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두아 리파 1500만달러 소송 기각 요청…‘얼굴’의 상표권 범위 법정 공방
TV 포장에 사용된 공연 사진 두고 저작권·허위 보증·퍼블리시티권 충돌 삼성, 영국 거주지와 한국 본사 책임도 쟁점화…12월 14일 미 연방법원 심리
[KtN 김상기기자]삼성전자가 팝스타 두아 리파(Dua Lipa)가 제기한 최소 1500만달러 규모의 소송을 기각해 달라고 미국 연방법원에 요청했다. 삼성 TV 포장 상자에 두아 리파의 사진이 사용된 데서 시작된 분쟁은 사진 사용 허가 여부를 넘어 유명인의 얼굴이 상표로 기능할 수 있는지, 캘리포니아의 퍼블리시티권을 해외 거주자에게 적용할 수 있는지, 한국 삼성전자 본사가 미국 자회사의 행위까지 책임져야 하는지를 함께 다투는 소송으로 확대됐다.
Samsung Electronics America, Inc.와 한국의 Samsung Electronics Co., Ltd.는 지난 9월 10일 미국 캘리포니아 중부연방지방법원에 연방민사소송규칙 12(b)(6)에 따른 소송 기각 신청을 제출했다. 담당 크리스티나 A. 스나이더(Christina A. Snyder) 판사는 오는 12월 14일 오전 10시 기각 신청을 심리할 예정이다.
연방민사소송규칙 12(b)(6)에 따른 기각 신청은 원고가 소장에 적은 사실을 사실로 받아들이더라도 법적으로 인정될 수 있는 청구가 충분히 제시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본격적인 재판에 들어가기 전 소송을 정리해 달라고 요구하는 절차다. 이번 심리는 사진 사용의 적법성이나 1500만달러 손해배상 책임을 최종 판단하는 본안 재판과는 다르다.
분쟁 대상은 'Dua Lipa – Backstage at Austin City Limits, 2024'라는 사진이다. 소송 기록에는 두아 리파가 미국 저작권청에 VA 2-479-685로 등록된 해당 사진의 권리를 보유한 것으로 기재돼 있다.
삼성 TV 포장에는 두아 리파의 사진이 Samsung TV Plus의 음악 비디오 채널 'XITE HITS'를 보여주는 TV 인터페이스 안에 들어갔다. 같은 구성에는 ABC News Live, Fox Sports, MLB, A&E의 'The First 48' 등 다른 콘텐츠 이미지도 함께 배치됐다.
두아 리파 측은 지난해 6월 해당 포장을 인지한 뒤 사용 중단을 요구했으며, 지난 5월 8일 제기한 소송에서 2025년부터 미국에서 판매된 삼성 TV 포장에 사진이 사용됐다고 주장했다. 허락 없이 얼굴과 사진을 제품 판매에 이용해 상업적 제휴 또는 보증 관계가 있는 것처럼 소비자에게 인식시켰다는 주장이다.
실제 손해배상 청구액은 최소 1500만달러다. 삼성의 이익 가운데 무단 사용과 관련된 부분, 징벌적 손해배상과 소송비용도 별도로 요구했다.
소장에는 직접 저작권 침해와 한국 본사에 대한 대위적 저작권 침해 책임, 미국 연방 상표법인 랜햄법(Lanham Act)에 따른 허위 보증과 상표권 침해, 보통법상 상표권 침해, 기여 상표권 침해, 대위적 상표권 침해, 캘리포니아 민법 제3344조와 보통법상 퍼블리시티권 침해 등 모두 8개 청구가 담겼다.
삼성의 기각 신청은 각 청구의 사실관계보다 법적 성립 요건을 겨냥했다. 가장 먼저 부각된 쟁점은 유명인의 얼굴과 상표권 사이의 경계다.
삼성은 유명인의 얼굴이나 초상이 모든 상품과 서비스에 대해 자동으로 상표가 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상표가 성립하려면 소비자가 해당 표시를 특정 상품이나 서비스의 출처를 구별하는 표지로 받아들여야 하는데, 유명인을 촬영한 사진만으로는 이런 기능이 성립하지 않는다는 논리다.
삼성 측은 타이거 우즈(Tiger Woods), 베이브 루스(Babe Ruth), 밥 말리(Bob Marley) 관련 판례도 근거로 들었다. 특정 이미지가 일정한 방식으로 반복 사용되면서 상품이나 서비스의 출처를 알리는 기능을 했다면 별도 판단이 가능하지만, 두아 리파 측 소장에는 해당 사진이 그런 상표 기능을 해왔다는 구체적 사실이 충분하지 않다는 주장이다.
허위 보증(false endorsement) 청구에서도 같은 포장 디자인이 쟁점이 됐다.
삼성은 두아 리파의 사진이 독립된 광고 모델이나 브랜드 홍보 이미지처럼 전면에 사용된 것이 아니라, TV에서 제공되는 콘텐츠를 보여주는 인터페이스 일부였다고 주장했다. XITE HITS 이미지 아래 여러 방송·스포츠 콘텐츠가 나란히 배치돼 있어 소비자가 두아 리파를 삼성 TV의 공식 모델이나 사업 파트너로 받아들일 가능성이 낮다는 논리다.
두아 리파 측은 사진이 사용된 장소와 상업적 맥락을 문제 삼고 있다. 사진이 실제 방송 콘텐츠에 등장하는 것과 소비자가 매장에서 접하는 제품 포장에 인쇄되는 것은 법적 성격이 다르다는 주장이다. 소장에는 두아 리파의 사진이 들어간 삼성 TV를 구매하고 싶다는 취지의 소셜미디어 게시물도 소비자 반응의 근거로 포함됐다.
삼성은 해당 게시물을 실제 보증 관계를 믿었다는 증거로 볼 수 없다고 맞섰다. 팬들이 소셜미디어에서 사용한 과장된 표현을 삼성과 두아 리파 사이의 상업적 관계에 대한 인식으로 해석하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저작권 청구는 상표권과 법적 구조가 다르다. 상표권이 두아 리파의 얼굴이나 이미지가 상품 출처를 알리는 표지로 기능했는지를 다룬다면, 저작권은 등록된 특정 사진을 복제·배포·전시할 권한이 있었는지를 따진다.
삼성은 이번 기각 신청에서 해당 사진에 저작권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주장을 전면에 내세우지 않았다. 대신 소장이 두 법인을 '삼성'으로 묶어 서술하면서 어느 회사가 사진을 복제했고, 어느 회사가 포장을 제작·승인·유통했는지 구체적으로 구분하지 않았다는 점을 문제 삼았다.
한국 삼성전자 본사의 책임 범위도 별도의 쟁점이다.
두아 리파 측은 한국 본사가 미국 자회사 Samsung Electronics America의 주요 사업 결정에 상당한 통제력과 영향력을 행사했고, TV 포장의 제작·승인·라이선스·유통에도 책임이 있다는 취지로 대위 책임을 주장했다.
삼성은 일반적인 모회사와 자회사 관계만으로는 자회사의 행위에 대한 법적 책임을 모회사에 곧바로 물을 수 없다고 반박했다. 모회사가 침해 행위를 실제로 통제했다는 구체적 사실이 제시돼야 하며, 한국 본사가 미국법인의 포장 제작이나 사진 사용 결정에 직접 관여했다는 내용은 소장만으로 충분하지 않다는 주장이다.
퍼블리시티권에서는 준거법 문제가 맞붙었다.
캘리포니아 민법 제3344조는 타인의 이름·목소리·서명·사진·초상을 당사자 동의 없이 상품이나 광고·판매 목적으로 사용하는 경우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두아 리파 측은 해당 조항과 캘리포니아 보통법을 근거로 퍼블리시티권 침해를 주장했다.
삼성은 두아 리파의 법적 주소지(domicile)가 영국이라는 전제에서 캘리포니아법 적용 자체를 문제 삼았다. 캘리포니아의 법률 선택 원칙에 따라 영국법이 적용돼야 하며, 미국식 독립적인 퍼블리시티권과 같은 형태의 권리를 인정하기 어렵다는 논리다.
삼성은 다이애나 왕세자비(Princess Diana) 관련 'Cairns v. Franklin Mint' 사건도 근거로 제시했다.
다만 두아 리파 측 소장에는 영국에 법적 주소지를 두고 있다는 문장이 직접 기재돼 있지는 않다. 소장에는 미국 밖에 거주하는 개인으로 적혀 있으며, 삼성은 영국 앨범 차트 성적과 BRIT Awards 수상 경력 등 소장에 언급된 영국과의 연계를 근거로 영국을 주소지로 판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법원이 기각 단계에서 해당 논리를 어디까지 받아들일지는 12월 심리 대상 가운데 하나다.
삼성은 소장의 작성 방식 자체에도 문제를 제기했다.
8개 청구에서 Samsung Electronics America와 Samsung Electronics Co., Ltd.의 행위를 충분히 구분하지 않은 채 여러 주장을 반복적으로 끌어와 구성했다며 이른바 'shotgun pleading'에 해당한다고 주장했다. 여러 피고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할 경우 각 피고가 어떤 행위로 어떤 책임을 지는지 구체적으로 특정해야 한다는 논리다.
삼성은 소송 제기 직후 해당 사진이 제3자 콘텐츠 파트너로부터 제공됐으며, Samsung TV Plus뿐 아니라 소매용 포장 사용까지 필요한 허가를 확보했다는 설명을 해당 파트너로부터 받았다고 밝힌 바 있다. 의도적인 권리 침해는 부인했다.
오는 12월 14일 심리에서는 삼성의 사진 사용이 최종적으로 적법했는지를 판단하지 않는다. 스나이더 판사는 두아 리파가 제출한 소장이 각각의 법적 청구를 계속 진행할 수 있을 만큼 충분한지부터 살피게 된다.
기각 신청이 일부 받아들여질 경우 청구 원인이나 피고 범위가 줄어들거나 소장 수정 절차가 이어질 수 있다. 주요 청구가 유지되면 증거개시와 본안 심리로 소송이 넘어간다.
1500만달러라는 손해배상 규모보다 먼저 법원이 정리해야 할 부분은 한 장의 사진을 둘러싼 권리의 경계다. 사진 저작권과 유명인의 상업적 이미지 이용, 상품 포장이 만들어내는 보증·제휴의 인상, 해외 거주자의 퍼블리시티권, 한국 모회사와 미국 자회사의 책임이 한 소송 안에서 맞물렸다. 첫 판단은 오는 12월 14일 캘리포니아 중부연방법원에서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