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ar of God, 경계를 다시 긋다③] 수트와 스웨트를 한 옷장에…제리 로렌조의 ‘아메리칸 럭셔리’
야구·스포츠웨어에서 테일러링까지…Collection Nine·The Eternal Order에 이어진 넓은 비례와 절제
[KtN 박인경기자]검은 코트와 재킷, 데님, 후디와 스웨트가 Fear of God의 새 캠페인 ‘An Eternal Perspective’ 안에 함께 들어왔다. Collection Nine과 The Eternal Order, ESSENTIALS Signature가 한자리에 놓이면서 제리 로렌조(Jerry Lorenzo)가 오랫동안 말해온 ‘현대적인 미국 럭셔리’도 다시 전면에 섰다. 수트와 캐주얼웨어를 서로 다른 옷장으로 나누지 않고, 같은 비례와 색 안에서 입는 방식이다.
검은 아우터가 목 가까이까지 높게 올라오고 어깨와 몸통에는 여유를 남겼다. 장식이나 큰 로고는 없다. 검정 한 색 안에서도 높게 세운 칼라와 넓은 상체, 옷이 얼굴 주변을 감싸는 형태가 착장을 결정한다. Fear of God이 최근 컬렉션에서 반복해온 절제된 색과 크게 잡은 비례가 한 벌 안에 압축됐다.
Fear of God의 출발점은 전통적인 수트 브랜드와 달랐다. 2010년대 중반 제리 로렌조가 다룬 중심 품목은 티셔츠와 후디, 스웨트팬츠, 데님, 농구와 음악 문화에서 익숙한 캐주얼웨어였다. 2017년 다섯 번째 컬렉션에서도 스포츠웨어와 스트리트웨어, 미국의 전통적인 일상복을 한데 섞고 소재와 봉제, 부자재를 정돈하는 방식이 이어졌다.
변화는 캐주얼웨어를 버리고 수트로 옮겨간 것이 아니었다. 기존 옷장에 테일러링을 더하는 쪽이었다. 2020년 Seventh Collection에서는 테일러링과 니트웨어, 액세서리가 본격적으로 확대됐다. 데님과 저지, 프렌치테리처럼 로스앤젤레스에서 축적한 제작 기반은 유지하면서 고급 테일러링과 새로운 소재를 위해 이탈리아의 생산망까지 넓혔다.
같은 시기 에르메네질도 제냐(Ermenegildo Zegna)와 협업하면서 제리 로렌조가 말한 방향도 분명했다. 수트와 테일러링을 어렵고 경직된 옷으로 두지 않고 후디와 스웨트팬츠처럼 편안하게 입을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스포츠웨어의 편안함과 테일러링의 격식을 어느 한쪽에 맞추지 않고 한 벌 안에서 조정하려는 접근이었다.
Fear of God의 재킷이 몸에 바짝 붙는 전통적인 수트의 비례에서 벗어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어깨와 몸통의 공간을 넓히고, 바지는 허벅지부터 발끝까지 충분한 폭을 둔다. 코트는 길게 떨어지고 재킷 안에는 셔츠 대신 티셔츠와 니트, 후디가 들어간다. 정장을 캐주얼하게 보이게 만드는 데 그치지 않고 캐주얼웨어를 입던 몸의 움직임을 테일러링 안에 남기는 방식이다.
여성 착장에서도 검은 재킷과 팬츠가 몸의 선을 좁게 따라가지 않는다. 어깨는 반듯하게 잡되 허리를 강하게 조이지 않고 하의도 길고 여유 있게 떨어진다. 헤어와 액세서리를 최소화한 구성에서는 재킷의 길이와 상·하의 비례가 먼저 남는다.
Collection Nine은 Fear of God이 여성복까지 같은 방향을 적용한 컬렉션이다. 여성복 첫 전개에서도 별도의 장식적 문법을 앞세우지 않았다. 남성복에서 이어온 미국식 테일러링과 스포츠웨어, 넉넉한 실루엣을 여성복으로 가져왔다. 남녀 컬렉션을 서로 다른 옷장으로 가르기보다 같은 재킷과 코트, 팬츠의 비례 안에서 움직이도록 했다.
남성복 Collection Nine의 출발점에는 야구가 있다. 미국 문화에 깊게 들어온 야구와 숫자 9를 연결하고, 스포츠가 남긴 유니폼과 여유 있는 형태를 테일러링으로 가져왔다. 메인 컬렉션을 설명하는 표현도 ‘미국식 테일러링과 스포츠웨어’다. 유럽의 전통적인 수트 문법을 그대로 따르기보다 미국에서 익숙한 스포츠웨어의 형태를 고급 소재와 재단으로 다시 만드는 방식이다.
야구는 제리 로렌조에게 단순한 디자인 소재에 그치지 않는다. 1990년대 미국에서 농구화와 스웨트팬츠, 팀 재킷과 저지를 입던 문화는 초기 Fear of God에서도 여러 차례 등장했다. Collection Nine에서는 스포츠를 직접적인 그래픽으로 소비하기보다 재킷의 크기와 바지의 폭, 여러 겹을 겹쳐 입는 방식 안으로 옮겼다.
럭셔리를 표현하는 방법도 달라졌다. 눈에 잘 띄는 장식이나 반복되는 모노그램보다 원단과 옷의 크기, 봉제와 안감, 코트가 떨어지는 길이에 비용을 쓴다. 1편에서 살펴본 것처럼 Collection Nine은 ESSENTIALS보다 훨씬 높은 가격대를 유지하면서도 티셔츠와 후디, 데님 같은 일상적인 품목을 계속 다룬다. 가격이 올라갈수록 품목 자체가 격식 있는 옷으로 바뀌는 전통적인 구조와는 차이가 있다.
2025년 멧 갈라에서도 이런 방향이 이어졌다. ‘Superfine: Tailoring Black Style’을 주제로 열린 행사에서 Fear of God은 울 수트와 오버코트, 더블 위브 울, 실크 등을 사용한 맞춤복을 선보였다. 제리 로렌조를 비롯해 참석자들이 입은 옷에서도 길게 내려오는 코트와 넓은 팬츠, 과도한 장식을 걷어낸 수트가 반복됐다.
The Eternal Order에서는 형태가 더 간결해졌다. 2026년 공개된 열 번째 컬렉션에는 긴 오버코트와 유연한 테일러링, 편안한 세퍼레이트가 들어갔고 검정과 갈색, 회색에 네이비가 더해졌다. 미국 스포츠웨어와 밀리터리웨어의 요소도 남아 있다. 옷의 종류를 늘리기보다 지금까지 사용한 요소를 덜어내고 다시 배열하는 쪽에 가깝다.
넓은 재킷 안에는 캐주얼한 상의가 들어가고 하의에도 스포츠웨어에 가까운 요소가 이어진다. 재킷만 따로 보면 테일러링에 가깝지만 한 벌로 묶으면 수트 차림과는 거리가 있다. Fear of God이 수년간 반복해온 조합이 그대로 남는다. 재킷을 입기 위해 후디와 스웨트를 벗는 것이 아니라 같은 착장 안에 놓는다.
이 조합이 ESSENTIALS까지 이어지면서 Fear of God의 미국식 럭셔리는 가격대에 따라 완전히 갈라지지 않는다. 메인 컬렉션에서는 고급 울과 가죽, 정교한 봉제와 테일러링이 들어가고 ESSENTIALS에서는 면 저지와 플리스, 보다 단순한 구조가 사용된다. 소비자가 접하는 실루엣은 서로 가까운 반면 소재와 제작, 가격에서는 차이가 난다.
‘An Eternal Perspective’가 Collection Nine과 The Eternal Order, ESSENTIALS Signature를 함께 세운 것도 같은 구조와 맞닿아 있다. 한쪽에는 수천 달러에 이르는 코트와 재킷이 있고 다른 쪽에는 상대적으로 접근하기 쉬운 티셔츠와 후디가 있지만, 광고 안에서는 어느 한쪽만 Fear of God의 정통성을 독점하지 않는다. 넓은 재킷과 긴 코트, 스웨트와 데님이 모두 같은 브랜드의 옷으로 다뤄진다.
제리 로렌조가 말하는 미국 럭셔리도 결국 특정 품목 하나로 설명되지 않는다. 야구와 농구에서 익숙한 저지와 스웨트, 서부에서 만들어온 데님, 유럽식 테일러링 기술을 한 옷장 안에서 쓰는 방식에 가깝다. 스포츠웨어를 고급스럽게 꾸미는 데서 멈추지 않고 테일러링 자체를 미국의 일상복처럼 편하게 입도록 비례를 바꿨다.
Collection Nine 남성복은 야구를 전면에 놓았고, 여성복은 같은 테일러링과 스포츠웨어의 비례를 처음으로 여성 옷장까지 넓혔다. The Eternal Order에서는 남녀와 계절, 착용 상황의 구분을 더 줄였다. 2010년대 후디와 스웨트에서 출발한 Fear of God이 수트와 코트까지 범위를 넓혔지만 처음부터 사용했던 여유 있는 착용감은 사라지지 않았다.
‘An Eternal Perspective’는 세 상품군을 한 캠페인에 묶으면서 10여 년에 걸쳐 쌓인 변화까지 한꺼번에 보여준다. 티셔츠와 후디에서 시작한 브랜드가 테일러링과 여성복, 고급 소재로 영역을 넓혔고, 그 과정에서도 스포츠웨어를 입던 몸의 비례를 수트 안에 남겼다. The Eternal Order는 겨울 2026 전개를 이어간다. Collection Nine과 ESSENTIALS Signature까지 한자리에 배치한 현재 캠페인에서 Fear of God이 내세운 미국식 럭셔리는 수트와 스웨트 가운데 하나를 고르는 방식보다 두 옷을 같은 옷장에 두는 쪽에 가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