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isry SS27⑤] 가족사진에서 시작한 ‘AMERICA, STILL’…키스 헤런이 겹쳐 놓은 미국의 반세기
약 50년 전 아버지의 어린 시절 사진을 객석에 배치한 Advisry SS27 볼드윈·1970년대 문화·스포츠웨어와 가족의 기억을 하나의 컬렉션으로 연결
[KtN 박인경기자]뉴욕 맨해튼 플랫아이언 디스트릭트의 객석에는 약 50년 전 한 소년의 사진이 놓였다. 소년은 키스 헤런(Keith Herron)의 아버지였다. Advisry의 2027 봄·여름 컬렉션 ‘AMERICA, STILL’은 제임스 볼드윈(James Baldwin)의 1969년 목소리와 1970년대 미국을 불러왔지만, 런웨이를 둘러싼 가장 개인적인 기록은 헤런 자신의 가족사였다.
객석마다 놓인 부채에는 어린 시절 아버지의 사진이 인쇄됐다. ‘AMERICA, STILL’이라는 제목 역시 약 반세기의 시간을 되돌아본 시선과 맞닿아 있다. 역사적 인물과 영화, 스포츠, 복식만으로 1970년대를 재구성하지 않고 가족의 기록까지 같은 시간대에 놓으면서 컬렉션의 범위는 국가의 기억과 개인의 기억 사이로 넓어졌다.
화이트 계열로 정리된 긴 아우터와 넓은 팬츠는 장식을 크게 앞세우지 않는다. 상·하의를 비슷한 색으로 묶고 길게 떨어지는 외투와 넉넉한 하의를 조합해 실루엣 자체에 무게를 뒀다. ‘AMERICA, STILL’ 전반에 반복되는 데님과 체크, 강한 색채와 달리 색을 절제한 구성도 컬렉션의 폭을 보여준다.
헤런이 불러온 1970년대는 하나의 미학으로 정리되지 않았다. 영화 ‘택시 드라이버(Taxi Driver)’의 트래비스 비클(Travis Bickle)에서 연결된 디스트레스드 데님과 트렌치코트, 무하마드 알리(Muhammad Ali)와 맬컴 X(Malcolm X)가 놓인 시대에서 가져온 수트와 타탄, 체커보드, 이어지는 시퀸 농구 쇼츠와 펄 장식 재킷이 한 런웨이를 구성했다.
같은 미국 안에서도 옷의 출발점은 서로 달랐다. 군복에서 출발한 트렌치코트, 노동복과 일상복의 성격을 함께 지닌 데님, 격식복의 대표적인 형태인 수트, 스포츠웨어에 가까운 농구 쇼츠, 장식성이 강한 드레스와 펄 장식이 한 컬렉션 안에 함께 들어왔다. 특정 복식 하나를 미국의 대표 이미지로 내세우지 않고 서로 다른 옷의 계보를 병치했다.
밝은 색 재킷에는 반복적인 여밈이 전면에 놓이고, 무릎 부근까지 내려오는 베이지 계열 하의가 이어진다. 흰 양말과 검은 신발까지 더하면서 상체의 단정한 구조와 하체의 편안한 길이를 한 벌 안에 섞었다. 테일러링과 캐주얼웨어 사이의 간격을 좁히는 방식은 ‘AMERICA, STILL’ 곳곳에서 반복된다.
26세의 헤런에게 1970년대는 직접 경험한 시간이 아니다. 약 50년 전 아버지의 어린 시절 사진은 그런 시간적 거리를 개인의 기록으로 연결한다. 디자이너 자신의 세대보다 앞선 미국을 영화나 유명 인물만으로 바라보지 않고 가족 앨범의 시간까지 끌어들였다는 점에서 ‘AMERICA, STILL’의 제목도 보다 구체적인 배경을 갖는다.
가족의 기억은 컬렉션 전체를 사적인 서사로 돌려놓지는 않는다. 헤런은 제임스 볼드윈의 1969년 목소리에서 출발했고, 1970년대의 정치·문화적 긴장을 현재의 미국과 겹쳐 바라봤다. 동시에 미국을 둘러싼 부정적인 정서와 미국 문화에 대한 지속적인 선망이 함께 존재한다는 인식도 컬렉션에 반영했다. 가족사진은 거대한 시대 구분 사이에 개인이 실제로 살아온 시간을 집어넣는 역할에 가깝다.
검은색 테일러링은 색을 거의 비운 채 실루엣과 길이를 강조한다. 재킷 아래로 길게 떨어지는 하의와 넉넉한 외투가 겹치고, 몸통에는 여러 겹의 검은 소재가 이어진다. 강한 체커보드와 타탄이 등장하는 다른 착장과 비교하면 패턴을 덜어낸 대신 옷의 구조와 비례가 더 직접적으로 드러난다.
‘AMERICA, STILL’에서 남성복과 여성복의 경계 역시 한 방향으로 고정되지 않는다. 수트와 드레스, 케이프와 쇼츠, 니트와 트렌치코트가 번갈아 등장하고 동일한 체크와 광택 소재가 서로 다른 복종에 적용된다. 전통적인 남성복의 테일러링과 여성복에서 익숙한 드레이프, 스포츠웨어의 넉넉한 비례가 각각 떨어져 존재하기보다 한 컬렉션 안에서 계속 섞인다.
검은 드레스는 몸을 따라 길게 떨어지면서 깊은 슬릿으로 하체의 움직임을 드러낸다. 소재와 색은 절제돼 있지만 비대칭적인 절개와 길이 차이가 실루엣을 분명하게 만든다. 컬렉션 후반의 검은 드레스가 볼륨과 주름을 크게 확장한 것과 비교하면 같은 검정 안에서도 몸을 감싸는 방법이 달라진다.
볼륨을 확대한 검은 드레스는 상체에 주름을 집중시키고 아래로 내려갈수록 폭을 넓힌다. 검은 외부 소재 사이로 밝은 부분이 드러나면서 색의 대비도 커진다. 한쪽은 몸 가까이 붙고 다른 쪽은 하단의 부피를 확장한다. 동일한 색을 반복하면서도 실루엣을 달리해 컬렉션의 시작과 끝 사이에 변화폭을 만들었다.
맨해튼 플랫아이언 디스트릭트에서 열린 쇼에는 퍼블릭 스쿨(Public School)의 맥스웰 오스본(Maxwell Osborne), 키드슈퍼(KidSuper)의 콜름 딜레인(Colm Dillane)도 참석했다. 헤런은 데님과 트렌치, 수트와 타탄, 농구 쇼츠와 장식 재킷을 통해 미국 패션의 서로 다른 층위를 한 런웨이에 놓았다.
‘AMERICA, STILL’의 시간은 1969년 볼드윈의 목소리에서 시작해 1970년대 영화와 스포츠, 복식을 거쳐 2026년 뉴욕으로 이어졌다. 객석에 놓인 약 50년 전 아버지의 사진은 같은 반세기를 한 가족의 시간으로 연결했다. Advisry SS27에서 미국은 하나의 상징이나 스타일로 압축되지 않았다. 트렌치와 데님, 체커보드 수트와 타탄, 시퀸 농구 쇼츠와 검은 드레스까지 서로 다른 옷이 이어졌고, 헤런이 태어나기 이전의 미국과 현재의 뉴욕이 ‘AMERICA, STILL’이라는 제목 아래 한 컬렉션에 놓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