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아메리칸 럭셔리’라는 역설…Fear of God이 바꾼 사치의 문법

귀족의 역사 대신 대중복의 역사 가진 미국…후디·데님·스웨트를 고급복의 자리로 끌어올린 제리 로렌조

2026-09-05     박인경 기자
Fear of God, 경계를 다시 긋다. 사진=Fear of God,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KtN 박인경기자]럭셔리의 역사는 오랫동안 유럽의 역사와 겹쳐 있었다. 파리의 오트쿠튀르, 런던 새빌 로의 테일러링, 이탈리아의 가죽과 직물 공방에는 왕실과 귀족, 부유한 시민 계층이 수백 년에 걸쳐 쌓은 소비문화가 있었다. 비싼 옷은 좋은 소재와 정교한 기술만으로 완성되지 않았다. 누가 입어왔는지, 어느 도시에서 만들어졌는지, 얼마나 오래 같은 방식을 지켜왔는지까지 값의 일부가 됐다.

미국 패션의 출발점은 달랐다. 청바지와 티셔츠, 스웨트셔츠와 후디, 운동화와 야구 점퍼가 미국이 세계에 퍼뜨린 대표적인 옷이었다. 왕실의 예복보다 노동자의 작업복, 살롱보다 경기장, 귀족의 옷장보다 대학과 거리에서 더 많은 디자인이 나왔다. 옷을 소수에게 귀하게 공급하기보다 많이 만들고 널리 입히는 능력이 미국 산업의 경쟁력이었다.

그런 미국에서 이제 ‘American luxury’라는 말이 자연스럽게 등장한다. 제리 로렌조(Jerry Lorenzo)가 이끄는 Fear of God은 최근 캠페인 ‘An Eternal Perspective’를 통해 Collection Nine, The Eternal Order, ESSENTIALS Signature를 하나의 흐름으로 묶었다. 코트와 재킷, 후디와 데님, 스웨트와 넓은 팬츠가 같은 비례와 낮은 채도의 색 안에 놓인다. 브랜드가 내세우는 표현도 ‘modern American luxury’다.

흥미로운 대목은 미국이 유럽의 오래된 럭셔리 문법을 그대로 따라가지 않는다는 데 있다. 제리 로렌조는 후디와 스웨트팬츠를 버리고 수트로 이동하지 않았다. 후디 위에 재킷을 입히고, 데님 옆에 울 코트를 세운다. 셔츠와 넥타이가 들어가던 자리에 티셔츠와 니트가 들어가고, 몸을 단단하게 잡던 재킷은 어깨와 몸통에 여유를 남긴다.

테일러링을 받아들였지만 몸가짐까지 유럽식 격식에 맞추지는 않았다. 오히려 스포츠웨어를 입던 몸의 편안함을 수트 안으로 가져왔다. 재킷은 커졌고 팬츠는 넓어졌으며 코트는 길어졌다. 차려입었다는 사실을 과시하기보다 비싼 옷을 아무렇지 않게 입는 쪽으로 무게가 옮겨갔다.

Fear of God의 ‘아메리칸 럭셔리’가 성립하는 자리도 여기다. 미국에는 유럽과 같은 귀족 복식의 계보가 없었지만 다른 자산이 있었다. 데님과 스포츠웨어, 할리우드와 힙합, 농구와 야구, 대학 문화와 거리의 옷을 세계인의 일상으로 만든 경험이다. 오래된 신분의 권위를 물려받지는 못했지만 어떤 옷이 현대인의 일상이 될지를 결정하는 문화적 영향력은 막강했다.

Collection Nine에서 야구를 가져온 것도 우연한 선택으로 보기 어렵다. 야구는 상류층의 전유물이 아니라 미국의 가족과 학교, 지역사회와 프로스포츠를 잇는 대중문화다. 후디와 스웨트, 팀 재킷 역시 같은 계보에 있다. 제리 로렌조는 미국의 일상복을 럭셔리와 대립하는 옷으로 남겨두지 않고 고급 소재와 테일러링, 높은 가격을 통해 다른 위치로 옮겼다.

그 과정에서 상당히 미국적인 모순이 생긴다. 미국이 세계에 보급한 옷의 강점은 누구나 입을 수 있다는 데 있었는데, 럭셔리 시장에 들어온 뒤에는 누구나 쉽게 살 수 없는 가격을 갖는다. 노동복에서 출발한 데님, 체육복과 일상복에서 성장한 스웨트, 가장 평범했던 티셔츠가 다시 희소성과 가격의 언어를 얻는다.

대중복의 민주성이 자본에 의해 다시 계층화되는 셈이다.

Fear of God의 상품 구조에서는 이런 모순이 더 선명하다. ESSENTIALS와 메인 컬렉션 사이에는 큰 가격 차이가 있지만 외형은 완전히 분리되지 않는다. 넓은 어깨와 여유 있는 바지, 절제된 색과 레이어링은 양쪽에서 이어진다. 소비자는 상대적으로 낮은 가격에서도 Fear of God의 실루엣에 접근할 수 있고, 더 높은 가격대로 올라가면 소재와 제작, 가공과 테일러링의 차이를 구매한다.

상품의 종류로 서열을 나누던 방식과는 다르다. 비싼 옷이라고 반드시 수트가 되고, 낮은 가격의 옷이라고 반드시 로고 티셔츠가 되는 구조가 아니다. 티셔츠와 후디도 메인 컬렉션에 들어가고, 재킷과 팬츠도 일상복의 비례를 유지한다. 옷의 종류가 아니라 무엇으로 어떻게 만들었는지가 가격을 가르는 쪽으로 옮겨간다.

그만큼 높은 가격을 설명하는 부담도 커진다. ESSENTIALS와 메인 컬렉션이 비슷한 실루엣을 공유한다면 수백 달러의 차이는 원단과 봉제, 가공, 재단에서 실질적으로 드러나야 한다. 큰 로고와 화려한 장식이 가격을 대신 설명해주지 않기 때문이다. 절제된 디자인을 선택할수록 옷 자체의 완성도가 더 엄격하게 평가받는다.

럭셔리의 과시 방식도 달라진다. 예전에는 금실과 보석, 문장과 모노그램이 신분을 알렸다. Fear of God에서는 브랜드를 아는 사람이 넓은 어깨와 긴 상의, 바닥 가까이 떨어지는 팬츠의 비례를 알아본다. 과시는 사라지지 않았다. 누구나 읽을 수 있었던 표식이 일부 소비자만 읽을 수 있는 형태와 소재로 이동했을 뿐이다.

‘An Eternal Perspective’가 Collection Nine과 The Eternal Order, ESSENTIALS Signature를 한꺼번에 배치한 것도 같은 맥락에서 볼 수 있다. 가격과 출시 시점은 달라도 옷의 인상은 끊기지 않는다. 긴 아우터와 넓은 팬츠, 데님과 스웨트가 한 옷장에 들어가고 새로운 컬렉션이 이전 컬렉션을 완전히 밀어내지 않는다.

유럽 럭셔리가 오랜 시간 축적한 것은 계보였다. 미국이 축적한 것은 대중성이다. 한쪽에서는 왕실과 장인의 전통이 가격을 만들었고, 다른 쪽에서는 거리와 음악, 스포츠와 영화가 취향을 만들었다. Fear of God은 후자를 고급복의 근거로 삼는다.

바로 그 지점에서 ‘American luxury’라는 표현은 묘한 긴장을 품는다. 유럽의 역사적 문맥에서 보면 어딘가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지만, 현대 소비문화의 문맥에서는 오히려 미국보다 잘할 수 있는 곳이 많지 않은 조합이기도 하다. 대중적인 것을 욕망의 대상으로 바꾸고, 평범한 물건에 새로운 가격과 의미를 붙이는 일은 미국 소비문화가 오랫동안 해온 일이기 때문이다.

제리 로렌조가 새로 발명한 것은 후디도, 데님도, 수트도 아니다. 이미 존재하던 옷 사이의 서열을 다시 배치했다. 수트가 후디보다 위에 있고, 테일러링이 스포츠웨어보다 고급이며, 일상복은 럭셔리의 반대편에 있다는 오래된 구분을 약하게 만들었다.

다만 서열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옷의 종류로 나누던 서열이 소재와 제작, 브랜드와 가격으로 이동했다. 누구나 입을 수 있었던 옷의 형태를 유지하면서도 일부만 살 수 있는 상품을 만드는 것. Fear of God의 ‘아메리칸 럭셔리’가 안고 있는 가장 미국적인 모순이다.

유럽이 럭셔리를 위에서 아래로 퍼뜨렸다면 미국은 아래에 있던 옷을 위로 끌어올렸다. 노동자의 데님, 운동선수의 스웨트, 학생의 후디가 고급 패션의 중심으로 이동했다. Fear of God은 그 긴 이동의 현재를 보여준다.

미국에 유럽과 같은 럭셔리의 역사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오히려 없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물려받을 전통이 많지 않았기에 무엇을 고급이라고 부를지도 새로 정할 수 있었다. Fear of God은 귀족의 옷장을 흉내 내기보다 미국인의 일상복에서 출발해 그 기준을 다시 세우고 있다.

왕실도 오트쿠튀르의 긴 계보도 없는 나라에서 후디와 데님이 수천 달러짜리 코트와 나란히 놓였다. ‘아메리칸 럭셔리’라는 다소 낯선 조합이 흥미로운 이유는 이름의 그럴듯함보다, 원래 럭셔리와 가장 멀리 있던 미국의 옷들이 이제 럭셔리의 정의 자체를 바꾸고 있다는 데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