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enza Schouler SS27⑥] 웨스트 17번가에서 다시 쓴 프로엔자 스쿨러…레이첼 스콧과 뉴욕의 연결

옛 바니스 여성 매장이 있던 건물에서 공개한 2027년 봄…테일러링·생활복·PS1을 남기고 비례와 쓰임을 다시 조정

2026-09-20     박인경 기자

[KtN 박인경기자]프로엔자 스쿨러(Proenza Schouler)가 2027년 봄 컬렉션을 공개한 곳은 뉴욕 웨스트 17번가의 옛 루빈 뮤지엄 건물이었다. 한때 바니스 뉴욕의 여성 매장이 자리했던 곳이기도 하다. 바니스는 프로엔자 스쿨러를 초기에 취급한 첫 리테일러였다. 레이첼 스콧(Rachel Scott)은 브랜드가 뉴욕에서 성장하던 시기의 흔적이 남은 공간에서 카키색 생활복부터 드레스, 브라운과 블랙 수트까지 이어지는 컬렉션을 펼쳤다.

쇼 장소와 옷 사이에는 뉴욕이라는 공통점이 놓였다. 도시를 직접 상징하는 그래픽이나 장식 대신 아침부터 저녁까지 이어질 수 있는 옷, 오래 들 수 있는 가방, 제작 방식을 숨기지 않은 신발을 한 컬렉션 안에 넣었다. 프로엔자 스쿨러가 축적해온 테일러링과 PS1 같은 익숙한 요소도 그대로 복원하기보다 현재의 생활 방식에 맞춰 비례와 쓰임을 조정했다.

Proenza Schouler SS27 Reshapes Sharp Tailoring With Cowling, Cyanotype Roses and a Rounder PS1. 사진=Proenza Schouler,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브라운 롱코트와 어두운 하의를 조합한 착장은 뉴욕의 도시복이라는 성격을 직접적으로 드러낸다. 발목 가까이까지 내려오는 코트는 길고 단정하지만 몸을 단단하게 감싸지 않는다. 안쪽에는 밝은 상의와 어두운 하의를 두고, 코트 앞을 열어 여러 겹을 한 번에 드러냈다.

길이가 긴 외투는 출퇴근용 정장과 이브닝 코트 어느 한쪽으로 기울지 않는다. 직선적인 외곽은 유지하면서 안쪽 옷의 움직임을 그대로 남겼다. 레이첼 스콧이 이번 시즌 여러 착장에서 사용한 방식이다. 구조적인 옷을 없애기보다 구조 안에 움직일 여지를 두고, 한 벌의 용도를 좁히지 않았다.

프로엔자 스쿨러가 뉴욕에서 구축해온 디자인에는 테일러링과 실용적인 도시복이 함께 있었다. SS27은 두 요소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지 않는다. 재킷과 코트는 남기고 몸을 조이는 정도를 낮췄으며, 셔츠와 팬츠에는 드레스와 함께 입을 수 있는 유연한 비례를 넣었다. 브랜드의 과거를 그대로 재현하기보다 익숙한 옷의 사용 범위를 넓힌 쪽에 가깝다.

Proenza Schouler SS27 Reshapes Sharp Tailoring With Cowling, Cyanotype Roses and a Rounder PS1. 사진=Proenza Schouler,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화이트 상의와 짙은 하의를 연결한 착장에서는 격식을 결정하는 요소가 더 줄어든다. 상체는 간결하게 정리하고 하체는 넉넉하게 떨어뜨렸다. 목에 길게 내려오는 장식이 있지만 전체 인상을 화려하게 끌어올리지 않는다.

흰색과 검은색에 가까운 어두운 색의 대비는 전통적인 오피스웨어에서도 익숙하다. SS27에서는 같은 배색을 사용하면서도 옷의 폭과 길이를 달리했다. 하체를 좁게 조이지 않고 충분한 공간을 남기면서 비즈니스웨어에서 기대되는 긴장감을 낮췄다.

이런 변화는 뉴욕이라는 도시를 다루는 방식과 맞물린다. 한 사람이 하루 동안 이동하는 장소가 달라져도 옷을 완전히 갈아입지 않아도 되는 구성이다. 재킷과 셔츠는 사라지지 않았고 드레스와 점프수트도 특별한 시간대에만 묶이지 않았다. SS27에서는 옷의 이름보다 언제까지 입을 수 있는지가 더 중요하게 다뤄졌다.

웨스트 17번가라는 장소가 갖는 의미도 여기에서 생긴다. 과거 바니스 여성 매장이 있었던 건물은 프로엔자 스쿨러가 뉴욕의 패션 유통망 안으로 들어가던 시기와 연결된다. 바니스는 신진 디자이너를 소개해온 뉴욕의 주요 리테일 공간이었고, 프로엔자 스쿨러 역시 초기에 그 유통망을 통해 소비자와 만났다. 같은 장소에 다시 선 SS27은 브랜드의 과거 제품을 복원하지 않고 현재의 옷으로 연결했다.

Proenza Schouler SS27 Reshapes Sharp Tailoring With Cowling, Cyanotype Roses and a Rounder PS1. 사진=Proenza Schouler,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스트라이프 셔츠와 밝은 팬츠의 조합은 이런 변화를 가장 일상적인 옷으로 풀어낸다. 셔츠는 낯선 형태로 변형되지 않았고 팬츠도 과도한 장식을 두지 않았다. 허리에 가죽 벨트를 두르고 하체에 충분한 폭을 남기면서 익숙한 셔츠와 팬츠의 비례만 조정했다.

프로엔자 스쿨러의 SS27이 모두 실험적인 옷으로 채워지지 않은 점도 중요하다. 카울링과 포인텔, 인타르시아, 시아노타이프처럼 복잡한 제작 기술이 들어간 옷과 함께 셔츠, 팬츠, 수트처럼 가장 익숙한 품목이 반복됐다. 기술을 앞세운 컬렉션이 실제 옷장에서 멀어지지 않도록 기본적인 도시복이 중간을 받쳤다.

레이첼 스콧은 제작 기술에서도 비슷한 균형을 택했다. 선버스트 포인텔과 비틀린 니트는 조직 자체를 바꿨지만 니트웨어라는 품목은 남았다. 호랑이는 실크 플리세와 핸드 니트, 시퀸 터프팅으로 옮겨졌고, 장미는 실제 꽃을 이용한 시아노타이프에서 출발했다. 기법은 복잡해졌지만 결과물을 낯선 조형물로 밀어붙이지 않고 사람이 입는 옷 안에 남겼다.

PS1 Walker 역시 같은 방식으로 이해할 수 있다. 기존 PS1을 알아볼 수 있게 하는 래치와 벨트를 남기면서 몸체를 더 부드럽고 둥글게 만들었다. 제품의 이름과 계보를 바꾸기보다 오래된 요소를 현재의 사용 방식에 맞게 조정했다. 옷에서 어깨와 라펠을 남기고 허리와 팬츠 폭을 바꾼 것과 접근이 닮아 있다.

Proenza Schouler SS27 Reshapes Sharp Tailoring With Cowling, Cyanotype Roses and a Rounder PS1. 사진=Proenza Schouler,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후반에 등장한 네이비 상의와 팬츠는 컬렉션에서 가장 절제된 착장 가운데 하나다. 짧은 소매의 단순한 상의와 긴 팬츠를 한 색으로 연결하고 허리만 가볍게 정리했다. 장식이나 강한 색 대비를 덜어내면서 옷의 길이와 폭이 그대로 드러난다.

네이비는 수트의 색이기도 하지만 여기서는 재킷이 없다. 상의와 팬츠만으로 도시복의 단정함을 유지한다. 출근용 정장보다 가볍고 일반적인 티셔츠와 팬츠보다 길고 정돈된 비례를 갖는다. SS27이 데이웨어와 이브닝웨어 사이를 좁힌 방식이 가장 간단한 조합에서도 이어진다.

컬렉션 후반에 짙은 색이 늘어나면서 테일러링은 다시 앞으로 나온다. 브라운과 네이비, 블랙이 이어지고 재킷과 팬츠의 비중도 높아진다. 그러나 초반의 실용적인 옷에서 시작한 느슨한 폭과 움직임은 사라지지 않는다. 앞부분과 뒷부분을 서로 다른 옷장으로 나누지 않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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짙은 수트와 붉은 가방을 조합한 착장은 프로엔자 스쿨러의 익숙한 도시적 이미지에 가깝다. 어깨와 라펠은 선명하고 상체는 재킷이 정리한다. 팬츠는 발등까지 길게 떨어지며 좁아지지 않는다.

과거의 날카로운 수트를 그대로 가져왔다면 재킷과 팬츠 모두 몸에 더 가까이 붙었을 가능성이 크다. SS27에서는 상체의 구조를 유지하면서 하체를 풀었다. 작은 붉은 가방은 짙은 수트 사이에서 색의 중심을 만들지만 전체 실루엣을 흔들 만큼 크지 않다.

브랜드의 기존 코드를 새 컬렉션에 남기는 방법도 이 착장에서 읽힌다. 수트를 없애고 전혀 다른 옷으로 방향을 바꾼 것이 아니라 재킷의 구조를 남긴 채 하체의 폭과 착용감을 바꿨다. PS1 Walker에서 래치와 벨트를 보존하고 몸체를 다시 만든 방식과 같은 흐름이다.

Proenza Schouler SS27 Reshapes Sharp Tailoring With Cowling, Cyanotype Roses and a Rounder PS1. 사진=Proenza Schouler,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화이트 하이넥 상의와 짙은 수트를 조합한 착장은 컬렉션 후반의 테일러링을 한층 간결하게 정리한다. 재킷의 어깨는 또렷하지만 허리선을 과도하게 조이지 않고, 팬츠에는 충분한 폭이 남는다. 흰색 이너가 목과 얼굴 주변을 밝게 만들면서 짙은 수트의 무게도 덜어낸다.

코발트 블루와 레드로 시작한 강한 색의 흐름은 이 지점에서 거의 사라진다. 대신 네이비와 블랙에 가까운 색, 화이트가 남으면서 컬렉션의 끝을 재단과 비례에 집중시킨다. 초반에는 색과 레이어가 옷의 성격을 바꿨다면 후반에는 어깨와 허리, 팬츠의 폭이 더 직접적으로 읽힌다.

레이첼 스콧이 SS27에서 프로엔자 스쿨러의 정체성을 새로 만들었다고 단정하기보다는, 이미 존재하는 여러 요소의 우선순위를 조정했다고 보는 편이 가깝다. 각진 테일러링은 곡선을 받아들였고, 드레스와 데이웨어의 거리는 좁아졌다. 니트와 프린트에서는 제작 기술이 전면에 나왔고, PS1은 둥근 몸체의 Walker로 확장됐다. 신발은 오판카와 산 크리스피노 같은 제작 구조를 밖으로 드러냈다.

서로 다른 변화는 ‘새로운 것’ 하나를 내세우기보다 브랜드에 남아 있던 요소를 다시 쓰는 쪽으로 모인다. 테일러링은 더 느슨해졌고, 생활복은 더 정돈됐으며, 액세서리는 기존 제품과의 연결을 끊지 않았다. 뉴욕의 하루를 여러 종류의 옷으로 나누기보다 한 옷장에서 이어 입을 수 있도록 범위를 넓힌 것도 같은 맥락이다.

Proenza Schouler SS27 Reshapes Sharp Tailoring With Cowling, Cyanotype Roses and a Rounder PS1. 사진=Proenza Schouler,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옛 바니스 여성 매장이 있던 건물에서 프로엔자 스쿨러가 다시 런웨이를 열었다는 사실은 SS27의 출발과 끝을 뉴욕에 묶는다. 브랜드가 처음 유통망을 넓히던 시기의 장소에서 레이첼 스콧은 과거의 대표 룩을 재현하지 않았다. 재킷과 셔츠, 드레스와 점프수트, PS1과 수트를 현재의 비례로 다시 배열했다.

2027년 봄 프로엔자 스쿨러에 남은 것은 날카로운 재단만도, 새로운 공예 기술만도 아니다. 카키 생활복에서 블랙 수트까지 한 사람이 실제로 입고 움직일 수 있는 옷의 범위를 넓히고, 익숙한 브랜드 요소는 필요한 만큼만 남겼다. 웨스트 17번가의 과거와 연결된 장소에서 공개된 SS27은 프로엔자 스쿨러가 뉴욕에서 쌓아온 옷을 버리기보다 다시 입을 수 있는 방식으로 고쳐 쓰는 데 무게를 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