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의 전략④] Siri 출시 밀리고 Gemini 택한 애플…아이폰 경쟁축 AI로 이동
2024년 예고한 개인화 Siri, 2026년 9월 영어 베타로 뒤늦게 출발…Google과 차세대 Foundation Models 공동 개발, 25억대 기기 생태계도 AI 지원 여부에 따라 다시 갈려
[KtN 임민정기자]뉴욕 첼시에서 9월 18일부터 열리고 있는 ‘What Holds Us’에는 애플이 오랫동안 잘해온 아이폰의 모습이 담겨 있다. 설산과 빙하, 인체와 점토, 대규모 군중을 iPhone 18 Pro로 촬영하고, 결과물을 갤러리에 걸었다. 카메라 기술을 전문 사진가의 작업과 연결하고 제품을 문화 콘텐츠로 바꾸는 방식이다.
전시장 밖에서는 아이폰을 둘러싼 경쟁의 기준이 빠르게 달라지고 있다. 카메라가 얼마나 선명하게 찍히는지, 칩이 얼마나 빨라졌는지뿐 아니라 사용자의 말과 화면, 메시지와 사진을 이해하고 여러 앱의 일을 대신 처리할 수 있는지가 스마트폰의 새로운 경쟁 요소로 들어왔다.
생성형 AI 경쟁이 본격화된 뒤 애플은 이 분야에서 예정했던 일정을 맞추지 못했다. 2024년 Apple Intelligence를 공개하면서 개인적인 맥락을 이해하고 앱 안팎에서 작업하는 Siri를 예고했지만, 2025년 3월 개발에 시간이 더 필요하다며 해당 기능을 2026년으로 미뤘다. 당초 2025년 제공을 예고했던 기능이었다.
9월 19일 현재 상황은 다시 달라졌다. 애플은 지난 14일부터 새로운 Siri AI를 영어 베타로 순차 제공하고 있다. 한국어와 프랑스어, 일본어, 포르투갈어, 스페인어 지원은 10월로 예정돼 있다. 2024년 처음 공개한 개인화 Siri의 핵심 구상이 2년여 만에 실제 이용 단계로 들어온 셈이다.
설산에서 스마트폰을 손에 들고 촬영하는 모습은 지금까지 아이폰이 쌓아온 경쟁력을 압축한다. 카메라와 칩, 휴대성, 소프트웨어를 한 기기 안에 묶어 전문 촬영 현장까지 파고들었다. ‘What Holds Us’도 같은 능력을 보여주는 프로젝트다. 사용자가 복잡한 기술 구조를 알지 못해도 결과물로 성능을 체감하게 만든다.
AI에서는 같은 방식만으로 부족하다. 사진은 카메라가 기록한 결과를 사람이 판단하지만, AI는 사용자가 기기를 사용하는 과정 자체에 개입한다. 메시지에서 약속을 찾아내고, 이메일에 들어 있는 예약 정보를 확인하며, 현재 보고 있는 화면을 이해하고 필요한 앱의 기능까지 호출해야 한다.
올해 1월 애플은 Google과 다년 협력을 맺었다. Google의 Gemini 모델과 클라우드 기술을 차세대 Apple Foundation Models 구축에 활용하고, 새로운 Siri를 비롯한 Apple Intelligence 기능의 기반으로 삼는 내용이다. Google은 Android를 운영하면서 스마트폰 시장에서 애플과 경쟁하는 동시에 Gemini를 AI 사업의 핵심으로 키워온 기업이다.
9월 배포가 시작된 차세대 Apple Intelligence 역시 Google 및 Gemini 모델과 협력해 맞춤 개발한 차세대 Apple Foundation Models를 사용한다. 모델은 기기 안에서 처리하거나 Private Cloud Compute 서버를 이용하며, 애플은 개인 데이터가 서버에 저장되거나 애플을 포함한 다른 주체가 접근할 수 없도록 설계했다고 밝히고 있다.
애플이 AI 개발을 Google에 넘겼다고 볼 수는 없다. 운영체제와 기기 안의 처리, Private Cloud Compute, 앱 연동, 개인정보 보호 구조는 애플이 직접 설계한다. 다만 아이폰에서 A시리즈 칩과 iOS를 함께 만들며 주요 기술을 내부로 끌어들였던 방식과 비교하면 차세대 AI 모델 구축에 경쟁사의 핵심 기술을 받아들인 변화는 작지 않다.
2025년에는 Anthropic이나 OpenAI의 모델을 새로운 Siri에 활용하는 방안도 검토했다. 당시 논의는 초기 단계였고 최종 선택은 아니었지만, 자체 모델만으로 Siri를 다시 만드는 방안과 함께 외부의 대형언어모델을 이용하는 선택지를 동시에 검토했다는 점에서 애플의 방향 전환을 보여줬다.
헬리콥터 안에서 스마트폰을 이용해 산악 지형을 촬영하는 작업은 아이폰이라는 하드웨어가 얼마나 넓은 환경으로 들어갔는지를 보여준다. 손에 쥐는 기기는 작지만 촬영자는 고도와 빛, 피사체의 거리까지 판단하며 작업한다.
AI가 들어간 아이폰의 내부는 더 복잡해진다. 사용자는 Siri 하나를 부르지만 뒤에서는 기기 자체의 연산과 Apple Foundation Models, Private Cloud Compute, 웹 정보와 앱 기능이 연결된다. 앞으로 아이폰 경쟁력은 이런 복잡한 구조를 사용자가 의식하지 않아도 얼마나 자연스럽게 작동시키느냐에 달려 있다.
6월 공개된 Siri AI는 개인적인 맥락과 화면 내용을 이해하고 웹에서 최신 정보를 찾는 기능을 갖췄다. 메시지와 이메일, 사진에서 필요한 정보를 찾아내고, 시스템 전반의 앱 동작을 이용해 여러 작업을 이어갈 수도 있다. iPhone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iPad, Mac, Apple Watch, Apple Vision Pro까지 연결된다.
애플에는 이미 AI를 배포할 거대한 기기 기반이 있다. 2026년 1월 기준 활성 Apple 기기는 25억대를 넘어섰다. 새로운 기기를 처음부터 보급해야 하는 AI 기업과 달리 운영체제 업데이트만으로 수많은 기존 이용자에게 기능을 전달할 수 있다는 점은 분명한 자산이다.
다만 25억대 전체가 같은 AI를 사용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모건스탠리는 지난 6월 8억5000만대가 넘는 iPhone이 기본적인 Apple Intelligence 처리를 지원하지 못하고, 13억대 이상이 고급 Siri 기능과 호환되지 않는다고 분석했다. 구형 기기의 칩과 메모리가 새로운 AI 기능을 처리하기 어려운 데 따른 제약이다.
카메라 개선과 다른 종류의 세대 차이가 생기는 대목이다. 기존 아이폰의 카메라가 새 제품 출시와 함께 갑자기 사용할 수 없게 되는 것은 아니다. AI 기능은 필요한 연산 능력을 갖추지 못한 기기에서 아예 지원되지 않을 수 있다. 새 소프트웨어가 오래된 하드웨어와 선을 긋는 구조다.
아이폰 판매와 AI도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최신 Siri AI를 충분히 사용하려면 일정 수준 이상의 하드웨어가 필요하고, 기존 이용자 가운데 일부는 새 기능을 사용하기 위해 기기 교체를 고려할 수 있다. 반대로 새 제품을 구입하고도 AI 경험이 경쟁 서비스에 미치지 못한다면 높은 가격과 브랜드만으로 만족을 유지하기 어려워진다.
애플 입장에서는 Siri의 위치가 중요하다. 사용자가 아이폰을 켠 뒤 ChatGPT나 Gemini 같은 외부 AI부터 찾는 사용 방식이 굳어지면 기기는 애플이 만들더라도 사용자의 중요한 디지털 접점은 다른 회사가 차지할 수 있다. Siri가 사진과 메시지, 일정, 파일과 앱을 자연스럽게 연결한다면 반대로 아이폰의 운영체제와 개인 데이터가 AI 경쟁에서 강한 기반이 된다.
AI가 앱 사용 방식까지 바꾸기 시작하면 의미는 더 커진다. 지금은 여행을 준비할 때 항공사와 지도, 호텔, 메신저 앱을 차례로 열지만 AI가 사용자의 지시를 받아 필요한 서비스를 찾아 연결하는 방식이 자리 잡으면 앱을 직접 고르는 과정은 줄어들 수 있다. 스마트폰 자체보다 사용자의 요청을 처음 받는 AI가 더 중요한 위치를 차지할 가능성이 생긴다.
애플이 Siri AI를 운영체제 깊숙이 넣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iPhone과 Mac, iPad, Watch에서 같은 개인적 맥락을 이어받고, Spotlight와 앱 기능까지 연결하면 범용 챗봇과 다른 사용 경험을 만들 수 있다. 세계 최고 수준의 범용 모델을 직접 보유하고 있느냐와 별개로, 사용자의 실제 생활 정보와 기기를 얼마나 촘촘하게 연결하느냐는 애플이 선택한 또 다른 경쟁 방식이다.
알렉스 프레이거의 작업을 위해 만들어진 대규모 촬영 현장에는 출연자와 세트, 조명과 여러 제작 인력이 들어갔다. 마지막 사진을 기록하는 도구는 작은 스마트폰이지만 한 장의 이미지 뒤에는 휴대전화 밖의 제작 시스템이 있다.
Siri AI도 비슷한 구조로 옮겨가고 있다. 사용자가 보는 것은 아이폰 안의 Siri지만 실제 기능은 애플 자체 기술만으로 구성되지 않는다. Google과 공동 개발한 모델, 애플의 칩과 운영체제, Private Cloud Compute, 각종 앱과 웹 정보가 함께 움직인다. ‘애플이 모든 것을 직접 만든다’는 과거의 이미지보다 어떤 기술을 가져와 하나의 사용자 경험으로 묶는지가 더 중요해졌다.
경쟁사의 속도도 빨라졌다. 삼성전자는 2026년 Galaxy AI가 적용되는 모바일 기기를 지난해 약 4억대에서 올해 8억대로 늘릴 계획이다. 해당 AI 기능 상당 부분에는 Google Gemini가 활용되고 있다. 스마트폰 제조사들이 AI를 일부 고가 모델의 부가 기능에서 광범위한 제품군의 기본 기능으로 넓히고 있다는 흐름이다.
애플의 AI 확장은 지역별로도 차이가 있다. 9월 19일 현재 Siri AI는 영어 베타가 시작됐지만 한국어는 10월을 기다려야 한다. 중국에서는 규제 요건을 해결하는 동안 새로운 Siri AI와 Apple Intelligence 기능을 사용할 수 없고, 유럽연합의 iPhone과 iPad에도 Siri AI가 초기에는 제공되지 않는다. 하나의 아이폰을 세계에 판매하는 것과 동일한 AI 서비스를 각국에 배포하는 일이 서로 다른 문제라는 사실이 드러난다.
뉴욕의 ‘What Holds Us’는 애플이 이미 익숙하게 다뤄온 영역을 보여준다. 사진가를 선정하고, 카메라 기술을 작품으로 바꾸고, 전시장을 통해 제품에 문화적 이미지를 입힌다. 18일 시작한 전시는 20일까지 이어진다. iPhone 18 Pro의 판매 시작과 같은 시기에 사진전을 열어 카메라와 브랜드를 다시 연결했다.
AI는 다른 기준으로 봐야 한다. 전시가 세련되고 카메라가 좋아도 Siri가 사용자의 요청을 제대로 이해하고 필요한 일을 처리하는 능력까지 대신 증명하지는 못한다. 2024년 공개한 개인화 기능은 당초 계획보다 늦어졌고, 2026년에는 Google Gemini와 결합한 새로운 모델 구조를 통해 다시 시장에 들어왔다.
9월 19일은 그래서 애플 AI 전략을 ‘아직 나오지 않은 기술’로 평가할 시점도, 성공을 단정할 시점도 아니다. 영어 베타가 시작된 지 닷새에 불과하다. 개인화 Siri의 실제 완성도와 앱 연동, 언어별 지원, 구형 기기와의 격차가 이제 사용 단계에서 드러나기 시작한다.
아이폰의 현재 경쟁력은 카메라와 칩, 디자인, 거대한 이용자 기반에서 여전히 확인된다. AI 시대에는 여기에 다른 조건이 붙었다. 사용자의 정보를 이해하고 여러 앱과 서비스를 연결하는 지능이 제품 안에서 얼마나 자연스럽게 작동하는가다.
‘What Holds Us’에 전시된 사진은 애플이 지금까지 잘 만들어온 아이폰을 보여준다. 9월부터 베타 서비스를 시작한 Siri AI는 앞으로의 아이폰이 어느 위치에 설지를 가르는 새로운 요소다. 카메라와 디자인이 만든 프리미엄 위에 AI까지 자연스럽게 올라갈 수 있는지, Google의 모델 기술을 받아들인 애플이 이를 자사 생태계의 경험으로 바꿀 수 있는지가 다음 아이폰 경쟁의 핵심으로 들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