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urth Plinth의 이면③] 흰 페인트 훼손 뒤 트라팔가 광장으로…'Lady in Blue'를 둘러싼 보안과 관리 책임
2023년 'Seated' 흑인 여성의 피부 전체에 흰색 스프레이…지역사회 참여해 복원 트라팔가 광장 24시간 경비·CCTV 운영…과거 포스 플린스 조각 자체 관리는 작가·대리인이 담당 광장 관리와 작품 보존 나뉜 구조…'Lady in Blue' 별도 보험·유지관리 비용은 공개되지 않아
[KtN 임민정기자]2023년 5월 15일 영국 벡스힐온시(Bexhill-on-Sea)의 드 라 워 파빌리온(De La Warr Pavilion) 밖에 설치돼 있던 차발랄라 셀프(Tschabalala Self)의 조각 'Seated'가 훼손됐다. 바다를 바라보며 앉아 있는 흑인 여성을 형상화한 작품이었다. 누군가 여성의 피부 전체에 흰색 스프레이 페인트를 칠했다. 셀프는 당시 훼손을 인종차별적 행위로 받아들였다. 3년 뒤인 2026년 9월 10일, 같은 작가가 만든 또 다른 흑인 여성상이 런던에서 가장 많은 사람이 오가는 공공장소 가운데 하나인 트라팔가 광장에 올라섰다.
'Lady in Blue'는 청색 드레스를 입고 앞으로 걸음을 내딛는 여성을 청동으로 제작한 작품이다. 포스 플린스(Fourth Plinth)의 16번째 커미션으로 2028년까지 트라팔가 광장에 설치된다. 셀프는 작품 공개를 앞두고 이전 훼손 경험에도 불구하고 대중의 반응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밝혔다. 작품에 대한 여러 반응도 지금의 사회를 드러내는 일부로 받아들인다는 취지였다.
2023년 'Seated' 훼손 뒤 드 라 워 파빌리온이 택한 방식은 작품을 감추거나 즉시 비공개 복원하는 것이 아니었다. 작품을 다시 공개하고 복원 과정에도 지역 주민이 참여하도록 했다. 같은 달 21일 열린 복원 행사에서는 참가자들에게 장갑과 도구가 제공됐고 흰색 스프레이를 제거하기 위해 화이트 스피릿이 사용됐다. 복원 비용을 지원하려는 시민들을 위한 기부도 받았다. 공공장소에서 일어난 훼손에 대한 대응 자체를 다시 공개 활동으로 만든 방식이었다.
런던의 'Lady in Blue'가 놓인 조건은 당시와 다르다. 트라팔가 광장은 런던광역정부(Greater London Authority·GLA)가 관리하는 핵심 공공공간이다. GLA는 1999년 Greater London Authority Act에 따라 트라팔가 광장의 관리와 통제, 질서 유지 등을 맡고 있다. 광장에는 헤리티지 워든(Heritage Warden)이 하루 24시간, 주 7일 배치된다. 제복과 사복 보안 인력이 순찰하고 CCTV도 범죄 예방과 공공 안전을 위해 24시간 가동된다.
보안 체계가 곧 개별 미술품의 보존 책임을 뜻하지는 않는다. 2022년 헤더 필립슨(Heather Phillipson)의 'The End'가 포스 플린스에 설치돼 있을 당시에는 포스 플린스만을 위한 별도 유지관리 비용이 책정되지 않았다. 좌대와 광장의 관리는 다른 동상들과 함께 광장 일반 유지관리 체계에 포함됐고, 작품 자체의 유지관리는 작가 또는 작가 대리인의 책임으로 운영됐다.
트라팔가 광장의 공공시설 관리와 포스 플린스 작품 보존이 한 주체에 모두 귀속되지 않았다는 의미다. GLA가 광장의 질서와 경비, 시설 관리를 맡더라도 작품 표면의 손상이나 재료 보존에는 작가 또는 대리인이 직접 관여할 수 있다. 야외 공공미술에서 광장 운영과 미술품 보존이 서로 다른 계약과 책임으로 나뉘는 구조를 보여준다.
광장 전체의 보존·복원에도 별도 비용이 들어간다. 2022~2023회계연도 기준 트라팔가 광장과 의회광장(Parliament Square Garden)의 청동·석재 전문 보존 및 복원 계약비는 9만5312파운드였다. 2021~2022회계연도에도 같은 금액이 집행됐고, 2020~2021년에는 9만2485파운드였다. 일상적으로 발생하는 수시 청소 비용은 포함되지 않은 금액이다. 해당 수치는 'Lady in Blue'의 관리비가 아니라 두 광장에 있는 청동과 석조 시설을 대상으로 한 과거 연간 계약 규모다.
트라팔가 광장에 이미 설치된 기념물도 정기적인 보존 작업을 거친다. 넬슨 기념주(Nelson's Column)는 2년마다 상태 점검을 받고, 석재 수리와 부식 부위 정리, 청동 보호용 왁스 처리, 조류 배설물 제거 등이 보존 작업에 포함된다. 야외에 놓인 청동과 석재는 고의 훼손이 발생하지 않아도 기후와 오염, 조류 등으로 지속적인 관리가 필요하다.
'Lady in Blue'는 청동 조각에 강한 청색을 입힌 작품이다. 셀프는 고대부터 사용된 라피스 라줄리(lapis lazuli)의 색을 작품에 끌어왔다. 런던시가 2024년 선정 당시 공개한 구상은 청동 표면을 라피스 라줄리 블루로 처리하는 방식이었고, 완성작에서는 드레스의 짙은 청색과 장신구의 색이 작품의 시각적 중심을 이룬다.
색을 입힌 청동 조각이라는 특성상 작품에 페인트나 다른 물질이 묻을 경우 단순한 광장 청소와 미술품 복원은 구분될 수밖에 없다. 2023년 'Seated'에서도 작가와 전시기관이 복원 방식을 협의한 뒤 페인트 제거가 진행됐다. 'Lady in Blue'의 작품별 유지관리 계약과 손상 발생 시 복원 절차, 보험 가입 주체와 보상 범위는 공개되지 않았다.
트라팔가 광장은 미술작품만을 위한 전시장도 아니다. 문화행사와 집회, 시위가 지속적으로 열리는 런던의 대표적인 공공공간이다. 집회와 시위에는 별도의 장소 사용료를 받지 않지만 청소와 기타 계약 비용은 주최자가 부담하도록 하고 있다. 2026년 GLA 행사에서도 보안 규모는 행사 성격과 보건·안전, 군중 관리 조건을 따져 정하고 경찰과 지방정부 등 관계기관의 자문을 반영한다.
광장을 둘러싼 물리적 보안도 강화되는 흐름이다. GLA는 CCTV를 트라팔가 광장의 다층적 보안 체계 가운데 하나로 운영하고 있으며, 헤리티지 워든과 다른 보안 인력이 현장을 순찰한다. 포스 플린스는 관람객과 작품 사이에 미술관과 같은 실내 출입 절차를 둘 수 없는 공간인 만큼 작품 보호도 광장 전체의 안전 체계 안에서 이뤄진다.
2009년 안토니 곰리(Antony Gormley)의 'One & Other' 때는 공식 참여자가 올라가기 직전 시위자가 직접 좌대에 올라가 배너를 펼치는 일도 있었다. 당시 포스 플린스 작품 자체가 시민 참여형 프로젝트였다는 차이가 있지만, 트라팔가 광장이 예술과 시위, 정치적 표현이 지속적으로 겹치는 공간이라는 특성은 오래전부터 이어졌다.
'Lady in Blue'는 셀프에게 영국에서 두 번째로 큰 공공미술 경험을 잇는 작품이기도 하다. 2022년 런던 킹스크로스의 콜 드롭스 야드(Coal Drops Yard)에 처음 설치됐던 'Seated'는 이듬해 벡스힐온시로 이동한 뒤 훼손됐다. 흑인 여성의 피부에만 흰 페인트가 덧칠됐다는 점 때문에 단순한 야외 조각 손상과 다른 사회적 의미를 남겼다. 셀프가 2026년 다시 영국 공공공간에 흑인 여성상을 세우면서 과거의 훼손 경험도 새 작품을 둘러싼 환경의 일부가 됐다.
포스 플린스는 작품을 보호된 실내로 옮기는 대신 광장 한가운데 노출한다. 무료로 누구나 볼 수 있다는 장점과 날씨·오염·군중·시위·고의 훼손에 그대로 놓인다는 조건이 동시에 따른다. 광장에는 24시간 경비와 CCTV가 운영되고, GLA는 트라팔가 광장 전체의 관리 책임을 맡는다. 과거 포스 플린스 운영에서는 조각 자체의 관리를 작가 또는 대리인에게 맡겼다. 공공미술의 ‘공공’은 접근성뿐 아니라 작품을 지키는 비용과 책임을 여러 주체가 나눠 부담하는 운영 구조까지 포함하고 있다.
'Lady in Blue'는 2028년까지 포스 플린스에 설치된다. 이후 좌대에는 안드라 우르수차(Andra Ursuţa)의 새 작품이 올라가고, 셀프의 조각은 노르웨이 포르네부(Fornebu)로 이동해 영구 설치될 예정이다. 트라팔가 광장에 머무는 동안 작품은 24시간 개방된 도심 광장의 보안 체계와 야외 미술품의 유지관리 구조 안에 놓인다. 2023년 흰 페인트로 훼손됐던 'Seated'와 달리 'Lady in Blue'는 런던 중심부에서 앞으로 약 2년 동안 매일 대중과 마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