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urizio Cattelan 'Night'①] 작품을 거는 전시에서 공간을 쓰는 전시로…미스의 유리홀에 들어온 카텔란

노이에 나치오날갈레리 맞춤형 설치로 건축·작품·관람 동선 연결 서울·뉴욕에서도 장소 특정적 작업 확대…전시장 벽과 방, 이동 경로까지 작품의 재료로

2026-09-13     임민정 기자

[KtN 임민정기자]베를린의 브란덴부르크문이 사람 가까운 크기로 줄어들어 노이에 나치오날갈레리(Neue Nationalgalerie)의 넓은 상부홀에 놓였다. 마우리치오 카텔란(Maurizio Cattelan)의 ‘Purgatory’다. 실제 도시에서는 거대한 기둥 아래로 차량과 사람이 오가는 기념물이지만 전시장에서는 몇 걸음이면 지나갈 수 있는 구조물이 됐다. 문을 축소한 것만으로 도시와 미술관, 기념물과 사람 사이의 크기 관계가 달라졌다.

카텔란의 개인전 ‘Night’는 지난 9월 10일 개막했다. 지난 30년간의 작업과 신작을 함께 배치한 전시의 중심에는 노이에 나치오날갈레리를 위해 제작한 장소 특정적(site-specific) 설치가 들어갔다. 작품을 다른 전시장으로 그대로 옮겨도 같은 조건을 갖는 방식이 아니라, 미스 반 데어 로에(Ludwig Mies van der Rohe)가 설계한 건물의 구조와 작품 배치를 함께 사용한다. 노이에 나치오날갈레리 역시 이번 설치가 건물의 이용 방식과 작품·관람객·건축의 관계를 바꾸도록 설계됐다고 설명한다.

Welcome to Maurizio Cattelan’s “Church” of Failure. 사진=Neue Nationalgalerie,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유리로 둘러싸인 상부홀에는 작품을 하나씩 분리하는 전시실이 이어지지 않는다. 바닥은 넓게 열려 있고 시야는 건물 반대편까지 이어진다. 한 작품을 보고 있어도 다른 작품과 이동하는 관람객이 함께 들어온다. 카텔란은 기존 공간을 가벽으로 다시 나누기보다 작품 사이의 거리를 길게 남겼다.

건축을 전시의 바깥 조건으로 두지 않는 방식은 올해 국제 전시 현장에서도 잇따라 등장했다.

지난 9월 서울 코엑스에서 열린 프리즈 서울 2026에서는 시각예술 콜렉티브 야광이 아트페어 부스의 가벽을 해체했다. ‘Facade Zone’은 작품을 걸기 위해 세운 벽을 뜯어 목재 골조로 다시 세웠다. 전시를 감추던 구조가 오히려 관람 대상이 됐다. 김지아나는 826㎡ 규모의 VIP 라운지 전체를 ‘INSIDE: The Structure We Live In’으로 바꾸면서 벽에 작품을 거는 대신 방 자체를 작업의 매체로 사용했다.

같은 시기 서울 프리즈 하우스에서는 다나베 치쿠운사이 4세(Tanabe Chikuunsai IV)가 약 7000개의 대나무 조각으로 장소 특정적 설치 ‘INVISIBLE FOREST’를 구성했다. 작품은 벽 앞에 놓이지 않고 전시장 내부를 가로질렀고 관람객은 대나무 구조 사이를 걸어 다녔다. 지난 5월 프리즈 뉴욕에서도 공연과 영상, 장소 반응형(site-responsive) 설치가 더 셰드(The Shed), 휘트니미술관(Whitney Museum of American Art), 디아(Dia) 등으로 이어졌다. 작품을 전시대와 벽 안에 모으는 대신 건물과 도시의 여러 장소를 전시 조건으로 사용하는 방식이었다.

‘Night’의 ‘Purgatory’도 같은 변화 속에서 볼 수 있다.

Welcome to Maurizio Cattelan’s “Church” of Failure. 사진=Neue Nationalgalerie,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브란덴부르크문의 기둥과 상부 구조, 여러 개의 통로는 알아볼 수 있을 만큼 남아 있다. 달라진 것은 크기와 장소다. 베를린 도심의 문을 미술관 내부로 옮겨오면서 국가적 기념물을 바라보는 거리부터 짧아졌다. 원래 건축물 앞에서는 사람이 압도적으로 작지만 ‘Purgatory’에서는 관람객과 문의 높이 차이가 크게 줄어든다.

작품명은 ‘연옥’을 뜻한다. 도시를 통과하는 문이 미술관 안에서는 또 다른 통과 구조가 됐다. 관람객은 앞에서 작품을 감상한 뒤 돌아서는 대신 기둥 사이로 들어가 반대편으로 이동할 수 있다. 조각의 앞과 뒤가 구분되는 전통적인 관람 방식보다 사람의 이동이 작품의 형태와 직접 연결된다.

노이에 나치오날갈레리 상부홀에서 이 구조물을 완전히 피해서 움직일 수도 있다. 넓게 열린 바닥에 문 하나가 놓였기 때문이다. 벽으로 관람 방향을 강제하는 방식과도 다르다. 통과할지, 돌아갈지, 어느 방향에서 접근할지는 관람객에게 남는다.

최근 장소 특정적 작업에서 반복되는 변화도 이 부분에 있다. 전시를 보는 사람의 위치가 고정되지 않는다. 작품 앞에 서는 것뿐 아니라 구조물 안으로 들어가거나, 방 전체를 지나가거나, 기존 전시장 시설 사이로 움직이는 행위가 작품 경험에 포함된다.

프리즈 서울에서 야광은 부스의 벽을 해체했고, 김지아나는 라운지를 전시장으로 바꿨다. 프리즈 하우스 서울에서는 7000개의 대나무가 관람객의 이동 공간을 만들었다. 형식은 서로 다르지만 작품을 벽에 걸어 놓고 일정한 거리에서 바라보게 하는 방식에서 벗어났다는 공통점이 있다.

카텔란은 미스의 건물을 크게 손보는 대신 이미 존재하는 규모를 이용했다. 높은 천장과 넓은 바닥은 그대로 두고, 그 안에 축소된 건축물과 서로 멀리 떨어진 작품을 놓았다. 전시장 전체를 채우는 거대한 설치보다 건축의 빈 공간을 남겨 놓는 방식이다.

‘Purgatory’도 홀을 가득 채우지 않는다. 넓은 건물 안에서는 오히려 작게 잡힌다. 실제 브란덴부르크문과 정반대의 관계다. 베를린 도심에서는 문이 주변의 사람을 작게 만들지만 노이에 나치오날갈레리에서는 미스의 건축이 축소된 문을 다시 작게 만든다.

전시가 건축을 이용하는 방식도 여기서 두 갈래로 나뉜다. 공간을 작품으로 가득 채우며 몰입을 만드는 설치가 있는 반면 ‘Night’는 상당한 빈 공간을 그대로 남긴다. 관람객은 다음 작품까지 걸어가야 하고, 이동하는 동안 유리벽과 바깥 풍경, 천장과 바닥이 계속 시야에 들어온다. 작품 사이에 남겨진 거리까지 전시 구성에 포함된다.

카텔란이 ‘Night’를 “현대의 교회”처럼 구상했다는 설명 역시 거대한 종교적 세트를 만들었다는 뜻과는 거리가 있다. 축소된 문을 지나고, 넓은 공간을 걷고, 서로 떨어진 작품 사이에서 방향을 바꾸는 이동이 이어진다. 전통적인 교회의 회랑이나 제단을 복제하기보다 사람이 공간을 통과하며 서로 다른 이미지와 마주치는 구조를 택했다.

올해 서울과 뉴욕에서 나타난 장소 특정적 작업들은 미술관과 아트페어가 작품을 담는 용기만은 아니라는 흐름을 보여줬다. 부스 벽을 뜯고, VIP 라운지를 하나의 작업으로 만들고, 대나무 구조가 전시장을 가로질렀다. 베를린에서는 1968년 문을 연 미스 반 데어 로에의 유리홀이 카텔란의 작품 배치를 결정하는 조건으로 들어왔다.

‘Night’는 2027년 3월 7일까지 이어진다. 미스의 건축은 그대로 남아 있고 브란덴부르크문은 그 안에서 크기가 달라졌다. 벽에 작품을 붙이는 대신 건축물의 크기, 작품 사이의 거리, 사람이 지나가는 경로가 전시 구성에 들어왔다. 2026년 여러 전시에서 이어진 공간 중심의 변화가 베를린에서는 20세기 모더니즘 건축과 카텔란의 설치가 만나는 방식으로 나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