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acob & Co. 하이워치①] 다이아몬드 54개가 밸런스 휠로…보석시계가 조속기관까지 들어간 순간

21,600vph로 진동하는 밸런스 휠에 브릴리언트 컷 다이아몬드 세팅 플라잉 투르비용·마이크로 로터 갖춘 Caliber JCFA02…72시간 파워리저브 장식의 범위를 케이스에서 무브먼트 핵심 부품으로 확장…기능과 과시의 경계 다시 설정

2026-09-12     임우경 기자

[KtN 임우경기자]하이주얼리 워치에서 보석은 대개 케이스와 베젤, 다이얼을 차지한다. 시계의 기계 구조는 그 안쪽에서 시간을 만들고, 다이아몬드와 사파이어는 바깥에서 가격과 존재감을 높이는 역할을 맡아왔다. Jacob & Co.가 공개한 ‘Brilliant Flying Tourbillon Baguette Pastel Arlequino’는 이 익숙한 구도를 한 단계 더 안쪽으로 밀었다. 시간의 흐름을 조절하는 밸런스 휠에 브릴리언트 컷 화이트 다이아몬드 54개를 직접 세팅했다.

밸런스 휠은 보여주기 위한 부품이 아니라 시간을 일정하게 나누는 조속기관의 핵심에 놓인다. 이번 시계에서는 해당 부품이 시간당 2만1600회(21,600vph) 진동한다. 외부 장식에 머물던 보석이 실제 작동하는 조속기관으로 들어오면서, 다이아몬드는 더 이상 정지된 장식만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사진=Jacob & Co,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다이얼 하단에서는 플라잉 투르비용이 회전하고 그 안에서 다이아몬드를 두른 밸런스 휠이 빠르게 움직인다. 케이스에 고정된 다이아몬드가 빛을 반사하는 방식과 달리, 54개의 다이아몬드는 시계가 작동하는 동안 계속 위치를 바꾼다. 기계의 움직임을 감추는 대신 작동 과정 자체를 시각적 효과로 바꾼 구조다.

Jacob & Co.는 이 밸런스 휠을 현대 시계 제작에서 처음 구현한 다이아몬드 세팅 방식으로 제시했다. 동시에 보석을 조속기관에 적용하면서도 크로노메트릭 성능을 훼손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최초’라는 수식보다 눈여겨볼 부분은 장식 때문에 기계 구조를 단순화한 것이 아니라, 움직이는 핵심 부품 안에 장식을 포함시킨 방식이다.

기계식 시계에서 밸런스 휠은 일정한 진동을 유지해야 한다. 외부에 보석을 더하는 것과 달리 움직이는 부품에 무게를 추가하는 작업은 그 자체로 설계 조건을 늘린다. 다이아몬드가 시계의 정확성을 높이기 때문에 필요한 것은 아니다. 기능적으로 없어도 되는 요소를 넣고도 본래의 작동을 유지하도록 만들어야 한다는 데 이번 작업의 성격이 있다.

이 지점에서 초고가 기계식 시계의 가치 구조도 드러난다. 실용적인 시간 확인만 놓고 보면 복잡한 투르비용이나 보석 세팅 밸런스 휠은 필요하지 않다. 오트 오를로제리(haute horlogerie)는 오래전부터 필요 이상의 정교함과 제작 난도를 가치로 전환해왔다. 어렵게 만들 이유가 없다는 사실이 오히려 얼마나 어렵게 만들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조건이 되는 시장이다.

Jacob & Co.가 밸런스 휠까지 보석 세팅의 대상으로 삼은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읽힌다. 하이주얼리 워치 시장에서 케이스를 다이아몬드로 덮거나 다이얼을 사파이어로 채우는 방식은 이미 하나의 익숙한 문법이 됐다. 차이를 만들려면 더 큰 보석을 쓰거나 수량을 늘리는 것 외에 장식이 들어가는 위치 자체를 바꿔야 한다. 이번 시계는 그 위치를 조속기관까지 밀어 넣었다.

무브먼트는 자동식 Caliber JCFA02다. 마이크로 로터와 플라잉 투르비용을 갖추고 72시간 파워리저브를 제공한다. 무브먼트 브리지에는 브릴리언트 컷 다이아몬드 234개가 세팅됐다. 앞쪽의 밸런스 휠뿐 아니라 뒤쪽의 고정된 브리지까지 보석 세팅이 이어지는 구성이다.

다만 234개의 브리지 다이아몬드와 54개의 밸런스 휠 다이아몬드는 같은 방식으로 읽기 어렵다. 브리지의 보석은 고정된 구조를 장식하지만, 밸런스 휠의 보석은 조속기관의 운동에 포함된다. 수량은 더 적지만 이번 제품의 기술적 성격을 결정하는 쪽은 54개의 다이아몬드에 가깝다.

플라잉 투르비용도 이 구성을 강화한다. 투르비용의 회전과 밸런스 휠의 진동이 전면에서 동시에 드러나면서 시계의 작동이 하나의 시각적 장치로 바뀐다. 기계 구조를 안쪽에 감춘 뒤 보석으로 외관을 완성하는 방식보다, 움직임과 장식을 같은 위치에 겹치는 데 초점을 맞췄다.

42mm 화이트골드 케이스와 다이얼, 크라운, 버클에는 파스텔 사파이어와 화이트 다이아몬드 366개가 인비저블 세팅됐다. 라벤더와 핑크, 그린, 블루 계열을 부드럽게 섞기보다 서로 대비되도록 배치했다. 이탈리아 코메디아 델라르테(commedia dell’arte)의 아를레키노(Arlecchino) 의상에서 가져온 다색 구성이 외부를 채우고, 중앙과 하단에서는 투르비용과 조속기관이 움직인다.

외부의 색채가 강한 만큼 내부 기계까지 보석으로 채운 선택은 절제와 거리가 있다. Jacob & Co.는 이번 시계에서 보석과 복잡기계를 서로 보완하는 요소로 두기보다 한정된 공간 안에 동시에 밀어 넣었다. 수백 개의 사파이어, 다이아몬드 브리지, 플라잉 투르비용, 다이아몬드 밸런스 휠이 한 제품에 겹친다.

11.61mm 두께 안에 이런 요소를 집중시킨 점도 눈에 띈다. 시각적 밀도는 높지만 제품의 존재감을 단순히 케이스 크기와 두께로만 키우지 않았다. 보석의 수량과 색, 무브먼트의 움직임을 한꺼번에 드러내는 방식으로 밀도를 높였다.

가격은 69만3000달러다. 단 한 점만 제작되는 피에스 유니크(pièce unique)다. 가격을 보석 수량만으로 설명하기는 어렵다. 366개의 외부 보석과 234개의 브리지 다이아몬드, 54개의 밸런스 휠 다이아몬드에 플라잉 투르비용과 마이크로 로터가 결합됐고, 한 점만 제작된다는 희소성이 더해졌다.

초고가 시계에서 ‘필요 이상의 제작’은 낭비와 가치 사이에 놓인다. 효율만 따지면 제거할 수 있는 요소를 얼마나 정교하게 구현했는지가 오히려 차별화의 근거가 된다. 밸런스 휠의 다이아몬드 54개도 그 구조 안에 있다. 정확성을 높이기 위해 필요한 장치는 아니지만, 정확성을 담당하는 부품에 보석을 넣고도 작동을 유지하는 데 제작의 난도가 생긴다.

Brilliant Flying Tourbillon Baguette Pastel Arlequino가 흥미로운 이유는 다이아몬드가 많아서가 아니다. 하이주얼리 워치가 장식할 수 있는 범위를 어디까지 넓힐 것인지에 대한 답을 가장 민감한 기계 부품 가운데 하나에서 찾았기 때문이다.

69만3000달러짜리 시계의 중심에는 가장 큰 보석이 아니라 시간당 2만1600회 움직이는 작은 밸런스 휠이 있다. 54개의 다이아몬드가 보여주는 것은 화려함 자체보다 오늘날 초고가 기계식 시계가 기술을 사용하는 방식이다. 성능에 필요한 최소한을 향하기보다, 기능을 유지한 채 얼마나 불필요하고 어려운 것을 가능하게 만들 수 있는지가 하나의 가치가 된 시장의 단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