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혜자, 빛의 60년②] 닥지를 만난 방혜자…1970년대 빛이 종이 속으로

1968년 귀국 뒤 한국 전통문화와 한지의 물성에 천착 ‘부활의 노래’ 거쳐 ‘우주의 노래’·‘햇님 나들이’로…빛의 공간도 자연과 우주로 확대

2026-09-19     박준식 기자
방혜자, 천지에 마음의 빛 뿌리며 간다. 사진=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KtN 박준식기자]1969년 ‘정기(精氣)’에는 1960년대 파리에서 이어진 방혜자의 물질 실험이 강하게 남아 있다. 유화와 함께 사포와 가죽이 들어갔고, 서로 다른 표면이 한 작품 안에서 맞부딪친다. 몇 년 뒤 ‘부활의 노래(復活頌)’에서는 분위기가 크게 달라진다. 거친 물질의 충돌보다 종이의 겹침과 밝은 색, 열린 공간이 앞으로 나온다. 1968년 한국으로 돌아온 방혜자가 닥지를 만나면서 회화의 물성뿐 아니라 빛을 만드는 방법까지 바꾸기 시작한 시기다.

방혜자, ‘정기(精氣)’, 1969. 유화와 사포, 가죽 등 성질이 다른 재료를 결합한 작품으로, 1960년대부터 이어온 거친 마티에르 실험이 남아 있다. 한지를 본격적으로 사용하기 전 방혜자의 재료 탐구를 살펴볼 수 있는 작품. 사진=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방혜자는 1968년 한국으로 돌아온 뒤 1976년까지 머물렀다. 파리에서 익힌 추상회화와 프레스코, 이콘화, 판화 같은 경험을 내려놓은 것은 아니었다. 한국에서 전통문화와 자연을 다시 바라보면서 새로운 재료를 찾기 시작했다. 이 시기에 방혜자의 작업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 것이 닥지였다. 1971년부터 한지를 이용한 콜라주 실험이 시작됐고, 종이를 구겼다가 펴면서 생기는 주름과 물감이 스며드는 정도를 작품에 적극적으로 받아들였다.

방혜자, ‘정기(精氣)’, 1969. 유화와 사포, 가죽 등 성질이 다른 재료를 결합한 작품으로, 1960년대부터 이어온 거친 마티에르 실험이 남아 있다. 한지를 본격적으로 사용하기 전 방혜자의 재료 탐구를 살펴볼 수 있는 작품. 사진=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사포와 가죽은 캔버스 표면에서 각각의 거칠기와 두께를 드러낸다. 닥지는 성질이 다르다. 접히고 찢기며 색을 흡수한다. 물감이 재료 위에 머무는 데 그치지 않고 종이의 섬유 속으로 들어간다. 방혜자는 종이를 단순한 바탕으로 사용하지 않고 구기고 펼치고 붙이는 과정을 회화 안으로 가져왔다. 같은 색을 여러 차례 올려도 주름의 깊이와 섬유 상태에 따라 농도가 달라졌다. 국립현대미술관은 이러한 한지 실험을 통해 캔버스나 다른 종이에서 얻기 어려운 깊고 다양한 색이 만들어졌다고 설명한다.

1972년 ‘부활의 노래’는 변화가 뚜렷하게 나타난 작품이다. 퐁피두센터의 작품 기록에는 템페라와 닥종이를 사용한 회화로 등록돼 있다. 현재 프랑스 국립현대미술관 퐁피두센터가 소장하고 있으며, 2024년 방혜자재단의 기증으로 컬렉션에 들어갔다.

방혜자, ‘부활의 노래(復活頌)’, 1972, 캔버스에 템페라·닥지, 135×135㎝, 프랑스 국립현대미술관 퐁피두센터 소장. 밝은 바탕 위에 색과 종이를 겹치며 중앙의 둥근 구조와 위로 뻗는 형태를 구성했다. 닥지가 본격적으로 회화 안에 들어오면서 방혜자의 색과 공간이 달라진 초기 작품이다. 사진=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지심’에서 ‘부활의 노래’까지 11년의 변화를 놓고 보면 차이는 더욱 분명하다. ‘지심’에서는 갈색과 청색을 비롯한 짙은 색이 서로 밀고 들어가며 작품의 중심을 압축한다. 밝은 부분도 어두운 색에 둘러싸여 있다. ‘부활의 노래’에서는 밝은 바탕이 훨씬 넓어지고 형태 사이에 여백이 생긴다. 중심부의 반원형과 위로 뻗은 선도 묵직한 하나의 덩어리로 닫히지 않는다.

빛을 다루는 방식 역시 달라졌다. 1960년대에는 두꺼운 유화와 서로 다른 표면 사이의 대비가 밝음을 만들었다. 1970년대에는 종이와 색이 겹치면서 안팎의 깊이가 생긴다. 물감을 얼마나 두껍게 쌓느냐보다 종이가 색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다시 드러내느냐가 중요해졌다.

‘부활의 노래’를 후기 작품의 원형이나 우주 이미지와 곧바로 연결하는 것도 경계할 필요가 있다. 중앙의 둥근 형태는 훗날 자주 등장하는 원과 닮았지만 아직 작품 전체를 지배하지 않는다. 위쪽으로 뻗는 선과 주변의 색면, 아래쪽의 여러 층이 함께 구성을 만든다. 닫힌 원보다 안과 밖이 서로 통하는 구조에 가깝다.

방혜자, 천지에 마음의 빛 뿌리며 간다. 사진=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한지의 사용을 ‘한국적인 소재의 발견’만으로 설명하기에도 부족하다. 닥지는 방혜자의 회화에서 이미지보다 작업 방법을 바꿨다. 종이를 구겼다가 펼칠 수 있었고, 앞과 뒤에서 색을 받아들일 수 있었으며, 여러 차례 칠한 색이 서로 완전히 가려지지 않았다. 이후 방혜자가 한지를 양면에서 채색해 아래 색이 비쳐 나오게 하고, 더 나아가 부직포 뒤편의 색이 앞으로 스며드는 방식을 발전시킨 출발점도 1970년대 종이 실험에서 찾을 수 있다.

같은 시기 한국 미술계에서도 한지와 캔버스, 물감 자체의 성질을 탐구하는 움직임이 활발했다. 파리 세르누치박물관은 방혜자의 1968~1976년 작업이 당시 단색화 작가들이 진행했던 연구와 가까워진 시기로 평가한다. 그러나 방혜자는 단색의 반복이나 절제된 행위에 머무르지 않았다. 색을 유지했고, 자연과 빛, 우주에 대한 관심을 계속 넓혔다. 세르누치박물관 역시 방혜자의 재료·안료·회화기법에 대한 실험을 자연과 함께 빛을 생성하려는 긴 작업으로 해석한다.

1970년대 중반에는 작품의 공간도 달라졌다. 1975년 신라 고분 발굴의 영향을 받은 ‘어둠을 뚫고’ 연작이 제작됐고, 1976년에는 ‘우주송’이 등장했다. 한국 전통문화와 대지에 대한 관심이 별과 천체, 우주로 넓어지기 시작했다. 1970년대 초 닥지라는 재료를 발견한 변화가 몇 년 뒤에는 작품이 다루는 공간까지 확대된 셈이다.

세르누치박물관이 소장한 1976년 ‘우주송(Chant de l’Univers)’에는 유화와 톱밥, 종이 콜라주가 함께 사용됐다. 사진=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세르누치박물관이 소장한 1976년 ‘우주송(Chant de l’Univers)’에는 유화와 톱밥, 종이 콜라주가 함께 사용됐다. 닥지를 받아들였다고 기존의 재료 실험을 버린 것은 아니다. 종이를 중심으로 서로 다른 물질을 계속 결합했다. 1969년 사포와 가죽을 사용한 ‘Matière-Lumière’와 1976년 ‘우주송’을 함께 소장한 세르누치박물관의 컬렉션에서도 1970년대 방혜자의 변화가 물질에서 우주로 이어지는 흐름을 확인할 수 있다.

1976년 다시 프랑스로 옮긴 뒤에도 한국에서 시작한 한지 실험은 이어졌다. 1977년 ‘햇님 나들이’에는 원과 단순한 선을 중심으로 한 구성이 등장한다. 태양과 산, 물, 대지를 연상시키는 형태가 복잡한 묘사 없이 간결하게 놓였다. 닥지는 파리로 돌아간 뒤에도 작품의 중요한 재료로 남았다.

방혜자, ‘햇님 나들이’, 1977, 유화 물감과 닥지를 사용한 작품, 국립현대미술관 이건희컬렉션. 원과 단순한 선으로 자연의 요소를 압축하면서 한국 체류기에 시작한 한지 실험을 이어갔다. 사진=국립현대미술관

‘햇님 나들이’의 원을 보면 후기 방혜자를 떠올리기 쉽다. 그러나 1977년의 원은 아직 하나의 독립적인 우주가 아니다. 주변의 선과 함께 자연을 구성하는 형태 가운데 하나다. 1980년대 후반 원형과 동심원이 작품의 중심으로 이동하고 별과 우주에 대한 사유가 깊어지는 과정과 구분해서 볼 필요가 있다. 원은 처음부터 완성된 방혜자의 상징이 아니었다. 한지와 자연을 다루는 과정에서 점차 비중을 넓혀간 형식이었다.

1968년부터 1976년까지의 한국 체류를 방혜자의 ‘한국성 회복’으로만 정리하면 작업의 실제 변화가 가려진다. 파리에서 배운 추상과 물질 실험은 그대로 이어졌다. 달라진 것은 그 실험에 들어온 재료였다. 사포와 가죽처럼 표면에서 버티는 물질 옆에 색을 흡수하고 다시 드러내는 종이가 들어왔다.

재료가 달라지자 손의 움직임도 달라졌다. 붙이는 것에 더해 접고, 구기고, 펼치고, 스며들게 하는 행위가 늘어났다. 색 또한 표면을 덮는 물감에서 종이 내부에 남는 색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방혜자, 천지에 마음의 빛 뿌리며 간다. 사진=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1970년대 이후 한지는 방혜자의 작업에서 사라지지 않는다. 천연 안료와 루시용의 흙, 부직포가 등장한 뒤에도 닥지는 계속 사용됐다. 생애 후반인 2020년 ‘빛의 기쁨 I’에서도 닥지와 천연 안료가 만난다. 1970년대의 선택이 특정 시기의 실험에 머물지 않고 수십 년 동안 작업의 토대가 됐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방혜자의 빛도 닥지를 통과하며 달라졌다. ‘지심’의 빛은 어두운 물감 사이에서 모습을 드러냈고, 1965년 ‘빛’에서는 서로 다른 질감과 밀도가 밝음을 만들었다. ‘부활의 노래’ 이후에는 종이가 색을 품으면서 빛이 작품 내부로 들어간다. 1976년 ‘우주의 노래’와 1977년 ‘햇님 나들이’에서는 그 빛을 담는 공간이 대지와 자연에서 우주 쪽으로 넓어지기 시작한다.

방혜자의 1970년대는 한국적인 재료 하나를 찾아낸 시기가 아니었다. 캔버스 표면에서 빛을 만들던 화가가 종이라는 물질의 안과 밖을 발견한 시간이었다. 색을 받아들이고 다시 내보내는 닥지의 성질은 이후 방혜자가 천체와 우주, 생명의 빛을 더 깊은 공간으로 확장할 수 있게 한 중요한 물질적 기반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