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urizio Cattelan 'Night'②] 기도하는 히틀러부터 인간의 재까지…30년을 연대기 없이 엮은 ‘Night’
1997년 ‘Novecento’부터 2026년 ‘Dust’·‘People’까지 제작연도 섞어 배치 최근 대규모 작가전도 느슨한 연대기와 주제별 구성을 병행…작품 사이의 관계가 전시 순서로
[KtN 임민정기자]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아돌프 히틀러는 2001년에 만들어졌다. 친구의 화장한 유해를 소화기 안에 넣은 ‘Dust’는 2026년 작업이다. 두 작품 사이에는 25년의 시간이 있지만 베를린 노이에 나치오날갈레리(Neue Nationalgalerie)의 ‘Night’에서는 제작연도를 따라 차례로 만나지 않는다. 1990년대와 2000년대 작업, 2025년과 2026년 신작이 한 공간에서 서로 다른 관계를 만든다.
마우리치오 카텔란(Maurizio Cattelan)의 30년을 한 방향으로 훑는 연대표도 없다. 1997년 ‘Novecento’, 2000년 ‘La Rivoluzione Siamo Noi’, 2001년 ‘Him’, 2003년 ‘Never’, 2007년 ‘Dawn’과 ‘All’, 2010년 ‘We’에 2025년 ‘Bones’, 2026년 ‘Purgatory’와 ‘People’, ‘Dust’, ‘After’, ‘Scar’가 섞였다. 오래된 대표작 뒤에 최근작을 붙이는 식의 시간 순서보다 작품이 다루는 죽음과 폭력, 권위, 기억, 정체성이 전시의 연결선을 만든다.
‘Him’은 이런 배열을 압축해서 보여주는 작품이다. 작은 체구의 인물이 무릎을 꿇고 두 손을 모은 채 기도한다. 뒤에서 접근할 때는 어린아이와 비슷한 몸이 먼저 보인다. 정면으로 돌아가면 얼굴은 히틀러다. 폴리에스터 레진과 실리콘 고무, 실제 머리카락, 정장과 부츠로 제작된 작품은 2001년에 완성됐다.
카텔란은 역사적 폭력을 거대한 지도자상으로 만들지 않았다. 몸을 줄이고 무릎을 꿇린 뒤 기도하는 자세를 부여했다. 관람객이 처음 마주하는 뒷모습과 얼굴을 확인한 뒤의 인상이 달라지도록 구성했다. ‘Night’에서는 25년 전 제작된 이 작품이 과거의 한 시기를 설명하는 자료처럼 떨어져 있지 않고 2026년에 만들어진 작업들과 같은 공간에 놓인다.
‘Dawn’은 2007년 작업이다. 여성의 몸이 관처럼 보이는 구조물 안에 놓여 있고, 수면과 전시, 매장과 십자가형을 동시에 연상시키는 자세를 취한다. 레진과 의복, 실제 머리카락, 포장지와 목재가 사용됐다. ‘Him’의 기도와 ‘Dawn’의 몸은 제작연도도 형식도 다르지만 종교에서 익숙한 자세와 인간의 폭력이 맞붙는 위치에서 만난다.
죽음은 2026년 ‘Dust’에서 실제 인간의 흔적으로 바뀐다. 소화기 내부에 화장한 사람의 유해를 담았다. 위급한 상황에서 불을 끄기 위해 쓰는 물건이 사람의 죽음 이후 남은 물질을 보관하는 용기로 바뀌었다. 2007년 ‘All’에서는 사건의 정체를 알 수 없는 아홉 구의 몸을 흰 카라라 대리석으로 제작했고, 2025년 ‘Bones’에서는 권위와 국가 이미지에 반복적으로 사용돼 온 독수리가 대리석 조각으로 바닥에 쓰러져 있다.
1997년에서 2026년까지 흩어진 작업을 함께 놓으면서 카텔란의 작품에 반복돼 온 소재도 시간차를 두고 다시 만난다. 몸은 살아 있는 인물과 시신, 동물과 조각으로 바뀌고, 권위는 히틀러의 얼굴과 독수리, 브란덴부르크문처럼 서로 다른 형태를 취한다. 종교적 이미지는 기도하는 자세와 연옥이라는 제목, 매장과 십자가를 떠올리게 하는 몸의 배치로 흩어진다.
전시가 시작되는 바닥에는 2026년작 ‘Scar’도 놓였다. 주철 맨홀 뚜껑에 이번 전시에 등장하는 작품들의 제목을 새긴 작업이다. 전시의 작품 목록이 벽에 붙은 안내문보다 먼저 발밑에서 등장한다. 카텔란은 ‘Night’의 작품 설명에서 전시가 연대기와 고정된 의미를 모두 경계한다고 적었다. 작품 하나가 다른 작품의 정답을 제공하지 않는다는 구상이다.
제작연도에 따라 작품을 배열하는 방식은 대규모 작가전에서 오랫동안 가장 익숙한 구조였다. 초기작에서 전환점과 대표작을 지나 후기작으로 이동하면 한 작가의 변화가 시간 순서대로 정리된다. 최근에는 연대기를 완전히 버리기보다 시간축을 느슨하게 만들고 주제와 재료, 작품 사이의 관계를 함께 사용하는 전시가 이어지고 있다.
뉴욕 구겐하임미술관에서 2025년부터 올해 1월까지 열린 라시드 존슨(Rashid Johnson)의 ‘A Poem for Deep Thinkers’는 25년에 걸친 작업을 느슨한 연대기 위에 사회적 소외, 재생, 도피 등 서사적 주제를 겹쳐 구성했다.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가 설계한 로툰다 전체를 사용하면서 작가의 시간을 단순한 제작연도 순서로만 나누지 않았다.
루스 아사와(Ruth Asawa)의 대규모 회고전도 비슷한 방식을 택했다. 샌프란시스코 현대미술관과 뉴욕 현대미술관을 거쳐 올해 구겐하임 빌바오로 이동한 전시는 6개 दशक에 걸친 작업을 느슨한 연대기로 놓고, 재료와 제작 방식, 작가의 관심사를 다루는 주제별 구성을 사이에 넣었다. 약 300점의 작품을 한 방향의 시간표에만 묶지 않고 여러 진입로를 마련한 구성이다.
오는 11월 뉴욕 MoMA PS1에서 개막하는 ‘Hard Art’도 1970년대 흑인 추상회화와 최근의 조각·영상·사운드·회화를 제작연도별로 분리하지 않고 주제별로 배치한다. 세 세대의 작가를 한 공간에서 교차시키며 과거 작업과 동시대 작업 사이의 관계를 전면에 놓는 방식이다.
‘Night’는 여러 작가를 비교하는 기획전이 아니라 한 작가의 작업으로 이 방식을 밀고 간다. 1997년 작품이 2001년 작품의 앞에 있어야 할 이유가 사라지고, 2026년 신작이 전시 마지막에 도착해야 할 필요도 없다. 작품의 나이보다 어떤 형상이 서로 맞닿는지가 배치 순서를 좌우한다.
노이에 나치오날갈레리가 ‘Night’를 설명하면서 언급한 세부 주제도 제작연도보다 작품 사이의 반복을 향한다. 순수함과 폭력 사이의 불안정한 경계, 정체성이 만들어지는 방식, 역사적 기억의 지속이 1990년대부터 최근 작업까지 이어진다. 2001년 ‘Him’과 2025년 ‘Bones’, 2026년 ‘Purgatory’를 떨어진 시기의 작품으로만 볼 경우 끊어지는 연결이 한 전시장에서는 다시 생긴다.
카텔란에게도 이런 배치는 지난 작업을 다시 설명하는 효과를 낸다. ‘Him’은 2001년에 완성됐지만 2026년 베를린에서 만나는 관객은 제작 당시와 다른 정치·사회적 시간을 지나 작품 앞에 선다. ‘La Rivoluzione Siamo Noi’의 축소된 요제프 보이스(Joseph Beuys), 쓰러진 독수리 ‘Bones’, 축소된 브란덴부르크문 ‘Purgatory’도 각각 다른 시대에 제작됐거나 다른 역사를 끌어오면서 한 공간에서 권위와 기념비, 정치적 이미지의 크기를 다시 조정한다.
1997년에서 2026년까지 이어지는 30년은 ‘Night’에서 직선으로 놓이지 않는다. 기도하는 히틀러와 관 같은 구조 안의 여성, 인간의 재가 담긴 소화기와 쓰러진 독수리가 제작연도를 건너 서로 가까워진다. 최근 대규모 작가전에서 느슨해진 연대기 역시 같은 방향에서 움직이고 있다. 작가의 생애를 시간 순서로 정리하는 대신 서로 다른 시기의 작품을 다시 만나게 하고, 그 관계 자체를 전시의 서사로 사용하는 방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