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디자인과 돈, 부의 가치가 달라지는 순간

크리스티 베벌리힐스에 모이는 50개의 의자…가격과 브랜드를 넘어 시간·희소성·안목이 자산의 언어로 들어온 컬렉터블 디자인

2026-09-06     임민정 기자

[KtN 임민정기자]오는 9월 25일 크리스티(Christie’s) 베벌리힐스에는 의자 50점이 들어선다. 찰스·레이 임스(Charles and Ray Eames)의 LCW, 조 콜롬보(Joe Colombo)의 1963년 Elda Chair, 1970년대 필리프 이킬리(Philippe Hiquily)의 황동 의자부터 릭 오웬스(Rick Owens), 양승진(SeungJin Yang)의 동시대 작품까지 제작 시기와 재료가 다른 가구가 한 공간에 놓인다.

Basic.Space가 기획한 ‘50 Chairs at Christie’s’는 크리스티에서 전시하고 Basic.Space 플랫폼에서 판매한다. 역사적인 디자인과 현재 활동하는 디자이너의 작품, 기존 컬렉터가 내놓은 소장품과 갤러리가 공급한 작품이 하나의 판매 목록에 들어간다. Basic.Space 창업자 제시 리(Jesse Lee)가 겨냥한 대상은 ‘다음 세대 컬렉터’다.

[칼럼] 디자인과 돈, 부의 가치가 달라지는 순간. 사진=Christie's,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의자 50점이 보여주는 변화는 디자인의 형태에만 있지 않다. 돈을 쓰는 방식과 부를 드러내는 언어가 함께 달라지고 있다.

부는 오랫동안 크기와 가격으로 쉽게 읽혔다. 더 큰 집과 더 비싼 자동차, 보석과 시계, 누구나 알아보는 브랜드는 경제력을 외부에 전달하는 가장 빠른 수단이었다. 가격표와 브랜드 이름만으로도 소유자의 구매력을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었다.

컬렉터블 디자인 시장에 들어가면 판단 기준이 복잡해진다. 같은 의자라도 제작 연도와 재료, 에디션, 생산 방식이 다르고 희귀한 버전인지, 어느 소장자를 거쳤는지, 어느 갤러리를 통해 시장에 나왔는지에 따라 한 점의 이력이 달라진다.

이번 전시에 포함되는 임스의 LCW도 단순히 유명한 디자인이라는 사실에서 끝나지 않는다. 희귀한 카프스킨 버전이라는 조건이 붙는다. 릭 오웬스의 Stag Stool에는 검은 합판과 천연 무스 뿔, 한정판이라는 제작 정보가 따라온다.

더 퓨처 퍼펙트(The Future Perfect)가 출품하는 양승진의 ‘Lounge Chair 01 – Transparent Blue’는 풍선으로 형태를 만든 뒤 레진으로 굳혀 완성했다. 풍선이나 레진의 원가만 계산해서는 작품의 가치를 설명하기 어렵다. 공기로 부풀린 일시적인 형태를 단단한 가구로 전환한 제작법과 작가의 조형 언어가 작품의 성격을 만든다.

가격이 사라진 시장이 아니다. 오히려 상당한 구매력을 전제로 하는 시장이다. 다만 돈의 액수만으로 소유의 의미가 완성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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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력이 ‘살 수 있는 능력’이라면 컬렉터블 디자인은 여기에 ‘알아볼 수 있는 능력’을 요구한다. 제작 시기를 구별하고, 소재의 차이를 읽고, 희소한 버전을 찾아내고, 이미 평가가 축적된 작품과 아직 평가가 진행 중인 작품을 함께 판단하는 과정이 구매에 들어간다.

부의 표현이 가격에서 선택으로 옮겨가는 대목이다.

가격이 높은 물건을 고르는 행위는 비교적 쉽게 설명된다. 희소한 디자인을 골라내고, 한 시대의 제작 기술을 읽고, 아직 널리 알려지지 않은 작가의 작품을 먼저 선택하는 행위에는 다른 종류의 자본이 필요하다. 돈뿐 아니라 시간과 지식, 경험이 함께 들어간다.

컬렉터블 디자인에서 안목은 경제력과 분리된 낭만적인 능력이 아니다. 전시를 보고, 갤러리와 페어를 찾고, 작품의 이력과 제작 방식을 공부하고, 실제 구매까지 이어가는 과정에는 상당한 시간과 자원이 필요하다. 경제적 자본과 문화적 자본이 서로를 강화하는 구조에 가깝다.

그래서 현대의 부는 두 가지 능력을 동시에 드러낸다. 살 수 있는 능력과 선택할 수 있는 능력이다.

‘50 Chairs at Christie’s’에 켈리 웨어슬러(Kelly Wearstler)가 내놓는 1970년대 필리프 이킬리의 의자와 에릭 웨어하임(Eric Wareheim)이 소장해온 1963년 Elda Chair가 포함된 점도 눈여겨볼 만하다. 제작자의 이름 뒤에 소장자의 시간이 붙는다.

일반적인 소비재는 시간이 흐르면 가치가 떨어지는 경우가 많다. 자동차와 전자제품에서는 사용 기간이 감가의 중요한 조건이 된다. 컬렉터블 디자인에서는 시간이 다른 방식으로 작동한다. 제작 시기와 희소성, 보존 상태, 에디션과 소장 이력이 축적되면서 오래됐다는 사실이 새로운 정보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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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이 물건만 사는 것이 아니라 시간을 사는 시장이다.

1963년 Elda Chair를 소유한다는 것은 오래된 의자 한 점을 집에 들이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파이버글라스와 새로운 성형 기술이 가구의 형태를 바꾸던 시대가 함께 들어온다. 1970년대 황동 의자에는 제작 당시의 미감과 기술, 이후 지나온 시간이 겹쳐 있다.

동시대 작품에는 다른 시간이 붙는다.

릭 오웬스와 양승진의 작품은 이미 완성된 디자인사의 한 페이지를 사는 방식과 다르다. 현재 만들어지고 있는 디자인을 선택하고 앞으로 쌓일 평가와 시장의 시간을 함께 받아들이는 구매에 가깝다.

역사적인 작품에는 이미 축적된 평가를 읽는 능력이 필요하고, 동시대 작품에는 아직 완성되지 않은 평가를 먼저 판단하는 능력이 요구된다. 같은 돈을 사용해도 하나는 희소해진 과거를 확보하고, 다른 하나는 아직 결과가 정해지지 않은 현재를 선택한다.

Basic.Space가 두 시간을 한 공간에 놓은 구성은 그래서 의미가 있다. 오래된 명작을 밀어내고 새로운 작품으로 교체하지 않는다. 이미 디자인사에 자리 잡은 작품 옆에 현재 활동하는 디자이너의 가구를 놓는다.

다음 세대 컬렉터에게 과거와 현재를 동시에 보여주는 방식이다.

50점을 모두 의자로 묶은 구성도 흥미롭다. 파이버글라스와 황동, 합판과 목재, 레진과 천연 소재가 ‘앉는 가구’라는 공통된 기능 안에서 비교된다. 의자는 사람이 매일 사용하는 가장 익숙한 생활물건 가운데 하나지만 컬렉터블 디자인 시장에서는 재료와 제작법, 시대와 희소성이 더해지면서 수집의 대상이 된다.

기능은 남아 있고 가치의 층이 늘어난다.

바로 이 지점에서 디자인은 상품과 작품 사이를 오간다. 앉을 수 있다는 효용만 따지면 의자의 가격은 재료비와 제작비, 유통비를 중심으로 계산할 수 있다. 컬렉터블 디자인에서는 아이디어와 희소성, 제작자의 위치, 작품이 나온 시대와 소장 이력까지 가격 안으로 들어온다.

돈이 물질의 양보다 의미의 밀도에 붙기 시작한다.

럭셔리의 성격도 달라진다. 누구나 알아보는 로고와 높은 가격은 여전히 강력한 부의 표시다. 동시에 겉으로는 평범한 의자 한 점이 더 복잡한 경제적·문화적 정보를 품을 수 있다. 제작자와 연도, 에디션과 소재를 아는 사람에게만 가치의 전체가 읽히는 물건이다.

부의 표지가 사라진 것이 아니라 읽는 방식이 어려워진 셈이다.

과거의 과시가 가격을 크게 보여주는 방식이었다면 컬렉터블 디자인에서는 지식이 가격을 감싸는 경우가 생긴다. 비싼 물건을 소유하고도 가격을 전면에 내놓지 않는다. 대신 희소한 제작 이력과 디자인의 배경, 선택의 맥락이 소유자의 취향을 설명한다.

소유가 해석의 행위로 바뀐다.

같은 경제력을 가진 사람도 전혀 다른 공간을 만들 수 있다. 유명한 작품만 모을 수도 있고 특정 시대를 집중적으로 수집할 수도 있다. 아직 시장 평가가 충분히 쌓이지 않은 디자이너에게 먼저 관심을 둘 수도 있다.

돈의 크기가 같아도 컬렉션은 같아지지 않는다.

자본은 선택의 범위를 넓혀주지만 선택 자체를 대신해주지 못한다. 구매 가능한 대상이 많아질수록 선택의 이유가 오히려 더 중요해진다. 경제력이 충분할수록 소유한 물건의 가격보다 선택의 방향에서 개인의 취향과 판단이 선명해지는 역설이 생긴다.

Basic.Space가 강조하는 ‘발견(discovery)’도 여기에서 경제적인 의미를 얻는다. 이미 원하는 작품을 알고 있는 사람에게는 거래 기능이 중요하다. 새로운 컬렉터에게는 거래보다 앞선 단계가 필요하다. 작품을 보고, 비교하고, 제작자와 시대를 알게 되고, 자신의 기준을 만드는 시간이 먼저다.

‘50 Chairs at Christie’s’에서 작품은 크리스티 베벌리힐스에 놓이고 거래는 Basic.Space 플랫폼에서 이어진다. Basic.Space가 최근 Design Miami를 인수한 흐름까지 더하면 온라인에서 상품을 판매하는 기능과 오프라인에서 취향을 형성하는 경험이 가까워지고 있다.

컬렉터를 확보하는 경쟁도 물건을 많이 진열하는 방식에서 벗어난다. 어떤 작품을 선택하고, 어느 작품과 나란히 놓으며, 어느 공간에서 처음 만나게 할지가 거래의 전 단계로 들어온다.

큐레이션이 경제 활동이 되는 이유다.

시장에는 이미 존재하는 수요만 있는 것이 아니다. 아직 무엇을 살지 정하지 않은 사람에게 수집할 가치가 있는 대상을 보여주고 비교 기준을 제공하면서 새로운 수요가 만들어진다. 전시 공간은 판매와 분리된 문화 공간으로만 남지 않고 시장이 형성되기 전 취향을 만드는 장소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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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안목을 가격보다 우월한 가치로 미화해서는 곤란하다. 취향과 지식 역시 사회적 구별의 수단이 될 수 있다. 누구나 알아보는 비싼 물건 대신 소수만 알아보는 희귀한 디자인을 소유하는 방식은 부를 감추는 동시에 또 다른 경계를 만든다.

가격의 과시가 줄어든 자리에 지식의 과시가 들어설 수도 있다.

부가 조용해졌다고 더 평등해진 것은 아니다. 외부에서 읽기가 어려워졌을 뿐이다.

유명 브랜드의 자동차와 시계는 가격을 몰라도 대략적인 위치를 짐작할 수 있다. 거실 한쪽의 의자는 다르다. 언뜻 평범해 보여도 제작자와 제작 연도, 희소한 버전과 소장 이력을 알게 되는 순간 전혀 다른 자산으로 읽힌다.

부의 언어가 숫자에서 문화적 암호로 이동하는 모습이다.

9월 24일 VIP 프리뷰를 시작으로 25일부터 30일까지 이어지는 ‘50 Chairs at Christie’s’에는 1960년대 파이버글라스와 1970년대 황동, 희귀한 임스의 LCW, 릭 오웬스의 합판과 천연 무스 뿔, 양승진의 풍선과 레진이 함께 들어온다.

모두 의자지만 같은 가치로 읽히지 않는다.

제작자의 이름과 시대가 붙고, 재료와 희소성이 더해진다. 한 컬렉터의 공간을 거쳐 다시 시장에 나오기도 하고, 갤러리를 통해 현재의 작품이 새로운 소장자에게 이동하기도 한다. 물건 한 점에 여러 시간과 관계가 축적된다.

부의 가치가 바뀐다는 말은 돈의 중요성이 줄어든다는 뜻이 아니다. 돈이 가진 의미가 더 복잡해지고 있다는 쪽에 가깝다. 자산의 규모를 보여주는 데서 나아가 축적한 자본을 어떤 대상에 배분하고 어떤 시간을 소유하는지가 경제력의 또 다른 표현이 되고 있다.

많이 가진 사람이 부자인 시대는 끝나지 않았다. 다만 많이 가질 수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선택의 내용이 더 큰 차이를 만든다.

돈은 의자를 살 수 있다. 디자인은 선택한 사람의 안목과 시간을 드러낸다.

부가 단순한 축적에서 선택의 영역으로 넓어질수록 가장 비싼 물건보다 오래 생각해 고른 한 점이 더 많은 이야기를 남긴다. 컬렉터블 디자인 시장이 보여주는 변화는 결국 물건의 가격이 아니라 부를 사용하는 방식의 변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