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acob & Co. 하이워치②] 366개 보석, 섞지 않고 맞붙였다…파스텔로 만든 ‘색의 긴장’

라벤더·핑크·그린·블루를 그라데이션 대신 대비로 배치 42mm 화이트골드 케이스·다이얼·크라운·버클까지 인비저블 세팅 아를레키노 의상에서 가져온 다색 구성…희귀한 중심석보다 배열과 반복에 무게

2026-09-13     임우경 기자

[KtN 임우경기자]파스텔은 보통 색의 충돌을 낮추는 데 쓰인다. 채도를 누르고 밝기를 높여 여러 색을 한데 놓아도 부드럽게 이어지도록 만드는 방식이다. Jacob & Co.의 ‘Brilliant Flying Tourbillon Baguette Pastel Arlequino’는 같은 파스텔을 사용하면서 정반대의 결과를 택했다. 라벤더와 핑크, 그린, 블루를 자연스럽게 섞지 않고 서로 맞붙여 색 사이의 경계를 남겼다.

42mm 화이트골드 케이스와 다이얼, 크라운, 버클에는 파스텔 사파이어와 화이트 다이아몬드 366개가 인비저블 세팅됐다. 한두 개의 큰 원석으로 시선을 모으기보다 작은 보석을 반복해 시계 표면 대부분을 색으로 채운다. 개별 보석의 크기보다 어떤 색을 어디에 놓았는지가 전체 인상을 좌우하는 구성이다.

사진=Jacob & Co,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라벤더 다음에 비슷한 보라색을 놓거나 블루에서 그린으로 천천히 이동하는 그라데이션은 사용하지 않았다. 핑크 옆에 그린이 붙고, 라벤더와 블루가 짧은 간격으로 교차한다. 색은 서로 녹아들지 않고 각자의 영역을 유지한다. 낮은 채도의 보석을 사용했지만 시계가 조용해 보이지 않는 이유다.

색 구성은 이탈리아 코메디아 델라르테(commedia dell’arte)의 아를레키노(Arlecchino) 의상에서 가져왔다. 여러 색과 형태가 이어지는 복식을 그대로 옮기기보다, 서로 다른 색을 한 표면에 병치하는 방식을 시계의 보석 배열에 적용했다. 파스텔 사파이어가 부드러운 분위기를 만들고, 색의 배치는 오히려 불규칙한 긴장을 남긴다.

하이주얼리에서 보석을 강조하는 가장 직접적인 방법은 큰 중심석을 세우는 것이다. 크기와 희귀성이 분명한 한 점의 원석을 중앙에 두면 나머지 보석은 그 가치를 보조하는 역할을 맡는다. 이번 시계에는 그런 명확한 중심이 없다. 수백 개의 작은 색면이 케이스와 다이얼을 가로지르면서 시선이 특정 보석에 오래 머물지 않는다.

이 차이는 화려함을 만드는 방식까지 바꾼다. 하나의 큰 보석이 권위를 만드는 구조에서는 크기와 희소성이 먼저 읽힌다. 작은 보석을 반복하는 방식에서는 수량과 배열, 색 사이의 간격이 중요해진다. Pastel Arlequino의 시각적 밀도는 원석 한 점의 압도적인 크기보다 서로 다른 색이 계속 이어지는 데서 생긴다.

인비저블 세팅은 이런 구성을 뒷받침한다. 보석을 잡아주는 금속이 전면에서 크게 드러나지 않기 때문에 화이트골드 케이스 자체보다 사파이어와 다이아몬드가 먼저 보인다. 금속 틀 안에 보석을 하나씩 올린다는 인상보다 보석으로 시계의 표면을 새로 만든 것에 가깝다.

화이트골드를 선택한 것도 다색 배열과 연결된다. 따뜻한 금빛을 강하게 드러내지 않는 바탕 위에 라벤더와 핑크, 그린, 블루를 놓으면서 특정 색군에 무게가 쏠리는 것을 줄였다. 케이스의 금속색을 전면에 세우기보다 여러 색의 사파이어가 동시에 드러나는 구조다.

이 시계가 흥미로운 대목은 파스텔과 과잉이 함께 존재한다는 데 있다. 색만 보면 부드럽지만 사용 방식은 절제와 거리가 멀다. 케이스에서 다이얼, 크라운, 버클까지 366개의 보석을 이어 붙였고, 한 색으로 통일하지 않은 채 여러 색을 짧은 간격으로 반복한다.

시계 중앙과 하단에서는 전혀 다른 시각 언어가 들어온다. 파스텔 사파이어가 외곽을 채우는 사이 플라잉 투르비용과 밸런스 휠의 기계 구조가 그대로 노출된다. 다이얼 전체를 보석으로 막아버리지 않고 일부를 열어둔 덕분에 색과 금속, 정지된 표면과 움직이는 부품이 한 시계 안에서 동시에 보인다.

1편에서 중심이 됐던 다이아몬드 세팅 밸런스 휠과도 여기서 성격이 갈린다. 54개의 다이아몬드가 기계 운동에 포함돼 있다면, 외부의 366개 보석은 시계의 표정을 결정한다. 안쪽에서는 움직임이 시선을 끌고, 바깥에서는 색의 반복이 시각적 밀도를 만든다.

11.61mm 두께 역시 단순한 제원 이상의 역할을 한다. 수백 개의 보석과 플라잉 투르비용, 자동식 무브먼트를 한 케이스에 넣었지만 시계의 존재감을 두께만으로 키우지는 않았다. 대신 정면에서 보이는 색의 수와 세팅 면적을 늘려 부피와 다른 방식으로 강한 인상을 만든다.

이런 구성에서는 보석의 개수만 세는 것으로 디자인을 설명하기 어렵다. 같은 366개의 보석이라도 한 색으로 정렬하거나 일정한 그라데이션을 만들었다면 전혀 다른 시계가 됐을 가능성이 크다. 라벤더와 핑크를 어느 정도 배치하고, 그 사이에 그린과 블루를 얼마나 자주 끼워 넣느냐가 최종적인 표면을 결정한다.

보석을 다루는 방식도 재료의 가치와 조형의 가치로 나뉜다. 사파이어와 다이아몬드의 가격은 원석의 품질과 크기에서 출발하지만, 완성된 시계에서 소비자가 접하는 것은 원석 각각의 가격표가 아니다. 42mm 안에서 어떤 색을 반복하고 끊어냈는지, 금속을 얼마나 감췄는지, 기계 구조를 어느 정도 노출했는지가 하나의 인상을 만든다.

69만3000달러라는 가격과 단 한 점만 제작되는 피에스 유니크(pièce unique)라는 조건도 이 시계를 일반적인 다색 보석 시계와 구분한다. 동일한 색 배열을 반복 생산하는 컬렉션이 아니라 한 점에 특정한 조합을 집중시킨 구조다. 희소성은 제작 수량뿐 아니라 같은 배열이 다시 반복되지 않는다는 조건과도 맞물린다.

다만 가격을 366개의 보석만으로 설명할 수는 없다. Caliber JCFA02, 플라잉 투르비용, 마이크로 로터, 다이아몬드 세팅 밸런스 휠이 같은 제품에 들어가 있기 때문이다. 보석의 재료 가치와 기계 제작의 난도, 한 점만 생산되는 조건이 하나의 가격 안에 묶여 있다.

그래서 두 번째 편에서 볼 부분은 ‘얼마나 많은 보석을 넣었는가’보다 ‘어떻게 보이도록 만들었는가’에 가깝다. Jacob & Co.는 한 개의 거대한 중심석 대신 작은 색을 반복하고, 파스텔을 사용하면서도 색 사이의 충돌을 지우지 않았다.

라벤더와 핑크, 그린, 블루는 서로 섞이지 않은 채 42mm 원형 안에서 계속 자리를 바꾼다. 보석의 크기로 시선을 압도하기보다 배열과 대비로 시계를 기억하게 만드는 방식이다. Pastel Arlequino의 화려함은 가장 비싼 한 점의 원석이 아니라, 366개의 보석 사이에 남겨둔 색의 간격에서 만들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