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esel FW26①] 카드보드 모델이 세계로, 현지 사진가가 다시 만든 ‘Multiplicities’

런던·상하이·카이로·리우·뉴델리로 실물 크기 컷아웃 배송…모델과 스타일링은 스튜디오에서 고정하고 도시의 공간은 현지 촬영으로 완성

2026-09-05     임민정 기자

[KtN 임민정기자]디젤(Diesel)의 2026 가을·겨울(FW26) 캠페인 ‘Multiplicities’에서는 모델보다 모델의 이미지가 먼저 세계를 이동했다. 스튜디오에서 촬영한 인물을 실물 크기의 카드보드 컷아웃으로 제작해 런던과 상하이, 카이로, 리우데자네이루, 뉴델리로 보냈고, 각 도시의 사진가들은 컷아웃을 거리와 해변, 상업 공간에 다시 배치해 촬영했다.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글렌 마틴스(Glenn Martens)와 아트 디렉터 크리스토퍼 시몬즈(Christopher Simmonds)가 구성한 캠페인은 한 번 완성한 패션 사진의 배경만 여러 나라로 바꾸는 방식과 다르다. 모델의 얼굴과 포즈, 의상은 스튜디오 촬영에서 먼저 고정된다. 이후 평면으로 제작된 인물이 실제 도시로 이동하고, 현지 사진가가 주변 공간과 사람, 카메라의 거리와 위치를 새롭게 구성한다.

모델을 현지로 보내지 않았다는 선택은 촬영 과정 자체를 두 단계로 갈라놓았다. 스튜디오에서는 인물과 제품을 완성하고, 현지에서는 도시와 인물을 결합한다. 글로벌 브랜드가 유지해야 할 제품의 시각적 통일성과 도시마다 달라지는 생활환경을 한 이미지 안에 함께 넣은 구조다.

Diesel Ships Life-Sized Cardboard Cutouts Worldwide for FW26 “Multiplicities” Campaign. 사진=Diesel,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시장과 상업 공간 사이에 놓인 컷아웃들은 주변 사람들과 쉽게 섞이지 않는다. 인물의 가장자리에는 붉은 윤곽이 남고, 자세와 표정도 실제 거리의 움직임과 무관하게 고정돼 있다. 바닥에 앉은 인물부터 서 있는 인물까지 서로 다른 포즈가 한 공간에 들어가지만 몸의 방향은 현장에서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반면 카드보드 바깥은 계속 달라진다. 행인은 움직이고 상점과 간판, 도로와 건물이 사진의 깊이를 만든다. 실제 사람은 컷아웃 뒤를 지나가거나 옆에 서고, 스튜디오에서 만들어진 패션 인물은 도시의 일상 안에 낯선 물체처럼 남는다.

일반적인 로케이션 촬영에서는 사진가가 모델의 시선과 몸의 방향을 바꾸고 현장의 빛과 공간에 맞춰 자세를 조정할 수 있다. ‘Multiplicities’에서는 이런 선택이 제한된다. 모델은 이미 완성됐기 때문이다. 현지 사진가가 다룰 수 있는 부분은 인물의 표정보다 컷아웃의 위치, 실제 사람과의 거리, 배경에 들어갈 건물과 도로, 카메라가 공간을 잘라내는 방식에 가깝다.

사진가의 역할도 이에 따라 달라진다. 모델을 연출하는 것보다 이미 완성된 인물을 어느 장소에 세워 도시와 어떤 관계를 만들지 결정하는 비중이 커진다. 같은 카드보드라도 상점 앞에 세우는지, 사람들이 밀집한 곳에 놓는지, 비어 있는 공간을 선택하는지에 따라 최종 사진은 전혀 달라진다.

지역성이 관광 명소 한 곳을 보여주는 데서 끝나지 않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거리의 밀도와 간판, 행인의 옷차림과 이동 방식처럼 브랜드가 완전히 통제하기 어려운 요소들이 최종 이미지에 들어오면서 도시마다 사진의 성격이 달라진다.

디젤은 도시별로 FW26 제품도 나눠 배치했다. 런던에서는 D-ONE 백과 D-COCCO 스틸레토 샌들, 상하이에서는 3-D Denim과 Bicolor Leather, 카이로에서는 Wrinkled Boiled Knitwear, 리우데자네이루에서는 Concert Print T와 Stinger Watch, 뉴델리에서는 Cut Out Floral Knits와 트롱프뢰유(trompe l’oeil) 케이블 니트 데님이 등장한다.

제품과 도시를 나눈 방식은 한 시즌을 하나의 대표 이미지에 압축하지 않는다. 같은 캠페인 안에서 여러 제품군이 서로 다른 도시를 만나고, 현지 촬영이 각각 별도의 최종 이미지를 만든다. 다만 특정 제품을 특정 도시에 배치한 이유가 각 지역 문화와 직접 연결됐다는 설명은 공개되지 않았다. 제품과 도시의 관계를 상징적으로 확대하기보다 동일한 FW26 컬렉션이 서로 다른 공간에서 어떤 인상으로 바뀌는지를 보는 편이 자연스럽다.

Diesel Ships Life-Sized Cardboard Cutouts Worldwide for FW26 “Multiplicities” Campaign. 사진=Diesel,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여러 컷아웃과 실제 사람들이 뒤섞인 사진에서는 중앙 제작과 현지 촬영의 경계가 더욱 또렷하다. 패션 인물들은 모두 붉은 선으로 둘러싸여 있고 각자의 자세를 유지한다. 주변의 군중은 다른 방향으로 움직인다. 한쪽에는 서 있는 인물이, 앞쪽에는 바닥에 몸을 낮춘 인물이 놓이면서 서로 다른 스튜디오 포즈가 한 장소에서 다시 배열된다.

실제 모델 여러 명을 같은 공간에 세웠다면 각자의 동선과 시선, 몸의 방향을 현장에서 다시 조정해야 한다. 컷아웃은 그 과정을 생략한다. 이미 완성된 서로 다른 인물을 가져와 한 장소에 동시에 배치할 수 있다. 촬영은 사람을 움직이는 작업보다 공간 안에서 이미지의 위치를 정하는 작업에 가까워진다.

글로벌 캠페인의 제작 동선도 달라진다. 모델과 스타일링을 도시마다 다시 촬영하지 않고 스튜디오에서 한 번 고정한 뒤 실물 크기의 이미지를 각 지역으로 보낸다. 현지에서는 새로운 인물 촬영보다 도시와 카드보드를 결합하는 과정이 이어진다.

이 방식이 실제 제작비를 얼마나 낮췄는지, 모델과 대규모 촬영팀이 이동하는 방식보다 물류 부담을 얼마나 줄였는지는 공개되지 않았다. 컷아웃의 제작 수량과 배송 방식, 각 지역의 촬영 인원까지 확인돼야 비교할 수 있다. 비용 절감보다 먼저 읽히는 변화는 제작 인력과 장소를 한 곳에 모으지 않고 촬영 과정을 분리했다는 점이다.

현지 사진가의 참여 범위도 따로 볼 필요가 있다. 모델과 의상, 포즈가 이미 정해진 상태에서 촬영이 시작되는 만큼 현지 사진가가 모든 비주얼을 처음부터 만드는 구조는 아니다. 반대로 완성된 이미지를 전달받아 단순히 동일한 구도로 촬영하는 방식도 아니다. 실제 도시를 선택하고 컷아웃과 주변 환경의 관계를 새로 만드는 과정이 최종 사진에 남는다.

장소 선정권과 컷아웃 배치에 어느 정도의 자율성이 주어졌는지, 최종 이미지 선택과 리터칭에는 누가 참여했는지, 현지 사진가와 최초 스튜디오 촬영자의 저작권과 글로벌 사용권이 어떻게 나뉘었는지는 공개되지 않았다. 현지 사진가가 참여했다는 사실과 캠페인의 최종 결정권까지 지역으로 이동했다는 의미는 구분할 필요가 있다.

Diesel Ships Life-Sized Cardboard Cutouts Worldwide for FW26 “Multiplicities” Campaign. 사진=Diesel,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도심의 밤과 상업 공간을 배경으로 여러 인물을 배치한 사진에서는 하나의 캠페인을 여러 지역에서 완성하는 방식이 압축돼 나타난다. 앞쪽에 앉은 인물과 뒤쪽에 선 인물, 서로 다른 의상이 같은 장소에 모이고 실제 건물과 간판이 그 뒤를 채운다.

모델은 같은 제작 시스템에서 출발했지만 사진을 둘러싼 현실은 도시마다 달라진다. 스튜디오 촬영에서 확보한 제품의 색과 형태는 일정하게 유지되고, 현지 촬영은 도시의 구조와 빛, 주변 환경을 바꾼다. 글로벌 제품의 통일성을 유지하면서 각 시장에 서로 다른 이미지를 공급할 수 있는 방식이다.

FW26의 대표 액세서리로 제시된 D-ONE 백도 이런 구조 안에 놓인다. 부드럽게 처지는 가죽 형태와 버클 스트랩을 갖췄으며, 낡은 벨트가 데님 루프 사이로 미끄러지는 모습에서 착안한 디자인이다. 트리티드 레더와 패치워크 버전으로 전개된다. 제품의 디자인은 동일하지만 어느 도시와 어떤 인물 옆에 놓이느냐에 따라 최종 광고의 인상은 달라진다.

‘Multiplicities’라는 이름도 이런 제작 과정과 맞닿아 있다. 하나의 원본 이미지가 세계로 배포돼 그대로 반복되는 것이 아니라 실물 크기의 물체가 된 뒤 여러 장소에서 다시 촬영된다. 최초의 패션 사진은 카드보드가 되고, 카드보드는 다시 현지 사진의 피사체가 된다. 하나의 이미지가 제작과 이동, 재촬영을 거치면서 여러 개의 최종 이미지로 갈라지는 구조다.

글렌 마틴스와 크리스토퍼 시몬즈는 모델과 제품을 하나의 축으로 고정하고, 도시와 촬영자의 위치를 바꾸는 방식을 택했다. 모든 시장에 완전히 동일한 사진을 보내는 방식과 각 지역에서 전혀 다른 캠페인을 제작하는 방식 사이에 새로운 제작 단계를 만든 셈이다.

런던과 상하이, 카이로, 리우데자네이루, 뉴델리가 광고 배경으로 등장했다는 사실만으로 현지화의 깊이를 판단하기는 어렵다. 현지 사진가에게 실제로 주어진 제작 권한과 최종 편집 과정, 크레디트와 사용권까지 확인돼야 글로벌 브랜드와 지역 창작자의 관계를 더 구체적으로 읽을 수 있다.

디젤 FW26 ‘Multiplicities’에서 먼저 달라진 것은 도시의 수보다 이미지가 세계를 이동하는 순서다. 모델이 여러 도시를 돌지 않고 스튜디오에서 완성된 인물이 카드보드가 되어 이동했다. 현지 사진가는 고정된 패션 이미지 주변에 각 도시의 공간과 사람을 다시 배치했다. 같은 제품을 세계에 판매하는 글로벌 브랜드가 같은 광고 한 장을 반복하는 대신 제작의 마지막 단계를 지역으로 나눈 방식이 FW26 캠페인의 구조를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