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enza Schouler SS27④] 포인텔에서 시아노타이프까지…기법으로 바꾼 옷의 표면
선버스트 조직·뒤틀린 스트라이프·실크 플리세 인타르시아·시퀸 터프팅…호랑이와 장미를 서로 다른 질감으로 풀어낸 2027년 봄
[KtN 박인경기자]프로엔자 스쿨러(Proenza Schouler)의 2027년 봄 여성 컬렉션에서 레이첼 스콧(Rachel Scott)은 무늬를 그리는 데서 멈추지 않았다. 니트의 구멍과 짜임을 벌리고, 스트라이프의 방향을 틀고, 같은 호랑이를 실크와 니트, 시퀸으로 각각 다시 만들었다. 장미는 실제 꽃을 이용한 시아노타이프(cyanotype)에서 출발해 색을 달리하고 피그먼트 프린팅으로 표면을 더했다. 그림 하나를 원단 위에 옮기는 방식보다 만드는 과정 자체를 디자인으로 끌어들인 셈이다.
SS27에서 소재는 실루엣을 받치는 바탕에 머물지 않는다. 니트는 몸의 형태를 따라가면서 동시에 밖으로 벌어지고, 주름은 색과 무늬를 잘게 나누며, 프린트는 평면에 머물지 않고 촉각적인 표면으로 이어진다. 같은 이미지를 어떤 방식으로 만들었느냐에 따라 옷의 인상도 달라졌다.
브라운 계열 상의와 밝은 하의를 조합한 착장에서는 상체의 표면과 하체의 가벼운 움직임이 대비를 이룬다. 색의 차이만큼 소재가 몸에 닿는 방식도 다르다. 상체는 비교적 단단하게 형태를 잡고, 하체는 가볍게 흔들리며 질감의 차이를 드러낸다.
레이첼 스콧은 니트를 매끈한 한 장으로 처리하지 않았다. 선버스트 포인텔(sunburst pointelle)은 일정한 구멍을 반복하는 전통적인 포인텔 조직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방사형으로 퍼지는 구조를 만든다. 조직의 방향이 한 지점에서 바깥으로 벌어지면서 옷의 표면에도 선이 생긴다.
힙 주변에서는 포인텔 조직이 각진 플랜지 형태로 확장된다. 부드러운 니트가 몸을 따라 붙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일부가 바깥으로 벌어지면서 실루엣에 구조를 더한다. 단단한 패드나 별도의 장식을 덧대지 않고 편직 자체로 형태를 만든 방식이다.
니트가 몸을 감싸는 방식도 한 방향으로 고정되지 않는다. 스트라이프는 수평이나 수직으로 일정하게 반복되지 않고 몸을 따라 비틀리고 회전한다. 줄무늬가 원단 위에 놓인 그래픽에서 벗어나 옷의 움직임과 굴곡을 드러내는 선으로 바뀐다.
브라운 계열 드레스에서는 소재가 몸 가까이 떨어지면서도 표면이 완전히 평평하게 정리되지 않는다. 상체부터 밑단까지 긴 실루엣을 유지하지만 원단이 몸을 지나며 생기는 작은 굴곡과 주름이 남는다. 단색이기 때문에 재단과 표면의 변화가 더 쉽게 드러난다.
메리노 니트도 비슷한 방식으로 다뤄졌다. 편직물을 완전히 반듯하게 펴기보다 토크를 줘 일부러 비틀린 상태를 만들었다. 몸에 입었을 때 옆선과 조직이 조금씩 어긋나면서 정돈된 니트웨어와 다른 긴장감이 생긴다.
뒤틀림은 마감이 덜 된 상태와는 다르다. 원단이 한쪽으로 쏠리거나 조직의 방향이 흔들리도록 처음부터 설계하면서 옷의 형태가 고정되지 않게 만든다. SS27에서 반복된 느슨한 재단과도 맞물린다. 패턴에서는 몸과 옷 사이의 공간을 넓히고, 니트에서는 조직의 방향을 틀어 표면까지 풀어냈다.
레이첼 스콧이 니트에서 만든 변화는 장식보다 구조에 가깝다. 구멍의 크기와 배열, 편직 방향, 실의 장력 같은 요소가 그대로 옷의 형태로 이어진다. 실루엣과 소재를 따로 설계하기보다 한 과정 안에서 함께 결정하는 방식이다.
화이트 상의와 브라운 소재를 겹친 착장에서는 다른 질감이 한 몸 위에서 분명하게 갈린다. 밝고 매끈한 상의 위로 짙은 브라운 소재가 비대칭적으로 얹히면서 색보다 표면의 차이가 먼저 드러난다. 한 벌처럼 연결돼 있지만 각 소재의 성격을 지우지 않았다.
이런 접근은 컬렉션의 모티프로 넘어가면서 더 복잡해진다. 호랑이는 한 가지 프린트로 반복되지 않았다. 실크 플리세 인타르시아(silk plissé intarsia), 핸드 니트 인타르시아(hand-knit intarsia), 시퀸을 더한 터프팅이라는 세 가지 방법으로 각각 만들었다.
실크 플리세에서는 주름이 이미지의 표면을 잘게 나눈다. 플리세(plissé)는 원단에 규칙적인 주름을 잡는 방식이어서 옷이 움직일 때 접힌 면과 펼쳐진 면이 번갈아 드러난다. 여기에 인타르시아를 결합하면 호랑이 이미지는 평평하게 고정되지 않고 주름의 움직임에 따라 형태가 달라질 수 있다.
인타르시아(intarsia)는 서로 다른 색이나 소재를 필요한 부분에 나눠 넣어 하나의 무늬를 만드는 방식이다. 이미 완성된 원단 위에 그림을 인쇄하는 것과 달리 무늬 자체가 소재의 구조 안으로 들어간다. 호랑이의 윤곽과 색을 실크 플리세 안에 넣으면서 이미지와 원단을 분리하기 어려운 상태로 만든 것이다.
오프화이트 드레스에서는 상체와 하체의 질감 차이가 크게 벌어진다. 상체는 매끈하고 간결하지만 아래로 내려갈수록 길고 가는 요소가 움직임을 만든다. 같은 밝은 색 안에서도 표면의 밀도와 흔들림이 달라지면서 단색 드레스가 하나의 질감으로만 읽히지 않는다.
핸드 니트 인타르시아에서는 호랑이가 다시 다른 모습으로 바뀐다. 실크의 얇고 매끄러운 표면 대신 실의 두께와 짜임이 남는다. 손으로 짠 조직은 이미지의 경계를 프린트처럼 날카롭게 고정하지 않고 편직 과정에서 생기는 작은 차이까지 함께 품는다.
같은 호랑이를 반복하면서도 소재를 바꾼 이유는 하나의 이미지를 컬렉션의 로고처럼 사용하는 것과 다르다. 실크에서는 주름과 광택이, 니트에서는 짜임과 두께가 먼저 드러난다. 모티프는 같지만 눈에 들어오는 순서가 달라진다.
세 번째 방식인 터프팅은 이미지에 더 직접적인 부피를 만든다. 실이나 섬유를 표면 밖으로 끌어올려 질감을 만드는 터프팅에 시퀸을 더하면서 호랑이는 평면의 무늬에서 입체적인 표면으로 이동한다. 빛을 받는 시퀸과 섬유의 돌출된 질감이 함께 작동한다.
실크 플리세, 핸드 니트, 터프팅은 같은 호랑이를 서로 다른 촉감으로 바꾼다. 이미지를 세 번 반복했다기보다 하나의 모티프가 소재와 기술에 따라 얼마나 달라질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구성에 가깝다.
세로 스트라이프 드레스에서는 선과 소재가 몸의 움직임을 따라 이어진다. 스트라이프는 몸을 곧게 보이게 하는 장식선으로만 머물지 않고 드레스가 걸을 때 생기는 굴곡을 그대로 받아들인다. 소재가 휘면 선도 함께 휘고, 몸의 방향에 따라 간격도 달라진다.
SS27에서 반복된 ‘비틀기’는 이런 부분에서도 확인된다. 니트의 토크, 몸을 따라 회전하는 스트라이프, 주름 사이로 달라지는 이미지가 모두 완전히 고정된 표면을 피한다. 옷이 옷걸이에 걸려 있을 때보다 사람이 입고 움직일 때 더 많은 정보가 드러나는 구조다.
호랑이가 소재를 바꿔가며 세 차례 변주됐다면 장미는 이미지가 만들어지는 출발점부터 달랐다. 실제 장미를 이용한 시아노타이프가 바탕이 됐다. 시아노타이프는 감광 처리를 한 표면에 물체를 놓고 빛에 노출해 형상을 남기는 사진 인화 기법이다. 장미의 형태를 손으로 다시 그리는 대신 꽃 자체의 윤곽을 빛으로 받아냈다.
완성된 이미지는 그대로 반복되지 않고 색을 달리하며 다시 가공됐다. 하나의 원본에서 여러 색의 장미가 파생되고, 피그먼트 프린팅을 거치면서 인쇄된 이미지에도 표면감이 더해졌다.
장미를 단순한 플로럴 프린트로 처리하지 않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꽃의 모양만 가져오는 것이 아니라 실제 꽃에서 이미지를 만들고, 다시 색과 인쇄 방식을 바꾸는 여러 단계를 거쳤다. 자연물에서 시작한 흔적과 인쇄 과정의 인공적인 표면이 한 옷 안에서 겹친다.
짙은 네이비 드레스에서는 색과 장식이 줄어들면서 원단의 흐름이 전면에 나온다. 몸을 따라 내려오는 긴 선과 표면의 잔잔한 변화가 옷의 인상을 만든다. 이번 컬렉션에서 기술이 반드시 화려한 장식으로 드러나지 않는다는 점을 보여주는 착장이다.
레이첼 스콧은 소재 기법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효과로만 사용하지 않았다. 포인텔은 힙의 형태를 만들고, 비틀린 니트는 옷이 몸을 감싸는 방향을 바꿨다. 플리세는 이미지에 움직임을 더했고, 인타르시아는 모티프를 원단 구조 안으로 넣었다. 터프팅과 시퀸은 표면 밖으로 부피와 빛을 끌어냈다.
장미에서도 같은 방식이 이어졌다. 실제 꽃에서 시작한 시아노타이프는 이미지를 얻는 과정 자체를 디자인 안으로 끌어들였고, 피그먼트 프린팅은 평면 이미지를 다시 물질적인 표면으로 바꿨다.
프로엔자 스쿨러 SS27에서 호랑이와 장미는 서로 다른 역할을 맡는다. 호랑이는 같은 이미지를 세 가지 제작법으로 바꾸면서 소재에 따라 달라지는 질감을 보여준다. 장미는 실제 꽃과 빛에서 출발해 프린팅으로 이어지는 과정을 통해 이미지가 만들어지는 순서를 드러낸다.
니트의 구멍, 비틀린 줄무늬, 실크의 주름, 손으로 짠 조직, 시퀸이 박힌 터프팅, 빛으로 남긴 장미는 모두 하나의 방향으로 모인다. 레이첼 스콧은 완성된 무늬를 원단 위에 얹기보다 짜고, 접고, 비틀고, 찍는 과정에서 옷의 표면을 만들었다. 2027년 봄 프로엔자 스쿨러에서 공예는 장식의 마지막 단계가 아니라 옷의 형태와 이미지를 결정하는 시작점에 놓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