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 한 방울로 췌장암 1·2기 87% 잡는다…AI 액체생검 ‘팬시온’ 등장
한·미·일·이 1785명 다기관 임상서 조기 진단 민감도 86.8% 입증…암 전 단계 고도 이형성증도 64.3% 선별
[KtN 홍은희기자] 인공지능(AI) 머신러닝과 결합한 혈액 액체생검 검사법 ‘팬시온(PANXEON)’이 초기 췌관선암(PDAC)을 약 87%의 민감도로 포착해냈다.
16일(현지시간) 국제학술지 ‘네이처 메디신(Nature Medicine)’에 게재된 논문(doi: 10.1038/s41591-026-04625-x)에 따르면 미국 암 연구·치료기관 시티오브호프(City of Hope) 아제이 고엘 교수 연구팀은 한국, 미국, 일본, 이탈리아 4개국 1785명이 참여한 국제 다기관 전향적 연구를 통해 이 같은 임상 성능을 규명했다. 이번 연구에는 삼성서울병원 박준오 교수와 서울아산병원 김송철 교수도 공동저자로 참여했다.
스스로 건강을 적극 관리하는 '얼리케어'와 정기 검진 선별 수요가 확대되는 사회적 흐름 속에서도, 췌장암은 조기 진단 장벽이 가장 높은 암으로 꼽혀왔다. 국가암지식정보센터에 따르면 2019~2023년 국내 췌장암 환자의 5년 상대생존율은 17%에 그친다. 환자의 약 90%가 암이 전이된 뒤에야 종양을 발견하는 실정이다. 췌장암 대다수를 차지하는 췌관선암은 초기 증상이 거의 없고, 표준 혈액검사 체계 역시 마땅치 않아 임상적 미충족 수요가 컸다.
□ 기존 단백질 표지자 한계 넘은 ‘miRNA 10종+AI’ 결합 구조
임상 현장에서 췌장암 진단 보조로 널리 쓰여온 대표 혈액 종양표지자는 ‘CA19-9’ 단백질이다. 그러나 CA19-9는 췌장염이나 담도 폐쇄 같은 양성 질환에서도 수치가 상승할 수 있고, 특정 유전적 요인으로 해당 단백질을 생성하지 못하는 환자군이 존재해 일반인 대상 조기 선별에는 명확한 한계를 보여왔다.
연구팀은 혈액 내 순환 마이크로RNA(miRNA)와 세포 분비 소낭인 엑소좀(exosome) 속 miRNA, 그리고 단백질 종양표지자 CA19-9 등 세 가지 생체지표를 동시에 결합하는 설계를 택했다. miRNA는 유전자 발현을 조절하는 미세 물질로 암 발생 과정에서 뚜렷한 발현 차이를 나타낸다.
연구진은 췌장암과 연계된 10종의 miRNA 시그니처를 도출한 뒤 머신러닝 알고리즘인 ‘XGBoost’를 적용해 복합 데이터를 분석하고 단일 위험 지표인 ‘팬시온 점수’를 산출했다.
성능 평가 결과, miRNA 시그니처 단독 적용 시 초기 췌장암 탐지 민감도는 83.8%를 기록했다. 여기에 CA19-9 수치를 결합한 팬시온 모델은 1기 및 2기 췌관선암 환자의 86.8%를 식별했다. 암이 없는 대조군을 암으로 오판하는 위양성(거짓 양성) 비율은 저위험 대조군에서 3.2%, 고위험 대조군에서 15.6%로 나타났다.
□ ‘0기 췌장암’ 고도 이형성증 64.3% 탐지…고위험군 선별 정밀도 향상
팬시온은 악성 침윤으로 넘어가기 직전인 전암성 병변을 가려내는 능력도 입증했다.
췌장 낭종 환자 등 고위험군 분석 결과, 이른바 '0기 췌장암'으로 불리는 ‘고도 이형성증(high-grade dysplasia)’을 64.3%의 비율로 찾아냈다. 고도 이형성증은 세포 변형이 악성에 가깝게 진행됐으나 아직 기저막을 뚫고 주변 조직으로 침범하지 않은 상태다. 췌장 낭종이 모두 암으로 전환되는 것은 아닌 만큼, 고도 이형성증 동반 여부를 사전 식별하는 체계는 불필요한 외과 수술을 방지하고 치료 적기를 결정하는 지표가 된다.
추적 관찰 데이터에서도 유의미한 변화가 관찰됐다. 환자 19명을 대상으로 추적 분석한 결과 혈액 속 miRNA 신호는 항암 치료와 외과 수술 후 감소했다가 암 재발 징후가 나타나기 전 다시 상승하는 패턴을 보였다.
□ 일반 검진 적용엔 위양성 관리 과제…선별 보조 도구로 실마리
검사법이 일반 무증상 대상 선별검사로 안착하기 위해서는 추가 검증 절차가 남아 있다. 고위험 대조군에서 확인된 15.6%의 위양성률은 불필요한 침습적 정밀검사 부담을 부를 수 있다. 추적 관찰 환자군 역시 19명 규모에 그쳐 치료 반응 평가와 재발 감시용 지표로 일반화하기에는 자료 축적이 더 필요하다.
연구팀은 팬시온이 기존 영상의학 검사를 완전히 대체하기보다, 췌장 낭종이나 만성 췌장염 등으로 정밀 관찰이 요구되는 고위험군에서 추가 정밀검사 대상자를 사전에 가려내는 '선별 보조 도구'로 유용할 것으로 내다봤다.
연구 책임을 맡은 아제이 고엘 교수는 “췌장암은 근치적 치료가 가능한 골든타임을 넘긴 뒤 진단받는 사례가 많아 치명적”이라며 “증상이 발현되기 전, 유효한 치료 선택지가 확보된 시점에 췌장암을 포착하는 방향으로 진전을 이뤄냈다”고 밝혔다.
관련 논문
https://www.nature.com/articles/s41591-026-04625-x
doi.org/10.1038/s41591-026-04625-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