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불가리, 신기술은 한정판에·주력은 과거 디자인에…안전한 시계 전략의 한계
Vianney Halter 협업 45개·Dazzle 80개 한정, Titanio는 1998년 Aluminium 계보 재구성 실험과 판매 제품 분리한 포트폴리오…장기 경쟁력은 신기술·디자인의 주력 컬렉션 확산에 달려
[KtN 박인경기자]불가리(BVLGARI)가 제네바 워치 데이즈(Geneva Watch Days) 2026에서 가장 새로운 기술과 가장 강한 디자인을 모두 소량 한정판에 배치했다. 독립 워치메이커 비아니 할터(Vianney Halter)와 새 무브먼트를 공동 개발한 Octo Finissimo Dual Time은 티타늄 30개와 로즈 골드 15개, 모두 45개만 제작된다. 자동차 프로토타입의 위장 패턴을 케이스와 다이얼, 브레이슬릿 전체에 새긴 Octo Finissimo Dazzle도 전 세계 80개로 제한했다. 반면 Bvlgari Titanio는 1998년 Bvlgari Aluminium의 금속과 러버 조합을 Grade 5 티타늄으로 바꿔 다시 내놓았다.
세 제품을 함께 놓으면 불가리의 2026년 시계 전략은 상당히 신중하다. 새로운 무브먼트 개발과 낯선 디자인은 수십 개 규모에서 시도하고, 일상적인 스포츠 워치에는 20년 넘게 이어온 디자인 자산을 사용했다. 모험을 피한 것이 아니라 모험이 들어가는 제품과 시장에 내놓는 수량을 분리했다.
Octo Finissimo Dual Time x Vianney Halter에는 불가리와 할터가 처음부터 함께 개발한 자동 무브먼트 Caliber BVF 200이 들어간다. Octo Finissimo에서 외부 독립 워치메이커와 무브먼트를 공동 개발한 것은 처음이다. 두께 5.49mm의 무브먼트에 60시간 파워리저브와 플래티넘 마이크로 로터를 적용했고, 로터에는 할터의 서명을 새겼다.
다이얼까지 기존 Octo Finissimo와 크게 달라졌다. 하나의 넓은 다이얼에 정보를 모으지 않고 네 개의 원형 표시부로 나눴다. 시와 분, GMT, 날짜, 주야 표시가 각 영역에 배치됐고, 블루 핸즈와 붉은 초침, 포트홀 형태의 베젤이 들어갔다. Octo Finissimo의 각진 외곽 안으로 할터가 사용해온 원형 구조와 레트로퓨처 디자인이 들어온 셈이다.
기술과 외형을 동시에 크게 바꿨지만 시장에 나오는 수량은 45개다. 새로운 무브먼트와 다이얼 구조를 일반 Octo Finissimo까지 넓히지 않고 극소량 협업 제품에 먼저 넣었다. 개발의 폭에 비해 판매 범위는 좁다.
Octo Finissimo Dazzle도 비슷한 방식으로 움직인다. 자동차 제조사가 시험 중인 프로토타입의 외형을 쉽게 파악하지 못하도록 사용하는 다즐(dazzle) 위장 패턴을 샌드블라스트 티타늄 케이스와 다이얼, 통합 브레이슬릿 전체에 레이저로 새겼다. 시계의 각 부분을 분명하게 나누는 대신 동일한 패턴이 다이얼에서 케이스를 지나 브레이슬릿까지 이어진다.
손목시계에서 가독성은 기본적인 기능이다. Dazzle은 시각 정보를 정돈하는 대신 패턴의 밀도를 높였다. Octo를 구분하는 팔각 베젤은 남겨두되 주변의 다이얼과 외장 경계는 흐렸다. 시간을 읽는 도구와 그래픽 오브제 사이의 거리를 의도적으로 좁힌 제품이다.
40mm 케이스에 두께는 5.15mm, 내부에는 Caliber BVL 138을 넣었다. 무브먼트 두께는 2.23mm이고 파워리저브는 60시간이다. 기계적 기반보다 외부 표면의 변화가 큰 제품인데 생산량 역시 80개로 한정된다.
45개와 80개라는 숫자는 불가리가 실험을 다루는 방식을 잘 보여준다. 무브먼트를 새로 만들 정도의 기술적 변화도, 시계의 가독성을 흔들 정도의 시각적 변화도 기존 제품군 전체에는 곧바로 적용하지 않았다. 한정된 수량 안에서 새로운 시도를 분리했다.
Bvlgari Titanio에서는 방향이 달라진다. 출발점부터 새로운 디자인이 아니라 1998년 Bvlgari Aluminium이다. 당시 사용했던 금속과 러버의 조합을 유지하면서 알루미늄을 Grade 5 티타늄으로 바꿨다. 검은 러버 베젤과 스트랩, 베젤의 BVLGARI 표기 등 기존 제품을 알아보게 만드는 요소도 이어진다.
Titanio Chronograph는 41mm 케이스와 Caliber B381, 42시간 파워리저브를 갖췄다. Titanio GMT는 40mm 케이스에 Caliber B192와 50시간 파워리저브를 사용한다. 두 제품 모두 100m 방수와 러버 스트랩을 적용했다.
Grade 5 티타늄, GMT, 크로노그래프, 100m 방수는 오늘날 고급 스포츠 워치 시장에서 낯선 조건이 아니다. Titanio의 성격을 가르는 부분은 신소재 개발보다 1998년부터 이어진 불가리의 스포츠 워치 디자인을 현재 소재로 다시 구성했다는 데 있다.
세 제품군의 배치는 상당히 안전하다. 새로운 기술은 45개에, 강한 디자인은 80개에 넣고, 스포츠 워치에는 이미 알려진 디자인 계보를 활용했다. 어느 한 제품의 반응이 기대에 미치지 못하더라도 전체 컬렉션에 미치는 부담을 제한할 수 있는 구조다.
한정판은 고급 시계 산업에서 자연스러운 판매 방식이기도 하다. 복잡한 제작 공정을 감당하면서 희소성을 유지할 수 있고, 기존 컬렉션과 다른 디자인을 상대적으로 자유롭게 시도할 수 있다. 불가리 역시 Dual Time과 Dazzle에서 이 방식을 적극적으로 사용했다.
다만 가장 새로운 불가리가 계속 한정판 안에만 머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한정판에서만 새로운 무브먼트를 개발하고, 한정판에서만 과감한 디자인을 시도하면서 일반 제품에서는 과거의 성공작을 반복하는 구조가 굳어질 수 있다. 브랜드는 계속 실험적으로 보이지만 실제 제품군의 변화는 느려지는 상황이다.
Caliber BVF 200의 향후 활용이 중요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비아니 할터와 공동 개발했다는 사실만으로는 기술의 축적 여부를 판단할 수 없다. 공동 개발 과정에서 얻은 설계 경험이 다른 Octo Finissimo에 이어지고, 새로운 다중 표시 방식이 후속 제품에서 변형돼 사용될 때 기술 투자가 컬렉션 전체의 자산으로 남는다.
Dazzle도 위장 패턴 자체보다 패턴을 다루는 방법이 더 오래 남을 수 있다. 다이얼과 케이스, 브레이슬릿을 서로 다른 부품으로 나누지 않고 하나의 연속된 표면처럼 처리한 방식은 다른 Octo Finissimo로 확장할 여지가 있다. 80개를 만든 뒤 패턴과 함께 끝난다면 강한 한정판으로 남고, 표면 설계 방식이 다른 제품으로 이어지면 Octo Finissimo 디자인의 새로운 축이 된다.
Titanio에는 반대 방향의 부담이 놓인다. Bvlgari Aluminium이 1998년부터 쌓은 디자인은 충분히 활용할 수 있는 브랜드 자산이다. 첫 단계에서 알루미늄을 티타늄으로 바꾸는 것도 자연스럽다. 이후에도 소재 교체만 반복하면 Titanio는 독립적인 계보보다 Aluminium의 변형으로 남을 가능성이 커진다. 케이스 비례와 기능, 무브먼트, 착용 방식에서 Titanio만의 축적이 뒤따라야 한다.
불가리는 Octo Finissimo에서 이미 다른 길을 보여준 경험이 있다. 초박형이라는 하나의 기술적 방향을 여러 제품과 무브먼트에 반복해 적용하면서 단일 기록을 컬렉션 전체의 정체성으로 확장했다. 한 번의 기록보다 여러 세대의 제품에서 같은 기술 방향을 이어온 시간이 Octo Finissimo의 위치를 만들었다.
2026년에는 초박형 기록만으로 다음 단계를 설명하지 않았다. Dual Time에서는 외부 워치메이커와 무브먼트를 공동 개발했고, Dazzle에서는 표면을 전면적으로 바꿨으며, Titanio에서는 1998년 스포츠 워치의 소재를 교체했다. 기술, 디자인, 과거 자산을 서로 다른 제품에 나눠 배치했다.
단기적으로는 안정적인 선택이다. 장기적으로는 가장 과감한 제품과 가장 많이 접하게 될 제품 사이의 거리를 얼마나 좁히느냐가 중요해진다.
불가리가 계속 45개와 80개 안에서만 미래를 보여주고, 그 밖에서는 과거의 디자인을 다시 사용하는 데 머문다면 안전한 전략은 점차 보수적인 전략으로 바뀐다. 반대로 Dual Time에서 시작한 무브먼트 개발, Dazzle에서 시도한 표면 설계가 일반 컬렉션으로 이어지고 Titanio가 Aluminium과 다른 자체 계보를 쌓는다면 이번 한정판들은 다음 제품을 위한 출발점이 된다.
Geneva Watch Days 2026에서 불가리가 위험한 시계를 만들지 않은 것은 아니다. 가장 위험한 선택을 가장 적은 수량에 넣었다. 당장 제품군을 흔들지 않는다는 점에서는 안전하다. 불가리 시계 전략의 다음 평가는 45개와 80개를 얼마나 잘 팔았는지가 아니라, 그 안에서 시작한 기술과 디자인 가운데 무엇이 이후의 일반 제품에 남는지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