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ERERROR FW26②] ‘Time After Time’…계절을 파는 패션이 ‘시간을 견디는 공예’를 호출한 이유
FW26라는 계절성 안에 도자기·공예·문화적 기억 배치 클레이·브라운·터쿼이즈 팔레트로 재료의 시간성 확장 빠르게 교체되는 패션과 오래 남는 사물 사이에서 만들어진 ‘지속’의 언어
[KtN 박인경기자]패션은 계절을 전제로 움직인다. 봄·여름과 가을·겨울이 반복되고, 컬렉션은 다음 시즌이 도착하는 순간 이전 시즌이 된다. ADERERROR가 2026 가을·겨울 메인 컬렉션에 붙인 이름은 ‘Time After Time’이다. 일정한 주기로 새로움을 요구받는 산업이 이번에는 오래 남는 도자기와 공예, 문화적 기억을 중심에 놓았다.
도자기는 패션과 다른 시간을 가진 물건이다. 흙은 손을 거쳐 형태를 얻고, 건조와 소성을 지나면서 처음과 다른 물성이 된다. 완성된 뒤에는 계절이 지나도 형태가 쉽게 바뀌지 않는다. 몇 달을 단위로 상품을 교체하는 패션과 비교하면 시간의 속도 자체가 다르다.
‘Time After Time’은 바로 그 차이를 하나의 컬렉션 안에 겹쳐 놓는다.
청록 계열 드레스는 흙 자체의 색보다 유약을 입은 뒤 달라지는 표면을 떠올리게 한다. 옅은 블루와 터쿼이즈가 컬렉션의 브라운·클레이 계열 사이에 들어오면서 하나의 재료가 시간과 공정을 거쳐 다른 색을 얻는 과정과 연결된다.
색을 단순한 장식으로 쓰기보다 재료가 변화한 흔적으로 다루는 방식이다. 흙빛에서 청록으로 이어지는 팔레트는 자연의 색을 그대로 복제하기보다 열과 유약을 거친 뒤 나타나는 인공적 변화를 함께 품는다.
패션에서 ‘자연스러움’은 흔히 가공하지 않은 상태를 뜻하지만 도자기는 오히려 반대다. 흙은 인간의 손과 불을 거친 뒤에야 오래 남는 물건이 된다. 자연 상태에서 멀어질수록 더 단단한 형태를 얻는다.
이번 컬렉션이 공예를 다루는 방식도 그 지점에 가깝다. 손으로 만든 듯한 장식을 덧붙이기보다 소재의 표면과 실루엣, 색의 농도를 통해 제작과 변화의 시간을 암시한다.
브라운 계열 착장은 이런 시간성을 가장 현실적인 옷으로 내려놓는다. 흙과 가까운 색이지만 전통적인 복식이나 민속적 장식으로 이동하지 않는다. 재킷과 팬츠라는 익숙한 현대 의복 안에서 색과 질감을 조정한다.
브라운은 오래된 것과 새것을 동시에 품을 수 있는 색이다. 가죽과 목재, 흙처럼 시간이 지나며 표면이 달라지는 재료와 연결되면서도 현대적인 테일러링에서는 안정적인 중성색으로 기능한다.
여기에 ADERERROR가 선택한 곡선과 느슨한 비례가 더해지면 ‘오래됨’은 복고와 다른 방향으로 간다. 특정 시대의 옷을 되살리는 것이 아니라 시간이 축적된 재료의 분위기를 현재의 실루엣에 옮긴다.
아카이브 패션과도 차이가 있다. 과거의 특정 제품을 다시 만드는 방식이라면 시간은 디자인의 역사와 연결된다. ‘Time After Time’에서 시간은 하나의 옷이 언제 만들어졌는지보다 재료가 변화하고 사물이 오래 남는 과정에 가까워진다.
네이비 상의와 넓은 팬츠, 브라운 계열 액세서리가 결합된 착장은 컬렉션의 철학을 일상복 쪽으로 이동시킨다. 강한 조형성이 줄어든 자리에는 색과 비례의 미세한 차이가 남는다.
공예를 이야기한다고 해서 모든 옷이 조각적인 형태를 가질 필요는 없다. 오히려 반복해 입을 수 있는 니트와 팬츠, 가방에 같은 색과 질감의 언어를 적용할 때 ‘시간’이라는 개념은 실제 사용과 가까워진다.
옷의 시간은 제작되는 순간보다 착용 이후에 시작된다. 몸에 맞춰 주름이 생기고, 소재가 부드러워지고, 표면의 색과 질감이 조금씩 달라진다. 도자기의 시간이 완성 이후 형태를 보존하는 쪽에 가깝다면 의복의 시간은 사용하면서 변화하는 쪽에 가깝다.
두 물건은 시간을 견디는 방식부터 다르다.
그래서 ‘Time After Time’을 단순히 영속성을 찬양하는 컬렉션으로 읽으면 오히려 중요한 긴장이 사라진다. FW26이라는 이름은 이 옷들이 여전히 특정 시즌의 상품이라는 사실을 명확하게 남긴다. 도자기의 긴 시간과 패션의 짧은 시간이 동시에 존재한다.
패션 산업은 ‘영원함’을 말하면서도 다음 시즌을 준비해야 한다. 오래 입을 수 있는 옷을 제시하면서 동시에 새로운 옷을 계속 만들어야 한다. 이 구조는 지속성을 둘러싼 현대 패션의 오래된 난점과 맞닿아 있다.
공예를 호출하는 일도 같은 양면성을 갖는다. 손과 시간, 숙련을 연상시키는 공예는 대량생산 패션이 쉽게 얻기 어려운 깊이를 제공한다. 동시에 공예의 이미지가 브랜드 서사와 상품 가치를 높이는 언어로 사용될 수도 있다.
‘Time After Time’에서 볼 필요가 있는 것은 어느 한쪽의 진위보다 두 시간이 어떻게 공존하는가다. 도자기의 느린 제작 시간은 실루엣과 색의 근거가 되고, 완성된 옷은 다시 FW26이라는 패션의 일정 안에서 판매된다.
회색 상의와 넓은 검은 하의는 장식을 거의 걷어낸 채 비례만 남긴다. 선이 단순해질수록 옷을 새롭게 보이게 하는 요소도 줄어든다. 형태와 소재 자체가 오래 버틸 수 있어야 하는 구성이다.
ADERERROR가 이번 컬렉션에서 제시한 ‘포스트 미니멀’ 역시 단순히 요소를 적게 사용하는 미니멀리즘과 차이가 있다. 표면은 절제돼 있지만 비례는 완전히 안정되지 않는다. 넓은 하의와 어긋난 볼륨, 예상보다 크게 남겨둔 여백이 질서 안에 작은 불균형을 만든다.
새로움을 과도하게 강조하지 않으면서도 완전히 고전적인 형태로 돌아가지 않는 선택이다.
‘Time After Time’이라는 제목은 결국 반복을 포함한다. 한 번 지나가고 끝나는 시간이 아니라 같은 것이 다시 돌아오고, 돌아올 때마다 조금씩 달라지는 시간이다. 계절을 반복하는 패션과 손을 거쳐 형태를 축적해온 공예는 이 지점에서 서로 멀리 떨어져 있으면서도 닮아 있다.
FW26이라는 시즌은 지나가지만 둥근 실루엣과 흙·유약에서 가져온 색, 절제된 표면은 특정 유행의 기호보다 더 오래 사용할 수 있는 디자인 언어를 향한다. ADERERROR가 도자기에서 가져온 것은 전통을 설명하는 장식보다 시간이 사물에 남기는 방식에 가깝다.
계절마다 새로운 옷을 내놓아야 하는 패션이 시간을 견디는 사물을 바라본다는 사실에는 긴장이 남는다. ‘Time After Time’은 그 긴장을 없애지 않는다. 빠르게 바뀌는 산업 안에 오래 남는 형태와 재료의 기억을 끌어들이면서, 새로움의 속도보다 무엇이 반복해서 살아남을 수 있는지를 옷의 언어로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