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 투자 트렌드②] EBITDA 18.1배까지 치솟은 대형딜…‘좋은 기업이면 비싸도 된다’는 계산의 부담
2025년 글로벌 바이아웃 평균 진입배수 11.8배로 사상 최고 5억달러 넘는 대형 거래는 EBITDA의 18.1배까지 상승 우량기업 선호·자금 집행 압박 겹치며 가격 프리미엄 확대 높은 가격 지불할수록 실적·매각배수 흔들릴 때 수익률 방어 어려워져
[KtN 최기형기자]글로벌 사모펀드(PE)가 기업을 사들이는 가격이 다시 최고 수준으로 올라섰다. 2025년 전 세계 바이아웃 거래의 평균 진입배수는 상각전영업이익(EBITDA)의 11.8배를 기록했다. 5억달러를 넘는 대형 바이아웃에서는 18.1배까지 높아졌다. 경기 불확실성이 이어지는 가운데 PE 자금이 안정적인 실적을 내는 우량기업으로 몰리면서 ‘좋은 기업에는 높은 가격을 지불해도 된다’는 투자 전략과 가격 부담이 동시에 커지고 있다.
맥킨지(McKinsey & Company)가 2026년 9월 공개한 분석은 최근 바이아웃 시장의 수익률을 가르는 요인으로 매입가격을 다시 전면에 올렸다. 우량기업 확보 경쟁과 미집행 자금의 투자 압박, AI를 둘러싼 가치평가가 가격을 밀어 올리고 있지만 높은 진입가격은 투자 이후 실적이 기대에 미치지 못할 때 감당할 수 있는 여지를 줄인다는 분석이다.
PE가 높은 가격을 감수하는 배경에는 기업의 질이 있다. 경기 변동에도 실적이 흔들리지 않고 안정적인 현금흐름을 낼 수 있는 이른바 ‘A급 기업’은 불확실성이 커질수록 선호도가 높아진다. 운용사 입장에서는 사업 안정성과 하방 방어력이 높은 기업에 프리미엄을 지급할 이유가 생긴다.
2025년 거래시장에서도 우량기업을 중심으로 굵직한 인수가 이어졌다. 반면 시장에 나올 것으로 예상됐던 일부 B급과 C급 기업은 매각 절차에 들어오지 않거나 다시 시장에서 빠졌다. 선택 가능한 기업이 줄어든 상태에서 자금이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기업으로 몰리면 인수가격은 더 높아질 수 있다.
PE 운용사에는 투자하지 않고 쌓아둔 자금을 실제 거래에 투입해야 하는 압박도 있다. 자금을 모집한 뒤 오랜 기간 집행하지 않으면 투자자에게 약속한 운용 전략을 실행하기 어렵다. 질 좋은 매물이 제한된 상태에서 여러 운용사가 동시에 거래를 추진하면 높은 가격을 받아들이는 경쟁도 심해진다.
맥킨지는 자금 집행 압력과 우량 자산 경쟁, AI에 대한 투자 판단, 운용사의 확신이 높은 프리미엄을 만들어내는 요인으로 꼽았다. PE에서는 다른 산업보다 자금을 실제 투자에 투입해야 하는 압박이 높은 가격을 정당화하는 배경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봤다.
문제는 높은 가격을 지불하는 순간 투자 이후의 선택지가 줄어든다는 데 있다.
기업을 EBITDA의 10배에 사는 것과 18배에 사는 것은 같은 기업을 인수하더라도 이후 필요한 성장 폭이 다르다. 매입가격이 높을수록 이익을 더 빠르게 늘리거나 매각할 때 높은 기업가치를 인정받아야 투자자가 기대한 수익률을 확보할 수 있다. 실적 증가가 예상보다 늦어지거나 향후 매각시장의 거래배수가 낮아지면 최초 인수가격이 수익률에 직접 부담을 준다.
최근 바이아웃 펀드 성과에서도 가격 차이는 분명하게 나타났다. 2018~2023년 빈티지 가운데 가장 낮은 가격에 기업을 산 그룹의 중위 투하자본배수(MOIC)는 3.4배였다. 가장 높은 가격을 지급한 그룹은 2.7배에 그쳤다. 두 그룹의 차이는 0.7배다.
2010~2017년에는 상황이 달랐다. 가장 낮은 가격에 투자한 그룹의 중위 MOIC는 2.8배, 가장 높은 가격을 지불한 그룹은 2.7배로 차이가 0.1배에 그쳤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낮은 자금조달 비용과 거래배수 상승이 이어지면서 높은 인수가격을 지불한 거래도 시장 상승의 영향을 받을 수 있었다.
최근에는 같은 방식으로 높은 가격을 흡수하기 어려워졌다. 2018~2023년 가장 저렴하게 산 그룹은 3.4배, 그 다음 그룹은 3.2배, 2.8배, 가장 비싸게 산 그룹은 2.7배로 내려갔다. 진입가격 순서와 수익률이 보다 뚜렷하게 맞물렸다.
운용 성과가 뛰어난 펀드끼리 비교하면 격차는 더 커졌다. 각 가격 구간에서 상위 25%에 해당하는 운용사 가운데 2018~2023년 가장 낮은 배수에 기업을 산 그룹의 MOIC는 5.5배였다. 가장 높은 가격을 지급한 그룹은 3.6배였다. 차이는 1.9배에 달했다.
2010~2017년 상위 운용사 비교에서는 4.2배와 3.8배로 차이가 0.4배였다. 같은 수준의 운용 역량을 갖춘 펀드라도 최근에는 기업을 사는 가격에 따라 성과 차이가 훨씬 크게 벌어진 것이다. 맥킨지 자료 4쪽 그래프에서도 최근 빈티지로 갈수록 낮은 진입가격과 높은 진입가격 사이의 수익률 간격이 크게 확대됐다.
‘A급 기업’ 프리미엄이 항상 잘못된 선택이라는 의미는 아니다. 경기 하강기에도 수익을 유지할 수 있는 기업, 시장점유율이 높고 경쟁력이 안정적인 기업은 높은 가격을 지불할 이유가 있다. 변동성이 큰 시기에는 실적이 불안정한 기업보다 우량기업에 자금을 집중하는 것이 손실 방어에 유리할 수도 있다.
가격이 높아질수록 요구되는 것은 기업의 질뿐 아니라 그 질을 정확히 평가하는 능력이다. 현재의 실적이 좋은 것과 앞으로도 같은 성장률을 유지하는 것은 다른 문제다. AI나 첨단기술처럼 미래 성장 기대가 기업가치에 빠르게 반영되는 분야에서는 투자 시점에 이미 상당 부분의 기대가 가격에 포함될 수 있다.
맥킨지도 AI에 대한 가치평가를 최근 높은 프리미엄의 배경 가운데 하나로 언급했다. 높은 성장 기대를 가진 기업을 확보하려는 경쟁이 강할수록 향후 실적을 앞당겨 가격에 반영하는 거래가 늘 수 있다.
PE는 인수 뒤 기업 운영을 개선해 가치를 높이는 전략을 사용한다. 비용 구조를 바꾸고 새로운 시장에 진입하거나 추가 인수를 통해 회사를 키우는 방식도 활용한다. 하지만 진입가격이 이미 높은 수준이라면 운영 개선으로 만들어낸 기업가치 가운데 투자자의 수익으로 남는 범위도 좁아질 수 있다.
특히 5억달러가 넘는 대형 거래에서 평균 진입배수가 EBITDA의 18.1배까지 올라갔다는 수치는 우량기업 확보 경쟁의 강도를 보여준다. 2025년 전체 바이아웃 평균인 11.8배보다 훨씬 높은 수준이다.
대형 거래는 한 번의 가격 판단이 펀드 전체 성과에 미치는 영향도 크다. 높은 가격을 지불한 뒤 실적 개선이 예상보다 늦거나 매각시점의 시장 환경이 나빠지면 초기 투자금 규모가 큰 만큼 수익률에 미치는 부담도 커진다.
2010년대 초중반에는 싼 자금과 거래배수 상승이 비싼 인수가격을 어느 정도 덮어줬다. 최근 빈티지에서는 가장 낮은 가격에 투자한 펀드와 가장 높은 가격을 지불한 펀드의 성과 격차가 0.7배까지 확대됐고, 상위 운용사만 비교하면 1.9배로 벌어졌다.
2025년 글로벌 바이아웃 평균 진입배수 11.8배, 대형 거래 18.1배라는 가격은 우량기업 선호가 강해질수록 PE가 치러야 할 비용도 커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좋은 기업을 고르는 능력과 좋은 기업을 적정한 가격에 사는 능력이 다시 분리되고 있다. 최근 펀드 성과에서는 기업의 질을 확보하기 위해 지급한 프리미엄이 어디까지 수익으로 돌아오는지를 가르는 선이 인수 단계부터 더 뚜렷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