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esel FW26③] 모델 대신 컷아웃이 이동했다, 글로벌 캠페인의 제작 동선
런던·상하이·카이로·리우·뉴델리로 실물 크기 모델 이미지 배송…스튜디오에서 완성한 패션 비주얼을 현지 공간에서 다시 촬영한 ‘Multiplicities’
[KtN 임민정기자]디젤(Diesel)의 2026 가을·겨울(FW26) 캠페인 ‘Multiplicities’는 국제 패션 촬영에서 이동하는 대상을 바꿨다. 모델이 런던과 상하이, 카이로, 리우데자네이루, 뉴델리를 순회하는 대신 스튜디오에서 먼저 촬영한 모델 이미지를 실물 크기의 카드보드 컷아웃으로 제작해 각 도시로 보냈다. 현지 사진가들은 컷아웃을 거리와 해변, 도심 공간에 배치한 뒤 새로운 이미지를 완성했다.
모델과 의상, 포즈를 결정하는 촬영과 도시를 담는 촬영이 서로 다른 장소와 시간에 진행된 셈이다. 스튜디오에서는 FW26 제품과 모델의 스타일링을 고정하고, 현지에서는 이미 완성된 인물을 실제 공간과 결합했다. 하나의 캠페인을 한 장소에서 끝내지 않고 첫 촬영과 현지 촬영으로 나눈 제작 방식이다.
사람의 이동을 줄인 자리에는 이미지의 물리적인 이동이 들어왔다. 디지털 파일만 전송한 것이 아니라 사람 크기의 출력물을 제작해 실제 도시로 보냈다는 점에서 ‘Multiplicities’의 제작 동선은 일반적인 디지털 합성과도 다르다. 모델의 사진은 출력과 재단을 거쳐 물체가 됐고, 다시 카메라 앞에 서면서 새로운 사진의 일부가 됐다.
실제 야외 공간에는 서로 다른 자세와 의상을 가진 여러 카드보드 인물이 함께 배치됐다. 서 있는 인물과 몸을 낮춘 인물이 한 장소에 모였지만 각각의 자세는 현장에서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스튜디오 촬영에서 완성된 인물들이 실물 크기의 평면 이미지로 바뀌어 다시 한 공간에 들어왔다.
실제 모델 여러 명을 현지에 모아 촬영하는 방식이라면 의상과 헤어·메이크업, 모델의 동선과 촬영 시간까지 현장에서 다시 맞춰야 한다. ‘Multiplicities’는 모델의 상태를 스튜디오에서 먼저 고정했다. 각 지역에서는 인물을 다시 연출하기보다 컷아웃의 위치와 간격, 거리의 구조와 주변 사람을 어떻게 결합할지가 촬영의 중심에 놓였다.
런던에서는 D-ONE 백과 D-COCCO 스틸레토 샌들이 피카딜리 서커스에 등장하고, 상하이에서는 3-D Denim과 Bicolor Leather가 배치됐다. 카이로에는 Wrinkled Boiled Knitwear, 리우데자네이루에는 Concert Print T와 Stinger Watch, 뉴델리에는 Cut Out Floral Knits와 트롱프뢰유(trompe l’oeil) 케이블 니트 데님이 들어갔다.
한 시즌의 주요 제품을 한 장소에서 모두 촬영하지 않고 도시별로 나눈 구성이다. 모델과 제품의 기본 이미지는 스튜디오에서 통일하면서도 최종 비주얼은 각 지역에서 달라졌다. 글로벌 캠페인의 시각적 기준을 유지하면서 런던과 상하이, 카이로, 리우데자네이루, 뉴델리의 공간을 각각 별도의 결과물에 포함시킨 방식이다.
카드보드 컷아웃은 이런 제작 분리를 가능하게 한 도구다. 모델을 여러 국가에서 다시 촬영하지 않아도 스튜디오에서 확보한 포즈와 제품의 형태를 그대로 유지할 수 있다. 현지의 날씨나 빛, 모델의 움직임에 따라 제품이 다르게 보이는 변수도 줄어든다. 반대로 도시의 거리와 사람, 건물과 이동수단은 실제 촬영을 통해 지역마다 다르게 남는다.
글로벌 브랜드가 여러 시장에서 같은 제품을 알릴 때 필요한 통일성과 지역별 차이를 제작 단계에서 나눠 처리한 셈이다.
카드보드가 실제 물체라는 사실은 제작 과정에도 별도의 단계를 만든다. 실물 크기의 인물을 제작해 여러 도시로 보내려면 출력과 재단, 포장과 운송이 뒤따른다. 현지에서는 촬영 장소까지 다시 이동시키고 여러 컷아웃을 설치해야 한다.
디젤이 FW26 캠페인을 위해 제작한 컷아웃의 정확한 수량과 세부 소재, 도시별 운송 방식은 공개되지 않았다. 촬영이 끝난 뒤 컷아웃을 회수했는지, 다른 촬영이나 매장 비주얼에 다시 활용했는지도 공개 전이다.
때문에 이번 방식을 기존의 해외 로케이션 촬영보다 비용이 적거나 환경 부담이 낮은 제작법으로 규정하기는 어렵다. 모델의 국제 이동을 줄였더라도 실물 출력물의 제작과 운송이 새로 발생한다. 모델과 촬영 스태프를 움직이는 방식과 카드보드를 제작해 지역별 촬영을 진행하는 방식의 실제 차이는 이동 인원, 출력물 수량, 운송 경로와 현지 제작 규모까지 확인해야 비교할 수 있다.
환경성을 앞세운 캠페인이라는 설명도 제시되지 않았다. ‘Multiplicities’에서 확인할 수 있는 변화는 친환경 여부보다 글로벌 촬영의 순서와 이동 대상이 달라졌다는 사실이다.
D-COCCO 스틸레토 샌들을 신은 다리는 실제 거리의 바닥과 주변 사람 사이에 놓였다. 붉은 외곽선으로 분리된 인물은 스튜디오 촬영에서 완성된 상태를 그대로 유지하고, 도로와 주변 사람은 현지 촬영의 현실을 채운다.
신발의 각도와 다리의 자세는 도시에서 새로 결정되지 않았다. 제품은 이미 정해진 모습으로 현지에 도착했다. 주변 공간만 바뀌면서 같은 패션 이미지가 새로운 장소에 들어간다.
제품의 형태를 일정하게 유지한다는 점은 글로벌 캠페인 운영에서도 눈여겨볼 부분이다. 실제 모델을 도시마다 촬영하면 빛과 날씨, 촬영 시간, 자세에 따라 의상의 색과 표면, 가방과 신발의 각도가 달라질 수 있다. 카드보드에서는 최초 촬영에서 완성한 제품 이미지가 계속 유지된다.
도시별 사진은 달라져도 제품을 보여주는 기준은 크게 변하지 않는다.
FW26의 주요 액세서리로 제시된 D-ONE 백 역시 같은 구조 안에서 움직인다. D-ONE은 부드럽게 처지는 가죽 실루엣과 버클 스트랩을 갖췄으며, 낡은 벨트가 데님 루프 사이로 미끄러지는 형태에서 착안했다. 트리티드 레더와 패치워크 버전으로 전개된다.
D-ONE을 비롯한 시즌 제품은 모델과 함께 스튜디오에서 촬영된 뒤 카드보드 속 이미지가 되어 도시로 이동했다. 현지에서 제품을 다시 스타일링한 것이 아니라 처음 완성된 스타일링을 유지한 채 주변 공간을 바꿨다.
‘Multiplicities’라는 제목은 이런 제작 방식에서도 읽힌다. 한 번 촬영된 모델 이미지는 하나의 완성본으로 끝나지 않았다. 실물 크기의 컷아웃으로 바뀌고, 다른 도시에서 다시 사진으로 기록되면서 여러 개의 최종 비주얼로 분화했다.
글렌 마틴스(Glenn Martens)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와 크리스토퍼 시몬즈(Christopher Simmonds) 아트 디렉터가 구성한 모델과 스타일링은 캠페인 전체를 연결하고, 다섯 도시의 사진가와 공간은 각 결과물의 차이를 만든다. 중앙에서 한 번에 완성해 세계에 배포하는 방식도, 도시별로 모델 촬영부터 새로 시작하는 방식도 아니다.
스튜디오에서 인물과 제품을 만들고, 현지에서 인물과 도시의 관계를 다시 만드는 두 단계의 제작이다.
패션 산업에서 제품의 이동은 익숙하다. 의류와 가방, 신발은 생산지를 떠나 물류망을 거쳐 여러 국가의 매장과 소비자에게 도착한다. ‘Multiplicities’에서는 제품을 판매하기 위한 광고 이미지도 물리적인 이동 과정을 가졌다.
모델의 사진이 카드보드가 되고, 카드보드는 세계 여러 도시로 이동한 뒤 다시 사진으로 돌아왔다. 디지털 캠페인의 최종 결과물 뒤에 실제 물체의 제작과 운송이 놓인 구조다.
카드보드 수량과 운송 경로, 촬영 이후의 활용 방식이 공개되면 글로벌 캠페인의 제작 동선을 더 구체적으로 비교할 수 있다. 현재 단계에서는 모델의 이동을 줄였다는 사실만으로 비용 절감이나 환경 효과를 연결하지 않는 편이 정확하다.
디젤 FW26 ‘Multiplicities’에서 달라진 것은 패션 광고가 세계를 도는 순서다. 사람을 여러 도시로 데려가 옷을 다시 촬영하는 대신 사람과 옷의 이미지를 먼저 완성한 뒤 실물 크기로 만들어 이동시켰다. 런던에서 뉴델리까지 이어진 캠페인은 모델의 이동을 이미지의 이동으로 바꾸고, 스튜디오와 현지 촬영을 분리해 하나의 글로벌 비주얼을 여러 도시에서 완성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