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바이오헬스 재편③] 관세보다 무거워진 ‘미국 안에서 만들라’…한국 제약의 시장 접근 공식 바뀐다
특허의약품 최대 100% 관세, 한국 15% 우대세율…바이오시밀러·제네릭은 당분간 면제 온쇼어링 약속만 하면 20%, MFN까지 체결하면 0%…가격과 생산기지가 관세율 결정 IVD 긴급사용승인 12월 종료…허가·임상·데이터까지 미국 규제체계 안에서 다시 연결
[KtN 김 규운기자]미국에서 의약품을 판매하는 비용이 달라지고 있다. 제품을 미국 식품의약국(FDA)에서 허가받고 한국에서 생산해 수출하는 기존 공식만으로는 시장 접근 조건을 설명하기 어려워졌다. 약값을 어떤 수준으로 책정하는지, 미국 안에 생산기반을 두는지, 새로운 임상·비임상 규제를 얼마나 빨리 받아들이는지가 관세와 시장 접근에 함께 영향을 미치는 구조가 만들어지고 있다.
미국은 2026년 4월 무역법 232조를 근거로 특허의약품에 최대 100% 관세를 부과하는 체계를 도입했다. 한국에는 15% 우대세율이 적용됐고 국내 기업의 주력 수출품 가운데 바이오시밀러와 제네릭의약품은 당분간 면제 대상에 포함됐다. 단기적으로 한국 기업의 직접적인 관세 부담은 제한됐지만 제네릭 면제는 고정된 조건이 아니다. 미국 상무부는 2027년 4월까지 추가 관세 필요성을 다시 검토하도록 돼 있다.
관세율을 가르는 기준도 단순한 원산지를 넘어섰다. 미국 내 생산시설과 공급망을 구축하는 온쇼어링(Onshoring)을 약속한 기업에는 20%, 최혜국 대우(Most Favored Nation·MFN) 약가 협약까지 체결한 기업에는 0%의 관세율을 적용하는 구조가 제시됐다. 가격정책에 참여하고 미국 생산기반까지 갖춘 기업에 더 유리한 조건을 주는 방식이다.
한국 제약·바이오기업이 미국을 바라보는 계산법도 여기서 달라진다. 지금까지 대미 사업에서는 FDA 허가와 임상 성공, 현지 영업망 확보가 중요한 관문이었다. 앞으로는 생산시설의 위치와 약가정책 참여 여부까지 시장 진입 비용을 결정하는 변수로 들어온다.
가격과 생산이 연결되는 흐름은 이미 대형 글로벌 제약사에서 나타나고 있다. 2026년 8월 기준 MFN 협약에 참여한 제약사는 26곳으로 늘었고, 이들이 차지하는 미국 브랜드 의약품 시장 비중은 약 89%에 이른다. 대형 제약사가 미국에 약속한 연구개발·생산시설 투자 규모도 1500억달러를 넘어섰다.
MFN 참여 기업에는 처방의약품 관세를 최대 3년간 면제하는 유인도 결합됐다. 약값을 낮추는 기업에 관세 혜택을 제공하고, 생산시설 투자까지 미국 안으로 유도하는 구조다. 제약사의 가격협상과 통상정책, 공장 투자 결정이 더 이상 서로 떨어진 사안이 아니게 됐다.
한국 기업에는 이 연결 구조가 더 큰 의미를 갖는다. 미국에 생산시설이 없는 기업은 제품 가격과 물류비뿐 아니라 관세까지 고려해야 한다. 반면 미국 생산기반을 갖춘 기업은 시장 접근 조건에서 다른 위치에 설 수 있다. 공장을 어디에 둘 것인지가 제조원가만의 문제가 아니라 미국 시장에서 지불해야 하는 비용의 일부로 바뀌는 셈이다.
바이오시밀러도 같은 흐름 밖에 있지 않다. 당장은 관세 면제 대상이지만 미국 시장에서 바이오시밀러 경쟁이 가격을 중심으로 움직인다는 점을 감안하면 관세가 붙는 순간 비용 구조가 달라질 수 있다. 생산비와 개발비를 줄여 가격 경쟁력을 확보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고, 어느 지역에서 생산하느냐가 수출가격과 수익성에 직접 영향을 줄 수 있는 구조다.
제네릭의약품은 시점이 더 구체적이다. 미국 상무부가 2027년 4월까지 추가 관세 필요성을 다시 검토하도록 돼 있어 면제 상태가 그대로 유지된다고 전제하기 어렵다. 한국에서 생산한 제품을 미국으로 보내는 방식과 미국 안에서 직접 생산하는 방식 사이의 비용 차이는 관세정책에 따라 더 벌어질 수 있다.
미국 시장의 변화는 공장에만 머물지 않는다. 연구개발 단계에서도 미국 규제체계가 새로운 기준을 만들고 있다. FDA는 단일클론항체를 시작으로 동물시험을 신접근법(New Approach Methods·NAMs)으로 단계적으로 전환하고, AI 기반 독성예측 모델과 오가노이드 데이터를 임상시험계획(IND) 신청 단계부터 활용할 수 있도록 했다.
동물시험을 많이 수행했다는 사실만으로 미국의 비임상 규제에 대응하던 방식도 달라질 수밖에 없다. AI 모델과 인간 세포·조직 기반 데이터가 공식적인 규제 판단에 들어오면서 미국 허가를 목표로 하는 기업은 연구개발 초기부터 어떤 형태의 데이터를 생산할 것인지 결정해야 한다.
초기 임상도 같은 방향으로 움직인다. HHS가 도입한 ‘오퍼레이션 트라이얼 블레이저(Operation Trial Blazer)’는 IND 신청부터 임상 1상 개시까지 준비기간을 6~12개월 단축하는 프로그램을 포함한다. FDA와 국립보건원(NIH), 보건첨단연구계획국(ARPA-H)이 함께 참여한다.
한국 기업 입장에서는 미국에서 임상을 얼마나 빨리 시작할 수 있느냐가 자본 효율과 직결된다. 미국 기업이나 미국 규제체계에 일찍 적응한 글로벌 기업이 임상 진입 시간을 줄이는 동안 기존 절차에 맞춘 자료를 뒤늦게 다시 만드는 기업은 시간과 비용을 더 부담하게 된다.
데이터 인프라에서도 차이가 벌어지고 있다. 미국의 전국 단위 보건의료 정보교환 체계인 TEFCA를 통한 데이터 교환 건수는 1년 사이 1000만건에서 10억건 이상으로 늘었다. 전자건강기록과 실사용데이터가 병원과 보험자 사이에서 더 넓게 이동하면서 신약 개발과 임상, 시판 이후 데이터의 연결 기반도 커졌다.
미국 시장에서 경쟁한다는 의미가 제품을 수출하는 데서 끝나지 않는 이유다. 미국이 요구하는 비임상시험 방식으로 근거를 만들고, 미국 임상체계에 맞춰 개발속도를 높이고, 미국 의료데이터를 활용하며, 필요할 경우 미국 안에서 생산하는 방식까지 하나의 사업전략으로 연결되고 있다.
의료기기 분야에는 더 가까운 변화가 예정돼 있다. 코로나19 기간 적용됐던 체외진단기기(In Vitro Diagnostics Device·IVD) 긴급사용승인(Emergency Use Authorization·EUA)은 2026년 12월 26일 종료될 예정이다. 긴급사용승인으로 미국 시장에 들어간 진단제품은 정식 허가체계 안에서 다시 사업 기반을 갖춰야 한다.
국내 기업의 조직 운영 방식에도 변화가 필요해지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통상 부문이 관세만 보고, 연구개발 조직이 FDA 허가만 보고, 생산부문이 공장 원가만 따지는 방식으로는 미국 정책의 연결 구조를 따라가기 어렵다. 약가협약 참여 여부가 관세에 영향을 주고, 생산기지의 위치가 시장 접근 비용을 바꾸며, 비임상 데이터의 형태가 임상 진입 속도를 좌우하기 때문이다.
미국 바이오헬스 시장에서 ‘현지화’의 의미도 공장 건설보다 넓어졌다. 제조시설을 미국에 두는 물리적인 온쇼어링과 함께 가격정책, 임상시험, 데이터 규칙까지 미국 체계에 맞추는 제도적 현지화가 동시에 진행되고 있다.
한국의 바이오시밀러와 제네릭이 당장 관세 면제를 받고 있다는 사실은 시간을 벌어준다. 그러나 미국이 특허의약품에 높은 관세를 적용하고, 온쇼어링과 MFN 참여 정도에 따라 관세율을 차등화한 구조 자체는 미국 시장의 방향을 보여준다. 수출만으로 시장을 공략하는 기업과 생산·가격·연구개발까지 미국 안에 연결한 기업의 조건이 점차 달라질 수 있는 구조다.
국내 제약사의 미국 진출 전략도 제품 단위에서 기업 구조 단위로 넓어질 수밖에 없다. 어떤 후보물질을 미국에서 개발할지뿐 아니라 어느 시점에 현지 임상을 시작하고, 어떤 데이터를 확보하며, 생산시설을 어느 지역에 배치할 것인지가 하나의 의사결정 체계 안에 들어와야 한다.
미국이 요구하는 것은 단순한 현지 공장 한 곳이 아니다. 낮아진 약가체계에 참여하고, 새로운 규제과학을 받아들이며, 의료데이터를 연결하고, 공급망 일부를 미국 안에 남기는 기업에 더 유리한 시장조건을 주는 방향이다.
세계 최대 바이오헬스 시장의 힘도 여기에서 달라진다. 미국은 제품을 사주는 시장에 머물지 않고 어떤 가격으로 팔고, 어떤 방식으로 개발하며, 어디에서 생산할 것인지까지 기업의 선택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한국 제약·바이오기업이 마주한 변화도 관세 15%나 100%라는 숫자만으로 설명하기 어렵다. 바이오시밀러와 제네릭의 면제 뒤에는 2027년 재검토가 놓여 있고, 임상과 데이터에서는 이미 새로운 규칙이 움직이고 있다. 미국 시장에 들어가는 비용은 국경에서 부과되는 관세보다 훨씬 앞단에서 결정되기 시작했다. 연구실의 데이터, 임상 시작 시점, 약가 협상, 공장 위치가 함께 미국 시장 접근의 조건으로 바뀌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