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정확함 이후의 시계…54개 다이아몬드가 보여준 하이워치의 가치 문법

21,600vph 밸런스 휠에 다이아몬드 54개…정확성을 위한 기계에 장식을 더한 역설 366개 외부 보석·234개 브리지 다이아몬드·플라잉 투르비용…기능보다 제작의 밀도로 이동한 가치 단 한 점에 69만3000달러…대량생산의 시대에 ‘반복하지 않음’을 상품으로 만든 피에스 유니크

2026-09-13     임우경 기자

[KtN 임우경기자]시간당 2만1600회 진동하는 작은 밸런스 휠 위에 다이아몬드 54개가 놓였다. 시간을 일정하게 나누기 위해 움직이는 조속기관에 기능상 필요하지 않은 무게를 일부러 더한 셈이다. Jacob & Co.가 만든 ‘Brilliant Flying Tourbillon Baguette Pastel Arlequino’의 흥미로운 대목은 69만3000달러라는 가격보다 여기에서 시작된다. 현대의 초고가 기계식 시계가 기술을 사용하는 방식이 이 작은 부품 안에 압축돼 있다.

기계식 시계의 역사는 오랫동안 오차와 싸워온 역사였다. 일정한 진동을 확보하고, 마찰을 줄이고, 동력을 안정적으로 전달하면서 제한된 공간 안에 더 정교한 구조를 넣어왔다. 밸런스 휠은 그 과정에서도 정확성과 직접 맞닿아 있는 부품이다. 그런데 Pastel Arlequino는 바로 이곳에 브릴리언트 컷 화이트 다이아몬드 54개를 세팅했다.

Jacob & Co.는 이를 현대 시계 제작에서 처음 선보이는 다이아몬드 세팅 밸런스 휠이라고 설명한다. 더 중요한 사실은 다이아몬드가 정확성을 높여주는 부품이 아니라는 데 있다. 오히려 움직이는 조속기관에 새로운 질량과 제작 조건을 더한다. 없어도 작동하는 요소를 굳이 넣고, 그 요소가 들어간 상태에서도 본래의 운동을 유지하도록 다시 정교하게 조정해야 한다.

여기에는 현대 하이워치의 독특한 역설이 있다. 기술은 일반적으로 불필요한 것을 제거하면서 발전한다. 더 적은 부품으로 같은 성능을 내고, 같은 제품을 더 빠르고 안정적으로 생산하는 것이 산업의 효율이다. 초고가 기계식 시계에서는 때때로 반대 방향으로 간다. 없어도 되는 요소를 더하고, 만들기 어려운 조건을 스스로 만든 뒤, 그 난도를 다시 기술로 해결한다.

사진=Jacob & Co,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Pastel Arlequino의 다이얼 하단에서는 플라잉 투르비용이 회전하고 다이아몬드를 두른 밸런스 휠이 그 안에서 진동한다. 보석은 더 이상 기계를 둘러싼 장식으로만 머물지 않는다. 시간의 흐름을 조절하는 운동 속에 들어간다. 장식과 기능을 각각 다른 영역에 두었던 전통적인 구분이 작은 조속기관 안에서 겹쳐진다.

이 변화는 시계가 맡아온 역할의 변화와도 맞닿는다. 오늘날 정확한 시간을 아는 일은 더 이상 고도의 기계 장치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스마트폰과 전자시계가 훨씬 적은 비용으로 더 정확한 시간을 제공한다. 기계식 시계가 수십만달러의 가격을 유지하려면 ‘시간을 정확히 보여준다’는 기능 바깥에서 새로운 이유를 만들어야 한다.

오트 오를로제리(haute horlogerie)가 선택한 답 가운데 하나가 제작의 난도다. 시간 표시라는 결과가 아니라 그 결과에 도달하는 과정이 가치가 된다. 얼마나 많은 부품을 정교하게 움직이는지, 얼마나 좁은 공간 안에 복잡한 구조를 넣었는지, 다른 제작자가 쉽게 반복하기 어려운 공정을 구현했는지가 가격을 설명한다.

Pastel Arlequino는 이 논리를 보석 공예까지 확장한다. 42mm 화이트골드 케이스와 다이얼, 크라운, 버클에는 파스텔 사파이어와 화이트 다이아몬드 366개가 인비저블 세팅됐다. 라벤더와 핑크, 그린, 블루는 자연스러운 그라데이션을 이루지 않는다. 서로 다른 색이 바로 맞붙으면서 부드러운 파스텔 안에 의도적인 충돌을 남긴다.

색의 출발점은 이탈리아 코메디아 델라르테(commedia dell’arte)의 아를레키노(Arlecchino) 의상이다. 여러 색의 조각이 한 옷 안에서 병치되는 방식처럼 사파이어도 한 가지 색으로 통일되지 않는다. 한 점의 큰 중심석을 세우기보다 작은 색면 수백 개를 반복해 시계 전체를 하나의 표면으로 만든다.

하이주얼리의 전통적인 가치 기준과도 미묘하게 어긋난다. 큰 다이아몬드나 희귀한 유색 보석 한 점이 제품의 중심이 되는 방식에서는 원석의 크기와 희소성이 권위를 만든다. Pastel Arlequino는 개별 원석보다 배열에 무게를 둔다. 어떤 색을 어느 위치에 놓고, 어느 색 옆에 어떤 색을 붙이는지가 완성된 인상을 결정한다.

무브먼트 안에서는 또 다른 밀도가 만들어진다. 자동식 Caliber JCFA02에는 마이크로 로터와 플라잉 투르비용이 들어가며 파워리저브는 72시간이다. 브리지에는 브릴리언트 컷 다이아몬드 234개가 세팅됐다. 고정된 브리지의 다이아몬드와 진동하는 밸런스 휠의 다이아몬드는 같은 보석이면서 전혀 다른 역할을 맡는다.

11.61mm 두께 안에는 화이트골드와 사파이어, 다이아몬드, 플라잉 투르비용, 마이크로 로터가 겹친다. 제작 요소가 서로 독립적으로 존재하지 않고 한정된 부피 안으로 밀려 들어온다. 밖에서는 색이 반복되고 안에서는 회전과 진동이 이어진다. 시계의 가치는 점점 ‘무엇을 할 수 있는가’보다 ‘얼마나 많은 것을 동시에 감당할 수 있는가’로 이동한다.

69만3000달러라는 가격도 이 구조 안에서 읽어야 한다. 외부의 366개 보석과 브리지의 다이아몬드 234개, 밸런스 휠의 54개 다이아몬드를 단순히 더한다고 가격의 이유가 나오지는 않는다. 화이트골드라는 재료와 보석 세공, 복잡기계식 무브먼트, 움직이는 조속기관에 적용한 세팅, 한 점만 제작한다는 조건이 함께 묶여 있다.

피에스 유니크(pièce unique)는 산업사회가 만들어온 생산 논리와 정반대편에 서 있다. 제조업은 같은 제품을 안정적으로 반복할수록 강해진다. 설계를 표준화하고 공정을 단축하며 규모를 키우면 생산비가 낮아진다. 피에스 유니크는 반복하지 않는 데서 가치를 만든다. 한 번 만들고 멈추는 비효율이 희소성으로 전환된다.

이 지점에서 ‘단 한 점’은 수량보다 더 큰 의미를 갖는다. 동일한 모델이 여럿 존재하면 가격을 비교할 기준이 생긴다. 거래 기록이 쌓이고 시장은 어느 정도 공통된 가격대를 만든다. 하나밖에 존재하지 않는 물건은 비교의 기준부터 희미해진다. 시장에서 희소성은 공급의 부족을 넘어 비교 가능성의 부족으로까지 확장된다.

럭셔리 산업은 오래전부터 이런 희소성을 다뤄왔다. 손으로 오래 작업했다는 사실, 많이 만들기 어렵다는 조건, 동일한 결과를 쉽게 반복할 수 없다는 특징이 효율의 결핍이 아니라 가치의 근거가 된다. 산업에서는 결함이 될 수 있는 비효율이 사치품에서는 장인의 시간과 희소성을 증명한다.

Pastel Arlequino는 이 역설을 극단적으로 밀어붙인다. 시간을 확인하는 데 플라잉 투르비용은 필수가 아니다. 케이스에 366개의 보석을 넣을 이유도 기능에서는 찾기 어렵다. 밸런스 휠에 54개의 다이아몬드를 세팅할 필요 역시 정확성에서 나오지 않는다. 그런데 바로 그 불필요한 선택들이 모여 69만3000달러짜리 한 점의 물건을 만든다.

‘불필요하다’는 말은 여기서 ‘가치가 없다’는 뜻과 다르다. 인간은 오래전부터 필요를 넘어선 곳에서 미술과 공예, 장식과 의례를 만들어왔다. 생존에 꼭 필요하지 않은 것을 만들고, 쓰임을 넘어선 형태에 시간과 노동을 투입하며 문화의 층을 쌓았다. 사치품 역시 이 오래된 인간의 욕망에서 완전히 분리되지 않는다.

다만 현대의 하이워치는 그 욕망을 정밀공학과 결합한다. 장식은 단순히 아름다운 표면으로 끝나지 않고 기계 안으로 들어가며, 제작자는 불필요함을 가능하게 만들기 위해 고도의 기술을 사용한다. 쓸모와 아름다움이 충돌하는 것이 아니라, 쓸모를 넘어선 아름다움을 유지하기 위해 기능이 더 정교해지는 구조다.

그래서 Pastel Arlequino를 단순한 ‘보석 시계’라고 부르면 중요한 부분이 빠진다. 이 시계의 성격을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은 케이스를 덮은 수백 개의 사파이어보다 밸런스 휠의 54개 다이아몬드다. 정확성을 담당하는 부품에 정확성과 무관한 장식을 집어넣고, 다시 정확하게 작동하도록 만든 모순 때문이다.

현대의 고급 기계식 시계는 더 이상 시간을 독점하지 못한다. 누구나 정확한 시간을 갖게 된 뒤 시계가 경쟁해야 할 곳은 정확성의 바깥으로 밀려났다. 제작의 난도, 희소성, 조형, 역사와 이야기가 그 빈자리를 채운다. 기술은 시간을 더 정확하게 재기 위해서만 존재하지 않고, 시간이라는 오래된 기능에 새로운 의미를 붙이는 데 사용된다.

69만3000달러짜리 시계 안에서 가장 흥미로운 것은 결국 시간과 돈의 관계다. 산업은 시간을 줄여 비용을 낮추지만 럭셔리는 시간을 더 투입해 가격을 높인다. 제조업은 반복을 통해 효율을 만들지만 피에스 유니크는 반복을 멈춰 희소성을 만든다. 기술은 불필요한 것을 제거하지만 하이워치는 불필요한 것을 정교하게 유지하기 위해 기술을 사용한다.

시간당 2만1600회 진동하는 밸런스 휠 위의 다이아몬드 54개는 이 역설을 작은 원 안에 담고 있다. 정확함이 누구에게나 주어진 시대, 초고가 기계식 시계가 파는 것은 더 정확한 시간이 아니다. 시간을 만드는 기계에 얼마나 많은 인간의 기술과 노동, 장식과 희소성을 겹쳐 놓을 수 있는지에 대한 하나의 극단적인 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