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urizio Cattelan 'Night'③] 스크린 없는 몰입…천장·바닥·지붕까지 점유한 카텔란

‘Novecento’의 말은 공중에, ‘People’의 비둘기는 천장에, ‘Never’의 드러머는 미술관 지붕에 서울에서도 대나무 숲·해체된 부스 등장…영상을 보는 몰입에서 공간을 직접 걷는 전시로 범위 확대

2026-09-15     임민정 기자

[KtN 임민정기자]베를린 노이에 나치오날갈레리(Neue Nationalgalerie)에서는 시선을 정면에만 둘 수 없다. 마우리치오 카텔란(Maurizio Cattelan)의 말은 천장에 매달려 있고 수백 마리의 비둘기는 관람객 머리 위를 차지한다. 건물 지붕에는 드럼을 치는 인물이 앉아 있다. 바닥과 벽을 따라 작품을 보는 익숙한 관람 범위가 천장과 공중, 건물 외부까지 넓어졌다.

1997년작 ‘Novecento’는 박제한 말과 가죽 안장, 밧줄로 구성됐다. 말은 네 발을 땅에 딛지 않은 채 천장에서 내려온 줄에 매달려 있다. 달리거나 사람을 태우는 동물의 몸이 넓은 전시장 한복판에서 움직임을 잃은 채 공중에 남았다.

Welcome to Maurizio Cattelan’s “Church” of Failure. 사진=Neue Nationalgalerie,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노이에 나치오날갈레리의 높은 천장과 넓게 비워진 바닥은 작품의 일부처럼 작동한다. ‘Novecento’를 가까이에서만 보면 말의 몸이 먼저 들어오지만 거리를 벌리면 말과 바닥 사이의 빈 공간, 천장까지 이어지는 높이가 함께 잡힌다. 조각의 크기만으로 만들어지는 인상이 아니라 작품이 놓인 높이와 주변의 여백까지 관람 범위에 들어간다.

말과 다른 높이에서 관람객을 맞는 동물도 있다. 2002년작 ‘Pentecost’에는 박제한 당나귀와 수레가 사용됐다. 일을 마친 뒤에도 수레에 연결된 상태의 당나귀를 놓은 작품이다. 나무와 금속, 천, 종이, 밧줄, 고무가 함께 사용됐다. 카텔란은 작품 설명에서 짐을 떠안는 몸과 그 노동을 설명하는 사람을 분리해 놓았다.

Welcome to Maurizio Cattelan’s “Church” of Failure. 사진=Neue Nationalgalerie,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Novecento’의 말과 ‘Pentecost’의 당나귀는 모두 노동과 이동에 오랫동안 사용돼 온 동물이다. 한쪽은 공중에 매달리고 다른 한쪽은 수레에 연결된 상태로 멈춰 있다. 두 작품에서 말과 당나귀가 차지하는 위치와 자세만으로 움직임 이후의 상태가 드러난다.

2026년작 ‘People’에서는 높이의 관계가 다시 바뀐다. 수백 마리의 박제 비둘기가 천장 위쪽을 점유한다. 도시에서는 사람이 쉽게 지나치는 비둘기가 미술관 안에서는 높은 곳에서 아래를 향한다. 관람객이 조각을 내려다보는 일반적인 위치와 반대다.

비둘기를 보기 위해서는 고개를 들어야 하고, 공중의 말을 확인하려면 작품에서 거리를 두어야 한다. 당나귀와 수레 주변에서는 옆으로 움직이며 전체 구조를 살펴보게 된다. 작품마다 필요한 시선의 높이와 관람 거리가 달라지면서 걷기와 방향 전환도 전시 경험에 포함된다.

‘Night’는 관람객의 몸을 센서나 인터랙티브 장치와 연결하지 않는다. 대형 LED 스크린도, 벽과 바닥을 뒤덮는 프로젝션도 전시의 중심에 두지 않았다. 실제 조각의 위치와 높이, 작품 사이의 빈 공간을 이용해 관람 범위를 넓힌다.

2026년 전시 현장에서는 ‘몰입’을 만드는 방식도 여러 갈래로 나타나고 있다. 지난 8월 서울 프리즈 하우스 서울에서 시작된 다나베 치쿠운사이 4세(Tanabe Chikuunsai IV)의 ‘INVISIBLE FOREST’는 약 7000개의 대나무 조각을 갤러리 전체에 설치했다. 관람객은 완성된 조각을 일정한 거리에서 바라보는 대신 대나무 구조 사이를 직접 걸어 다닌다.

프리즈 서울 2026에서도 공간 자체를 관람 방식에 포함한 작업이 이어졌다. 시각예술 콜렉티브 야광은 ‘Facade Zone’에서 아트페어 부스의 가벽을 해체해 목재 골조로 다시 세웠다. 관람객은 골조의 안과 밖을 오갈 수 있도록 구성됐다. 김지아나는 826㎡ 규모의 VIP 라운지를 ‘INSIDE: The Structure We Live In’으로 바꾸고 벽에 작품을 거는 대신 방 전체를 작업의 매체로 사용했다.

서울의 대나무 숲과 해체된 아트페어 부스, 베를린의 공중에 매달린 말은 형식도 내용도 서로 다르다. 공통적으로 관람객이 작품 앞 한 위치에 머물도록 두지 않는다. 구조물 사이를 지나거나 고개를 들고, 거리를 벌리고, 건물 안팎을 살펴야 작품의 범위가 잡힌다.

카텔란은 건물 밖까지 시선을 보낸다. 2003년작 ‘Never’의 드러머는 노이에 나치오날갈레리 지붕에 자리한다. 레진과 유리섬유, 의상, 신발, 금속, 드럼, 전자·기계 부품으로 제작한 인물은 미술관 내부가 아니라 건물 위에서 드럼을 반복해서 친다.

Welcome to Maurizio Cattelan’s “Church” of Failure. 사진=Neue Nationalgalerie,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Never’가 지붕으로 올라가면서 전시장의 경계도 건물 내부에서 끝나지 않는다. 미술관에 들어오기 전이나 바깥으로 나온 뒤에도 작품을 만날 수 있고, 관람객의 시선은 전시장 바닥에서 건물 상부로 이동한다.

상부홀 전체를 넓게 보면 작품들이 한 덩어리의 설치물처럼 밀집돼 있지 않다는 점도 드러난다. 작품과 작품 사이에는 상당한 거리가 남아 있다. 관람객이 빈 바닥을 걷는 시간이 생기고, 다음 작품은 멀리서 먼저 형체를 드러낸 뒤 가까워질수록 구체적인 모습으로 바뀐다. 노이에 나치오날갈레리도 이번 전시에서 작품과 관람객, 건축의 관계가 달라지도록 공간을 구성했다고 밝히고 있다.

Welcome to Maurizio Cattelan’s “Church” of Failure. 사진=Neue Nationalgalerie,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디지털 기술을 앞세운 몰입형 전시는 영상과 음향이 관람객의 시야를 둘러싸는 방식으로 빠르게 성장했다. 2026년 서울과 베를린에서 이어진 설치들은 다른 방향도 함께 드러낸다. 건축을 가리고 새로운 가상 공간을 만드는 대신 기존 건물의 천장과 바닥, 벽과 통로를 그대로 사용하고 관람객이 그 사이를 움직이도록 하는 방식이다.

‘Night’에서는 박제 동물이 그 구조를 선명하게 만든다. 말은 땅에서 떨어지고, 비둘기는 사람보다 높은 곳으로 올라가며, 당나귀는 수레와 함께 바닥에 남는다. 드러머는 아예 전시장 밖 지붕으로 이동한다. 작품의 위치가 달라질 때마다 관람객의 시선도 정면에서 위쪽으로, 실내에서 건물 밖으로 움직인다.

2026년 ‘몰입형’이라는 단어가 반드시 스크린과 프로젝션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서울에서는 대나무 7000개 사이를 걷고 부스의 해체된 골조 안팎을 오갔다. 베를린에서는 공중의 말과 천장의 비둘기, 지붕의 드러머를 따라 시선과 몸의 방향이 바뀐다. ‘Night’가 사용하는 장치는 디지털 영상이 아니라 작품의 높이와 거리, 그리고 관람객이 걷는 실제 공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