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창호, 영화와 인생②] 다섯 살 무렵 기억한 ‘길’의 선율…배우를 꿈꾼 영화광 소년
어머니와 찾은 대한극장서 만난 ‘셰인’·‘피터 팬’·‘길’…1972년 대학 연극 ‘깨어진 항아리’로 이어진 배우의 꿈
[KtN 임우경 · 박준식기자]1958년 서울 충무로에 문을 연 대한극장은 1900여 석의 객석과 대형 스크린을 갖춘 당대 최대 규모의 영화관이었다. 붉은 카펫과 커튼, 천장에서 빛나던 샹들리에, 푹신한 의자는 전쟁의 흔적이 남아 있던 서울의 일상과 다른 세계를 만들었다. 개관 무렵 대한극장을 찾은 다섯 살 배창호의 기억에는 영화 내용보다 극장의 색과 냄새가 먼저 남았다.
“객석으로 들어가는 곳에 붉은 카펫이 깔려 있었고 샹들리에도 있었어요. 어디선가 고소한 냄새가 났는데 처음 맡아보는 과자 냄새였습니다.”
붉은 통에서 쏟아져 나오던 과자는 팝콘이었다. 배창호 감독은 당시 한국에서 팝콘을 파는 영화관이 대한극장뿐이었다고 기억했다. 흑백의 도시를 지나 극장에 들어온 어린아이에게 팝콘을 먹으며 바라본 대형 스크린은 현실과 완전히 다른 공간이었다.
2024년 9월 대한극장은 개관 66년 만에 영업을 끝냈다. 대형 단관극장으로 출발해 멀티플렉스로 전환했던 충무로의 영화관은 영화 관람 방식의 변화 속에서 문을 닫았다. 극장이 사라진 뒤에도 배창호 감독의 기억에는 붉은 카펫과 팝콘 냄새, 불이 꺼진 뒤 열리던 스크린의 세계가 남아 있다.
배창호 감독이 어린 시절부터 영화를 가까이한 데에는 어머니의 영향이 컸다. 어머니가 영화를 좋아해 어린 자녀를 데리고 자주 극장을 찾았다. 배 감독은 어머니에게 전해 들은 일화를 꺼냈다.
“어머니가 영화광이셔서 저는 배 속에 있을 때부터 극장에 다녔을 겁니다. 말을 할 때부터 극장에 갈 때마다 ‘엄마, 두 번 봐. 두 번 봐’라고 했대요. 한 번 보고 나면 제가 먼저 가자고 했다고 합니다.”
영화감독이라는 직업을 알기 전이었다. 스크린 속 인물이 되어 그 세계에서 살고 싶다는 생각이 먼저 찾아왔다. 감독이나 촬영, 편집의 역할은 몰랐지만 배우의 얼굴과 몸짓, 음악이 만들어내는 감정은 어린 배창호를 객석에 붙잡아 놓았다.
기억에 남은 첫 번째 영화는 조지 스티븐스(George Stevens) 감독의 미국 서부극 ‘셰인’(1953)이었다. 앨런 래드(Alan Ladd)가 연기한 총잡이 셰인은 힘없는 농부 가족이 악당들에게 맞설 수 있도록 돕고 마을을 떠난다. 소년 조이가 말을 타고 멀어지는 셰인을 부르며 뒤쫓는 마지막 대목은 어린 배창호를 울게 했다.
셰인은 농부인 아버지보다 강했고 총을 잘 쐈으며 악당을 물리쳤다. 어린 배창호는 셰인이 차고 있던 총집과 비슷한 장난감까지 만들어 달라고 부모를 졸랐다. 영화 속 영웅과 자신을 겹쳐 보는 경험이었다.
세월이 흐른 뒤 ‘셰인’을 바라보는 시선은 달라졌다. 셰인이 소년에게 총 쏘는 법을 가르치는 대목이 마음에 걸렸다. 총을 잡으면 불행해질 수 있다고 가르쳤다면 어땠을지 생각했다. 멋진 영웅을 앞세운 영화가 폭력을 동경하게 만들 수도 있다는 사실을 감독이 된 뒤 다시 읽어냈다.
배창호 감독에게 영화는 삶을 배우는 통로였지만 언제나 좋은 영향만 남기는 예술은 아니었다. 영웅의 승리와 화려한 삶을 반복해서 보다 보면 현실에서 얻기 어려운 욕망을 스크린으로 대신 채우게 된다. 영화가 인간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예술인 동시에 값싸게 꿈을 판매하는 상품이 될 수 있다는 인식도 어린 시절의 관람 경험에서 출발했다.
“영화를 통해 어린 나이부터 인생을 대리 경험했습니다. 영화는 인생의 교습소라고 할 수 있었어요. 용서와 희생 같은 인간의 덕목도 영화에서 배웠지만, 영화가 주는 환상을 깨는 데에는 시간이 걸렸습니다.”
두 번째 기억은 클라이드 제로니미(Clyde Geronimi), 윌프리드 잭슨(Wilfred Jackson), 해밀턴 러스크(Hamilton Luske)가 공동 연출한 월트 디즈니 애니메이션 ‘피터 팬’(1953)이다. 팝콘을 먹으며 만난 네버랜드와 날아다니는 아이들의 모험은 현실의 시간과 중력을 벗어난 세계였다.
환상은 어린 관객의 상상력을 넓혔지만, 현실로 돌아오지 못할 만큼 깊이 빠질 수도 있었다. 배창호 감독은 부모가 아이를 영화의 환상에만 머물게 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도 함께 말했다. ‘셰인’의 영웅과 ‘피터 팬’의 모험은 영화가 어린 관객에게 얼마나 강한 영향을 미치는지를 처음 경험하게 한 작품들이었다.
세 번째 영화는 페데리코 펠리니(Federico Fellini) 감독의 이탈리아 영화 ‘길’(La Strada·1954)이었다. 다섯 살 무렵 본 흑백영화의 구체적인 내용은 거의 남아 있지 않았다. 대신 니노 로타(Nino Rota)가 작곡한 주제 선율이 꿈처럼 기억에 머물렀다.
‘길’은 차력사 잠파노와 젤소미나가 떠돌며 공연하는 여정을 담았다. 앤서니 퀸(Anthony Quinn)이 잠파노를, 펠리니 감독의 아내 줄리에타 마시나(Giulietta Masina)가 젤소미나를 연기했다. 거칠고 폭력적인 잠파노와 순진하고 외로운 젤소미나의 관계, 길 위에서 만나는 사람들의 고독이 니노 로타의 음악과 함께 흘렀다.
“영화 내용은 기억나지 않고 꿈을 꾼 것처럼 몇몇 모습과 주제 음악만 남아 있었어요. 나중에 찾아보니 펠리니 감독의 ‘길’이었습니다. 그런 영화는 마음의 양식이 됩니다.”
다섯 살 아이의 기억에 남은 영화 제목은 ‘길’이었다. 수십 년 뒤 배창호의 필모그래피에도 길을 떠나는 인물이 반복해서 등장했다. ‘고래사냥’에서는 병태와 민우가 춘자의 고향을 찾아 나섰고, ‘안녕하세요 하나님’에서는 세 인물이 경주를 향해 여행했다. ‘길’과 ‘여행’은 제목부터 이동을 품었다.
펠리니의 ‘길’이 배창호 영화의 직접적인 출발점이었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다만 어린 시절 기억에서 사라지지 않은 선율과 떠돌이의 이미지는 배창호 감독이 오랫동안 관심을 둔 인물과 맞닿아 있다. 완전한 영웅보다 외롭고 상처받은 사람, 사회의 중심에서 비껴난 사람이 영화의 주인공이 됐다.
극장을 좋아한 소년의 첫 꿈은 감독이 아니라 배우였다. 영화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알지 못했던 배창호에게 배우는 스크린 속 세계로 들어갈 수 있는 유일한 길이었다. 배우가 되고 싶다는 생각은 대학에 진학할 때까지 이어졌다.
은행원이었던 아버지는 영화인의 길보다 안정된 직업을 바랐다. 배창호 감독도 영화계에서 성공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갖지는 못했다. 연세대학교 경영학과 진학은 꿈과 현실 사이에서 택한 선택이었다.
경영학과 학생의 관심은 강의실보다 무대로 향했다. 당시 대학에는 영화를 제작할 수 있는 동아리가 없었고 카메라도 쉽게 구할 수 없었다. 영화를 가장 가까이에서 대신할 수 있는 활동은 연극이었다. 연세대학교 연극반에서 연기를 하고 극본과 시나리오를 쓰며 배우의 꿈을 이어갔다.
1972년 대학 연극 공연에서는 독일 극작가 하인리히 폰 클라이스트(Heinrich von Kleist)의 희곡 ‘깨어진 항아리’ 무대에 올랐다. 배창호 감독이 보내온 흑백사진에는 배우들이 탁자를 중심으로 서 있다. 가운데에서 대머리 분장을 하고 몸을 숙인 대학생이 배창호다.
영화 속 배우를 바라보던 아이가 직접 분장하고 관객 앞에 선 모습이다. 무대에서는 배우의 동선과 대사뿐 아니라 인물이 놓인 공간, 관객에게 이야기가 전달되는 과정도 경험할 수 있었다. 대학에 들어간 뒤부터 감독의 역할을 어렴풋이 알기 시작했다는 배창호 감독의 회고와 겹치는 시기다.
졸업을 앞두고는 직접 쓴 시나리오를 들고 여러 영화사를 찾아갔다. 준비가 충분하지 않았고 제작으로 이어지지도 않았다. 배창호 감독은 당시의 도전을 “너무 성급했다”고 돌아봤다. 영화계에 곧바로 들어가지 못한 청년은 대학을 졸업한 뒤 직장인의 길을 택했다.
어머니와 극장을 다니던 소년, 셰인처럼 되고 싶었던 아이, 대한극장에서 ‘피터 팬’을 보며 환상에 빠졌던 관객, ‘길’의 음악을 기억한 다섯 살은 대학 연극 무대에서 배우가 됐다. 영화사를 찾아간 첫 시도는 실패했지만 스크린 속에서 살고 싶다는 마음까지 사라지지는 않았다.
배창호 감독은 어린 시절 영화를 통해 영웅과 모험을 만났고, 감독이 된 뒤에는 영웅의 폭력과 환상의 위험까지 다시 들여다봤다. 영화가 사람에게 꿈을 주는 방식과 사람을 현실에서 멀어지게 하는 방식을 함께 이해하게 된 시간이었다. 배창호 영화가 성공한 영웅보다 길 위의 떠돌이와 상처받은 생활인에게 오래 머문 배경에도 극장 객석에서 시작된 두 갈래의 경험이 놓여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