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정, 빛의 나비②] ‘나비의 꿈’…자유와 회복을 품은 비상의 형상

‘꿈’의 흰 원형에서 ‘날아오르는’의 상승 구조로 2008년 152점 ‘나비의 꿈’, 반복과 차이로 획일화된 틀 속 개성·자유 확장

2026-09-20     박준식 기자

[KtN 박준식기자]2007년 ‘꿈(Dream)’에서 나비는 작품 대부분을 차지할 만큼 크게 등장한다. 짙은 청색 바탕 위에 펼쳐진 날개에는 붉은색과 노란색, 녹색과 청색이 여러 겹으로 들어가고, 밝은 흰색 원형이 곳곳에 반복된다. 한 해 전 ‘첫 만남’에서 꽃 위에 내려앉았던 나비가 이제 주변 풍경에서 벗어나 작품의 중심을 차지한다. 나비는 자연 속 작은 생명체를 묘사하는 대상에서 김현정의 내면과 빛을 담는 독립적인 형상으로 이동했다.

김현정, ‘꿈(Dream)’, 2007, 장지에 분채, 46×38㎝. 짙은 청색 바탕 위에 나비를 크게 배치하고 날개 안에 여러 색과 흰 원형을 반복했다. 나비와 내면의 빛이 본격적으로 결합하기 시작한 초기 작업. 사진=‘바이탈 클라리타스(Vital Claritas)’를 향한 메타-매체 표현 연구,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꿈’에서 눈에 들어오는 것은 나비의 사실적인 생태 묘사보다 날개 내부의 색이다. 실제 나비의 무늬를 그대로 옮기기보다 서로 다른 색을 작은 영역으로 나누고 그 사이에 흰 원형을 반복한다. 프라하 성 비투스 대성당에서 경험했던 스테인드글라스의 분절된 색면과 투과광은 1편에서 살펴본 ‘첫 만남’을 거쳐 나비 날개의 구조 안으로 더 깊게 들어왔다.

흰 원형은 단순한 장식적 점과 구별된다. 김현정에게 반복되는 밝은 원은 내면의 촛불과 기도의 빛을 가리키는 형태로 자리 잡았다. 어둠을 등지고 밝은 곳을 향하는 나비와 만나면서 작은 원 하나하나가 희망을 유지하려는 의지와 연결된다. 반복해서 원을 남기는 행위에도 빛을 하나씩 밝히는 의미가 더해졌다.

짙은 청색 바탕이 중요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나비 주변에 복잡한 풍경을 넣지 않으면서 시선은 날개의 색과 밝은 원으로 모인다. ‘프라하의 창’에서 빛과 건축 공간이 함께 등장했고 ‘기다림’에서는 달과 나무가 관계를 만들었다면, ‘꿈’에서는 나비 자체가 색과 빛을 품는 공간이 된다.

2008년 ‘날아오르는(Flying up)’에서는 움직임이 보다 직접적으로 나타난다. 붉은색을 중심으로 한 바탕 아래쪽에서 흰빛이 넓게 번지고, 나비가 밝은 부분 위에서 위쪽을 향한다. 나비의 날개와 몸체 역시 흰색을 중심으로 구성돼 주변의 짙은 붉은색과 강한 대비를 이룬다. 작품 위쪽에는 밝은 유기적 형태가 퍼지고 세로로 이어지는 색의 흔적이 상승감을 더한다.

김현정, ‘날아오르는(Flying up)’, 2008, 장지에 분채, 54×46㎝. 짙은 붉은색 바탕과 아래쪽의 밝은 영역을 대비시키고 흰 나비를 중심에 배치했다. 빛을 향한 이동과 비상의 감각이 ‘꿈’보다 직접적으로 드러난다. 사진=‘바이탈 클라리타스(Vital Claritas)’를 향한 메타-매체 표현 연구,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꿈’과 ‘날아오르는’을 나란히 놓으면 나비가 작품 안에서 맡는 역할이 달라진다. ‘꿈’에서는 색과 흰 원형을 품은 커다란 날개 자체가 중요하다. ‘날아오르는’에서는 나비의 위치와 아래쪽의 밝은 공간이 서로 맞물리면서 이동의 방향이 생긴다. 정적인 상징에서 실제로 비상하는 존재 쪽으로 무게가 옮겨간다.

나비의 변태 과정도 이 무렵부터 작품의 중요한 의미와 연결됐다. 땅을 기어 다니는 애벌레가 번데기의 시간을 지나 날개를 가진 성충이 되는 변화는 단순한 생태 현상보다 존재가 이전 상태를 벗어나는 이미지로 받아들여졌다. 김현정의 나비는 자유와 아름다움에 대한 동경에서 출발했지만 점차 변화와 회복, 다시 움직일 수 있는 생명력까지 담게 됐다.

나비가 어둠에서 빛으로 이동한다는 구조도 작품마다 다르게 변주된다. ‘꿈’에서는 짙은 청색 안에서 날개의 색과 흰 원형이 밝음을 만든다. ‘날아오르는’에서는 아래쪽의 넓은 흰 영역과 나비가 연결되면서 빛의 방향성이 강해진다. 자연 속 나비를 재현하는 회화보다 나비를 이용해 밝음과 어둠, 정지와 움직임을 조율하는 작업으로 이동한 것이다.

2008년 ‘나비의 꿈(Dream of Butterfly)’에서는 한 마리 나비의 상징이 다수의 나비로 확대된다. 실크스크린과 혼합재료를 사용한 작은 작품마다 나비가 등장하지만 색과 구성은 서로 다르다. 청색과 검은색이 강한 작품, 붉고 보라색이 겹친 작품, 밝은 바탕 위에 푸른 형상이 놓인 작품까지 변화가 크다. 바코드와 전기 회로를 연상시키는 선, 반복 문양도 나비 주변에 들어간다.

사진설명: 김현정, ‘나비의 꿈(Dream of Butterfly)’, 2008, 한지에 실크스크린·혼합재료. 동일한 나비 형상을 반복하면서 색과 구성, 주변 문양을 서로 달리했다. 152점 연작은 2008년 모로갤러리 개인전에서 전시장 벽을 따라 설치돼 하나의 공간 작업으로 확장됐다. 사진=‘바이탈 클라리타스(Vital Claritas)’를 향한 메타-매체 표현 연구,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이 작품에서 실크스크린이라는 제작 방식은 내용과 직접 연결된다. 앞선 작품에서는 장지 위에 붓으로 나비를 그렸지만 ‘나비의 꿈’에서는 같은 형상을 반복해서 찍을 수 있는 실크스크린을 선택했다. 동일한 형상이 계속 생산되는 방식은 획일화된 사회 구조를 연상시키는 장치가 됐다. 동시에 색과 배치, 주변 요소를 서로 달리해 반복 속에서도 각각 다른 나비를 만들었다.

작품에 들어간 바코드와 전기 회로, 반복 문양도 같은 흐름에서 읽힌다. 동일한 기준에 따라 분류되고 작동하는 구조 사이에 서로 다른 색의 나비가 놓인다. 김현정은 획일적인 체계 안에서 개인의 개성이 희미해지는 현실과, 제한된 조건 속에서도 자유를 향해 움직이는 존재를 한 작품 안에 함께 배치했다.

여섯 점의 개별 작품만 보면 각기 다른 색과 패턴을 가진 나비 연작처럼 보이지만, 전시장에서는 규모가 달라졌다. 152점이 벽을 따라 이어지고, 직선적인 배열은 바코드를 떠올리게 했다. 작은 작품 하나는 각자의 색과 형태를 갖지만 전체 설치 안에서는 긴 구조의 일부가 된다. 개인과 집단의 관계가 작품의 내용뿐 아니라 설치 방식에서도 드러난다.

2008년 모로갤러리에서 열린 김현정 개인전 ‘나비의 꿈’ 전경. 서로 다른 색과 구성의 작품 152점을 벽면에 길게 배열했다. 개별 작품의 차이를 유지하면서 전체 설치에서는 반복과 질서가 강조된다. 사진=‘바이탈 클라리타스(Vital Claritas)’를 향한 메타-매체 표현 연구,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나비의 꿈’은 김현정의 작업에서 나비의 의미뿐 아니라 작품을 만드는 방법까지 바꾼 시기로 볼 수 있다. 한 마리의 나비를 어떻게 그릴 것인지에서 벗어나 같은 형상을 여러 번 복제하고, 각각 다르게 변형하고, 다시 전시장 안에서 하나의 구조로 묶었다. 회화 한 점의 내부 구성을 넘어 작품과 작품 사이의 간격, 벽면의 길이, 관람자가 바라보는 거리까지 고려하기 시작했다. 152점 전체를 하나의 설치처럼 구성하면서 공간에 대한 관심도 함께 생겼다.

‘꿈’에서 나타난 흰 원형과 ‘날아오르는’의 비상, ‘나비의 꿈’의 반복은 서로 떨어진 실험이 아니다. 작은 흰 점은 나비 내부에 밝음을 만들었고, 비상하는 형상은 빛을 향한 이동을 보여줬으며, 실크스크린의 반복은 한 개인의 내면에서 사회 구조 안의 존재로 시선을 넓혔다.

김현정(나비킴)작가. 사진=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나비의 색도 점차 중요해졌다. 실제 나비의 자연색을 충실히 옮기는 데 목적을 두지 않고 한 작품마다 전혀 다른 색을 입혔다. 동일한 형상을 반복하면서 색을 바꾸는 방식은 개체의 차이를 만드는 가장 직접적인 수단이었다. 나비의 형태가 같아도 색이 달라지면 작품의 분위기와 인상이 달라진다. 색채는 이후 김현정 작업에서 생명성과 내면의 밝음을 드러내는 핵심 요소로 더 큰 비중을 갖게 된다.

2006년 ‘첫 만남’의 나비는 꽃 위에 한 마리로 머물렀다. 2007년 ‘꿈’에서는 작품 전체를 차지할 만큼 커졌고 날개 안에 빛을 품었다. 2008년 ‘날아오르는’에서는 밝은 공간을 향해 움직였다. 같은 해 ‘나비의 꿈’에서는 152개의 서로 다른 나비가 전시 공간까지 확장됐다.

짧은 기간 동안 나비는 자연의 아름다움을 옮기는 소재에서 김현정 자신의 내면을 투영하는 형상으로, 다시 자유와 회복을 품은 존재로 달라졌다. 동시에 한 마리의 나비가 다수의 나비로 늘어나면서 개인과 사회의 관계까지 작품 안으로 들어왔다.

김현정(나비킴)작가. 사진=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2008년의 변화는 이후 김현정 작업에서 재료가 빠르게 달라지는 기반도 만들었다. 같은 이미지를 반복해서 찍는 실크스크린을 사용하면서 표현하려는 내용에 따라 매체를 바꿀 수 있다는 가능성이 커졌다. 이후 자개와 금박, 광택과 투명 재료, 광학 장치와 실제 빛까지 작품 안으로 들어오는 과정도 한 가지 재료에 머무르지 않았던 이 시기의 변화와 연결된다.

‘나비의 꿈’에서 중요한 것은 나비의 숫자만이 아니다. 동일한 형상을 반복하면서도 모든 작품을 다르게 만든 선택에 있다. 사각형 안에 놓인 나비는 제한된 틀을 벗어나지 못하지만 색과 형태를 달리하며 자신의 차이를 유지한다. 비상은 프레임 밖으로 실제로 날아가는 동작보다, 주어진 조건 안에서도 다른 색을 갖고 계속 움직이려는 상태로 표현된다.

김현정의 ‘빛의 나비’는 이 시기를 지나며 윤곽을 갖추기 시작했다. 나비는 날개를 가진 아름다운 생명체에서 벗어나 어둠과 밝음, 정지와 움직임, 제한과 자유 사이를 오가는 존재가 됐다. 2007년 ‘꿈’의 날개 안에서 작게 켜졌던 흰빛은 2008년 ‘날아오르는’에서 비상의 방향을 만들었고, ‘나비의 꿈’에서는 서로 다른 색을 지닌 수많은 존재의 움직임으로 확장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