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라렌 첫 SUV 2028년 출격…5억파운드 투자로 ‘슈퍼카 단일축’ 벗어난다
영국 생산·개발 거점 확대하고 2032년까지 1000명 고용…연간 수천 대 체제에서 판매 기반 넓히는 사업 재편 첫 4도어·5인승 모델에 하이브리드 전략 유지…페라리·람보르기니가 선점한 고수익 SUV 시장 진입
[KtN 김상기기자]맥라렌(McLaren)이 5억파운드를 영국 생산·개발 부문에 투입하고 브랜드 최초의 SUV 개발에 들어간다. 2028년께 시장에 나올 것으로 예상되는 첫 4도어 모델은 단순한 차종 추가보다 맥라렌 자동차 사업의 수익 구조를 바꾸는 데 무게가 실린다. 2인승 슈퍼카와 하이퍼카에 집중해 온 제품군을 넓히고, 엔진과 변속기 개발부터 조립까지 영국 내 생산 기반을 확충해 판매량과 수익성을 함께 끌어올리는 재편이다.
5억파운드 투자에는 새로운 영국 조립공장과 엔진·변속기 자체 개발, 카본파이버 생산능력 확충, 도장시설 개선 등이 포함된다. 2032년까지 직접 고용 1000명을 늘리고 공급망에서도 최대 3000명의 추가 고용 효과가 예상된다. 현재 2500명 이상을 고용하고 있는 맥라렌이 차종 확대에 맞춰 연구개발과 제조 역량을 동시에 키우는 구조다.
SUV는 투자계획 가운데 가장 큰 변화를 상징한다. 지금까지 맥라렌 로드카는 사실상 2인승 스포츠카와 하이퍼카를 중심으로 사업을 구축했다. 4개의 문과 5개의 좌석을 갖춘 모델이 양산되면 브랜드가 접근할 수 있는 고객층부터 달라진다. 기존 맥라렌 구매층 가운데 가족 이동이나 일상용 차량을 별도로 구입해야 했던 수요까지 자사 제품군 안으로 끌어들이겠다는 전략이다.
맥라렌 최고경영자 닉 콜린스(Nick Collins)는 포뮬러원(F1)을 통해 유입된 고객 가운데 자녀와 함께 탈 수 있는 차량을 원하는 수요를 언급했다. 슈퍼카 수준의 성능과 브랜드 정체성을 유지하면서 일상 활용도를 높인 차량으로 제품 범위를 넓히겠다는 구상이다.
맥라렌의 방향 전환은 고성능차 시장에서 이미 검증된 사업 모델과 맞닿아 있다. 람보르기니는 우루스(Urus), 애스턴마틴은 DBX, 벤틀리는 벤테이가(Bentayga)를 판매하고 있다. 페라리도 푸로산게(Purosangue)를 내놓으며 고급 SUV 시장에 진입했다. 기존 스포츠카보다 고객층이 넓고 판매량을 확보하기 쉬운 고가 SUV는 럭셔리 자동차 업체들이 브랜드 희소성을 유지하면서 매출 기반을 넓히는 수단으로 자리 잡았다.
2025년 람보르기니는 1만747대를 인도해 역대 최대 판매량을 기록했고 매출은 32억유로에 달했다. 미국 관세와 환율, 전동화 전략 수정 비용으로 영업이익은 전년보다 줄었지만, 높은 가격대의 모델과 개인 맞춤형 사양은 수익성을 지탱하는 역할을 했다. 연간 생산량이 수천 대 규모인 맥라렌에는 경쟁 브랜드가 구축한 SUV 수익 모델을 외면하기 어려운 시장 환경이다.
맥라렌 자동차 사업은 성장보다 재무 정상화가 먼저 필요했던 시기도 길었다. 2023년 매출은 4억6590만파운드로 전년보다 25.8% 감소했고, 당시 기존 고가 모델 생산 종료와 Artura 중심의 제품 구성 변화가 매출 감소에 영향을 미쳤다. 2024년 1~9월에는 매출이 6억1760만파운드로 회복됐지만 같은 기간 영업손실 6770만파운드, 세전손실 7950만파운드를 기록했다.
아부다비 자본 유입 이후 사업 구조는 빠르게 달라졌다. CYVN Holdings는 2025년 맥라렌 자동차 사업을 인수했고 이후 사업 재편 과정에서 자동차 부문과 전기차 스타트업 Forseven의 역량이 결합됐다. 현재 새로운 소유구조 아래 향후 5년간 약 15억파운드 규모의 자금 투입이 예정돼 있다. 5억파운드 영국 투자계획도 장기간 이어졌던 자금 압박에서 벗어나 제품과 생산시설에 다시 자본을 투입하는 단계로 이동했다는 의미가 크다.
판매 방식에도 변화가 시작됐다. 재고 차량을 대리점에 공급하는 방식보다 고객 주문에 맞춰 생산하는 체제로 옮겨가고 있다. 과도한 재고와 할인 판매를 줄이고 중고차 잔존가치를 방어해 브랜드 가격을 유지하기 위한 조치다. 생산량을 단순히 늘리는 것보다 차량 한 대에서 확보하는 이익과 브랜드 가치까지 함께 관리하려는 움직임이다.
첫 SUV는 내부적으로 'P47'이라는 코드명으로 개발돼 온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해 판매망 관계자들에게 제시된 계획에는 V8 하이브리드 파워트레인과 사륜구동, 4도어·5인승 구성, 24인치 휠 등이 포함됐다. 다만 P47 코드명과 구체적인 제원은 공식 양산차 발표가 아니라 개발·판매망 단계에서 알려진 내용으로, 최종 사양은 확정되지 않았다.
2028년이라는 출시 시점 역시 제품군 전환 일정과 맞물린다. 맥라렌은 기존 Artura와 GTS 등 주요 모델을 향후 2년 동안 순차적으로 정리하면서 새 세대 제품을 투입할 계획이다. 2027년에는 새로운 하이브리드 미드십 모델이 예정돼 있고, 이후 SUV를 포함한 신차가 이어지는 방향이다. 기존 차종을 추가하면서 생산량만 늘리는 방식이 아니라 상품 포트폴리오 자체를 바꾸는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전동화 전략에서는 순수 전기차보다 하이브리드가 앞선다. 맥라렌은 당장 배터리 전기차를 내놓을 계획이 없다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고성능 럭셔리차 고객의 전기차 수요가 아직 충분하지 않다고 보고 V8을 비롯한 내연기관과 전기모터를 결합하는 방식에 투자를 이어가고 있다. 첫 SUV 역시 V8 하이브리드가 유력한 것으로 전해진다.
영국 내 생산 확대는 비용 구조에도 영향을 미친다. 새 투자계획에는 엔진과 변속기 개발 역량을 내부로 가져오는 내용이 포함됐다. 핵심 부품을 자체적으로 설계·개발하면 초기 투자비는 커지지만 장기적으로 외부 공급업체 의존도를 낮추고 제품 간 기술 공유 범위를 넓힐 수 있다. 카본파이버 역량 확대까지 묶이면서 맥라렌이 차량 설계와 주요 구성품, 최종 조립을 영국 중심으로 재편하는 방향도 선명해졌다.
SUV 한 차종이 곧바로 수익성 개선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신규 공장과 파워트레인 개발에는 상당한 선행투자가 필요하고, 판매량을 확대하면서도 맥라렌이 유지해 온 희소성과 가격 체계를 지켜야 한다. 고급 SUV 시장에는 이미 람보르기니·페라리·애스턴마틴·벤틀리가 자리 잡았고, 20만파운드를 넘어서는 가격대에서 고객을 확보하려면 기존 슈퍼카와 구별되는 상품성도 필요하다.
반대로 자동차 부문의 손익을 개선하려면 2인승 슈퍼카만으로는 판매 규모를 넓히는 데 한계가 있다. SUV는 한 대의 신차보다 맥라렌이 어떤 자동차 회사로 재편되는지를 가늠할 제품에 가깝다. F1에서 확보한 브랜드 인지도를 자동차 판매로 연결하고, 차종 확대와 자체 생산 역량 강화, 주문생산 체제까지 맞물려야 5억파운드 투자가 실적 개선으로 이어질 수 있다.
영국에서는 새 조립공장 입지가 남아 있다. 셰필드가 유력 후보로 거론되고 있으며 맥라렌은 사우스요크셔의 카본파이버 시설을 비롯한 기존 생산거점도 확대할 예정이다. 2028년 첫 SUV 투입과 2032년까지의 1000명 직접 고용 계획이 진행되면서, 맥라렌 자동차 사업은 연간 수천 대의 슈퍼카 제조사에서 여러 차급을 갖춘 고성능 럭셔리 제조사로 생산 기반을 넓히는 단계에 들어섰다.