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의 전략⑤] 디자인 넘어 칩·OS까지 묶은 애플…AI 시대 수직통합 다시 짠다
A20 Pro·M6부터 iOS·Private Cloud Compute까지 직접 설계…생산은 외부에 맡기고 AI 기반 기술은 Google과 협업, ‘모든 것을 직접 만드는 회사’보다 최종 경험을 통제하는 회사로
[KtN 임민정기자]뉴욕 첼시의 ‘What Holds Us’에서 관객이 만나는 것은 잘 다듬어진 최종 결과다. 사진가가 촬영한 작품은 흰 벽에 정돈돼 걸리고, iPhone 18 Pro는 전면에서 물러난다. 제품의 외형과 전시장, 사진의 크기와 배치까지 하나의 이미지로 정리하는 능력은 애플이 오랫동안 강점을 보여온 분야다.
애플을 디자인이 뛰어난 휴대전화 회사로 기억하는 이유도 충분하다. 첫 아이폰 이후 제품의 형태와 소재, 인터페이스, 매장, 포장과 광고까지 일관된 미감을 유지해 왔다. ‘What Holds Us’에서는 신제품 발표마저 사진전의 형식으로 옮겼다.
하지만 애플의 실제 사업 구조를 산업디자인만으로 설명하기는 어렵다. iPhone 18 Pro에는 애플이 설계한 A20 Pro가 들어가고 운영체제는 iOS 27, AI 기능은 Apple Intelligence와 Siri AI가 맡는다. 카메라의 이미지 처리와 기기 안의 AI 연산, 앱 생태계와 클라우드까지 서로 연결된다. 애플이 경쟁력을 만들어온 방식은 개별 기술 한 가지보다 여러 기술을 한 제품 안에서 묶는 데 가까웠다.
반대로 아이폰을 구성하는 모든 것을 애플이 직접 생산하는 것도 아니다. 애플은 반도체를 설계하지만 제조 공장을 직접 운영해 칩을 생산하는 기업은 아니다. 기기 생산과 최종 조립의 상당 부분도 외부 협력업체가 맡는다.
애플이 미국 증권거래위원회에 제출한 2025 회계연도 연차보고서에는 생산 구조가 비교적 분명하게 드러나 있다. 부품과 완제품 제조, 물류의 상당 부분을 외부 업체에 의존하며, 제조는 중국 본토와 인도, 일본, 한국, 대만, 베트남 등을 중심으로 이뤄진다. 하드웨어 제품 대부분의 최종 조립 역시 주로 아시아 지역 협력업체가 담당한다. 애플 스스로 외주 생산이 비용을 낮추는 대신 생산과 유통을 직접 통제할 수 있는 범위를 줄일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애플의 ‘수직통합’을 공장까지 직접 가진 제조업으로 이해해서는 안 되는 이유다. 애플이 강하게 쥐고 있는 것은 공장보다 제품의 설계도에 가깝다. 어떤 칩을 쓰고 어떤 운영체제를 올리며 카메라와 소프트웨어를 어떻게 연결할지 결정한다. 생산은 세계 곳곳의 협력업체가 맡아도 최종 제품의 규칙은 애플이 정하는 방식이다.
‘What Holds Us’의 제작 과정에서도 완성된 작품 뒤의 노동과 기술은 쉽게 드러나지 않는다. 잭 데이비슨(Jack Davison)의 작업에서는 사람과 점토, 조각 형태를 만들고 배치하는 과정이 먼저 존재한다. 전시장에서는 정제된 사진 한 장을 만나지만 실제 결과가 만들어지기까지는 촬영 대상과 공간, 빛, 사진가의 판단이 겹친다.
아이폰도 크게 다르지 않다. 소비자가 만나는 것은 얇은 완제품 한 대지만 내부에는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카메라 모듈, 배터리, 통신 기술, 운영체제가 들어간다. 여러 나라의 공급망과 외부 제조업체가 참여한 결과를 마지막에는 하나의 ‘애플 제품’으로 보이게 만든다.
디자인은 바로 이 과정에서 외형을 꾸미는 일에 머물지 않는다. 칩과 운영체제, 부품과 소프트웨어가 어떤 방식으로 함께 작동할지 정하는 시스템 설계까지 넓어진다.
애플 실리콘이 대표적이다. 8월 공개한 M6는 애플 최초의 2나노미터 칩으로 12코어 CPU와 12코어 GPU, 듀얼 16코어 Neural Engine을 갖췄다. M5 Ultra는 최대 36코어 CPU와 80코어 GPU, 최대 512GB의 통합 메모리를 지원한다. 애플은 CPU와 GPU, Neural Engine, 메모리 구조를 하나의 칩 체계 안에서 설계하고 macOS와 개발 도구까지 맞춘다.
여기까지는 애플이 지난 수년 동안 익숙하게 해온 방식이다.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함께 설계하고, 외부 생산망을 활용하면서 최종 사용 경험은 자사가 통제한다.
AI가 들어오면서 공식이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
차세대 Apple Intelligence를 구동하는 Apple Foundation Models에는 Google과 Gemini 모델 기술이 들어왔다. 애플은 Google과 협력해 자사 용도에 맞춘 차세대 모델을 개발했고, 기기에서 처리할 수 없는 작업은 Private Cloud Compute를 이용하도록 했다. 9월 14일부터 제공되기 시작한 차세대 Apple Intelligence 역시 해당 구조를 사용한다.
애플이 AI 전체를 Google에 맡겼다는 의미는 아니다. 어떤 정보가 기기에서 처리되고 어느 작업이 서버로 넘어가는지, Siri가 어떤 앱과 연결되는지, 개인정보를 어떤 방식으로 보호할지는 애플이 설계한다. 사용자가 마주하는 최종 인터페이스 역시 Siri와 iOS다.
다만 AI의 핵심 기반 기술까지 전부 내부에서 해결하는 모습과는 거리가 있다. Apple Foundation Models에 Google 기술을 활용하고, Private Cloud Compute도 올해부터 애플 자체 데이터센터 밖으로 범위를 넓혔다.
애플은 6월 Google과 NVIDIA의 기술을 이용해 일부 Apple Intelligence 작업을 Google Cloud에서도 처리한다고 밝혔다. Google Cloud의 인프라와 NVIDIA GPU를 사용하면서 Private Cloud Compute의 보안 원칙을 적용하는 방식이다. 2024년 처음 공개됐을 당시 애플 실리콘을 사용하는 자체 데이터센터 중심이었던 구조가 외부 인프라까지 넓어진 것이다.
사진가는 손에 든 iPhone으로 대상을 촬영하지만 한 장의 사진이 휴대전화만으로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다. 피사체와 공간을 만들고 빛을 조절하며 구도를 정하는 과정이 먼저 있다. 기기는 중요한 도구지만 전체 작업을 혼자 완성하지 않는다.
AI 시대의 아이폰도 비슷한 방향으로 복잡해지고 있다. 사용자는 Siri 하나를 부르지만 뒤에서는 A20 Pro와 iOS, Apple Foundation Models, Private Cloud Compute가 움직이고 일부 작업에는 Google과 NVIDIA의 기술도 들어간다. 화면에는 하나의 서비스처럼 나타나지만 실제 기반은 여러 기업의 기술로 구성된다.
애플의 전략을 ‘폐쇄적인 생태계’라는 한 문장으로만 설명하기 어려워진 이유다. 필요한 기술을 안으로 끌어들여 모두 직접 보유하는 것보다 어느 부분을 직접 만들고 어느 부분은 외부에서 가져올지를 고르는 능력이 중요해졌다.
과거에도 애플이 모든 기술을 직접 발명한 것은 아니다. 디스플레이와 메모리, 통신 부품과 생산 설비를 외부 업체에서 공급받고 제품을 만들었다. 차이는 AI가 단순한 부품이 아니라 앞으로 사용자가 기기와 대화하고 정보를 찾고 앱을 움직이는 중심 기술이 될 수 있다는 데 있다.
카메라 모듈을 외부에서 공급받더라도 iPhone이라는 제품의 주도권은 애플에 남는다. AI에서도 같은 관계를 만들 수 있을지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
Google의 Gemini 기술을 가져오더라도 사용자가 최종적으로 ‘Apple Intelligence’와 ‘Siri’를 사용한다고 느끼고, 개인정보와 앱, 기기 사이의 연결에서 다른 AI 서비스와 뚜렷한 차이를 경험한다면 애플식 통합 전략은 다시 작동할 수 있다.
반대로 사용자가 Siri보다 Gemini나 ChatGPT를 먼저 찾고, 중요한 AI 기능의 차이를 외부 모델의 성능에서 느낀다면 상황은 달라진다. 아이폰의 외형과 운영체제를 애플이 통제하더라도 사용자와 디지털 세계 사이의 가장 중요한 접점은 다른 기업이 가져갈 수 있다.
AI가 애플의 수직통합을 흔드는 부분은 바로 여기에 있다.
M6처럼 반도체는 애플이 제품에 필요한 방향을 정하고 칩의 구조를 설계할 수 있다. 운영체제 역시 업데이트 일정과 기능 배치를 직접 결정한다. 생성형 AI 모델은 개발 속도부터 다르다. 몇 달 사이 성능이 크게 달라지고 막대한 데이터센터와 GPU, 학습 데이터가 필요하다. 경쟁사 기술을 활용하는 편이 시간을 단축할 수 있는 영역이다.
9월 현재 애플은 두 방향을 동시에 택하고 있다. 기기에서는 자체 칩과 온디바이스 처리를 강화하고, 더 큰 모델이 필요한 작업에는 Google과 협력해 만든 Foundation Models와 확대된 Private Cloud Compute를 사용한다. 모든 연산을 클라우드로 보내지도 않고 모든 기술을 기기 안에 가두지도 않는다.
이는 애플이 기술기업이 아니라 디자인 회사라는 주장과도 거리를 둔다. M6와 A20 Pro, iOS와 macOS, 보안 체계와 개발 프레임워크를 직접 설계하는 기업을 산업디자인 회사로만 분류하기는 어렵다.
그렇다고 자체 칩을 설계한다는 사실만으로 다음 기술 경쟁에서도 우위를 보장받는 것도 아니다. AI의 중요한 기반 가운데 일부를 Google과 함께 구축해야 했다는 사실 역시 현재 애플의 위치를 보여준다.
전시장에서는 제작 과정이 사라지고 완성된 이미지들이 하나의 구성으로 남는다. 흑백 사진과 인물 작업의 크기와 간격을 맞추고 관객이 자연스럽게 다음 작품으로 이동하도록 정리돼 있다. 서로 다른 작업이 마지막에는 하나의 전시 경험으로 통합된다.
애플이 지금까지 가장 능숙하게 해온 일도 이와 비슷하다. 반도체와 소프트웨어, 외부 부품과 공급망을 소비자가 일일이 의식하지 않아도 하나의 아이폰으로 사용하도록 만들었다. 기능을 나열하는 대신 경험을 정리했다.
AI 시대에는 통합해야 할 대상이 하나 더 늘었다. 카메라와 칩을 묶는 수준을 넘어 다른 회사가 개발한 대형 AI 모델과 클라우드 인프라까지 애플 제품의 일부처럼 움직이게 해야 한다.
여기에는 위험도 따른다. 외부 모델의 기술 변화가 빨라질수록 애플이 통제하지 못하는 영역이 커질 수 있고, Google과 같은 경쟁사가 AI 모델과 클라우드에서 우위를 유지하면 기술 의존 문제가 계속 따라붙는다. Private Cloud Compute를 외부 데이터센터로 넓힌 것도 처리 능력을 확보하는 데 유리한 반면 애플이 직접 관리하던 물리적 인프라의 범위는 달라진다.
애플은 대신 통제의 기준을 바꾸고 있다. 모든 서버와 모델을 직접 소유하는 것보다 개인정보 처리 방식과 운영체제, 사용자 인터페이스를 통제하는 쪽이다. 외부 데이터센터를 사용하더라도 데이터가 저장되지 않고 관리자도 사용자 데이터에 접근할 수 없도록 PCC의 보안 요건을 유지한다는 것이 애플의 설명이다. 해당 구조는 외부 연구자가 검증할 수 있도록 공개하고 있다.
이 전략이 성공한다면 애플의 강점은 ‘모든 것을 직접 만드는 회사’라는 데 있지 않게 된다. 필요한 기술을 외부에서 가져오더라도 아이폰과 Mac, iPad 안에서는 하나의 서비스처럼 작동하도록 만드는 능력이 더 중요해진다.
반대로 통합만 잘하면 된다는 시대도 지나가고 있다. AI 자체의 성능이 낮거나 경쟁사보다 늦으면 아무리 매끄러운 인터페이스를 갖춰도 사용자가 체감한다. 2024년 예고했던 개인화 Siri의 핵심 기능이 당초 일정에서 밀린 사실은 애플도 예외가 아니라는 점을 이미 보여줬다.
‘What Holds Us’에서는 완성된 작품이 먼저 보인다. 촬영을 위해 얼마나 많은 사람과 장비가 움직였는지는 전시장 밖으로 물러나 있다. 애플 제품도 오랫동안 비슷했다. 복잡한 공급망과 수많은 부품, 반도체와 코드를 하나의 매끈한 기기로 감췄다.
AI 시대에는 완성된 외형만으로 감출 수 없는 영역이 커졌다. Siri가 질문을 제대로 이해하는지, 사용자의 정보를 정확하게 찾는지, 여러 앱의 작업을 이어갈 수 있는지는 직접 사용할 때 바로 드러난다. 디자인과 브랜드가 AI의 성능 차이를 대신할 수 없다.
애플의 실제 강점은 디자인 하나에도, 자체 기술 하나에도 있지 않았다. 여러 기술과 공급망을 최종 제품으로 묶고 사용자가 복잡한 내부를 의식하지 않게 만드는 능력이 아이폰 시대의 경쟁력이었다.
2026년에는 같은 능력이 다른 조건에서 다시 검증받고 있다. A20 Pro와 M6는 애플이 설계하지만 생산은 외부 제조망을 거친다. 운영체제는 직접 만들지만 차세대 AI 모델에는 Google의 기술이 들어간다. Private Cloud Compute 역시 애플 데이터센터를 넘어 Google Cloud의 인프라까지 사용하기 시작했다.
아이폰 시대의 수직통합이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한 회사가 설계하는 것’이었다면 AI 시대에는 외부 기술까지 포함한 복잡한 생태계를 누가 최종 사용자 경험으로 통제하느냐가 더 중요해지고 있다. 애플이 앞으로 증명해야 할 경쟁력도 제품의 외형이 아니라 바로 그 통합 능력에 가까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