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트렌드②] ‘불안’이 전시의 언어가 됐다…정체성을 사회·역사로 확장한 ‘PSYCHO’

개인의 심리에서 노동·경제·역사의 기억까지…테츠야 이시다와 요시토모 나라로 읽는 동시대 전시의 ‘내면’ 확장

2026-09-20     임민정 기자

[KtN 임민정기자]녹슨 해적선 안에 사람의 몸이 끼어 있고, 청록색 바탕 앞에는 작은 아이가 홀로 서 있다. 테츠야 이시다(Tetsuya Ishida)와 요시토모 나라(Yoshitomo Nara)는 전혀 다른 이미지로 인간의 내면에 접근한다. 한쪽에서는 사회 안에서 움직이지 못하는 신체가 등장하고, 다른 한쪽에서는 어린 얼굴에 쉽게 이름 붙이기 어려운 감정이 머문다. 홍콩 소더비 메종(Sotheby’s Maison)의 ‘PSYCHO: Identity Alienation Shadow Duality’는 두 작업 사이에 정체성, 소외, 그림자, 이중성이라는 연결선을 놓았다.

마크 로스코(Mark Rothko), 이시다, 나라, 야요이 쿠사마(Yayoi Kusama), 한스 벨머(Hans Bellmer), 이불(Lee Bul), 프랭크 아우어바흐(Frank Auerbach), 폴라 레고(Paula Rego) 등이 참여한 이번 전시에서는 인간의 심리가 단순한 감정 표현에 머물지 않는다. 개인이 자신을 인식하는 방식에 사회적 압력과 경제 환경, 기억과 역사가 함께 개입한다. ‘내면’을 사적인 영역으로만 다루기보다 한 사람이 살아가는 외부 조건과 연결하는 구성이 두드러진다.

[전시트렌드②] ‘불안’이 전시의 언어가 됐다…정체성을 사회·역사로 확장한 ‘PSYCHO’. 사진=Yoshitomo Nara and Mark Rothko / Sotheby’s Hong Kong,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테츠야 이시다의 1996년작 ‘Can’t Fly Anymore’에는 녹이 슨 해적선 형태의 놀이기구와 인물이 결합돼 있다. 놀이와 움직임을 위해 존재하는 장치는 사람을 태우고 이동시키는 대신 인물의 몸을 붙잡은 구조처럼 변한다. 비행을 연상시키는 제목과 움직일 수 없는 신체의 대비가 작품 전체에 긴장을 남긴다.

이시다는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익명의 인물을 통해 일본 버블경제 붕괴 이후의 소외와 불안, 사회 시스템 안에서 개인이 경험하는 무력감을 다뤄왔다. ‘Can’t Fly Anymore’에서도 감정은 얼굴의 표정보다 신체가 놓인 위치에서 읽힌다. 인물은 격렬하게 저항하지 않고, 공포를 과장해 드러내지도 않는다. 대신 기계와 몸이 분리되지 않는 상태가 개인에게 주어진 선택의 폭을 좁힌다.

추정가는 600만~800만 홍콩달러, 미화 약 76만4,000~100만달러다. 그러나 ‘PSYCHO’ 안에서는 시장 가격보다 작품 속 인물이 어떤 구조 안에 놓였는지가 먼저 부각된다. 개인의 심리를 개인 내부의 문제로만 돌리지 않고 노동과 경제, 사회적 압력까지 함께 읽게 하는 전시의 방향과 맞물리기 때문이다.

불안과 소외를 다루는 전시가 어두운 이미지나 격렬한 표현만을 선택할 필요도 없다는 점이 여기서 드러난다. 이시다의 인물은 오히려 무표정에 가깝다. 감정이 크게 폭발하지 않기 때문에 일상 속에 지속되는 압박과 무력감이 더 오래 남는다. 극적인 사건보다 반복되는 구조가 심리를 설명한다.

‘PSYCHO’가 정체성을 바라보는 방식도 이와 연결된다. 한 사람의 정체성을 고정된 성격이나 개인적 취향으로 설명하지 않고 사회와 노동, 역사, 기억 등 여러 조건이 겹쳐 만들어지는 상태로 접근한다. 작품마다 출발점은 다르지만 전시는 개인과 외부 세계의 관계를 끊임없이 교차시킨다.

[전시트렌드②] ‘불안’이 전시의 언어가 됐다…정체성을 사회·역사로 확장한 ‘PSYCHO’. 사진=Yoshitomo Nara and Mark Rothko / Sotheby’s Hong Kong,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요시토모 나라의 작은 인물은 이시다와 전혀 다른 방식으로 시선을 붙잡는다. 청록색 바탕과 붉은 옷 사이에 홀로 놓인 인물은 형태가 간결하고 주변에는 서사를 설명할 다른 요소가 거의 없다. 커다란 머리와 작은 몸, 단순화된 얼굴은 친숙하지만 표정은 한 방향으로 정리되지 않는다.

나라의 어린 인물은 귀여움과 반항, 고독과 경계가 동시에 읽히는 양가성으로 잘 알려져 있다. 이번 전시가 내세운 ‘Duality’와도 맞닿는 부분이다. 어린아이의 외형이 반드시 순수함만을 의미하지 않고, 단순한 표정 안에서도 서로 다른 감정이 공존한다.

여기에서 정체성은 하나의 얼굴에 하나의 의미가 대응하는 방식에서 벗어난다. 보이는 외형과 실제 감정이 다를 수 있고, 친숙한 이미지 안에도 거리감이나 긴장이 존재할 수 있다. ‘PSYCHO’가 제목에 ‘Shadow’와 ‘Duality’를 함께 배치한 이유도 인간을 하나의 표정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상태에 주목하기 때문이다.

나라의 ‘The Crated Room in Iceland / Drawing Room’은 이런 접근을 인물 한 명에서 공간 전체로 확장한다. 15년 넘게 공개되지 않았던 설치에는 97점의 드로잉과 의자, CD 플레이어, 개인적인 물건, 대형 회화가 함께 들어간다. 한 사람의 감정과 기억이 얼굴에만 남는 것이 아니라 방과 사물, 음악과 드로잉의 축적으로 퍼진다.

이시다와 나라를 함께 놓으면 ‘심리’를 전시하는 방식도 선명하게 갈린다. 이시다에게 불안은 사회 구조와 충돌하는 신체를 통해 나타나고, 나라에게 내면은 개인적인 흔적과 모호한 표정 속에 남는다. 한쪽은 바깥의 시스템이 사람에게 가하는 압력을 다루고, 다른 한쪽은 한 사람 안에서 동시에 존재하는 여러 감정을 파고든다.

이불의 대형 설치 ‘Heaven and Earth’에서는 개인과 외부 세계의 관계가 다시 역사로 넓어진다. 깨진 타일로 구성한 욕조와 검은 먹, 축소된 산의 형태가 함께 놓이며 개인적인 기억과 한국 현대사에 대한 참조가 겹친다. 인간의 심리를 이해하기 위해 개인의 내면만 들여다보기보다 그 사람을 둘러싼 역사적 환경까지 함께 불러오는 방식이다.

마크 로스코의 ‘Untitled (Plum and Dark Brown)’에서는 인물도 사건도 사라진다. 플럼과 짙은 브라운의 제한된 색면, 높이 2m에 이르는 규모가 관람자의 감각을 직접 끌어들인다. 나라와 이시다가 인물과 공간을 통해 심리를 다룬다면 로스코는 구체적인 서사를 지운 자리에서 색과 규모만으로 내향적인 긴장을 만든다.

서로 다른 형식의 작품을 한데 묶으면서 ‘PSYCHO’가 다루는 심리의 범위도 넓어진다. 인간의 불안을 표현한 작품만 모은 것이 아니라 개인이 자신의 정체성을 경험하는 여러 조건을 나란히 놓는다. 감정의 묘사에서 사회 구조로, 개인의 기억에서 국가의 역사로, 구체적인 인물에서 추상적인 색면으로 이동하면서 같은 주제가 여러 층으로 분화된다.

문학이 전시장 안으로 들어온 것도 같은 흐름이다. 브렛 이스턴 엘리스(Bret Easton Ellis)의 ‘American Psycho’ 초판과 로버트 버턴(Robert Burton)의 ‘The Anatomy of Melancholy’ 17세기 판본은 소외와 욕망, 멜랑콜리와 분열된 자아를 미술의 영역 밖으로 연결한다. 심리를 하나의 매체로 설명하지 않고 회화와 설치, 문학이 서로 다른 시대의 인간상을 이어받는다.

‘PSYCHO’가 보여주는 전시 흐름은 감정을 하나의 분위기로 소비하는 방식과 거리를 둔다. 어두운 조명이나 강렬한 이미지로 불안을 강조하기보다 불안이 어디에서 만들어지고 정체성이 어떤 조건에 의해 흔들리는지를 작품 사이의 관계로 풀어낸다. 이시다의 신체에는 경제와 노동이 개입하고, 이불의 공간에는 역사가 들어오며, 나라의 인물과 방에는 개인적인 기억과 고독이 남는다.

정체성도 완성된 모습으로 제시되지 않는다. 외부에 드러나는 얼굴과 내부의 감정, 개인이 스스로 인식하는 모습과 사회가 요구하는 역할 사이에서 끊임없이 달라지는 상태에 가깝다. 한 점의 작품이 모든 설명을 맡는 대신 서로 다른 작가들이 정체성의 여러 층위를 나눠 보여준다.

홍콩 소더비 메종의 ‘PSYCHO’는 27일까지 이어진다. 테츠야 이시다의 움직이지 못하는 신체와 요시토모 나라의 작은 인물 사이에는 큰 시각적 차이가 있지만 두 작품이 놓인 자리는 결국 인간의 내면과 외부 세계가 만나는 곳이다. 개인의 감정을 사회·경제·역사와 함께 다루는 구성은 ‘내면’을 바라보는 전시가 사적인 심리 묘사에서 한 사람을 만들어내는 환경 전체로 범위를 넓히고 있음을 드러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