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정, 빛의 나비③] ‘빛나는 색채’를 찾아서…물감 밖으로 나온 빛
2007년 ‘햇살 내리는’에서 채색 안료의 한계 마주한 뒤 2009년 ‘날으는 빛’에서 RGB 광원 도입 플렉시글라스의 투과·반사, 2010년 ‘제로’의 자개와 광택까지…빛을 묘사하던 회화에서 빛이 발생하는 재료로 확장
[KtN 박준식기자]2007년 ‘햇살 내리는(Sunny Rainy)’에는 나비의 윤곽을 따라 밝은 색이 잘게 흩어진다. 청색과 흰색, 황색 계열의 점과 선은 날개 주변에서 빛이 부서지는 듯한 인상을 만든다. 김현정은 프라하에서 경험한 스테인드글라스의 투명한 색을 회화 안에 다시 불러오기 위해 안료를 섞기보다 작은 색으로 나누어 겹쳤다. 그러나 색을 더할수록 밝아졌던 실제 빛과 달리 물감은 겹칠수록 탁해졌다. ‘빛나는 색채(Vital Color)’를 향한 작업은 이 차이를 좁히는 과정에서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김현정이 부딪힌 문제는 단순한 채도의 문제가 아니었다. 안료는 여러 색을 섞을수록 반사되는 빛의 범위가 줄어 명도가 낮아지는 감산혼합(Subtractive Mixing)의 성질을 갖는다. 반대로 붉은빛·초록빛·푸른빛을 더하는 광원은 겹칠수록 밝아지는 가산혼합(Additive Mixing)으로 작동한다. 스테인드글라스에서 보았던 색은 물감 자체보다 유리를 통과하는 빛과 함께 만들어진 것이었다. 김현정에게 색채 연구가 재료 연구로 옮겨갈 수밖에 없었던 이유도 여기에 있었다.
물감으로 빛을 닮은 색을 만드는 것에서 빛 자체를 색의 재료로 사용하는 방향으로 작업이 움직였다.
2009년 ‘날으는 빛(Flying Light)’ 연작에서는 RGB LED가 등장한다. 붉은빛(Red), 초록빛(Green), 푸른빛(Blue)을 조형 요소로 사용하고, 투명한 플렉시글라스(Plexiglass)에 빛을 비춰 투과와 반사, 산란으로 만들어지는 색을 나비 형상과 결합했다. 분채와 아크릴이 광원을 묘사했다면 ‘날으는 빛’에서는 실제 광원이 색을 생성한다.
‘날으는 빛 1’에는 익숙한 나비의 윤곽이 남아 있지만 색은 이전 작품과 다르게 움직인다. 분홍과 청록, 푸른색과 자주색이 날개의 한 부분에 고정되지 않고 겹치면서 서로 다른 빛으로 바뀐다. 검은 바탕은 색을 밀어내는 배경이 아니라 광색을 더 선명하게 드러내는 공간이 된다.
나비 안쪽에 반복되는 잎사귀 형태도 작은 색의 단위로 작동한다. 여러 잎이 겹치면서 밝고 어두운 차이가 생기고, 작은 색 단위들이 모여 하나의 나비를 만든다. 2007년 ‘햇살 내리는’에서 안료를 작게 나누어 병치했던 방식이 2년 뒤에는 빛의 단위로 바뀐 셈이다.
‘날으는 빛’은 LED를 캔버스에 단순히 부착한 작업과도 차이가 있다. 페인팅과 콜라주, LED, 플렉시글라스를 실제 공간 안에 구성한 뒤 발생한 빛과 색을 촬영하고 다시 인화하는 과정을 거쳤다. 광원이 투명 재료를 통과하고 반사되며 만들어낸 색의 흔적을 최종 작품으로 옮긴 것이다. 실제 재료와 빛, 사진이 한 작품 안에서 연속적으로 작동한다.
이 과정에서 플렉시글라스는 중요한 역할을 했다. 색유리를 통과한 햇빛이 성당 내부로 번졌던 프라하의 경험과 마찬가지로, 투명한 재료를 사이에 두고 빛이 이동한다. 다만 전통적인 스테인드글라스가 자연광을 받아들이는 구조였다면 김현정은 RGB라는 현대의 인공광원을 직접 배치했다.
‘날으는 빛 4’에서는 나비와 주변의 경계도 흐려진다. 청록과 분홍, 초록빛이 날개 안에만 머물지 않고 주변으로 흩어진다. 나비를 먼저 그리고 색을 채운 결과라기보다 빛이 퍼지는 과정 속에서 나비의 윤곽이 생겨난다.
‘날으는 빛 7’에서는 변화가 더 두드러진다. 나비 한 마리가 어두운 공간에 분리돼 있는 대신 여러 색의 작은 조각들이 작품 전체를 채운다. 청색과 녹색, 보라와 분홍이 겹쳐지고 중앙의 나비도 주변 색 속으로 이어진다. 빛의 나비가 하나의 대상에서 주변 공간과 연결되는 구조로 넓어진다.
작은 LED 소자를 색점처럼 다룬 방식은 전통적인 점묘와도 닿아 있다. 폴 시냐크(Paul Signac)가 분할주의(Divisionism)를 통해 서로 다른 물감을 작은 단위로 병치하고 관람자의 눈에서 색이 섞이도록 했다면, 김현정은 물감 대신 RGB 광원을 나누어 배치했다. 색채를 물리적으로 섞기보다 빛의 단위가 시각적으로 결합되도록 한 것이다.
차이는 재료에서 나온다. 시냐크의 색점은 캔버스에 남아 있고 주변의 빛을 반사한다. LED는 스스로 광색을 만들어낸다. 같은 위치에서도 밝기와 주변 환경에 따라 색의 인상이 달라질 수 있다. 김현정에게 실제 광원은 기존 회화를 대신하는 기술 장치라기보다 물감으로 도달하기 어려웠던 밝음을 직접 다룰 수 있는 또 하나의 색채 재료가 됐다.
‘날으는 빛’의 제작 방식에도 한계는 남았다. 실제 RGB 광원에서 나온 색은 선명했지만 최종 이미지를 피그먼트 프린트로 옮기는 순간 다시 색료의 조건을 통과해야 했다. 광원 자체에서 느껴지는 투명함과 밝음이 인쇄된 결과에서는 달라졌다. 실제 빛을 사용했다고 색채의 문제가 한 번에 해결된 것은 아니었다.
김현정의 재료 실험은 여기서 다시 다른 방향으로 움직인다. 빛 자체만 좇기보다 반사와 광택을 가진 물질을 작품에 넣기 시작했다.
2010년 ‘제로(Zero)’ 연작에는 자개가 들어온다. ‘제로 2(Zero 2)’에서는 커다란 타원이 작품 대부분을 차지하고, 안쪽에는 보라와 청색, 청록과 흰빛이 소용돌이처럼 겹친다. 중앙에는 나비와 꽃을 연상시키는 형상이 놓이고, 자개의 광택은 보는 위치와 빛의 상태에 따라 색을 달리 드러낸다.
‘제로 2’의 타원은 단순한 액자 안의 원형 장식이 아니다. 달걀이나 씨앗처럼 내부에 무엇인가를 품은 형태이면서 숫자 0의 순환과 시작을 함께 연상시킨다. 내부의 꽃과 나비는 안정된 정물처럼 놓이지 않고 회전하는 색 안에서 뒤섞인다. 외곽으로 뻗는 가는 선들도 타원을 닫힌 공간으로 만들기보다 주변으로 에너지를 퍼뜨린다.
‘제로’에서 중요한 변화는 빛이 실제 광원으로만 존재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자개는 스스로 발광하지 않지만 주변의 빛을 받아 색을 바꾼다. 보는 위치에 따라 같은 부분이 푸르게 보였다가 보랏빛이나 녹색으로 달라질 수 있다. LED가 작품 안쪽에서 밖으로 빛을 내보내는 재료였다면 자개는 외부의 빛과 관람자의 위치를 받아들여 색을 변화시킨다.
김현정의 ‘빛나는 색채’가 특정한 하나의 재료를 뜻하지 않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분채에서 출발해 닥종이의 질감, RGB LED의 실제 광색, 플렉시글라스의 투과와 반사, 자개의 광택까지 재료가 계속 달라졌다. 하나의 기술을 찾아 정착하기보다 표현하려는 빛의 성질에 따라 재료를 바꿨다.
2007년 ‘햇살 내리는’과 2009년 ‘날으는 빛’, 2010년 ‘제로’를 순서대로 놓으면 변화가 선명하다. 처음에는 물감을 작은 단위로 나눠 빛의 선명함에 가까이 가려 했다. 다음에는 물감 대신 실제 빛을 사용했다. 이후에는 자개처럼 외부 빛을 받아 스스로 다른 색으로 변하는 물질을 작품 안에 넣었다.
‘빛나는 색채’는 밝은 색을 많이 쓴다는 뜻과 거리가 있다. 김현정에게 필요한 것은 붉은색을 더 붉게, 청색을 더 선명하게 만드는 일이 아니었다. 색이 고정돼 있지 않고 빛과 재료, 보는 위치에 따라 살아 움직이는 상태였다. 물질적인 색채 안에서 내면의 밝음과 생명감을 함께 느끼게 하려는 작업이 이 시기에 구체적인 형식을 얻기 시작했다.
나비 역시 이전과 달라진다. 2008년 ‘나비의 꿈’에서는 사회적 틀 안에서 서로 다른 개성을 유지하는 나비가 반복됐다. ‘날으는 빛’에서는 나비가 실제 빛으로 구성되고, ‘제로’에서는 타원 안의 생명과 순환 속으로 들어간다. 나비의 외형을 반복하면서도 나비가 놓이는 공간과 재료는 계속 바뀌었다.
물감의 한계에서 시작된 문제는 회화 자체를 버리는 방향으로 가지 않았다. 김현정은 오히려 회화가 사용할 수 있는 재료의 범위를 넓혔다. 안료 옆에 빛을 놓고, 투명 재료와 광택 재료를 결합하면서 색을 만드는 조건을 바꿨다.
2005년 프라하에서 바라본 스테인드글라스의 빛은 2009년 ‘날으는 빛’에서 실제 광원으로 작품 안에 들어왔고, 2010년 ‘제로’에서는 자개와 타원의 물성으로 다시 달라졌다. ‘빛나는 색채’를 향한 변화는 물감을 포기한 과정이 아니라 색이 빛을 품고, 통과시키고, 반사하며 계속 달라질 수 있도록 회화의 재료를 넓혀간 과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