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telier] 김현정 ‘프라하의 창’…스테인드글라스 앞에서 시작된 ‘빛나는 색채’
2005년 프라하에서 마주한 투과광을 장지와 분채로 옮긴 초기작 색유리의 반복과 깊게 이어지는 아치, 창을 향한 인물…‘빛의 나비’와 LED 작업으로 이어진 출발
[KtN 박준식기자]오른쪽 가장자리를 세로로 가르는 색유리 창이 먼저 시선을 붙든다. 붉은 틀 안에는 노랑과 연두, 분홍과 주황의 원형 색면이 촘촘하게 반복된다. 그 앞에는 한 인물이 의자에 앉아 몸을 오른쪽으로 돌리고 있다. 인물의 시선이 향하는 곳도 색유리 창이다. 왼쪽과 중앙에는 높은 아치와 문이 겹겹이 이어지며 건축 내부의 깊이를 만든다.
나비킴(Navikim·김현정) 작가의 2005년작 ‘프라하의 창(The Window of Prague)’은 나비가 등장하기 전의 작품이다. 이후 김현정 작가를 대표하게 되는 날개도, 실제 빛을 내는 LED도 없다. 대신 한 사람이 빛을 바라보는 순간과 그 빛을 품은 공간이 작품의 중심을 이룬다.
구성은 크게 두 방향으로 나뉜다. 오른쪽의 색유리 창은 정면에 가까운 평면으로 세워져 있고, 왼쪽과 중앙의 아치는 작품 안쪽으로 길게 물러난다. 색유리가 시선을 붙잡는 강한 수직축을 만든다면, 연속된 아치는 먼 곳까지 이어지는 깊이를 만든다. 평평한 창과 깊은 건축 공간이 한 작품 안에서 맞물린다.
색유리의 반복 방식도 독특하다. 구체적인 인물이나 성서적 서사를 묘사한 전통적 스테인드글라스보다 작은 원형 색면들이 모자이크처럼 배열돼 있다. 각각의 원은 서로 다른 색을 갖지만 붉은 창틀 안에서 하나의 덩어리로 묶인다. 작은 색들이 독립적으로 존재하면서 동시에 하나의 빛을 이루는 구조다.
이 색의 분절은 이후 김현정 작가의 나비 날개와도 연결된다. 작가는 스테인드글라스의 조각난 색과 창살 구조에서 받은 인상이 이후 나비 날개의 패턴으로 이어졌고, 나비를 ‘빛의 형상’으로 받아들이는 계기가 됐다고 정리했다.
‘프라하의 창’에서는 그 변화가 아직 시작되기 전이다. 작품 속 인물은 색유리와 일정한 거리를 두고 앉아 있다. 창에 손을 대지도 않고, 건축물을 이동하지도 않는다. 의자에 몸을 붙인 채 한쪽을 바라본다. 움직임보다 바라보는 시간이 길게 남는다.
인물의 위치도 절묘하다. 오른쪽의 강렬한 색유리와 중앙의 어두운 아치 사이에 놓여 있다. 밝고 화려한 색채와 깊고 어두운 통로의 경계에 사람이 앉아 있는 셈이다. 인물의 흰 상의와 밝은 피부색은 주변의 황색 계열과 가까워 건축 공간 안에 자연스럽게 스며들고, 청색 바지는 색유리의 차가운 색과 연결된다.
바닥과 벽은 연한 황색과 녹색을 중심으로 정리돼 있다. 오른쪽 창의 분홍과 주황, 연두가 강한 채도를 만드는 데 비해 건축 내부에는 한층 부드러운 색이 넓게 깔린다. 색유리에서 나온 빛을 광선처럼 직접 그리지 않고 공간 전체의 온도를 밝히는 방식이다.
왼쪽 벽에서 중앙 아치, 다시 뒤편 통로로 이어지는 밝고 어두운 색의 변화도 공간의 깊이를 만든다. 가까운 벽은 크림빛에 가깝고, 통로 안쪽으로 갈수록 녹색과 회색이 섞이며 어두워진다. 빛이 강한 곳과 약한 곳을 선으로 나누지 않고 색의 농도로 이동시킨다.
김현정 작가는 2005년 프라하의 한 성당에서 스테인드글라스를 통과한 햇살이 실내 벽에 퍼지는 모습을 오래 바라봤다고 기록했다. 색유리를 지난 빛이 반사되고 확산되는 경험은 이후 빛 자체를 작업의 대상으로 삼는 계기가 됐다. ‘프라하의 창’은 그 경험을 장지와 분채로 옮긴 작품이다.
작품 제목에 ‘빛’이 아니라 ‘창’이 들어간 점도 흥미롭다. 빛을 직접 붙잡기보다 빛이 들어오는 통로를 먼저 그렸다. 스테인드글라스는 색을 가진 물질인 동시에 빛을 통과시키는 매개체다. 김 작가의 이후 작업에서도 빛은 단독으로 존재하기보다 유리, 플렉시글라스, 아크릴, LED와 같은 재료를 만나면서 가시화된다.
‘프라하의 창’에서 분채가 담당하는 역할은 그 출발에 해당한다. 원형 색면 하나하나에 서로 다른 색을 놓아 투명한 색유리의 느낌을 옮기고, 주변에는 옅은 황색을 넓게 두어 밝음을 확장한다. 다만 안료는 스스로 빛을 내지 않는다. 외부의 빛을 받아 색을 드러내는 재료다.
이 재료적 한계는 오히려 이후 작업을 밀어가는 계기가 됐다. 김 작가는 ‘프라하의 창’을 제작하면서 안료를 섞고 겹칠수록 원래 경험했던 스테인드글라스의 투명하고 선명한 밝음에서 멀어지는 문제를 체감했다. 그 경험은 단순히 밝은 색을 그리는 데서 벗어나 실제로 ‘빛나는 색채’를 만드는 방법을 찾는 작업으로 이어졌다.
그래서 ‘프라하의 창’은 완성된 답을 제시한 작품보다 새로운 재료를 찾아가게 만든 출발에 가깝다. 장지와 분채만으로 빛을 붙잡으려 했던 2005년의 작업이 플렉시글라스와 빛의 투과 실험을 거쳐 ‘날으는 빛(Flying Light)’으로 이동하고, 이후 LED라는 실제 광원까지 받아들이게 된다. 스테인드글라스에서 시작된 투과의 경험은 현대적인 투명 재료와 인공광으로 다시 이어졌다.
2006년 ‘기다림(Waiting)’과 나란히 놓으면 또 다른 변화가 읽힌다. ‘프라하의 창’에서는 외부에서 들어오는 빛과 그것을 바라보는 인물이 중심에 있다. ‘기다림’에서는 빛이 마음속 그리움과 회복의 방향으로 옮겨간다. 이후 ‘첫 만남(First Meeting)’에서 나비가 등장하면서 빛을 향한 움직임은 날개라는 형상을 얻는다.
‘프라하의 창’에는 아직 나비가 없다. 그 대신 훗날 나비의 날개로 옮겨갈 색의 조각들이 먼저 있다. LED도 없지만 실제 광원을 작품 안으로 끌어들이게 만드는 문제의식도 이미 시작됐다.
오른쪽의 작은 원들은 서로 다른 색으로 빛을 기억하고, 중앙의 인물은 그 앞에서 오래 머문다. 아치 너머의 깊은 통로와 색유리의 밝은 평면 사이에 놓인 인물은 ‘빛을 그리는 화가’로 나아가기 전 김현정 작가의 위치와도 겹친다.
2005년 ‘프라하의 창’에서 시작된 것은 나비라는 형상이 아니었다. 색을 넘어 실제 빛의 감각에 가까이 가려는 탐구였다. 나비킴의 ‘빛의 나비’가 날개를 얻기 전, 작품 안에는 먼저 빛을 통과시키는 창과 그 앞에 오래 머문 한 사람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