
서울 종로는 후반 제조공정을 집약해 볼 수 있는 곳이다. 종로 주얼리 타운에는 제조와 도매·소매·디자인 기능이 한 지역에 모여 있다. 서울주얼리지원센터도 종로의 주얼리 산업을 도심형 제조업으로 분류하고 시제품 제작을 비롯한 제조 지원시설을 운영하고 있다. 2026년 서울시 도시제조업 제조공정 디지털화 지원사업에서도 주얼리(C331)는 의류봉제·수제화·인쇄와 함께 4대 특화업종에 포함됐다.
진주 한 줄이 종로에 들어오면 선택지는 다시 갈린다. 그대로 목걸이로 연결할 수 있는 원형 진주가 있는 반면 표면이나 형태 때문에 세팅 방향을 달리해야 하는 원석도 있다. 바로크처럼 비정형 자체를 살리는 진주도 있고, 천공 위치나 크랙 때문에 일반적인 완제품에는 사용하기 어려운 원석도 나온다. 제조단계에서는 원석을 등급별로 나누는 일에서 끝나지 않고 어느 면을 앞으로 놓을지, 어떤 금속 구조와 결합할지, 귀걸이·반지·브로치 가운데 어디에 사용할지를 결정하게 된다.
제이아이티앤코(JIT&CO) 임효민 대표의 제조 방식에서도 원석 이후의 공정이 큰 비중을 차지한다. 임 대표는 해외에서 들어온 진주 가운데 구멍을 잘못 뚫어 가장자리에 크랙이 생겼거나 그대로 판매하기 어려운 원석을 확보해 다시 제품화하는 작업을 해왔다고 설명했다. 이미 형성된 진주를 완전한 원형으로 다시 만드는 대신 남은 형태를 살펴 금속 구조와 결합하는 방식이다.
브로치와 같은 제품에서는 금속 틀을 먼저 설계한 뒤 개별 진주를 맞추기도 한다. 원석의 앞면과 뒷면 상태가 다르고 형태도 일정하지 않기 때문에 동일한 규격의 부품을 반복 조립하는 것만으로는 제품이 나오지 않는 경우가 있다. 임 대표는 형태가 고르지 않은 진주를 확보한 뒤 금속 틀을 구상하고 원석에 맞춰 가공하는 방법을 사용해 왔다고 말했다.
진주 가공과 금속 제조를 한곳에서 연결하면 디자인의 범위도 달라진다. 원석을 가진 업체가 금속 제조업체에 세팅을 의뢰하거나, 금속 제조업체가 필요한 원석을 다시 진주업체에서 구하는 분업도 가능하다. 반면 진주의 형태와 금속의 구조를 동시에 조정할 수 있으면 원석에 맞춰 받침의 크기와 방향을 바꾸는 제품 개발이 가능해진다. 임 대표 인터뷰에서도 진주 취급과 금속 가공을 함께 연결하는 제조방식이 반복해서 언급됐다.
종로의 산업구조도 이런 분업과 연결에 적합하다. 디자인과 세공, 도매와 소매가 가까운 거리 안에 모여 있어 원석을 구한 뒤 금속 부품과 세팅, 수정 작업을 연속적으로 진행할 수 있다. 서울주얼리지원센터는 종로 주얼리 타운을 제조·도매·소매·디자인 기능이 집적된 지역으로 소개하고 있다. 시제품 제작과 제조 소공인 지원이 별도의 산업지원 영역으로 운영되는 것도 완제품 뒤에 여러 제조공정이 있다는 점과 맞닿아 있다.
제이아이티앤코는 완제품을 직접 설계·생산한 뒤 도매 유통으로 공급하는 구조를 갖고 있다. 임 대표는 종로에서 맡고 있는 위치를 “1차 생산자”라고 표현했다. 디자인에서 제작을 거쳐 제품이 시장에 나간 뒤 발생하는 AS도 다시 제조사에서 맡는다는 설명이다. 완제품을 한 번 판매하고 끝내기보다 수리할 수 있는 구조까지 제품 설계와 연결하는 방식이다.
AS는 수입 완제품과 국내 제조품을 가르는 요소가 될 수 있다. 수입한 주얼리는 부품이나 제작방식에 따라 국내에서 같은 구조로 수리하기 어려운 경우가 있다. 반대로 제조공정을 보유한 업체는 잠금장치와 연결부, 세팅 구조를 알고 있어 부품 교체나 재가공으로 이어질 여지가 커진다. 임 대표도 제품을 개발할 때 판매 이후의 수리를 염두에 두고 제작한다고 설명했다.
가공 다음 단계에서는 제조사 이름이 붙는다. 제이아이티앤코는 자체 생산품에 ‘JIT’ 각인을 남기고 있다. 유통업체가 제조사 각인을 지워달라고 요청한 경우에도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임 대표는 말했다. 제조사가 유통 뒤에 숨어 있는 하청업체로 머물기보다 제품의 출처를 표시하고 자체 브랜드로 연결하려는 선택이다. 진주 원석을 확보하는 것에서 출발한 사업이 디자인과 제조, AS를 거쳐 제조사 이름을 제품에 남기는 단계로 이동한 셈이다.
해외시장으로 넘어가면 제조 경쟁력과 원재료 조달이 다시 만난다. 임 대표는 제이아이티앤코 제품이 간접수출 방식으로 미국과 일본에 들어가고 있으며 직접수출도 준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직접수출을 확대하려면 주문 규모에 맞는 원재료 확보가 필요하고, 원석과 귀금속 가격이 높아질수록 제조업체가 먼저 투입해야 하는 운전자금도 커진다는 설명이다. 미국·일본 간접수출과 직접수출 구상은 임 대표가 밝힌 사업계획으로, 구체적인 직접수출 실적과 계약 규모는 별도로 구분할 필요가 있다.
지난 8월 코엑스마곡에서 열린 'THE MOST Valuables 2026'에는 제이아이티앤코가 300번 부스로 참가했다. 행사에는 해외 바이어를 초청한 1대1 수출상담 프로그램도 마련됐다. 제이아이티앤코의 개별 계약 성과를 뜻하는 것은 아니지만 국내 제조업체가 완제품을 해외 바이어에게 직접 소개할 수 있는 접점이 전시회 안에 마련됐다는 점은 확인할 수 있다.
세계 진주산업에서 한국이 중국의 담수 양식이나 일본의 아코야, 프렌치폴리네시아의 타히티, 호주·인도네시아·필리핀의 남양진주 생산구조를 그대로 따라갈 필요는 없다. 국내 제조현장에서는 해외에서 들어온 원석을 선별하고 형태에 맞게 가공한 뒤 금속을 세팅하고, 착용 구조를 설계해 완제품으로 만들 수 있다. 종로에 축적된 제조·도매·디자인·수리 기능도 이런 후반 공정에 연결돼 있다.
중국의 호수와 일본의 바다, 프렌치폴리네시아의 라군에서 성장한 진주는 수확으로 상품의 여정을 끝내지 않는다. 어떤 알을 고르고 어떤 형태로 남길지, 금속을 어디에 붙이고 어떤 구조로 착용하게 할지에 따라 다시 가격과 쓰임이 달라진다. 종로의 진주 주얼리 제조는 원석 생산이 아닌 선별·가공·세팅·제품개발·AS와 브랜드에서 부가가치를 쌓는 산업으로 이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