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정, 빛의 나비①] 프라하의 빛에서 ‘첫 만남’까지…김현정 작업의 출발

성 비투스 대성당 스테인드글라스에서 경험한 색과 자연광 ‘프라하의 창’에서 ‘기다림’·‘첫 만남’으로…외부의 빛이 내면과 나비의 형상으로 이동

2026-09-19     박준식 기자

[KtN 박준식기자]2005년 체코 프라하의 성 비투스 대성당에서 색유리를 통과한 햇빛은 김현정의 작업에 긴 흔적을 남겼다. 어두운 성당 내부로 들어온 자연광은 붉고 푸른 스테인드글라스를 지나 벽과 공간에 색을 퍼뜨렸다. 유리에 고정돼 있던 색이 빛을 만나자 움직이고 확장됐다. 김현정은 당시 경험을 계기로 자연광과 색이 만나 만들어내는 선명함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이후 ‘빛의 나비’와 실제 광원을 결합한 작업까지 이어지는 출발도 이때의 경험과 맞닿아 있다.

김현정, ‘프라하의 창(The Window of Prague)’, 2005, 장지에 분채, 73×61㎝. 체코 프라하 성 비투스 대성당의 스테인드글라스와 내부 공간에서 받은 인상을 옮긴 초기작이다. 밝은 색유리와 짙은 실내가 대비되며 이후 빛과 색채를 지속적으로 탐구하게 되는 출발을 보여준다. 사진=‘바이탈 클라리타스(Vital Claritas)’를 향한 메타-매체 표현 연구,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프라하의 창’에는 아치형 건축 구조와 어두운 내부, 오른쪽의 색유리가 함께 놓인다. 붉은색과 황색, 녹색이 작은 조각으로 나뉜 스테인드글라스는 작품에서 가장 밝은 영역을 차지한다. 중앙의 깊숙한 내부는 상대적으로 어둡게 처리돼 색유리와 명암 차이를 만든다. 프라하에서 마주한 실제 빛을 그대로 재현하기보다 빛이 어둠 속에서 색을 드러내는 관계를 장지와 분채로 옮긴 작업이다.

제작 과정에서는 곧 다른 문제가 생겼다. 색유리를 통과한 자연광은 선명하고 투명했지만 안료는 섞을수록 탁해졌다. 분채로 실제 빛의 색을 옮기려 할수록 자연광에서 느꼈던 투명성과 거리가 생겼다. 김현정의 작업에서 이후 반복되는 매체 실험도 여기에서 출발한다. 밝은 색을 선택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았고, 색 자체가 빛나는 듯한 상태를 만들 수 있는 재료와 방법이 필요했다.

이때 경험한 스테인드글라스는 색채뿐 아니라 형태에서도 오래 남았다. 여러 색유리가 검은 창살을 사이에 두고 조각처럼 나뉘지만 자연광이 통과하면 각각의 색이 하나의 밝음으로 합쳐진다. 훗날 김현정의 나비 날개에 들어가는 작은 색면과 분절된 패턴도 이런 경험과 연결된다. 스테인드글라스의 색면 분할과 투과되는 빛이 나비를 하나의 ‘빛의 형상’으로 받아들이는 데 영향을 미쳤다.

프라하에서 돌아온 뒤 빛은 바로 나비로 옮겨가지 않았다. 2006년 ‘기다림(Waiting)’에서는 달이 먼저 등장한다.

김현정, ‘기다림(Waiting)’, 2006, 장지에 아크릴·닥종이, 53×45㎝. 황갈색 계열의 거친 바탕 위로 크게 떠오른 달과 앙상한 나무를 배치했다. 실제 공간에서 경험한 자연광에서 한 걸음 더 들어가 빛을 그리움과 회복, 내면의 감정과 연결하기 시작한 작품이다. 사진=‘바이탈 클라리타스(Vital Claritas)’를 향한 메타-매체 표현 연구,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기다림’에서는 넓은 황갈색과 금빛 계열의 바탕 사이로 밝은 달이 자리한다. 아래쪽에는 굴곡진 어두운 선들이 이어지고, 두 그루의 앙상한 나무가 달을 향해 뻗는다. 프라하의 스테인드글라스에서 보였던 여러 색의 화려한 대비는 크게 줄었다. 대신 밝은 달과 거친 주변의 질감이 작품의 긴장을 만든다.

달은 풍경의 일부로 물러나 있지 않다. 실제 비례보다 크게 부각돼 작품의 밝음을 집중시킨다. 나무의 가지는 달 쪽으로 길게 뻗으며 밝은 부분과 어두운 부분을 연결한다. 김현정에게 달은 그리움과 치유, 안정과 염원의 의미를 품은 존재로 자리 잡았고, 어둠 속에서도 사라지지 않는 밝음과 연결됐다.

빛을 다루는 재료에도 변화가 생겼다. ‘기다림’에는 아크릴과 함께 닥종이가 사용됐다. 닥종이를 붙이며 생긴 요철과 결이 평평한 채색 위에 높낮이를 만들었다. 색의 밝기만 조절하는 대신 종이의 물성을 이용해 깊이를 더하려 한 것이다. 김현정의 작업이 이후 아크릴과 반사성 재료, 투명 재료, LED까지 넓어지는 과정에서 재료가 조형의 일부로 들어오기 시작한 초기 변화를 볼 수 있다.

‘프라하의 창’과 ‘기다림’ 사이에서 빛이 놓이는 위치도 달라졌다. ‘프라하의 창’에서는 빛이 외부에서 들어온다. 자연광이 스테인드글라스를 지나 공간을 바꾸는 현상이 작품의 출발이었다. ‘기다림’에서는 달이 바깥의 광원이면서 동시에 마음속 감정과 연결되는 대상으로 자리한다. 물리적인 빛의 경험이 개인의 내면과 맞닿기 시작한 시기다.

같은 해 제작한 ‘첫 만남(First Meeting)’에서는 나비가 등장한다.

김현정, ‘첫 만남(First Meeting)’, 2006, 장지에 분채, 65×53㎝. 꽃 위에 내려앉은 나비를 중심에 배치한 첫 나비 모티프 회화다. 땅에 뿌리내린 나무와 달이 중심이던 ‘기다림’에서 움직임과 비상의 가능성을 지닌 나비로 형상이 이동한다. 사진=‘바이탈 클라리타스(Vital Claritas)’를 향한 메타-매체 표현 연구,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첫 만남’에서 나비는 꽃 위에 몸을 기대고 날개를 세운다. 검은 윤곽으로 나뉜 날개 안에는 청록과 황색 계열의 색이 들어가고, 주변에는 황금빛과 녹색이 여러 결로 겹친다. 오른쪽 꽃잎에는 붉은색과 주황색이 모여 있다. ‘기다림’보다 색이 다시 많아졌고, 밝음도 하나의 달에 집중되지 않는다.

나비를 처음부터 완성된 상징으로 사용한 것은 아니었다. 출발은 시각적 발견이었다. 사진에서 본 나비의 날갯짓에서 데칼코마니 작품이 공중으로 움직이는 듯한 조형성을 느꼈고, 자유롭게 날아다니는 나비에 자유와 평화, 초월에 대한 감각을 겹쳐 보기 시작했다. 자연을 관찰해 그리는 대상으로 출발한 나비는 점차 김현정 자신의 내면을 투영하는 존재로 이동했다.

‘기다림’과 ‘첫 만남’을 함께 놓으면 이 변화가 더 분명하다. ‘기다림’의 나무는 땅에서 움직이지 못한다. 가지가 달 쪽으로 뻗어 있어도 몸은 땅에 묶여 있다. ‘첫 만남’의 나비는 날개를 가진다. 아직 꽃 위에 머물러 있지만 언제든 자리를 떠날 수 있다. 고정된 나무에서 움직이는 나비로 형상이 바뀌면서 빛을 바라보는 위치도 달라진다.

나비 날개의 구조에는 프라하에서 본 스테인드글라스의 기억도 남아 있다. 검은 선으로 나뉜 날개 안쪽에 여러 색이 자리하는 방식은 색유리가 작은 면으로 분절된 구조와 닮아 있다. 각각의 색이 독립적으로 보이면서도 한 쌍의 날개 안에서 하나의 형태를 이룬다. 스테인드글라스를 통과한 빛이 작은 색면을 하나의 밝음으로 묶었던 경험이 나비의 날개에서는 회화적인 패턴으로 다시 나타난다.

나비킴(김현정)작가. 사진=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2005년과 2006년 사이에 나타난 변화는 김현정의 이후 작업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출발이 된다. 프라하에서는 실제 자연광과 색유리가 만드는 빛을 경험했다. ‘프라하의 창’에서는 그 색을 안료로 옮기려 했고, 물감으로는 원하는 선명함을 만들기 어렵다는 한계를 만났다. ‘기다림’에서는 닥종이의 물성을 끌어들이며 빛을 내면의 감정과 연결했다. ‘첫 만남’에서는 나비라는 움직이는 형상이 등장했다.

이 시기의 작품에는 아직 LED도 없고, ‘별과 별사이’에서 나타나는 방사형 구조나 공간 설치도 없다. 실제 빛을 작품 안으로 직접 끌어들이기 전이다. 그러나 이후 작업을 움직이는 요소들은 이미 만들어지고 있었다. 선명한 색에 대한 요구, 평면을 넘어서는 재료의 필요, 외부의 빛을 내면의 밝음으로 받아들이는 변화, 빛을 향해 움직이는 나비가 차례로 나타났다.

나비의 의미도 이후 더 깊어진다. 처음에는 자유와 비상의 감각에서 출발했지만, 번데기의 어두운 시간을 지나 날개를 펴는 생태의 변화가 인간의 시련과 회복을 떠올리게 했다. 나비는 차츰 존재의 변화와 다시 일어서는 생명력을 담는 형상으로 자리를 넓혔다.

날개 안에 반복되는 흰 원형도 이후 중요한 요소가 된다. 작은 원들은 장식적인 점에서 벗어나 내면의 촛불과 기도의 빛을 상징하는 형태로 발전한다. 화면에 하나씩 반복해 찍는 행위에는 간절한 염원과 내면의 어둠을 밝히는 의미가 더해졌다.

나비킴(김현정)작가. 사진=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김현정의 20년 작업을 따라가면 빛보다 나비가 먼저 있었던 것도, 나비보다 이론이 먼저 있었던 것도 아니다. 프라하에서 마주한 실제 빛이 먼저 있었고, 그 빛을 물감으로 옮기려다 색의 한계를 경험했다. 달을 통해 빛을 마음 안으로 끌어들였고, 나비를 만나면서 빛을 향해 움직이는 존재의 형상을 찾았다.

2005년 ‘프라하의 창’과 2006년 ‘기다림’, ‘첫 만남’은 그래서 서로 다른 세 작품이면서 하나의 연속된 변화로 읽힌다. 자연광을 바라본 눈, 빛을 안료로 옮기던 손, 내면의 밝음을 찾으려는 마음, 그리고 날개를 가진 존재가 짧은 시간 안에 차례로 작품에 들어왔다.

이후 나비는 한 작품의 소재에서 벗어나 김현정 작업을 장기간 관통하는 조형 언어로 확장된다. 2007년 ‘꿈’, 2008년 ‘날아오르는’과 ‘나비의 꿈’에 이르면 나비의 비상과 변태 과정, 반복되는 빛의 흔적이 보다 적극적으로 작품의 중심으로 들어온다. 초기의 한 마리 나비가 존재의 회복과 생명의 움직임을 담는 ‘빛의 나비’로 변해가는 과정도 이때부터 더욱 선명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