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시대 ‘디자인 기업’ 애플의 퇴조…지니어스 바의 귀환이 남긴 신호

10년 전 나무 심고 ‘도시의 광장’ 만들던 애플스토어, 서비스·픽업 중심으로 재편 매출은 사상 최고 수준인데 AI는 추격전…제품보다 ‘사용법’을 만들던 애플의 변화

2026-09-15     김상기 기자
애플마저 결국 접었다…첫 폴더블 '아이폰 듀오' 공개에 삼성이 긴장한 이유  사진=2026. 09.10. 애플은 현지시간 9일 미국 캘리포니아 본사에서 첫 폴더블 스마트폰인 ‘아이폰 듀오(iPhone Duo)’를 공식 발표했다.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KtN 김상기기자]애플스토어에서 사라졌던 지니어스 바(Genius Bar)가 돌아온다. 매장 뒤편의 대형 비디오월은 철거되고, 온라인 주문 상품 수령과 Today at Apple 프로그램은 양쪽 벽면에 마련되는 별도 공간으로 옮겨진다. 나무와 대형 스크린, 열린 교육 공간을 앞세웠던 애플스토어가 서비스와 제품 수령에 무게를 두는 방향으로 바뀌는 것이다. 수리를 맡기러 온 고객은 전용 카운터에서 상담을 받고, 온라인으로 주문한 고객은 별도의 수령 공간에서 제품을 건네받는다. 교육 프로그램도 매장 한가운데 넓은 공간을 차지하는 대신 벽면 전용 구역으로 들어간다.

10년 전 애플이 내놓은 매장은 달랐다. 2016년 샌프란시스코 유니언 스퀘어에 새로 문을 연 애플스토어에는 기존 전자제품 매장에서 보기 어려웠던 공간이 들어섰다. 지니어스 바 대신 매장 안에 심은 나무 아래에서 상담을 받는 ‘Genius Grove’를 만들었고, 대형 비디오월 앞에는 교육과 행사를 위한 ‘Forum’을 배치했다. 벽면에는 제품과 서비스를 전시하는 ‘Avenue’를 설치했다. 제품을 사고 수리하는 매장이 아니라 사람들이 머물고 배우는 공간을 만들겠다는 구상이었다. Today at Apple이 확대되면서 사진과 영상, 음악, 코딩, 미술과 디자인을 배우는 프로그램도 매장 안으로 들어왔다.

판매 효율만 놓고 보면 굳이 필요하지 않은 공간이었다. 제품을 빨리 팔고 고객을 많이 받으려면 상담 카운터와 계산대, 제품 수령대를 명확하게 나누는 편이 낫다. 애플은 오히려 반대쪽을 택했다. 매장 한가운데 나무를 심고 대형 스크린을 설치했으며, 물건을 사지 않는 사람도 머물 수 있는 공간을 만들었다. 전자제품 매장을 판매와 수리 중심의 장소에서 체험과 교육을 겸하는 공간으로 확장하려는 시도였다.

2026년 시작된 변화는 당시와 방향이 다르다. 온라인 주문 상품은 잠금식 서랍을 갖춘 목재 공간에 보관하고 직원이 앞쪽 테이블에서 고객에게 제품을 건넨다. Today at Apple 프로그램도 별도의 공간으로 들어간다. 대형 비디오월이 있던 자리에는 높이가 다른 두 개의 카운터를 갖춘 지니어스 바가 설치될 예정이다. 10년 전 없앴던 서비스 카운터가 다시 매장 중심 기능으로 돌아오는 셈이다.

애플스토어의 역사를 더 거슬러 올라가면 변화의 폭은 더 뚜렷해진다. 2001년 5월 미국 버지니아주와 캘리포니아주에 문을 연 첫 애플스토어에는 처음부터 지니어스 바가 있었다. 고객이 맥 사용법을 묻거나 수리를 상담할 수 있는 전용 공간이었다. 매장에는 대형 스크린을 설치한 극장도 마련됐다. 당시 스티브 잡스(Steve Jobs)가 만들려 했던 매장은 컴퓨터 사양을 늘어놓고 판매하는 곳과 달랐다. 고객이 영화와 음악, 사진을 직접 다뤄보며 컴퓨터로 무엇을 할 수 있는지 경험하는 장소에 가까웠다.

애플이 강했던 시절의 디자인도 비슷했다. 애플은 새로운 제품을 내놓는 데 그치지 않고 사람들이 기술을 사용하는 방식부터 바꿨다. 아이팟은 음악을 들고 다니는 방법을 바꿨고, 아이폰은 휴대전화에서 물리 키보드를 밀어내고 손가락으로 화면을 직접 조작하는 방식을 대중화했다. 애플스토어는 전자제품 매장의 역할을 판매와 수리에서 체험과 교육까지 넓혔다. 제품 외형만 놓고 애플을 디자인 기업이라고 부른 것은 아니었다. 복잡한 기술을 일상적인 행동으로 바꾸고, 소비자가 기술에 적응하기보다 제품이 소비자의 행동에 맞도록 만드는 데 애플 디자인의 경쟁력이 있었다.

AI가 빠르게 확산하면서 애플이 가장 강했던 영역에서 다시 큰 변화가 시작됐다. 스마트폰에서는 사용자가 원하는 앱을 찾아 실행하고 메뉴를 눌렀다. 생성형 AI에서는 자연어로 원하는 일을 말하면 AI가 정보를 찾고 정리하고 여러 기능을 연결한다. 사람이 컴퓨터의 명령 체계에 맞추는 방식에서 컴퓨터가 사람의 의도를 파악하는 방향으로 사용자 경험이 이동하고 있다.

애플은 2024년 6월 Apple Intelligence를 공개하면서 새로운 Siri의 청사진을 내놓았다. 개인의 맥락을 이해하고 화면에 있는 내용을 파악하며, 애플 앱과 외부 앱을 넘나들어 여러 작업을 처리하는 기능을 예고했다. 생성형 AI 기술 자체보다 아이폰과 맥 안에서 사람이 AI를 어떻게 사용하게 할지를 설계한다는 점에서 애플이 오랫동안 강점을 보여온 영역과 맞닿아 있었다. 그러나 실제 제품으로 옮기는 속도는 시장의 기대를 따라가지 못했다.

생성형 AI 시장에서는 이미 대화형 AI가 일상적인 도구로 자리 잡았고, 검색과 문서 작성, 코딩, 이미지 제작을 넘어 여러 작업을 직접 수행하는 AI 에이전트 경쟁으로 확대됐다. 애플은 2026년 6월 WWDC26에서 차세대 Apple Intelligence와 새로운 Siri AI를 다시 전면에 내세웠다. 아이폰이 스마트폰의 사용 방식을 바꾸던 때와는 위치가 달라졌다. 당시 경쟁사들은 애플이 내놓은 멀티터치 인터페이스와 앱 생태계를 뒤따라갔지만, 생성형 AI에서는 다른 기업들이 먼저 새로운 사용 방식을 만들었고 애플이 이를 자사 기기와 서비스 안에서 얼마나 자연스럽게 구현할지가 관심사가 됐다.

애플의 위기를 매출에서 찾기는 어렵다. 애플은 2026 회계연도 3분기에 1,094억달러의 매출을 올렸다. 전년 같은 기간보다 16% 증가한 수치다. 아이폰과 맥, 서비스 부문도 6월 분기 기준 사상 최대 매출을 기록했다. 제품 판매가 무너진 회사도 아니고 소비자가 떠나는 회사도 아니다. 막대한 현금 창출력과 수많은 활성 기기, 강력한 생태계를 갖춘 세계 최대 기술 기업 가운데 하나라는 위치도 달라지지 않았다.

달라진 것은 시장을 앞서가는 방식이다. 과거의 애플은 사람들이 앞으로 기술을 어떻게 사용할지를 먼저 보여주는 회사였다. 아이팟과 아이폰, 애플스토어가 등장한 뒤 경쟁사와 유통업체들이 애플이 만든 방식을 따라갔다. 지금은 다른 기업이 먼저 만든 흐름을 애플이 얼마나 완성도 높게 자사 생태계에 옮길지가 더 자주 관심사가 된다. 후발 진입 자체가 애플에 낯선 전략은 아니다. MP3 플레이어도 애플이 처음 만든 제품이 아니었고 스마트폰 역시 아이폰 이전에 존재했다. 애플은 먼저 나온 기술을 가져와 사용법을 다시 설계하고 대중시장으로 넓히는 데 강했다.

AI에서는 조건이 다르다. AI가 스마트폰 안에 들어가는 하나의 기능에 그치지 않고 컴퓨터를 사용하는 방식 자체를 바꾸고 있기 때문이다. 어떤 버튼을 어디에 놓을지보다 AI가 사용자의 말을 어디까지 이해하고, 어떤 일을 대신하며, 개인 정보를 어떻게 다룰지를 정하는 일이 더 중요해졌다. 애플이 오랫동안 경쟁력을 보여온 ‘사용 경험의 설계’가 AI 산업의 중심으로 이동한 셈이다.

이런 흐름에서 애플스토어의 지니어스 바 복귀는 눈여겨볼 만하다. 2016년 애플은 카운터를 치우고 나무를 심었다. 대형 스크린 앞에 사람들이 모이는 공간을 만들고 전자제품 매장을 도심의 생활 공간으로 넓히려 했다. 10년이 지난 지금 애플은 비디오월을 걷어내고 다시 상담 카운터를 설치한다. 주문 상품은 별도의 수납공간으로 옮기고 교육 프로그램도 전용 구역 안으로 넣는다. 매장은 더 편리해질 수 있다. 수리를 받으러 온 고객이 어디로 가야 하는지 알기 쉬워지고 온라인 주문 상품을 찾는 시간도 줄어들 수 있다.

다만 정교하게 만든 서비스 카운터와 새로운 매장 개념을 만드는 일은 다르다. 애플 디자인의 전성기를 만든 것은 알루미늄과 유리, 원목을 세련되게 배치하는 솜씨만이 아니었다. 다른 기업이 당연하게 받아들이던 방식을 없애고 새로운 사용법을 내놓는 힘이었다. 2001년에는 컴퓨터 매장에 지니어스 바와 극장을 넣었고, 2016년에는 다시 지니어스 바를 없애고 나무와 광장을 만들었다. 2026년에는 대형 비디오월을 걷고 서비스 카운터를 되살리려 한다.

매출은 계속 늘고 있고 아이폰도 여전히 팔린다. 서비스 사업도 성장하고 있다. 그러나 애플을 디자인 기업의 상징으로 만든 기준은 매출액만이 아니었다. 사람들이 아직 요구하지 않은 사용법을 먼저 내놓고 몇 년 뒤 그것을 업계의 표준으로 만들어내는 힘이 애플의 이름값을 키웠다.

AI 시대의 경쟁도 결국 같은 곳으로 향한다. 더 빠른 AI 모델을 만드는 것만으로 승부가 끝나지 않는다. 수십억 명이 AI를 어떤 방식으로 사용하게 될지를 누가 먼저 설계하느냐가 중요해졌다. 애플은 여전히 더 커지고 더 많은 돈을 벌고 있지만, 한때 애플이 거의 독점했던 위치는 예전과 같지 않다. 새로운 기술이 등장할 때마다 소비자가 먼저 애플을 바라보고, 경쟁사가 애플의 다음 선택을 기다리던 자리다.

지니어스 바가 돌아오는 애플스토어는 그런 변화를 압축해서 보여준다. 10년 전 나무와 광장을 앞세워 전자제품 매장의 역할을 넓혔던 애플이 다시 서비스와 수령, 상담의 효율을 앞세우고 있다. AI 시대 애플의 승부는 사상 최대 매출을 다시 경신하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아이폰 이후 시장이 다시 한 번 애플이 만든 사용법을 따라가게 할 수 있는지가 더 큰 평가 기준으로 남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