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 투자 트렌드③] 투자 압박 커진 사모펀드…‘딜을 해야 한다’와 ‘비싸게 사지 않는다’ 사이
우량자산 경쟁·AI 기대·자금 집행 압박이 인수가격 밀어올려 2025년 일부 B·C급 기업은 시장에 나오지 않거나 매각 철회 낮은 가격에 산 상위 운용사 MOIC 5.5배…가격 규율이 운용 능력으로
[KtN 최기형기자]사모펀드(PE)는 자금을 모은 뒤 결국 기업을 사야 한다. 투자자를 상대로 조성한 자금을 오래 들고만 있을 수는 없다. 그러나 살 만한 기업이 줄고 우량자산 가격이 오를수록 ‘투자를 해야 한다’는 압박과 ‘비싸게 사지 않는다’는 원칙이 충돌한다. 2025년 글로벌 바이아웃 시장에서는 우량기업을 둘러싼 경쟁과 자금 집행 압박, AI에 대한 기대가 높은 거래가격의 배경으로 거론됐다.
맥킨지(McKinsey & Company)가 2026년 9월 공개한 PE 분석은 최근 수익률 격차를 단순한 기업 선별 능력보다 매입가격까지 포함해 살폈다. 가장 낮은 가격에 기업을 산 운용사가 높은 가격을 지불한 운용사보다 높은 투하자본배수(MOIC·Multiple on Invested Capital)를 기록했고, 최근 빈티지에서 차이는 더 벌어졌다.
2018~2023년 빈티지에서 가장 낮은 매입가격 구간의 중위 MOIC는 3.4배였다. 가장 높은 가격을 지급한 구간은 2.7배였다. 2010~2017년에는 두 그룹이 각각 2.8배와 2.7배로 거의 차이가 없었던 것과 대비된다.
성과 상위권으로 범위를 좁혀도 같은 흐름이 나타났다. 2018~2023년 각 매입가격 구간의 상위 25% 운용사를 비교하면 가장 낮은 가격에 투자한 그룹의 MOIC는 5.5배, 가장 높은 가격을 지불한 그룹은 3.6배였다. 가격 차이가 운용사의 높은 성과만으로 모두 상쇄되지는 않았다.
운용사들이 비싼 가격을 받아들이는 배경에는 거래시장 자체의 변화가 놓여 있다.
2025년 글로벌 바이아웃 평균 진입배수는 상각전영업이익(EBITDA)의 11.8배로 사상 최고 수준을 기록했다. 5억달러를 넘는 대형 바이아웃에서는 18.1배까지 올라갔다.
높은 가격에도 자금이 몰리는 곳은 안정적인 사업과 하방 방어력을 갖춘 이른바 ‘A급 기업’이다. 경기와 시장의 불확실성이 커질수록 운용사가 질 좋은 기업에 프리미엄을 지급하는 선택 자체는 자연스럽다. PE 업계에서는 투자자에게서 받은 자금을 실제 거래에 집행해야 하는 압박도 함께 작용한다.
2025년 거래시장에서는 우량기업을 대상으로 한 굵직한 인수가 이어졌다. 반면 매물로 나올 것으로 예상됐던 일부 B급과 C급 기업은 거래시장에 등장하지 않거나 매각 절차에서 빠졌다. 인수 가능한 자산의 범위가 좁아진 가운데 상대적으로 좋은 기업을 잡으려는 경쟁이 이어진 흐름이다.
사모펀드 운용사 입장에서는 선택이 복잡해진다. 거래를 늦추면 자금을 집행하지 못한다. 거래를 서두르면 높은 가격을 받아들일 가능성이 커진다. 우량기업을 확보하기 위해 프리미엄을 지급하면 사업 안정성을 얻을 수 있지만, 처음 지불한 가격이 높아질수록 이후 실적 개선이나 매각가격이 기대에서 벗어났을 때 감당할 수 있는 범위는 좁아진다.
맥킨지 분석에서 ‘가격 규율’이 반복해서 등장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자금 집행 자체가 목적이 되면 운용사가 처음 설정했던 투자 기준보다 높은 가격을 받아들일 가능성이 생긴다. 반대로 매입가격을 엄격하게 관리하면 거래 기회를 놓칠 수 있지만, 높은 가격에서 시작해야 하는 수익률 부담은 줄어든다.
AI도 가격을 밀어올리는 변수로 들어왔다. PE가 인수 대상 기업에 AI가 가져올 성장과 생산성 개선을 얼마나 반영할 것인지가 기업가치 산정에 포함되면서 높은 프리미엄을 설명하는 근거 가운데 하나로 자리 잡았다. 맥킨지는 자금 집행 압박과 우량자산 경쟁, AI에 대한 가치평가, 운용사의 확신을 함께 높은 가격의 배경으로 들었다.
AI 기대가 높을수록 인수 단계의 계산도 까다로워진다. 미래 성장분을 매입가격에 먼저 반영하면 실제 기업 실적이 예상대로 증가해야 높은 가격을 감당할 수 있다. 투자 이후 발생할 성장의 상당 부분을 처음부터 매도자에게 가격으로 지급하는 구조가 될 수도 있다.
최근 빈티지의 수익률은 이런 부담을 숫자로 보여준다. 가장 낮은 가격에 투자한 그룹에서 중위 MOIC가 3.4배였던 반면 가장 높은 가격을 지불한 그룹에서는 2.7배였다. 상위 운용사를 비교하면 5.5배와 3.6배로 격차가 더 컸다.
2010년대 초중반에는 사정이 달랐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저렴한 금융과 거래배수 상승이 이어졌고, 높은 가격에 진입한 거래도 시장 상승의 영향을 받을 수 있었다. 2010~2017년 가장 싸게 산 그룹과 가장 비싸게 산 그룹의 중위 MOIC 차이가 0.1배에 불과했던 배경이다.
최근에는 시장 상승만으로 진입가격을 덮기가 어려워졌다. 2018~2023년에는 가장 낮은 가격 구간부터 3.4배, 3.2배, 2.8배, 2.7배 순으로 MOIC가 낮아졌다. 매입가격과 수익률 사이의 간격이 이전보다 선명해졌다.
PE 운용사의 경쟁력도 기업을 많이 사는 능력만으로 설명하기 어려워진다. 자금을 확보하고 거래를 성사시키는 것과 적정한 가격을 유지하는 것은 별도의 판단이다. 특히 투자할 자금이 있고 좋은 기업을 둘러싼 경쟁까지 강해질 때는 가격을 높여 거래를 성사시키는 선택이 쉬워진다.
2025년 평균 11.8배, 대형 거래 18.1배까지 올라간 EBITDA 대비 진입배수는 같은 우량기업을 놓고도 운용사가 어디까지 가격을 받아들일 것인지를 더 중요하게 만들었다. 시장에 나오는 B·C급 자산이 줄고 A급 기업에 경쟁이 집중될수록 가격 규율은 투자 대상 선정 뒤에 붙는 조건이 아니라 거래 성사 여부를 결정하는 기준으로 들어간다.
사모펀드에는 투자할 자금을 실제 거래에 투입해야 하는 압력이 있다. 동시에 최근 펀드 성과에서는 높은 가격을 피한 운용사의 MOIC가 더 높게 나타났다. 자금을 모으는 능력과 좋은 기업을 찾아내는 능력에 이어, 비싼 거래 앞에서 처음 정한 가격 기준을 얼마나 지킬 수 있는지가 최근 PE 시장의 운용 성과를 가르는 또 하나의 기준으로 자리 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