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수, 기억을 팔다②] 새 향 없이 다시 팔린 ‘Lazy Sunday Morning’…메종 마르지엘라가 한정판을 만드는 법

기존 향수에 ‘PRINT SHOP’ 입혀 홀리데이 상품으로…향보다 병과 패키지가 새 구매 이유로

2026-09-06     박채빈 기자

[KtN 박채빈기자]메종 마르지엘라(Maison Margiela)의 2026년 REPLICA 홀리데이 컬렉션 두 번째 구성에서 가장 앞에 선 ‘Lazy Sunday Morning’과 ‘Jazz Club’은 새로 만든 향수가 아니다. 이미 REPLICA를 대표해온 두 향을 100ml 용량으로 다시 가져왔다. 달라진 부분은 향을 둘러싼 외형이다. 병과 패키지에 신문 인쇄물을 연상시키는 ‘PRINT SHOP’ 디자인을 입혀 한정판으로 내놓았다.

신제품 경쟁이 치열한 향수 시장에서 반드시 새로운 향을 만들어야만 새로운 상품이 되는 것은 아니다. 이미 소비자가 알고 있는 향에 계절과 한정판이라는 시간을 붙이고 병의 외형을 바꾸면 같은 향도 다시 매대의 앞자리로 돌아올 수 있다. 이번 REPLICA 홀리데이 컬렉션은 바로 그 지점을 보여준다.

[향수, 기억을 팔다②] 새 향 없이 다시 팔린 ‘Lazy Sunday Morning’…메종 마르지엘라가 한정판을 만드는 법. 사진=Maison Margiela,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Jazz Club’의 병과 상자는 REPLICA 특유의 약병을 연상시키는 형태와 라벨을 유지하면서 바깥에 신문 활자와 인쇄물을 겹쳤다. 기존 제품의 얼굴을 지우지 않고 그 위에 한 시즌만의 외형을 얹은 구성이다. 소비자가 한눈에 REPLICA라는 사실을 알아보면서도 일반 제품과는 구별할 수 있도록 했다.

패션에서는 익숙한 방식이다. 같은 가방에 새로운 색을 입히거나 기존 신발에 시즌 소재를 더하고, 대표 제품을 한정 패키지로 다시 내놓는다. 향수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진다. 병 속 향은 이미 시장에서 평가받았지만, 병 밖의 디자인은 다시 바뀔 수 있다. 새 향을 만드는 일과 기존 향을 다시 팔 이유를 만드는 일이 별개의 작업이 된 것이다.

‘Lazy Sunday Morning’과 ‘Jazz Club’은 이런 전략에 적합한 제품이다. 하나는 깨끗한 리넨과 플로렌스의 일요일 아침, 다른 하나는 뉴욕의 재즈클럽과 술, 늦은 밤이라는 분명한 이미지를 이미 갖고 있다. 1편에서 살펴본 것처럼 두 제품은 향조뿐 아니라 이름과 장소, 시간까지 하나의 기억으로 묶여 있다. 새 홀리데이 디자인은 이미 완성된 기억을 버리지 않고 다른 외형으로 다시 꺼내는 방식이다.

새 향을 소개할 때는 소비자가 제품의 이름과 향조, 사용감까지 처음부터 익혀야 한다. 기존 인기 향을 다시 내놓을 때는 출발점이 다르다. ‘Lazy Sunday Morning’을 써본 사람은 이미 향을 알고 있고, ‘Jazz Club’을 아는 소비자는 이름만으로도 제품을 구별한다. 한정판은 향 자체를 설명하는 비용보다 기존의 인지도를 활용할 수 있다.

소비자에게는 다른 계산이 생긴다. 처음 구매하는 사람이라면 일반 제품과 한정판 가운데 하나를 고르면 된다. 이미 같은 향을 갖고 있는 사람에게는 문제가 달라진다. 병 속 향을 알고 있음에도 새로운 병을 하나 더 살 이유가 필요한데, 한정판의 디자인과 소장성이 그 자리를 차지한다.

향수 한 병의 가치가 내용물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는 사실도 여기서 드러난다. 향수는 피부에 뿌리는 액체인 동시에 화장대와 선반 위에 오래 남아 있는 물건이다. 병의 형태와 라벨, 상자까지 구매 경험에 포함된다. 특히 향 자체가 달라지지 않는 한정판에서는 디자인의 비중이 더 커진다.

메종 마르지엘라는 REPLICA의 기존 병을 완전히 바꾸지 않았다. 흰 라벨과 투명한 병, 약병처럼 단순한 실루엣은 남겨두고 신문 인쇄물의 이미지를 주변에 더했다. 브랜드를 알아보게 하는 요소와 한정판을 구별하게 하는 요소를 동시에 유지한 셈이다.

이 방식은 수집의 욕망과도 연결된다. 향수는 본래 소모품이다. 뿌릴수록 줄고 언젠가는 빈 병이 된다. 한정판은 소모되는 제품에 소장품의 성격을 덧붙인다. 같은 향이더라도 일반 병과 다른 외형을 갖는 순간 사용 가치와 별도로 ‘지금만 있는 버전’이라는 가치가 생긴다.

[향수, 기억을 팔다②] 새 향 없이 다시 팔린 ‘Lazy Sunday Morning’…메종 마르지엘라가 한정판을 만드는 법. 사진=Maison Margiela,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Lazy Sunday Morning’ 역시 익숙한 제품 이름을 유지한 채 홀리데이용 외형을 더했다. 소비자가 새롭게 접하는 것은 향의 정체성보다 패키지의 변화다. 이미 알려진 제품을 한 시즌의 상품으로 다시 보이게 만드는 역할을 디자인이 맡는다.

한정판이라는 말은 원래 공급의 제한을 뜻하지만 패션과 뷰티 산업에서는 시간의 제한도 함께 작동한다. 특정 계절과 행사에 맞춰 잠시 등장했다가 사라지는 방식이다. 같은 제품이 계속 판매되더라도 한정 디자인은 구매를 미룰 수 있는 시간을 줄인다. 언제든 살 수 있는 향수와 지금의 외형으로만 살 수 있는 향수 사이에는 소비자가 느끼는 긴박함이 다르다.

홀리데이 시즌과 향수가 잘 맞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자신이 사용할 향수를 살 때는 향 자체가 가장 중요하지만 선물에서는 병과 상자, 포장의 인상이 함께 평가된다. 이미 알려진 향을 사용하면 실패 가능성을 낮출 수 있고, 평소와 다른 패키지는 선물의 특별함을 더한다. 새 향을 개발하지 않고도 선물 시장에 맞는 새 상품을 만들 수 있는 구조다.

REPLICA의 이번 디자인에서 신문 인쇄물을 가져온 선택도 단순한 장식에 머물지 않는다. REPLICA는 특정 장소와 시간을 라벨에 기록하는 방식을 오래 사용해왔다. 신문 역시 지나간 시간을 기록하고 보존하는 매체다. 기억을 향으로 재구성해온 제품에 기록물의 외형을 덧붙이면서 기존의 브랜드 언어를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한정판의 성패는 결국 두 가지 사이에서 갈린다. 기존 제품과 너무 비슷하면 다시 구매할 이유가 약해지고, 반대로 지나치게 바뀌면 소비자가 좋아했던 제품의 정체성이 흐려질 수 있다. REPLICA는 병의 기본 구조와 이름은 남기고 패키지의 표면만 크게 바꾸는 쪽을 택했다. 익숙함을 버리지 않으면서 새로움을 만들 수 있는 가장 안전한 범위다.

이런 방식에는 산업적인 효율도 있다. 새로운 향수 하나를 시장에 안착시키려면 조향뿐 아니라 이름과 콘셉트, 광고와 소비자 인지까지 처음부터 쌓아야 한다. 기존 베스트셀러는 이미 그 과정의 상당 부분을 통과했다. 한정판 패키지는 검증된 제품을 다시 판매의 중심으로 불러올 수 있다.

반대로 소비자 입장에서는 ‘새로움’의 기준을 따져볼 필요가 있다. 새 병과 새 상자가 곧 새로운 향수 경험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같은 향을 이미 가지고 있다면 한정판을 구매하는 이유는 향보다 디자인과 소장성에 가까워진다. 향수를 쓰기 위해 사는 소비와 물건을 보유하기 위해 사는 소비가 갈리는 지점이다.

메종 마르지엘라가 이번 홀리데이 구성에서 보여준 것은 신제품을 만드는 또 다른 방식이다. 새로운 향조를 추가하지 않아도 이미 성공한 향의 외형을 바꾸고 특정 시즌의 의미를 붙이면 다시 하나의 상품이 된다. 향수 산업에서 ‘새 제품’이라는 말이 반드시 병 속에서 시작하지 않는다는 뜻이기도 하다.

‘Lazy Sunday Morning’과 ‘Jazz Club’이 이번에 다시 돌아온 이유를 향의 새로움에서 찾기는 어렵다. 오히려 새로워진 것은 소비자가 두 향을 바라보는 방식이다. 기억을 담은 기존 향수에 한 시즌의 외형을 덧씌우고, 이미 알고 있는 제품을 다시 갖고 싶게 만든다.

REPLICA의 한정판은 같은 기억을 다시 파는 대신 그 기억의 표지를 바꾼다. 병 속의 플로렌스와 뉴욕은 그대로 남고, 병 밖에는 2026년 홀리데이라는 새로운 시간이 더해진다. 향수의 수명이 내용물에서 끝나지 않고 패키지와 소장 욕망까지 넓어지는 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