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인경제②] 디자이너·컬렉터·갤러리, 의자 한 점에 겹치는 시장의 이력

1970년대 필리프 이킬리부터 릭 오웬스·승진 양까지…기존 소장품과 갤러리 출품작이 한자리에, 제작 연도·재료·에디션·소장 경로가 함께 움직이는 컬렉터블 디자인

2026-09-06     임민정 기자

[KtN 임민정기자]의자 한 점이 시장에 나올 때 따라붙는 정보는 디자이너의 이름만이 아니다. 언제 만들어졌는지, 어떤 재료를 사용했는지, 한정 제작인지, 누가 보유하고 있었는지, 어느 갤러리를 통해 나왔는지가 함께 붙는다. 오는 9월 25일 크리스티(Christie’s) 베벌리힐스에서 개막하는 ‘50 Chairs at Christie’s’는 이런 컬렉터블 디자인의 공급 구조를 50점의 의자 안에 압축한다.

Basic.Space가 큐레이션한 이번 전시에는 1960~1970년대 디자인과 동시대 작품이 함께 나온다. 오래된 작품 가운데 일부는 개인 컬렉터의 소장품에서 나왔고, 최근 작품은 컬렉터블 디자인 갤러리가 공급한다. 디자이너가 처음 만든 물건이 시간이 지나 다른 소장자를 거쳐 다시 시장에 등장하는 흐름과 갤러리가 현재 활동하는 작가의 작품을 시장에 소개하는 흐름이 한 장소에서 만난다.

1970년대 제작된 필리프 이킬리(Philippe Hiquily)의 해머드 브라스 체어는 인테리어 디자이너이자 컬렉터인 켈리 웨어슬러(Kelly Wearstler)가 내놓는다. 코미디언·영화감독이자 디자인 컬렉터인 에릭 웨어하임(Eric Wareheim)은 조 콜롬보(Joe Colombo)의 1963년 몰드 파이버글라스 Elda Chair를 출품한다. 로스앤젤레스 가구 디자이너 BASA는 구프람(Gufram)의 대형 Pratone 라운지 체어를, 지암피에로 탈리아페리(Giampiero Tagliaferri)와 아드리앵 드뵐프(Adrien Dewulf)는 CL9 리본 체어를 내놓는다.

작품을 만든 사람과 현재 시장에 내놓는 사람이 분리돼 있다는 점에서 역사적 디자인의 거래 구조가 드러난다. 수십 년 전에 제작된 가구는 제작 당시의 제품 정보만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시간이 흐르는 동안 어떤 형태로 보존되고 다시 유통되는지도 현재의 거래 정보에 포함된다.

소장자의 이름이 곧바로 가격 상승을 의미한다고 볼 근거는 없다. 이번 행사 역시 작품별 판매가격과 추정가를 공개한 자료가 없다. 다만 유명 디자이너와 컬렉터가 보유했던 작품이 출품 목록에서 소장자 정보와 함께 제시된다는 사실은 컬렉터블 디자인이 일반 가구와 다른 방식으로 거래된다는 점을 보여준다.

일반 가구는 같은 모델이면 생산 사양과 상태, 판매가격이 구매 판단의 중심이 된다. 컬렉터블 디자인에서는 같은 이름의 작품이라도 제작 시기와 버전, 소재와 에디션, 보존 상태와 소장 경로까지 확인해야 할 정보가 늘어난다. 작품 자체의 형태와 기능뿐 아니라 한 점이 시장에 도달하기까지 축적된 시간이 거래의 일부가 된다.

[디자인경제②] 디자이너·컬렉터·갤러리, 의자 한 점에 겹치는 시장의 이력. 사진=Christie's,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금속판의 흐름을 최소한의 구조로 이어 붙인 의자는 좌판과 등받이, 다리라는 익숙한 가구의 요소를 단순한 선과 면으로 압축한다. 몸을 받치는 기능을 유지하면서 조각에 가까운 형태를 취한 디자인은 컬렉터블 가구가 생활용품과 조형물의 경계를 오가는 방식을 잘 보여준다.

의자의 경제적 성격도 이 지점에서 달라진다. 가구의 가치는 사용 편의성이나 생산 단가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디자이너가 형태를 어떤 방식으로 해결했는지, 특정 시대의 기술과 재료가 어떻게 반영됐는지, 같은 작품이 얼마나 제한적으로 제작됐는지 등이 함께 붙는다.

‘50 Chairs at Christie’s’에는 바로 이런 차이를 가진 작품들이 나란히 놓인다. 황동을 두드려 만든 1970년대 의자와 몰드 파이버글라스로 제작된 1963년 Elda Chair, 목재를 사용한 작품과 금속 구조를 전면에 드러낸 작품, 레진을 이용해 풍선의 형태를 고정한 최근 디자인까지 제작 방식이 크게 갈린다.

재료의 변화는 디자인사뿐 아니라 시장의 변화를 읽는 단서가 된다. 산업 생산을 전제로 개발된 합판과 파이버글라스부터 금속과 목재, 레진과 천연 소재를 조합한 한정 제작품까지 하나의 ‘의자’ 범주 안에서 서로 다른 생산 방식이 거래된다.

현대 디자인 쪽에서는 갤러리의 역할이 더 직접적이다.

Carpenters Workshop Gallery는 릭 오웬스(Rick Owens)의 Stag Stool을 출품한다. 검은 합판과 천연 무스 뿔을 결합한 한정판이다. 의자를 대량 생산하는 산업제품보다 작가의 조형 언어와 재료 선택을 강조하는 컬렉터블 디자인에 가깝다.

[디자인경제②] 디자이너·컬렉터·갤러리, 의자 한 점에 겹치는 시장의 이력. 사진=Christie's,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검은 직육면체의 몸체 위로 길게 휘어진 뿔이 솟은 Stag Stool은 가구의 기능을 최소한의 구조 안에 남기면서 재료 자체를 강하게 드러낸다. 검은 합판의 직선적인 덩어리와 천연 무스 뿔의 불규칙한 곡선이 대비되고, 스툴이라는 이름을 유지하면서 조각적인 성격을 함께 갖는다.

여기서 한정판이라는 조건이 중요해진다. 일반적인 가구 시장은 동일 모델을 반복 생산하고 판매량을 늘리는 방식으로 규모를 만든다. 컬렉터블 디자인에서는 제작 수량을 제한한 작품도 주요 거래 대상이 된다. 한 점을 얼마나 많이 생산할 수 있는가보다 같은 디자인이 몇 점 존재하는지가 거래 정보로 붙는다.

릭 오웬스라는 이름도 패션과 가구의 경계를 넘는다. 이번 전시에서는 패션 디자이너의 인지도를 단순히 브랜드 효과로 설명하기보다 작품이 어떤 재료와 제작 방식으로 가구 시장에 들어오는지를 보는 편이 중요하다. Stag Stool은 검은 합판과 천연 무스 뿔이라는 구체적인 재료, 한정 제작이라는 공급 조건을 갖추고 컬렉터블 디자인 갤러리를 통해 출품된다.

갤러리는 작품을 단순히 판매하는 창구에 머물지 않는다. 어떤 디자이너와 작품을 선택하고, 어느 시장에 소개할지 결정하는 공급 주체로 참여한다.

더 퓨처 퍼펙트(The Future Perfect)는 서울에서 활동하는 양승진(SeungJin Yang)의 ‘Lounge Chair 01 – Transparent Blue’를 출품한다. 풍선으로 만든 형태를 레진으로 굳혀 완성한 작품이다.

[디자인경제②] 디자이너·컬렉터·갤러리, 의자 한 점에 겹치는 시장의 이력. 사진=Christie's,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투명한 블루의 ‘Lounge Chair 01 – Transparent Blue’는 전통적인 목가구의 제작 순서와 거리가 멀다. 여러 개의 부풀린 형태가 좌판과 등받이, 팔걸이를 만들고, 공기로 만들어졌던 일시적인 부피가 레진을 거쳐 단단한 의자로 남는다.

풍선이라는 익숙하고 값싼 재료의 형태와 컬렉터블 가구 시장의 구조가 만나는 점도 흥미롭다. 최종 작품에서 중요한 것은 풍선 자체의 가격이 아니라 풍선의 부피와 표면을 어떤 제작법으로 고정해 하나의 의자로 완성했는지에 있다.

컬렉터블 디자인에서는 원재료가 비싸다는 이유만으로 가치가 결정되지 않는다. 재료를 다루는 방식과 제작 과정, 결과물의 희소성, 디자이너의 작업 세계가 함께 거래 대상이 된다. 천연 무스 뿔을 사용한 릭 오웬스의 Stag Stool과 풍선·레진으로 만든 승진 양의 의자가 같은 시장에서 거래되는 이유도 재료의 가격보다 디자인과 제작의 차이에 있다.

샘 클레믹(Sam Klemick)의 Trumpet Dining Chair도 재료와 형태의 관계를 다른 방향으로 밀어간다. 단단한 목재에 직물의 유연한 흐름을 옮긴 작품으로 소개된다. 나무가 천처럼 휘어 보이는 형태를 만들면서 재료가 가진 일반적인 인상과 완성된 가구의 외형 사이에 차이를 만든다.

JF Chen은 데번 턴불(Devon Turnbull), 빈스 스켈리(Vince Skelly), 맥스 램(Max Lamb)의 작품을 공급한다. 한 행사 안에서 Carpenters Workshop Gallery, The Future Perfect, JF Chen 같은 서로 다른 디자인 갤러리와 딜러가 등장하는 구성은 동시대 컬렉터블 디자인의 공급망이 단일 경로로 형성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기존 소장자의 작품도 있고 갤러리가 공급하는 최근 작품도 있다. 디자이너 개인의 작업이 직접 들어오는 경우도 있다. ‘50 Chairs at Christie’s’는 서로 다른 공급 경로를 하나의 판매 행사 안으로 모았다.

이 구조에서 크리스티 베벌리힐스의 역할도 구분해서 볼 필요가 있다. 전시는 크리스티 공간에서 열리지만 작품 판매는 Basic.Space 플랫폼을 통해 진행된다. 역사적 디자인과 동시대 컬렉터블 작품의 출품자를 Basic.Space가 한데 모으고, 실물을 보여주는 장소와 판매 플랫폼을 연결한다.

작품을 공급하는 경로가 다양해질수록 큐레이션의 비중도 커진다.

50점이 단순히 무작위로 모인 중고 가구가 아니라는 점은 출품자 구성이 보여준다. 켈리 웨어슬러와 에릭 웨어하임 같은 컬렉터가 내놓은 작품, Carpenters Workshop Gallery와 The Future Perfect 같은 갤러리가 공급한 작품, 로스앤젤레스 기반의 가구·디자인 관계자가 제공한 작품이 하나의 목록에 들어간다.

누가 작품을 골라 시장에 내놓았는지를 보여주는 정보가 디자이너의 이름 옆에 붙는다.

컬렉터블 디자인 시장에서 ‘발견’은 새 디자이너를 찾아내는 행위에만 머물지 않는다. 이미 존재하는 역사적 작품을 어떤 소장자의 컬렉션에서 다시 찾아내고, 동시대 작품 가운데 무엇을 기존 디자인과 나란히 놓을지도 포함한다.

1963년의 Elda Chair와 최근의 레진 의자가 한 장소에 놓이면 두 작품의 제작 기술뿐 아니라 시장에 들어온 경로도 비교된다. 하나는 수십 년을 지나 기존 컬렉터의 소장품에서 다시 나왔고, 다른 하나는 현재의 컬렉터블 디자인 갤러리를 통해 공급된다.

디자인 시장에서 시간은 작품의 외형만 바꾸지 않는다. 유통 구조도 바꾼다.

처음 생산될 당시에는 사용을 위한 가구였던 물건이 시간이 지나 디자인사에 편입되고, 이후 개인 컬렉션과 거래시장을 오갈 수 있다. 반대로 처음부터 한정 제작과 갤러리 유통을 전제로 시장에 들어오는 동시대 작품도 있다.

‘50 Chairs at Christie’s’는 이런 서로 다른 시간을 하나의 의자 전시에 포개 놓는다.

Basic.Space가 ‘다음 세대 컬렉터’를 겨냥한다고 밝힌 점도 공급 구조와 맞닿아 있다. 신규 컬렉터에게 이미 완성된 역사적 작품만 보여주는 대신 현재 제작되는 디자인을 함께 놓으면 수집 범위가 넓어진다. 오래된 작품을 사는 것과 동시대 작가의 작품을 사는 행위가 하나의 디자인 컬렉션 안에서 연결될 수 있기 때문이다.

과거의 명작을 보유한 기존 컬렉터와 현재의 작가를 다루는 갤러리 사이에도 접점이 생긴다.

디자인 컬렉션은 오래된 작품을 확보하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어떤 동시대 작품이 앞으로 디자인사의 한 부분으로 남을지를 선택하는 행위도 포함한다. 갤러리가 현재 활동하는 디자이너를 시장에 소개하고 새 컬렉터가 작품을 구입하면 현재의 디자인이 향후 기존 소장품으로 이동하는 시간이 시작된다.

다만 이번 행사에 출품된 동시대 작품이 향후 어떤 가격을 형성하거나 역사적 평가를 받을지는 현재 자료로 판단할 수 없다. 작품별 가격과 판매 결과도 공개 전이다. 역사적인 작품과 같은 장소에 놓였다는 사실만으로 동등한 시장 평가를 받았다고 확대하기도 어렵다.

확인 가능한 것은 공급 방식의 혼합이다.

켈리 웨어슬러가 내놓는 1970년대 필리프 이킬리의 의자, 에릭 웨어하임의 컬렉션에서 나오는 1963년 Elda Chair, Carpenters Workshop Gallery가 공급하는 릭 오웬스의 한정판 Stag Stool, The Future Perfect가 가져오는 승진 양의 레진 의자가 하나의 판매 행사 안에 들어간다.

디자이너의 이름 뒤에 제작 연대와 재료, 한정 여부, 현재 소장자와 공급 갤러리가 차례로 붙는다. 컬렉터블 디자인 한 점의 시장 정보가 일반 가구보다 길어지는 이유다.

‘50 Chairs at Christie’s’는 9월 24일 VIP 프리뷰를 거쳐 25일부터 30일까지 크리스티 베벌리힐스에서 열린다. 작품은 Basic.Space 플랫폼을 통해 판매된다.

의자 50점의 차이는 형태만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1960년대 파이버글라스부터 1970년대 황동, 검은 합판과 천연 무스 뿔, 풍선과 레진까지 재료와 제작 방식이 달라지고, 기존 컬렉터의 소장품과 갤러리가 공급하는 동시대 작품이 서로 다른 경로를 거쳐 같은 시장에 들어온다.

디자인경제에서 한 점의 가구는 공장에서 완성되는 순간 거래 이력이 끝나는 상품이 아니다. 시간이 지나 소장자가 바뀌고 다시 시장에 나오거나, 갤러리가 현재의 작품을 새로운 컬렉터에게 연결하면서 유통의 기록이 계속 쌓인다. 베벌리힐스에 모이는 50개의 의자는 제작자의 이름뿐 아니라 그 작품이 어떤 시간과 경로를 거쳐 다시 거래되는지까지 함께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